건습과 통풍을 조절하던 한지 이제는 장식용으로...
-전라북도한지공업협동조합
이장섭 /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책임연구원
옛적 가을추수가 끝나면 문종이를 새로 발라 늦가을 햇살에 말리던 광경은 이제는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의 옛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초가의 지붕을 새로 이는 일처럼 가을에 갈무리해야 하는 주요한 가 내일의 하나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가을철 문종이를 새로 바르는 일은 남아 있었으나, 그 이후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우리의 전통 가옥에서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전통적 가옥구조에서 한지로 도배한 문은 빛과 바람은 막아주고 공기와 습기는 적절히 통과시킴으로써 하절기 더위와 동절기 추위에 적응하게끔 만들어진 우리 조상들의 지혜의 축적물이다. 말하자면 가옥구조상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그것은 다른 가옥의 재료처럼 내구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일년을 주기로 새로이 갈아주어야 하는 비구내구성 건축재료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종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지금부터 약 1400여년 전에 나타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영양왕 11년(서기 600년)에 문자와 기록에 대한 언급이 있고, 또한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시대의 승려 담징이 영양왕 21년(서기 610년)에 왕의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제지법, 제묵법, 그리고 채화법을 가르쳐 주었고 아울러 맷돌의 제조법도 전수하였다는 것이다. 위의 기록에서 유추한다면 고구려시대 종이의 제조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고려시대에는 지소라는 제지공장이 있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지서라는 관청에는 종이를 관장하여 종이 생산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동국여지승람」에는 특히 전라도 전주지방의 종이를 그 질에서 상품으로 쳤고, 생산량에서도 으뜸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지의 재료는 죽엽, 송엽, 포절 따위의 종류가 있으나, 특히 닥나무를 원료로 한 한지가 가장 많은 부포를 가지고 있었다. 닥나무는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자생하여 한지의 원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이래 나라에서 생산을 적극 장려한 수종의 하나였다. 전주지방이 질 좋은 한지의 산지로 명성을 가지게 된 것도 그곳이 닥나무의 성장에 알맞은 기후를 가졌고, 특히 물이 좋아 질 좋은 닥나무가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한지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연관된 주요한 생활용품의 재료로써 전래되었다. 과거 기록의 매체로써 한지의 기능은 상층 계급에 한정되었고, 문자 사용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상민 이하의 계급에 속하던 다수의 사람들에게 한지는 생활에 직접 쓰이거나,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재료였다. 여기서 한지의 가장 우선적인 용도는 도배지였고, 또한 여러 가지 한지공예의 재료로 이용되었다. 한지를 꼬아 자리, 바구니, 미투리, 촛대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었고(紙繩工藝), 종이를 잘게 찢어서 그것을 풀과 섞어 종이쟁반, 함지박, 제기, 골무 따위를 제조하였다. (紙糊工藝). 그리고 반짇고리, 버선장, 갓집, 빗집, 지우산, 지화 따위의 일상생활용품과 연 같은 노리개의 주된 재료였다(剪紙工藝). 이 때는 싸리나 버들가지, 대와 같은 나무로 기본형을 만들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종이를 바르던 것이 후대에 와서 거기에 여러 가지 색을 넣어 미적인 장식을 가하기도 했다.
서구의 문물이 생활의 전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위의 한지 생활용품은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춘다. 소위 '양옥'이라는 가옥형태가 도시에서 널리 보급되고, 농어촌에도 '개량주택'이라는 가옥이 정부 차원에서 홍보,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가옥의 형태에 우선적으로 기와 또는 함석을 재료로 하는 지붕의 개량을 가져왔고, 한지를 바르던 살이 있는 과거의 문에서 통합판을 이용한 문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 들어서는 이른바 입식 부엌이라 하여 과거의 불을 때며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하던 방식에서 가스렌지를 이용한 조리와 보일러식 난방으로 구분되는 변화가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가옥 변천과정에서 도배지로써 그리고 문종이로써 한지의 전통적 용도는 상실되고 말았으며, 새로운 재료에 의한 생활용품의 등장으로 한지공예에도 명맥을 다하고, 지금은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렇듯 한지의 생산자나 한지공예의 장인은 더 이상 발붙이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현재는 서예용이나 한지공예 그리고 한지를 이용한 장식 등, 실내장식 등에 필요한 한지의 생산이 전통한지의 명맥을 유지한다. 근자에 들어 다른 전통적인 상품이나 그 재료가 처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그 재료가 처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한지 또한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밀려드는 값싼 중국종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한지는 일상적인 창호지의 용도가 아닌 단지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는 한지의 수요를 위해 가내수공업적 생산으로 이어져 온다. 전주는 과거의 명성에 어울리게 아직까지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지 생산업체가 모여있는 곳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전주에는 약 50여 개의 한지생산업체가 있었다. 이들 업체 중 22개가 1992년에 '전라북도한지공업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전주시 팔복동의 전주 1공단에 공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까지 개별적인 가내수공업 형태로 지속되어 오던 한지 생산이 공장식 공동생산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조합결성의 주된 동기는 현재 많은 전통상품이 겪고 있는 어려움인 값싼 중국제품의 수입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즉 공장화와 협업화 체계를 가장 많은 한지 생산업체가 모여 있는 곳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전주에는 약 50여 개의 한지생산업체가 있었다. 이들 업체 중 22개가 1992년에 '전라북도한지공업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전주시 팔복동의 전주 1공단에 공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까지 개별적인 가내수공업 형태로 지속되어 오던 한지 생산이 공장식 공동생산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조합결성의 주된 동기는 현재 많은 전통상품이 겪고 있는 어려움인 값싼 중국제품의 수입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즉 공장화와 협업화 체계를 통해 질의 향상과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도였다. 여기에는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지원이 있었는데, 특히 폐수처리시설을 지원받았다. 특히 폐수처리시설을 지원받았다. 가내수공업적 한지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처리의 문제에 행정당국의 관심이 그러한 지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조합의 자체 자금은 공단 내 공장부지 매입에 사용되었다. 현재 조합의 운영 자원은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충당된다. 조합이사장이 30만원, 조합원은 사업이 규모에 따라 15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차등적으로 월정 분담금을 납부한다.
비록 기계화라는 체계를 갖추었지만 그 기계화의 수준은 수공업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말하자면 수공업적 체제를 보완하는 기계화라 해야 맞다. 이 점은 전통상품의 대량생산 또는 공장생산의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이 원래 수공업적 체계에서 생산되어 왔기 때문에 그 본래의 성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생산과정이 필수적이고, 현대적 기계를 그 과정에 도입한다는 것은 특정 부분에 한정될 뿐이다. 다시 말해 기계화는 생산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생산량의 비교에서 확연해진다. 순수 수공 방식으로 하루에 500장을 한 업체가 들 수 있는데 현재 조합의 생산 체계에서는 최고로 700장 정도가 가능한 실정이다. 기계식으로 전환된 생산 방식이 생산량의 증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개별 조합원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은 가내수공업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쉽게 말하면, 남편은 종이를 떠내고 그 아내가 말리는 식의 분업은 과거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생산의 일정 부분과 시장유통을 공동으로 시행한다.
전통적인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는 일제강점기 때 그 생산이 억제된 이래 차차 자생적인 뿌리를 잃어버리고, 80년대 이후 전주지방뿐 아니라 전국의 닥나무 생산은 사라져 버렸다. 현재 한지원료로 사용되는 닥나무는 태국과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한다. 전북 조합의 경우 무역회사를 통해 일괄 구입하여 조합원에게 분배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지의 종류는 순지, 화선지가 있고, 색을 넣어 만든 색지, 그리고 족보를 만들 때 사용하는 족보지가 있는데 이는 다른 종이보다 얇은 게 특징이다.
닥나무를 이용한 한지의 전통적인 생산방법을 현재 어느 정도 기계화된 것과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현재 수입한 닥나무를 원료로 한 생산과정은 ③번 이하의 과정이 되고 특기사항은 고딕으로 기술된 부분이다.
① 과거 동지를 전후하여 닥나무를 베어다가 그 껍질을 벗겨낸다. 이 껍질를 흑피라 이르는데 이것이 한지의 원료가 된다.
② 흑피를 흐르는 물에 하루 동안 담구어 두었다가 어느 정도 불게 되면 발로 밟아서 외피를 벗겨낸다.
③ 백피를 물에 불려서 짚을 태운 재와 함께 가마솥에 넣고 1시간 정도 끓인다. 이 과정을거친 닥나무 껍질을 백피라한다. 수입된 닥나무는 양잿물로 표백을 한다. 이것을 다시 가성소다를 넣고 삶아낸다. 표백과정이 끝나면 하루 동안 물에 담궈두는데, 이 때 발생하는 폐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유일하게 폐수처리시설을 갖춘 조합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④ 더운 김을 가시기 전에 맑은 물에 빤다.
⑤ 물에 빤 백피를 약 2주일 동안 햇볕에 표백하여 곰배와 같은 모두로 곱게 빻는다. 분쇄기로 닥 나무를 잘게 간다. 여기까지의 작업은 조합에서 공동으로 이뤄지고 그 다음 공정부터 조합원 개인별로 진행된다. 즉 각자의 생산능력에 따라 재료가 분배된다.
⑥ 물을 부어놓은 기틀에 펄프가 된 닥나무를 넣고 닥풀을 섞어서 젓는다.
⑦ 대나무로 만든 발로 물질을 하여 지액에서 종이를 떠낸다. 이 종이를 수려지라 한다. 이 재료를 물이 담긴 넓은 통에 넣고 발로 물질을 하여 떠내면 한지의 종이가 된다. 재래식 방법은 체로 거르듯 종이를 떠냈으나 현재는 물 흐르는 장치를 이용하여 종이를 걸러낸다.
⑧ 수려지를 한 장씩 포개어 쌓은 다음 틀로 눌러 수분을 빼낸 후에 한 장씩 벗겨낸다. 발로 건져 낸 종이는 차곡차곡 함께 쌓은 다음 그것을 나무판 사이에 넣고 압착기로 물을 짜낸다.
⑨ 벗겨낸 종이는 흙벽 등에 붙여 햇볕에 말린다. 물을 뺀 종이는 한 장씩 건조실에서 말린다. 철판으로 된 건조장치는 초기에 장작불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보일러 시설로 가열장치가 된 철판으로 변화되었다. 어느 정도 가열된 철판 위에 마르지 않은 종이를 놓고 솔로 다림질하듯 건조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다.
조합이 결성되고 공장식 생산 방식으로의 전환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값싼 중국산 종이의 수입에 대한 대처 방안과 폐수처리 문제의 해결에 주안점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생산량의 확대는 오히려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소위 무허가업체의 경우와는 달리 조합 사무실 운영비, 폐수시설 관리비 세금 따위가 원가계산에 포함되어 생산원가가 그만큼 많아졌다. 현재 조합에서 생산되는 종이 한 장당 생산원가는 150원 정도로 산정되지만 무허가업체에서는 120원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경쟁력이 약화됨은 물론 조합의 존립 문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장식 생산으로 부가되는 경비문제로 생산원가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 시장 경쟁력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현재의 유통과정이 일정한 체계 안에서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지업사와 생산업자간에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데도 원인이 없지 않다. 따라서 소규모의 무허가 개인업자나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 그쪽으로 유통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무허가업체가 대부분 영세적이기 때문에 조합처럼 폐수시설 등 준법적인 생산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환경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이즈음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연히 문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조합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 설비에 투자하고 그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도 그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지생산에서 환경기준의 척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고 '양지'의 그것에 의존하는 실정이어서 의미가 없다. 조합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통상사업부에 진정을 의뢰하였지만 아무런 해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라북도한지공업협동조합'은 존폐의 기로에 처해 있다. 우리가 취재를 하던 날도 이 문제로 조합원회의가 격렬하게 진행되던 시점이어서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조합이 결성될 시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시점까지 노력하면 해결될 것으로 믿고 정과 성을 다해 정열을 바쳤다. 그간 3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각오가 막막해질 정도로 현실은 무서웠다. 더 이상 조합을 꾸려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분명치 않은 시점에 와 있다. 여기서 무릎을 꿇고 마느냐 하는 것이 요즈음 조합원의 공통된 심정이다. 이미 4명의 조합원이 계속되는 적자를 감당 못하여 탈퇴하여 나간 실정이고, 이 상태라면 조합의 존립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듯 싶다.
이러한 실정에서 보면, 우리가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내세우고 그 높은 문화적 가치의 보존과 계승을 말할 때 기준은 매우 한정적임을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외형적인 미와 유일성의 가치를 가진 것에만 관심을 모아진다. 다시 말해, 조상의 전통적인 장인정신이 깃든 일상생활적 문화요소는 아직 우리의 관심밖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산 종이가 비록 가격은 낮지만 종이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빼어난 한지의 재질로써 대응이 가능하다고 한지 생산업자들은 한지의 가능성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현재의 영세적 생산방식과 체계적이지 못한 유통구조 아래서는 장래가 결코 밝지만은 않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문제의 실마리를 전통문화의 종사자들의 자체적 노력으로 찾는다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장의 소리이다. 왜냐하면 영세적 가내수공업에서 환경보존과 생산력 향상을 위해 조합을 결성하여 공단에 입주한 이래 기울인 꾸준한 노력이 현재 빛을 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과거의 상태로 회귀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조합이 풀어야 할 숙제는 자체적으로 안고 있는 어려움이다. 조합설립 당시 공단 입주를 위해 진 빚이 6억여 원에 달하고 그 이자를 지금도 물고 있다. 현재의 상태로는 원금상환은커녕 이자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런 실정에서 기술개발을 위해 투자를 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사업자금의 융자도 불가능한 것이 조합원 대부분이 영세업자라 담보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나온 실무자들의 주장은 다소 무리가 따를지라도 숙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실무에서 판단된 의견이니만큼 의미는 크다 하겠다.
하나는 한지를 인삼과 같은 전매용품으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한지가 담배나 인삼처럼 상품가치가 없다 해도 기본적인 수요는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등기부 등본 등 국가에서 필요한 정부수매 용품으로서의 한지 구매시 일정한 계통이 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지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다른 전통문화의 경우처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정부 차원의 인정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문제는 전통한지생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다루어질 원주지방의「전통옻생산협동조합」도 이와 유사한 처지에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제도적 뒷받침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문화는 우리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고의 간직된, 그래서 우리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생각하던 관념은 이제 다른 분야에도 시야를 돌릴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이 외형적 가치를 인정받는 전통문화의 많은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고, 또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일 만큼 제도적 장치도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전통문화, 한때는 서구적인 관점으로 제시된 문명의 진보단계에서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던 전통문화에도 우리의 관심이 모아질 때 '문화국민'의 자부는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