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정보화시대 / 문화예술 창작과 향수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

-문학과 뉴 미디어




김광만 / 시인 .독립프로덕션 채널 대표

문학에서의 뉴 미디어의 개념

무엇보다 먼저, 주어진 제목 속의 '뉴 미디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단어 번역의 뜻 그대로 '새로운 매체'로서의 뉴 미디어인지, 두루뭉실하게 받아들어 요즘 많이 쓰이는 '멀티미디어 시대'라고 할 때 그 멀티미디어에 속한 뉴 미디어인지, 아니면 둘 다를 포괄한 개념인지에 따라 얘기의 방향은 엉뚱한 곳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뉴 미디어란 두 가지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다. 첫째는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 기존 미디어 이외에 전자,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정보 교환 및 통신수단으로 대중매체에 지배적인 존재가 되는 미디어를 말한다. PC 통신, 삐삐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페이저(호출기), 그리고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뀐 핸드폰을 생각하면 이 개념이 조금 쉬울 것 같다. 둘째는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각각 기능을 발휘하던 기존 매체가 다른 매체와 결합하거나(전화와 복사기능을 결합한 팩시밀리), 자기 자신의 기술적 특성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아주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보다 편리하고 진보된 기능을 갖고 등장한 미디어를 뉴 미디어라 말한다(현대의 전자제품은 이 발전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러한 뉴 미디어는 접근방법의 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대체로 정보의 전달 수단에 따라 유선계, 무선계, 패키지계로 나눠볼 수 있다. 유선계 뉴 미디어로는 케이블 TV, 비디오텍스, LAN , VAN 등이 있으며 무선계로서는 텔레텍스트, 정지화방송, 직접위성방송, 고품위 TV, 팩시밀리 방송이 있고 패키지계로서는 비디오디스크, 광디스크, CD-ROM, 비디오테이프 등이 있다. 그러나 뉴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뉴 미디어라는 말 그 자체처럼 이러한 개념의 분류나 정리를 단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게 할 정도로 급격한 핵융합과 핵분열을 계속 하는 데 있으며 그에 따른 주변의 변화 폭이 매우 크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전자, 통신 기술의 혁신으로 창출된 새로운 정보전달 매체인 뉴 미디어는 기존의 전통적인 대중매체인 신문, 잡지, 방송이 갖고 있던 일방적, 집중적, 독점적인 정보전달과 수용의 형태를 바꿔 버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창작과 향수(수용, 감상)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수요의 변화에 따라 공급의 형태와 질이 바뀔 수 있다는 경제법칙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 종이의 발명으로 그 동안에 개발됐던 목편, 죽편, 견포(옷감) 문학이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이 위의 문학으로 바뀌었으며 더 나아가 인쇄술의 발명과 발전으로 급격히 보편적이고 대중화된 문학으로 발전되었던 것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PC 통신 문학 하나만 보더라도 1890년(제지술은 105년, 후한시대에 발명되었다)을 이어온 종이와 잉크 문학을 뒤집어 놓고 있는, 가히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물론 여기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개념 분류가 또 필요하고 하드웨어이면서 소프트웨어이기도 한 문자는 더욱 조심해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문자는 표현 방법이자 정신이기 때문이다).

뉴 미디어의 개념과 특성

하여튼 더 복잡해지기 전에 대체적인 뉴 미디어의 특성을 정리해놓고 가자. 첫째, 뉴 미디어의 특성은 디지털화이다. 이는 컴퓨터 기술의 응용이 필수적으로 도입되는 뉴 미디어의 기술적 특성에 따라 컴퓨터에 접속되는 정보처리 및 생산양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가 디지털 신호로 통일되어야 한다(컴퓨터를 이용한 소설가와 전문 분야 집필자는 꼭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이다). 두 번째로는 미디어의 종합화이다. 뉴 미디어는 고도화된 유선 및 무선 전송 수단인 부가가치 통신망 VAN, 근거리 정보통신망 LAN 등을 종합통신망 ISDN으로 통합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로는 영상화이다. 이는 뉴 미디어가 문자, 음성, 음향, 영상, 기호 등 지각적 소구력이 각기 다른 정보형태들이 TV스크린을 통해 영상화된 정보 전달 형태로 변모한다는 특징이다. CD, CD-ROM, CD-1등을 보면 확연해진다. 네 번째로는 쌍 방향성이다. 이 점은 다시 설명하겠지만 그 어느 특성보다도 '문학의 창작과 향수'라는 문제를 가장 크게 변혁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즉 뉴 미디어는 그간 단 방향(일방적인 한 방향)으로만 유통되던 미디어의 정보 전달이 기존 TV에 컴퓨터 시스템이나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어 쌍 방향으로 가능해짐에 따라 수용자(독자)의 의도대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기술적 혁신에서 비롯된다. 비디오텍스나 쌍 방향 케이블 TV, 특히 문학에서의 PC 통신 문학, 일상생활에서의 홈쇼핑이 이미 이 궤도에 진입되어 순식간에 발전되고 있다. 다섯 번째로 비 동시화이다. 이는 정보의 전달자와 수용자가 반드시 동시에 참여하는 종래 미디어 행위의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없어지거나 극복되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녹화를 위한 VCR이나 전자 사서함, 전자 게시판 등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근간으로 하는 뉴 미디어는 기존의 대중매체에 비해 쌍방적, 분산적, 복합적 성격을 지님으로써 이제 정보유통 체계가 종래의 송신자 주도에서 수신자 주도의 정보유통체계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문학에 비유하면 작가 위주에서 독자 위주로 바뀜을 의미하고 이제 작가는 단지 이야기의 끈만 제공하고 독자가 알아서 그 실타래를 풀어 가는, 지금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주객전도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아울러 의미한다. 이미 개발된 몇몇 현대적 정황과 첨단의 기술, 이론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21세기 문학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위와 같은 뉴 미디어의 개념 정리와 특성 분류에 의거해 곧 다가올 21세기의 문학에 대해 우선 생각해보자. 문학의 매개체인 문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말이나 전설, 행동을 표시하는 하드웨어였다. 단지 그 집단에서 쓰이는 말, 동작 등 언어로써 합의된 상징으로 기능 했고 그 역할을 대신하는 중개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 뉴 미디어인 잉크와 지금의 공책 대용 이였던 흙 판, 도자기 판, 돌 판, 목편, 죽편 등이 나오고 드디어는 앞서 말한 대로 견포, 파피루스, 양피지를 거쳐 종이의 발명에 이르게 된다. 이 뉴 미디어들도 처음부터 하드웨어로서의 한계를 노출했고 그에 따라 본시 하드웨어였던 문자는 사유와 철학, 역사적 심연을 거쳐 나오면서 전적인 소프트웨어로 이전되어가게 된 것이다. 그 후 정보의 축적과 활용에 비례해서 소프트웨어인 문자, 폭넓게는 글과 하드웨어인 인쇄기능, 출판 전달기능과는 그 궤리를 넓혀왔다. 그러나 이제는 넓혀진 계곡에서 새로운 가지들이 지금까지 변화속도와는 다르게 뻗어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미 언어를 대신하는 그림(평면적 그림에서 3차원적인 CG, 영화화상)과 음(음악, 음, 효과음 등)이다. 여기에 이진법 적인 컴퓨터의 이론은 또 다른 언어, 3차원적인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하드웨어 또한 잉크, 종이에서 벗어나 전자적 신호에 의해 글자가 오가고, 압축되었다가 펼쳐지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여기까지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통시대적이고 통공간적인 것이 고전(문학)이라는 통념은 수정되어져야 할 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일정한 문학용어는 아니지만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사이버 픽션 cyber-fiction이다. 이 사이버픽션이라는 현대의 문학은 지금까지의 모든 개념을 블랙홀 속으로 몰아 넣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은 시도와 예측의 단계 이상은 아니지만 통신망 속에서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고 유통되어 가는 지금의 통신문학 상황이 계속되고 컴퓨터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이 사이버 픽션은 무언가 또 다른 차원으로 우리의 문학을 핵분열 시킬 것이다.

현대의 사이버 픽션은 크게 세 가지로 의미되고 있다. 첫째, 이미 국내의 통신망에서 시도되었던 '공동창작작업'이다.

함께 쓰고, 읽고, 생각하고 평론하는 방식으로, 이미 일본의 경우 소설과 만화창작에 시도되어오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가의 집체창작에서도 있어왔던 것을 컴퓨터라는 기계 위에서 더욱 자유롭게(차원이 다르게)시도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둘째, 독자들이 작가의 창작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하이퍼 픽션 hyper-fiction을 말한다. 즉 독자의 선택에 따라 글의 진행과 내용이 바뀌어갈 수 있는 상황, 독자가 글의 상황 전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미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를 고를 수 있고 내용 전개 또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어갈 수 있으며 자기가 직접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셋째는 가상현실, 위의 영화에서처럼 가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소설로 독자가 직접 사이버 스페이스, 즉 가상공간에서 글 속의 인물이 되어 창작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영화 쪽에서 시도하고 있는 가상체험과 소설의 가상체험이 비슷해지게 되는 것이다. 비단 이 사이버 픽션뿐만 아니라 문학에 있어서의 뉴 미디어의 혁명은 이미 도래해 있는 현실이다. 문학의 개념을 통째로 바꾸고 있는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문학일 따름이다'라고 말하는 고집이 어쩌면 지금 우리의 두려움의 반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전통적 문학관이 파괴하고 전통적으로, 인간의 숨결이 묻어나는 글쓰기가 초라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은 이제 대부분이 사실인 것 같다. 컴퓨터가 우리 문학인과는 거리가 먼 기계가 아니라 이미 글을 쓰는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주체로까지 승격되어 있는 놀라운 사실을 PC 통신 문학에서 볼 수 있고, 도서관, 자료관, 자료도서 하나 없이도 세계 곳곳의 신속하고 또 오래된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오차도 없이 기술할 수 있는 놀라운 현실이 우리 앞에 성큼 와버린 것이다. 또한 기존에 문학인과 독자라는, 그것을 잇는 출판과 서점 즉 유통의 과정이라는 따뜻하나 지루한 고리마저도 이제 직선적이고 즉각적인 게임처럼 독자에게 전달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최선의 보루로써 남겨둘 수 있는 것은 아마 글을 쓰고 또는 시작하고, 이 글을 향수하고 또는 참가하여 감상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점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모든 희망과 기대, 그리고 좌절과 조마조마함을 얹힐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런 현상과 발전 속도에 넋을 빼앗기거나 뉴 미디어라는 것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 또한 없다. 왜냐하면 결국 이 뉴 미디어의 시작과 종착역 또한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는 뉴 미디어 문학

뉴 미디어를 형성하고 있는 가장 중심적인 힘은 아무래도 정보의 수집, 분석, 활용과 쌍 방향성일 것이다. 여기에 가장 큰 변수인 인간의 창조성, 독창성이 있다. 인간에 대한 창조성은 문자 이전, 지금의 상황, 미래까지의 불변하는 핵이므로 제쳐두고(예술창조의 최종적인 포인트이므로) 정보에 대한 것과 쌍 방향성에 대한 것을 살펴보자.

'정보(情報)'라는 한자어는 그 뜻대로 '정을 주는 것에 대한 보답'이다. 즉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 또한 서로 서로가 벽이 없는 관계로 마음이 넘나들 때 이룩되어지는 결과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는 정을 받아야 할 데가 너무 많다. 또한 수천 년간을 축적해온 정(보)이 넘쳐흐른다. 수천 년 전의 일년이 지금의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속이 붙어 있다. 이러한 정을 받은 입장에서 보답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되었다. 최근에 나온 백과사전은 이미 10년 전이나 다름없는 낡은 자료더미이고 '신문'이라는 개념과 가치마저도 퇴색되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 동승하지 못한다면 현금카드 결재코너 앞에 서서 상평통보로 어떻게 안될까 하고 쭈삣거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문화예술 창작에 있어서 이런 정보에 대한 개념과 활용을 원활히 하지 못하면(대체적으로 뉴 미디어 기기를 이용한다)이제는 창작 그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 무용, 미술, 연극, 영화 등등의 장르가 더 이상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마저도 모를 정도로 협력적이며 그 장르 또한 최대한으로 가공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제 금동향로의 발견에 따라 그 시대의 금속기술, 예술관, 생사관, 종교, 문화인류학, 음악, 의류, 악기 사, 미술, 도교, 우주관……등등의 항목을 요약 정리할 수 있고 그것을 기초로 연극, 영화, 뮤지컬, 패션쇼, 다큐멘터리, 그리고 찬란했던 백제의 잃어버린 역사를 글로 메꿔 나갈 수 있는 상황으로 재생산되며 이런 정보의 총체와 부분 부분에 따라 또다시 핵융합과 핵분열이 되어 또 다른 차원의 백제 시대 시뮬레이션, 백제 시대의 공주를 찾아가는 게임 등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기존의 문학 또는 예술이 1+1=2라는 공식이었다면 뉴 미디어 시대의 예술은 이제 2+1=10, 10+1=150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쌍 방향성이다. 위의 정보처리(정보라는 말이 딱딱하다고 느낀다면 소재, 또는 발상)에서도 느꼈겠지만 시작은 있지만 진행과 끝은 없거나 둘 다 시작 또는 끝인 상황이 뉴 미디어 시대의 예술활동이 되고 있다. 얼마 전 백화점마다 자기가 직접 가구를 만드는 DIY Do it yourself라는 코너가 인기를 끌었듯이 이제 목수가 완전히 만들어 놓은 제품보다는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이 들어가 새롭게(완전히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은 독창적인) 변형된 제품이 팔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DIY가 시사하듯이 뉴 미디어 시대의 문학은 그 창작과 수용 또한 DIY의 시스템을 따라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검증되었거나 소위 자기의 능력 이상이라고 느껴진 오리지널리티는 보호된 채 변형, 변주 될 것으로 보인다(조각 같은 것은 변형보다는 변주, 조합으로 설치될 것이지만). 그렇지만 항차 어느 선까지는 장인의 생각과 상상력만 남아 있고 결합될 것이며 언젠가는 그 구별마저도 없어져 '작품'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뉴 미디어라는 형태는 어찌 보면,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감상이나 평론, 또는 베껴 쓰기라는 초보적 애정에서부터 이미 이런 시초가 발견되었는지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는 이미 독자에게 있어 작가를 떠나 독자의 몸과 정신에 육화 된 경험들이 독자에겐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뉴 미디어란 말 그 자체처럼 뉴 미디어의 문학이란 새로운 형태의 창작의지와 감상의욕이 새롭게 발전된, 한 모습이며 여기에 현대적 첨단의 전자, 통신, 응용기술들이 힘을 보태주어 그 표현법을 일깨워준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과 뉴 미디어에 대한 생각은 이제 확연해진 셈이다. 지금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첫째 정보량이 무궁무진하게 탄생하고 있으며 그와 비례해서 결합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분열하고 있는 상황이며, 둘째로는 창작자 또는 독자가 따로 따로의 공간과 시간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동의 시간과 장소라는 차원 속에 함께 있음을 느껴야 하는 현실이며, 셋째는 이 모든 것을 결합시켜주는 매체 또한 멀티 풀하게 핵분열을 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그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작가는 원고지 위의 볼펜처럼 이들을 지금처럼 능란하게 이용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점을 찍는다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 그 뉴 미디어가 달리고 있는 속도 위에서 당당하게 창조성을 얹히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 속의 뉴 미디어 또한 한 칸 한 칸의 원고지와 전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물론 원고지 위에서 탄생한 열매와 뉴 미디어 안에서 탄생한 열매는 그 맛과 모양에 있어 전혀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고 또 읽고 있는 순간에도 이미 우리는 다른 차원에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