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미리본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메가트랜드」의 저자 존 네이비스트 박사는 누구인가?




노정용 / 세계일보 문화부 기자

하버드대학 졸업, 존슨 대통령 특별보좌관, 모스크바대학 초청교수 역임, 현재 「트랜스 리포트」지 발행인, 최대의 리서치기관 '네이비스트 그룹' 회장, 하버드대학 초청교수, 인문과학 분야 11개 명예 박사학위 소유…….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존 네이비스트 박사의 약력이다. 그는 인문과학을 분야에서 11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받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석학이다. 특히 「메가트랜드」로 시작된 그의 미래학 여행은 최근에 나온 저서 「글로벌 패러독스」로 일단 마무리되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메가트랜드」는 「석세스 트랜드」,「여성 메가트랜드」,「메가트랜드 2000」으로 메가트랜드의 자녀(?)를 탄생시키면서 인류가 겪게 될 미래의 모습을 다양하게 설명해왔다. 그가 말하는 메가트랜드란 한 마디로 말해 거대 변화의 물결을 의미한다. 예컨대 과거 40년간 지속해온 냉전질서의 붕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몰락, 경이적인 기술혁신, 블록경제권의 대두,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고조 등이 그것들이다.

이 같은 세계적인 변화의 조류를 그는 독특한 방법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쏟아지는 정보의 양을 각종 신문이나 잡지들이 제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콘텐트 어낼리시스 Content Analysis'라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금년 초 한국의 안방에서 만나기도 한 존 네이비스트 박사는 미래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과 이상과 여러 가지 관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에서 지침이 될 자신의 세계관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메가트랜드 체계를 고안하라'고 충고한다.

「메가트랜드 2000」,「글로벌 패러독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네이비스트와 패트리셔 애버딘이 공동으로 저술한 「메가트랜드 2000」이 서기 2천년을 앞둔 10년간을 문화중심으로 분석한 미래학 서적이라면 존 네이비스트의 최근 저서 「글로벌 패러독스」는 거대경제와 규모 경제라는 서로 상반되는 모순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진단하는 미래학 서적이다.

먼저 「메가트랜드 2000」은 여타 미래학 서적과는 궤를 달리한다. 대부분의 미래학 서적이 경제중심의 미래분석인데 반해 문화라는 소프트 터치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술의 부흥」,「세계적 생활양식과 문화적 민족주의」,「여성지도자의 시대」,「세 번째 천년왕국의 종교적 부흥」,「개인의 승리」등 주로 예술과 여성이 주도하는 '21세기의 문화 르네상스'를 예고한다.

네이비스트는 서론에서 새로운 천년 대를 출발하는 2천년 대, 즉 21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돌파구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개념의 팽창 때문에 조성될 것'이라고 전제한다.

세 번째 1000년대의 개막으로 불리는 황금의 21세기에 숱한 종교들이 예언하듯 과연 천년왕국의 시대가 도래할까. 저자는 인류가 문자 그대로 예수의 재림이나 우정의 우주선 New Age 과 같은 것에 의해 '극적인 방법'으로 구제될 것 같지는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오히려 우리가 되살아난 영성(靈性)에 의해 인도되기는 하겠지만 해답은 어디까지나 우리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저자는 '예술의 부흥'을 통해 1990년대 말기에 가면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그 우선 순위에서 근본적이고도 혁명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말하자면 예술이 과거의 여가문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스포츠를 대체할 것이란 얘기이다.

이 같은 예술부흥 조짐의 구체적인 실례를 다음과 같이 그는 설명한다.1965년 이후 박물관을 찾는 미국인의 숫자는 연간 2억 명에서 5억 명으로 증가했고,1970년이래 미국의 오페라 청중은 3배로 늘어났으며, 일류급 실내악단협회의 회원 수는 1979년 20개에서 1989년에 578개로 늘어났다 등의 자료를 제시한다.

예술부흥은 단순한 관람객이나 청중의 증가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문화산업을 유발한다. '예술산업'으로 부리기도 하는 이 문화산업은 단순한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라 한 지방의 재정을 이끌 정도로 거대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하나의 박물관이 들어서면 그 주변에는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나 식당, 오락시설, 기념품점 등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산업 군을 형성하는 것이다.

기업도 이 같은 예술부흥에 한몫을 담당한다. 저자는 '근대 르네상스의 경제학'에서 기업과 예술의 상호보완적 성격을 강조 '예술이 기업의 이미지 관리와 제품의 고급화를 선도할 것'이며 예술 기업이 융성하리란 전망을 내놓는다.

존 네이비스트의 문화분석 가운데 또 하나 흥미를 끄는 부분은 여성시대의 도래, 군사적인 관리 모델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남녀의 능력이 공평하게 인정되며 ,더구나 남성이 산업노동자의시대에 적합했다면 여성은 정보노동자로서 정보화시대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패러독스」는 「메가트랜드 2000」과는 달리 텔레커뮤니케이션이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들을 주로 경제라는 관점에서 분석해가고 있다. 여기서 패러독스란 말 그대로 모순 또는 역설이다. 건축가들의 직업의식에서 나온 유명한 패러독스 가운데 하나인 '적을수록 아름답다'라는 명제는 처음에는 상호모순 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건축물에 이런저런 잡다한 장식을 가미하지 않을수록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은 더욱 돋보인다는 의미에서 요즘은 꽤나 보편적인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렇듯 저자는 「글로벌 패러독스」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에서 출발한다. '세계경제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보다 작고 강력한 경제단위들로 세분화되고, 세계화. 보편화가 진행될수록 우리의 행동은 부족주의화한다.' 경제규모의 확대와 경제단위들의 세분화, 세계화와 부족주의화는 전혀 상반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패러독스가 그러하듯 세계화를 위해서는 부족주의화를 통한 독창성과 주체성이 있어야 함을 생각할 때 이 명제는 모순된 개념으로서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지구촌 경제의 대조류를 규모의 경제에서 규모의 비경제로의 전환, 전략적 동맹으로 특징 지운다. 이 전략적 동맹은 여전히 경쟁관계로 남아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와의 협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분할되어 독립한 중소기업들의 기업연합 형태나, 혹은 개별기업가들의 네트워크 체제로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게 된다. 마치 컴퓨터가 본체 개념에서 네트워크화된 PC 체제로 변화해 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책에는 '전자 부족 electronic tribes'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한다. 통신수단의 하나인 전자우편 E-mail이 새로운 부족을 형성, 정체성을 띤 대중적 결속을 강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전자부족'이라고 말한다. 네이비스트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부족 적인 것이 새롭게 부각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이 시대의 금과옥조는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행동하라'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국가 권력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좌우 이념대립에서 지역주의 대 세계주의 혹은 부족주의 대 보편주의로의 이행을 가속화시키는 패러독스의 동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텔레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보고속도로'로 표현되는 텔레커뮤니케이션은 거대한 세계 경제를 창출하는 동시에 그 구성부분을 더욱 작고 보다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소비재 전자제품 등을 포괄하는 텔레커뮤니케이션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며, 이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점차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되고 있다. 또 텔레커뮤니케이션의 혁명으로 개인의 자유는 더욱 확대되고, 낡은 권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형태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네이비스트는 이 책에서 상당부분을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 와 라틴아메리카의 가능성을 예견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경제발전을 지속한다면,2천년에는 세계최대의 경제권을 형성, 중국경제는 조만 간에 규모 면에서 일본과 미국을 앞지르고, 궁극적으로는 선진국 경제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은 이미 외형상으로는 독일을 추월했으며,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93년 IMF가 특정국가의 통화를 가지고 '자국 내에서' 살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의 크기를 측정하는 PPP purchasing power parity방식으로 측정한 결과 중국은 이미 1992년에 1조7천억 달러의 재화와 용역을 생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홍콩, 대만의 경제는 '대중화(大中化)'로 표현될 정도로 서로 밀접한데, 이 네트워크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포괄하는 동남아시아에서 세계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란 게 저자의 전망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경제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은 실업문제를 야기 시키고,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투자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으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결여돼 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에 금융. 세제 관련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것 등이 장애요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는 20세기 후반의 세계 경제지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 틀림없다고 그는 예측한다.

「메가트랜드 2000」의 저자 존 네이비스트의 미래예측 신사조인 「글로벌 패러독스」는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확고한 기초임에 틀림없다. 우리 모두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세계적으로 행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