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행운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식들

-터키의 결혼 풍습




신양섭 / 터키 이스탄불대학교 박사과정

터키 Turkey하면, '날으는 양탄자', '알라딘의 램프'가 연상되는 약간은 신비스러운 중동의 먼 나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터키 종족을 지칭하는 '투르크 Trurk'라는 용어가 우리나라나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하던 중앙 아시아의 '돌궐'족과 같은 용어임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 민족의 근원도 중앙 아시아에 있었음을 비교해 볼 때, 우리와 그렇게 먼 민족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터키인들은 그 옛날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을 무대로 유목생활을 하다가 그 일부가 점차로 서진하여 아시아의 서쪽 끝인 아나톨리아 Anatolia반도에까지 진출하여 오늘날의 터키공화국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터키말이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 Altay어족에 속함은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우리와 동질적인 요소가 오늘날의 터키인들에게 많이 발견되고 있다.

8년간의 터키 유학생활 동안 문득문득 느껴지던 이 문화적 동질성에 관심을 갖고, 틈틈이 자료를 모아오던 중, 이번에 이 지면을 통해 간단하게나마 터키인들의 결혼 풍습을 소개한다.

터키인들은 11세기경부터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출하여 여러 부족 단위로 정착했는데, 이들 부족들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그들 고유의 풍습에 서로 다른 외래문화를 흡수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터키인들이 서진하면서 새로운 종교로 받아들인 이슬람 islam 문화이다. 또한 이들은 근래에 들어서 점차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도시에는 그들 고유의 전통을 버리고 서양의 풍습을 따르는 경향이 짙어져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터키인들의 결혼풍습은 각 지방에 따라 혹은 도시와의 정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본 지면에서는 도시보다는 아직도 고유한 풍습을 잘 보유하고 있는 시골의 결혼풍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혼담

장성한 아들을 둔 집안에서 이웃마을에 적당한 규수감을 발견하면, 우선 '엘치 Elci'라고 불리는 중매인을 여자의 집에 보내 의향을 타진한다. 이때 중매인이 그 집에서 차나 그밖의 음료수 대신에 단지 한 잔의 물만을 대접받는다면, 청혼이 거절당한 것으로 알고 조용히 물러나야 된다는 풍습이 재미있다. 만일 여자쪽 집안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적당한 날을 잡아 남자쪽 집안의 어른들과 아들이 여자의 집을 방문하여 '회즈 케스메 Soz Kesme'라고 불리는 결혼의 확답을 받는 절차가 이어진다. 양가 집안의 어른들이 모인 가운데 신부 후보감은 자신이 직접 끓인 '터키 커피 Truk Kabve'를 손님들에게 대접해야 하는데, 손님들은 신부 후보감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여겨 보며 또한 커피 맛을 보고 규수의 음식 솜씨를 판단한다. 터키 커피는 설탕 및 커피의 분량, 가열 정도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져서, 마치 우리가 장맛만 보고도 그 집의 음식솜씨를 안다고 하는 것처럼, 터키인들도 커피 맛으로 당사자의 요리솜씨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신부후보인 당사자가 요리솜씨가 없을 경우, 커피에 설탕을 잔뜩 집어넣는데, 이것은 '자신은 요리솜씨가 없으나 이 결혼을 무척 원한다'는 소리없는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 당사자가 아직 결혼할 의사가 없거나 상대방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설탕 대신에 소금이나 후추가루를 집어넣는다. 이를 맛본 손님들은 그 규수의 마음을 알고는 더 이상 결혼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하며 다른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면 된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음미해 모아야 할 것은, 보통 전통적인 가문에서 양가 집안의 체면만 우선시 하다보니 결혼당사자의 의견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풍습은 이러한 경향을 막는 안전장치라는 점이다. 즉, 여자가 남자쪽 집안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소리없이 표현함으로써 남자쪽 집안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고 청혼을 거절하는 고도의 정신문화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양가 집안이나 당사자가 모두 결혼에 동의하게 되면 서로 축하인사를 나눈 후 결혼식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는데 약혼식 및 결혼식의 날짜라든가 혼수감의 규모문제, 그리고 이슬람의 관습인 지참금 문제도 논의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한 가지 특이한 관습은 양쪽 집안이 모두 가난해서 결혼식 치를 경비가 없거나, 남자 집안에서 신부에게 지불하는 지참금이 없을 경우, 양가 집안의 합의 아래 여자를 납치하는 방식으로 바로 신혼살림에 들어가는 관습인데, 마을 사람들도 이를 이해하고 부부로 인정해 주는 것이 관례이다. 오늘날 연애결혼이 성행하는 도시에서는 양가나 한쪽 집안이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 이와 같은 납치의 방법으로 결혼을 성사시킨다.

약혼식

니샨' Nisan'이라고 불리는 약혼식은 별로 크게 치러지지 않는다. 양가의 가까운 친척 몇몇만 모이며, 경비는 신부 집안에서 부담한다. 오늘날에는 서양의 풍습을 모방해서 빨간 리본에 서로 연결된 약혼반지를 신랑 신부가 손가락에 끼면, 주례에 해당하는 동네 어른이 가위로 리본을 자르면서 간단한 의식을 마친다.

청첩인

이제 결혼 날짜가 잡히면, '오쿠유주 Okuyucu'라고 불리는 몇 명의 청첩인들이 선발된다. 청첩인들은 보통 여자들이며,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수건이나 찻잔 등의 작은 선물을 들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결혼식을 알린다. 결혼식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추수가 끝나고 농한기에 들어서는 가을에 많이 치러진다.

혼수감 장만과 진열

우리나라에서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듯이 터키인들도 딸을 낳으면 포플러 나무를 심어 딸의 혼수를 장만한다는 풍습이 있다. 그만큼 터키인들도 딸이 시집갈 때 준비해 가야 할 혼수에 신경을 쓰며, 이것은 집안의 체면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딸이 어렸을 때부터 실 잣는 법과 옷감 짜는 법, 그리고 그 옷감 위에 수놓는 법을 가르쳐, 시집가기 전까지 하나하나 장만시켜 놓아야 했다. 딸의 결혼식 날짜가 잡히면, 그 동안 딸이 장만한 '체이즈 Ceyiz'라고 불리는 혼수감들을 결혼식 전 며칠간 자기 집에 진열해 놓아 손님들이 와서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체이즈 아스마 Ceyiz' Asma' 즉 혼수감 진열이라고 하며, 이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은 신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신부집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이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풍습은 이 기간 중 신랑 친구들 중 하나가 혼수감 중 베갯잇을 몰래 훔쳐내어 신랑에게 가져가면, 신랑은 그 친구에게 많은 선물을 내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부가 정성껏 준비한 혼수감의 일부라도 빨리 신랑에게 갖다 주어 결혼 날짜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신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준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며칠간 진열한 후, 모든 혼수를 신랑 집에 보내는데, 풍악을 울리는 행렬과 함께 혼수감을 적은 목록을 믿을만한 사람과 함께 보낸다. 이것은 나중에 혼수문제로 이견이 생겼을 때 증인 겸 조정자 역할을 위해서이다. 혼수감을 실은 마차에는 수건이나 포목을 둘러 장식하는데 마치 우리나라에서 신부집에 들어가는 함을 포목으로 둘러메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날에는 신랑 신부가 혼수를 나누어 준비하는데 보통 신부 측에서 침실 가구 및 주방용품을, 신랑 측에서는 거실과 식당 가구를 준비한다.

결혼 전야제(크나의 밤)

결혼식 전날밤 신부집에서 주로 여인들을 중심으로 잔치가 벌어진다. 남자들도 참여하지만 놀이의 주체는 여자들이다. '크나 Kina'라고 불리는 식물로 신부의 손에 물을 들인다고 해서 '크나 게제시 Kina Gecesi' 즉, 크나의 밤이라고 하며 신랑 측의 집안이나 마을 사람들도 참여한다. 신부 친구들이 촛불을 켜서 마주들고 촛불 터널을 만들어 주면 화려하게 치장한 신부가 이 터널을 통과해서 역시 화려하게 치장된 의자에 앉으면서 춤과 노래가 시작된다. 놀이가 절정에 이르면 크나 물들이기가 시작된다. 여성들 중 대표 하나가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보통은 마을 어귀의 찻집에 모여 있다) '크나 물들이기가 시작됩니다' 하고 소리치면, 남자들은 신랑을 앞세우고 신부의 집 문앞에 모여든다. 신부가 머리에 큰 그릇을 이고 나타나면 남자들은 그 그릇 안에 돈을 던져 넣는다. 그리고 나서 신랑 신부의 맞춤이 어우러진 후, 신부는 집안으로 들어가고 남자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다음 신부 가족 중 어른이 나와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 후에, 신부의 양손에 크나물감 재료를 놓고 헝겊으로 감싼다. 이때 신부의 오른손에 금화를 같이 넣어준다. 크나 물들이기가 끝나자마자 여자들은 신부를 둘러싸고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는데, 주로 부모와 헤어져 살아야 하는 시집살이의 고충과 충고를 슬픈 가락으로 부르고 신부는 이를 기회로 마음껏 운다. 결혼이라는 일생의 행복한 경사를 앞두고 한편으로는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는 착잡한 마음의 신부로 하여금 마음껏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신부는 간단한 의식과 함께 헝겊을 풀고 빨갛게 물들여진 손을 씻는데, 밤사이 손에 있었던 금화는 손수건에 잘 싸서 첫날밤 신랑에게 선물한다. 신랑은 이것을 행운의 금화로 여겨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결혼식 당일

결혼식 당일 정오쯤 되어, 신랑의 집에서는 '바이락 디크메Bayrak Dikme'라고 불리는 깃발 걸기 의식이 거행된다. 먼저 신랑의 집안 어른 중 한사람이 나와 '결혼하신 분들, 젊은이들의 결혼을 허락해 주오"하고 소리쳐서, 모여 있는 하객들이 "허락은 당신들 것이오" 하고 대답하면, 집안의 나무나 지붕 꼭대기에 기를 건다. 이때 기와 함께 조그만 거울도 함께 내거는데, 하객들은 이 거울을 깨뜨리기 위해 총을 쏜다. 일종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포인 셈이다. 거울을 맞혀 깨뜨리는 사람에게 신랑집에서는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그 다음, 화려하게 장식된 말에 신랑을 태우고 맨 앞에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신부집으로 향해 '겔린 알마 Gelin Alma' 라고 불리는 신부맞이 의식이 시작된다. 신부맞이 행렬이 도착하면 신부 아버지는 시집으로 떠나는 딸에게 '가이렛 쿠샤으 Gayret Kusagi' 라고 불리는 붉은 천으로 된 인내의 띠를 신부의 허리에 세 차례 돌려 매어준다. 붉은 색은 처녀성을 상징하며, 이 띠를 맬 때 신부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시집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모든 어려움을 인내로 견뎌낼 것을 충고한다. 그리고는 띠 안에 돈을 넣어 주는데, 이 돈은 신부가 아버지로부터 받는 마지막 돈이자 비상금이기도 한 것이다. 신부가 이제 시집으로 가는 행렬에 오르려 할 때, 신부의 남동생이 길을 막는다. 누나를 내주지 못하겠다는 누나에 대한 마지막 애정의 표시이자 이별의 표시인 것이다. 신랑은 돈이나 선물을 처남에게 내주어야 결혼행렬이 무사히 나아갈 수 있다. 도중에도 신부측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으면, 신랑은 돈을 뿌려 주어야 한다. 자기 마을 여자를 데려가는 몸값을 치르라는 것이다. 또한 전날밤 신부집에서 거행된 결혼전야제에 참석했던 신랑측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도 무사히 돌아가지 못한다. 즉 '전야제의 벌'이 내려지는데, 신부측 마을 사람들이 동구밖 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놓은 달걀들을 돌을 던져 깨뜨리는 것은 일종의 행운을 비는 관습이다. 달걀을 깨뜨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갖가지 우스꽝스러운 벌칙이 내려져 서로 웃으면서 양쪽 마을의 우의를 다지는 것이다. 신부가 떠나고 나면 신부 어머니는 집 앞에 물을 뿌린다. 이것은 터키 사람들의 독특한 관습으로 아들을 군대에 보내거나 할 대처럼, 먼길을 떠나는 사람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습속이다.

이제 신랑측 마을 사람들의 성대한 환호 속에서 신부가 도착하고 신랑집 대청에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에 신부가 앉으면서 잔치가 시작된다. 여자들은 신부와 함께 실내에서 놀고 남자들은 밖에서 춤과 노래로 잔치를 벌인다. 밤이 이슥해지면 집안의 여자 어른이 신부를 다시 곱게 단장시켜 신방으로 들여보내고 신랑은 남자들과 함께 이슬람 사원에 가서 밤예배를 드린다.

이때 어른들은 신랑에게 앞으로 결혼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충고해 준다. 그 다음 집으로 돌아와 신방에 드는데 이때 신랑 친구들이 모여들어 주먹으로 신랑의 등을 마구 두드리는 것이 관례이다.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은 신랑 신부는 서로 발등 밟기 경쟁을 벌인다. 상대방의 발들을 먼저 밟은 사람이 앞으로 결혼생활에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관습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요즈음 도시에서는 결혼 서약식 하는 자리에서 책상 밑으로 이 경쟁이 벌어진다. 그 다음 신랑은 신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차도르를 들춰야 하는데 그 대가로 많은 장신구를 선물해야 한다. 이 선물을 '얼굴 보는 값 Yuzgoumlugu' 이라고 하며, 또한 신부가 전혀 말을 하지 않을 경우 '말 시키는 값 Soyletmclik' 이라 하여 많은 선물을 보태야 한다.

결혼식 다음날

터키인들에게 신부의 순결은 매우 중요하다. 첫날밤을 치른 후, 신부가 분명히 처녀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신랑은 창밖으로 마구 총을 쏜다. 또한 집안의 여자 어른은 신부의 순결의 상징이었던 침대보나 내의를 집안이나 마을 여자들에게 보여주는데 이때 시어머니는 그 침대보에 돈을 던져준다. 마을 여자들은 그 돈을 순결과 행운의 상징이라 하여 서로 가지려고 경쟁한다. 이 침대보는 곧 신부의 친정 집에도 보내어져 신부 집안에도 희소식을 전한다. 새 신부가 처녀가 아니었다면 마을 사람들은 신부를 나귀에 돌려 앉혀 곧장 신부 집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첫날밤을 치른 신부가 이제 결혼한 몸이라는 뜻에서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은 우리와 같은 관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