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예술의 현장 / 무용

돌풍 몰고 온 젊은 무용그룹들의 신바람




장광열 / 월간 객석 기자

5월 말과 6월의 무용계에서 다채로운 공연으로 엮어졌다.

무용계에 이변 가져온 댄스 시어터 온, 서울 발레 시어터 공연

무엇보다 주목을 끈 것은 전문 무용단체를 선언하고 나선, 젊은 무용수들이 주축이 된, 젊은 안무가들이 리더하는 두 개 단체의 공연이었다. 지난해 프로 무용단체를 선언, 창단공연을 가진 댄스 시어터 온과 지난해 말 직업예술단 체제로 창단을 발표, 그 첫 공연을 가진 서울 발레 시어터가 그 주인공이다.

댄스 시어터 온의 두 번째 공연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5월 26일∼28일)에서 있었다. 공연 작품은 「13 아해의 질주」, 초연 공연 때 작품의 질보다는 의욕이 너무 넘치지 않을까 하는 무용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신선하고 참신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댄스 시어터 온은 젊은 시절에 요절한 천재 예술가 이상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작업에서 더욱 진일보된, 더욱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철저하게 소극장을 겨냥해 만든 작업, 지속적인 훈련에 의해 다져진 무용수들이 참여하는 작업이란 점에서 특히 기대를 모았던 이번 공연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신SCENE별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개별 장면의 이미지가 그대로 강조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6월 15∼16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창단공연을 가진 서울 발레 시어터 공연은 근래 보기 드물게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객의 북적거림에 걸맞게 이들의 공연 역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단원들 거의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던 무용수들이란 점, 단장과 상임 안무자를 두고 단원 계약제를 도입한 점 등 본격적인 직업무용단 체제를 갖고 출범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던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란 평가와 함께 앞으로 이 발레단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서울 발레 시어터의 이번 공연은 제임스 전의 안무자로서의 탁월한 감각과 무용수들의 안정되고 뛰어난 성공의 열쇠였다. 단장 김인희를 비롯한 연은경, 강세영, 최광석, 문경환, 이인기, 나인호 등 창단 멤버의 기량은 말할 것도 없고 객원 무용수로 참가한 애틀란타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김혜영과 전 유니버설발레단의 단원인 루돌프 파텔라를 비롯한 서울 발레 시어터 단원들의 기량은 수준급이었다.

서울 발레 시어터가 창단공연을 하면서 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무용수와 외국 발레단의 무용수를 객원으로 초빙한 점, 그리고 트레이너를 초빙, 작업에 함께 동참시킨 것은 주시해 볼만하다. 이는 우리 무용계 여건에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도 통한다. 폐쇄성으로는 더 이상 발전 할 수 없다.

철저한 프로정신만이 무용계에서 살아남는다

서울 발레 시어터와 댄스 시어터 온의 공연은 한국 무용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앞으로의 무용계의 판도변화에 이들이 끼칠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직업이 무용계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향후 무용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이들이 뛰어난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그저 그런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 관객들이 편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사했다. 좋은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이 단체들의 작업에 신뢰성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또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란 것과 맞물려 무용예술의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는 일반 관객들이 이들에게 보여준 성원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두 단체의 공연 현장에서는 보통 무용공연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댄스 시어터 온의 공연은 소극장 공연임에도 하루 평균 100여 명 정도의 유료 관객이 입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가 일반 관객들이었다. 이는 흔치 않은 일이다.

서울 발레 시어터의 공연은 더욱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창단 공연이니 만큼 초대 관객이 많았던 것은 차치하고라도 유료 관객 1천 명에, 이틀 연속 객석이 가득 차면서 200장이 넘는 입석권을 발매했다는 것은 이 단체에 대한 기대와 열기를 충분히 입증해 주는 일이다.

셋째는 무용단의 규모이다. 이들 단체의 단원들은 20명 내외로 이루어져 있다. 국·공립 직업무용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등 민간 직업발레단의 50∼60명 규모 보다 작다. 이것은 다채로운 작업을 가능하게 만든다. 짜여진 스케줄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대형 작품 위주의 공연을 해야 하는 국·공립 직업무용단의 운영 체계에서 오는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객원 무용수를 활용할 수도 있다. 규모가 작은 만큼 강도 높은 훈련도 그 만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방 공연에서부터 기획 공연의 초청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연기회를 갖는데도 휠씬 유리하다. 최근 일고 있는 지방의 공연장 확산 현상과 맞물려 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 면에서 다른 단체보다 휠씬 유리하다는 말이다.

넷째는 국제무대 진출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명 내외의 단원 규모는 국제 무대 진출에 휠씬 용이하다. 외국의 유명 페스티벌이나 특색있는 댄스 페스티벌에는 대부분이 정도 규모의 단체들이 참여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작품성을 인정받고 레퍼토리만 확장해 나간다면 한국 무용계의 국제 무대 진출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섯 번째는 이들의 공연에 대한 무용계 안의 반응이다. 그것은 대단히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것들이었다. 한국 국제 댄스 이벤트 공연에 참여할 단체를 선정하는 심의위원회에서 중견 무용가들로 이루어진 심의의원들이 이들 두 단체에 대해 보인 반응은 신뢰성과 장래성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었다.

이들 두 단체의 공연을 보고 난 후 무용인들의 입에서는 "이제 함부로 공연을 해서는 안되겠다"하는 자조섞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런가 하면 "이들 단체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젊은 무용인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 전망도 많았다.

그만큼 이들의 공연은 여러 면에서 달랐다. 무용계 안의 반응은 곧 바로 새로운 무용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술성에 의해 예술가들이 '힘'을 갖는 새로운 무용 문화를 이들은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기획 공연이 갖는 의미, '설치미술과 한국정신, 그리고 남성춤'

젊은 무용인들의 의욕은 '설치미술과 한국정신, 그리고 남성춤의 만남'이란 새로운 기획 공연에서도 나타났다. 열림기획 주관으로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이 기획공연의 전체 제목은 '설치미술과 한국정신, 그리고 남성춤'.

우선 이 기획 공연은 실험적인 시도란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끌만하다. 소극장 공간에서 고정된 설치미술을 배경으로 한 무용직업이란 점이 그렇고, 더불어 한국적인 소재를 가진 한 작가의 대본을 토대로 세 명의 안무가들이 연속적으로 작업한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것은 안무자에게는 실험적인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단한 제약을 받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시도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더구나 비슷한 또래의 남성무용가들에 의한 안무 작업이란 점도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다.

대본 작가(김용범)는 전체적으로 '정과 동의 어울림'을 추구했다. 그것은 작가에게는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게 만들었고, 작가는 그 상황 설정을 한국의 정신으로, 그리고 그것을 풀어가는 기본 축으로 '힘'을 들고 나왔다.

정과 동을 풀어가는 과정이나 힘에 대한 해석 방법은 안무자들의 몫이라고 그는 말한다.

첫 테마 「검결」은 김평호(디딤무용단 단원)의 안무로 펼쳐졌다.

동학의 교주 최제우가 득도한 뒤 제의의 검무를 추었다는 데서 출발한 이 작품에서 안무자는 동학군의 정신훈련을 위해 검을 통한 훈련을 했었다는 것을 차용했다. 출연자들은 직접 목검을 갖고 다채로운 춤동작들을 만들어낸다.

안무자는 사실성과 상징성을 적절하게 혼용하고 있다. 목검을 이용한 동작과 창작음악에서의 노래 가사를 직접 출연자들이 읊게 해 사실성을 강조했다면 어린이를 등장시켜 역사의 연속성을 암시한 것은 다분히 상징적인 표현이다.

전체적으로 검을 이용한 표현에 너무 많이 의존한 것이 흠이었지만 창작음악을 이용한 것이나 소품을 이용한 다양한 춤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안무자의 의욕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테마는 '덕(德)'. 김용철(대구 다움무용단 대표)이 안무한 「덕」의 테마 설정은 퇴계학에서 빌어 왔다.

대본 작가는 퇴계의 정신세계 영역을 짚어가면서 퇴계가 강인한 정신세계를 기르던 양생법인 활인심방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작가는 그것을 단순한 육체 훈련이기보다는 기를 운용하는 틀이라 생각했다.

안무자 김용철은 작가가 말하는 활인심방을 유와 강으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다분히 정적이다. 서서 추는 춤보다는 앉아서, 누워서 움직이는 동작이 더 무대를 지배한다. 정적인 움직임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유'라면 거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음은 '강'으로 유추된다.

안무자 김용철은 일관된 톤을 유지하면서 50분 이상 작품을 끌어가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세 번째 '새벽'의 테마 설정은 군사문화이다. 작가는 "우리 삶속에 보이지 않게 스며있는 군사문화, 일상적인 생활과 군대경험이란 것을 주제로 상정했다"고 말한다. 안무자 김남석은 이를 사실적인 묘사로 풀어냈다.

이번 기획공연이 내건 설치미술, 한국정신, 남성춤은 그 나름대로 통합작업에 기여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탄생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참여한 안무가들이 젊은 세대임을 감안하면 지나친 기대일 수도 있지만 작품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안무가들인 점을 감안하면 무용가들의 지나친 소극성은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는다.

탈 장르의 움직임이 세계 무용계의 동향이란 점에서 보면 이같은 과감한 만남과 해체 작업은 분명 의미가 있다. 문예진흥원의 소극장 기획 프로그램 지원 방안도 단순한 소극장에서의 공연이 아닌, 보다 실험적인 작업 쪽으로의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방향선회를 할 필요가 있다.

'국제 현대무용제'는 이제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서울 국제 현대무용제는 올해로 15회째를 맞았다.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열렸다. 올해 국제 현대무용제는 한국 현대무용협회의 현 회장인 이숙재 교수(한양대 무용과)의 주도로 어느해보다 열기가 넘쳤다. 외국의 참가팀 수도 5개로 전년도보다 많아졌고 기업체의 협찬을 얻어 홍보도 많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국제 현대무용제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허점을 갖고 있다. 우선 '국제'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걸맞지 않는 행사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나마 작년에 비해 나아졌다는 올해의 경우도 5개 외국 팀이 초청되긴 했지만 정작 내한한 외국 무용단원들의 수는 영국의 트랜지션무용단을 빼고 나면 4개국에서 7명의 댄서들이 참여한 것이 고작이다. 말이 외국 무용단인지 모두 10분 내외의 소품을 공연하면서 한 명, 두 명의 무용수들이 내한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참가팀의 수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질적인 면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중국의 양리핑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올해의 경우만은 아니다. 그 동안 국제 현대무용제에 참가하는 팀들의 수준은 정말 기대 이하였다.

15회를 맞은 국제 현대무용제의 연륜에 비한다면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사에는 어김없이 문예진흥원의 지원금이 주어진다. 국제 행사이니 만큼 지원금이 충분할 리 없다. 그래서 돈 때문에 좋은 단체를 데려오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 무용제의 연륜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연륜과 한국 현대무용협회의 조직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 행사는 자생력을 가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스폰서를 얻어 좋은 단체를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거보다 한국 현대무용협회가 국제 현대무용제의 외국 초청 단체에 대해 많은 신경을 안 쓰고 있다는 것으로 비쳐진다. 해외 무용정보에 어둡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 현대무용협회 이사들이 회원 발표회 형식에 더 치중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국제 현대무용제라는 타이틀 아래 치러지는 이 행사에는 한국 현대무용협회 이사들이 이끄는 국내 현대 무용 단체들은 매년 거의 빠짐없이 참여한다. 자세히 보면 회원 발표회 형태인 셈이다. 이같은 참가팀 구성이 매년 되풀이되면서 학예 발표회가 아니냐는 질타가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 무용제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꽤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짧은 작품들, 그리고 대부분이 이미 공연되었던 작품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이 공연되는 형태가 계속 되어왔기 때문이다. 작품들이 한번 걸러져서 우수 작품들이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작품의 질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외국 참가팀도 수준이 낮고 국내 참가팀 역시 들쑥날쑥한 수준의 팀들이 참여하고 관객들은 하루에 5∼6개의 작품을 갈라 공연 보듯이 보는 형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형태가 계속된다면 국제 현대무용제는 더 생산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이 행사가 현대무용협회 이사들(대부분 대학의 무용과 교수)에게 국제 무용 페스티벌 참여란 아주 손쉬운 경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이같은 단순한 발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굳이 이 행사를 이같은 의도에서 시행하려 한다면 '국제'라는 타이틀을 빼고 실시하면 된다.

국제 현대무용제는 국제적인 행사에 걸맞게 국내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한국을 대표해 나가는 제전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지 진정한 관객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수적인 것으로 자랑하기에는 이제 한국의 공연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관객들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현대무용가들도 보다 큰 시각으로 무용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국제 현대무용제를 한국 현대무용의 국제 무대 진출을 위한 창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국제 현대무용제를 세계 무용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페스티벌로 만들고 외국의 유명 매니지먼트 관계자와 평론가들을 초청해 우리 현대무용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국제 현대무용제란 타이틀을 내건 만큼 그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현대무용협회에 소속된 회원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현대무용가들에게 문호가 개방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현대무용가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 오디션을 통해 참가 단체를 선정한다면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현대무용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오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와 지금의 무용계 여건은 많이 달라졌다. 이같은 흐름에 현대무용가들 스스로가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발전 속도는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

현대무용은 즐기는 일반 관객들이 늘어나지 않는 한 한국 현대무용 시장은 그만큼 좁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