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현장 / 광주 비엔날레

성숙하고 수준 높은 미술축제로 올려놓아야 ...

-무성한 파열음 속 개막되는 광주비엔날레



김원자 / 전남일보 문화부장

말도 많고 시행착오도 컸던 광주 비엔날레가 드디어 오는 20일 개막테이프를 끊는다.

11월 20일까지 2개월간의 일정으로 이곳 광주에서 개최될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광복 50주년이자 미술의 해인 1995년 올해를 기념하는 최대의 이벤트가 될 것이란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규모만 보더라도 본 전시인 국제현대미술전과 특별전, 기념·후원전에 60여 개 국에서 5백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부대행사인 공연·축제 등에 30개 국 1만2천 명의 인원이 동원될 것이다.

소요예산도 당초 1백억 원 예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 운영비로 77억 원, 시설투자비 1백5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문화예술 축제가 되었다.

비엔날레는 그야말로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국제미술전으로 1백주년을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등이 유명하지만 1964년에 시작되었다 도중 하차 해버리고 만 동경 비엔날레에 이어 아시아 태평양 권에서는 유일하게 치러지는 미술제가 광주 비엔날레가 아닌가 한다.

지방자치 원년의 개가

이제껏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던 국제미술 교류에 비춰볼 때 이 같은 대규모 전시회가 광주에서 열리게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행사 개최배경과 목적 등이 함축되어 있는 광주 비엔날레 선언문을 보면

'1995년 세기말 역사의 굽이에서 광주 비엔날레는 새로운 예술의 질서를 위하여 닻을 올린다.

광주·한국 그리고 세계사의 왜곡을 주체적으로 극복하고 예술의 신명나는 한마당을 위하여 그 기수를 세계로 돌리려 한다.(중략)

광주 비엔날레는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건강한 민족정신을 존중하며 지구촌시대 세계화의 일원으로 문화생산의 중심 축임을 자임한다.(중략)

첨단과학과 전통의 협력을 모색하고 자유와 상상력을 토대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열어갈 것이다'라고 못박고 있다.

즉 이제껏 주변부 문화로 인식, 중앙 중심의 예술정책과 문화활동에서 소외돼 왔던 광주가 그 동안의 축적된 역량을 모아 중심 축화, 더 나아가서 세계로 눈을 돌리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광주는 문화적 전통과 뿌리가 깊은 예향의 도시다. 올해는 지방자치가 시작된 원년으로 지역간의 균형발전과 경쟁력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중앙 대 지역이라는 종숙관계를 벗어나 그 지역의 가진 특성으로 경쟁력을 삼으며 그것을 잘 살리는 지역만이 21세기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때 튀어나온 광주 비엔날레 개최 소식은 예향과 세계적 민주도시라는 자긍심을 가진 광주 지역 정서에 걸맞고도 매우 고무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비엔날레 준비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지난 8월 1일 개막을 50일 앞둔 시점에서 그 동안의 준비상황에 대해 "모든 행사 기획 및 협의가 마무리되었고 이제 작품운송과 설치만 남았다"고 발표를 했다. 당초 20억 원을 들여 전시관 건립을 약속한 덕산그룹의 부도로 우려했던 전시장 공사도 거의 마무리, 큰 걱정을 던 셈이다.

광주 비엔날레의 핵심내용이자 주 전시회인 국제현대미술전은 신작 제작 원칙아래 주제인 '경계를 넘어서'에 부합하는 50개국 92명의 88개 작품이 거의 확정, 현재 운송단계에 와 있다.

국제특별전은 6개 분야 11개국 2백67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증인으로서의 예술전'은 10개국에서 20명이 참여한다 .'증인으로서의 예술전'은 초기에 피카소의 「조선의 학살」, 드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키오스 섬의 학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등이 거론되어 상당히 들떴으나 전부 취소되고 전전·전후로 나누어 당대의 사회적 삶을 증언하는 작품들을 모았으며 '광주의 5월 정신전'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5·18이 끼친 사회적 예술적 의미를 보여준다는 구상이다.

'정보예술전'은 과학문명과 예술의 접목을 통해 정보사회에서의 예술을 검증해 보는 테크노아트 전시회가 꾸며지며 '문인화와 동양정신전',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전', '한국 근대미술 속의 한국정신전' 등을 마련하고 있다.

이밖에도 '세계 미술 의상전', '지역작가 초대전', '한국화의 동질성 회복전', '중요무형문화재 작품전', '북한 미술 공예품점', '한국 근대회화 명품전' 등의 기념·후원전과 함께 갖가지 이벤트성 공연행사가 연일 막을 올리게 될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는 지난해 11월 14일 광주시가 비엔날레 개최를 공식 선언한 시점으로부터 불과 9개월 남짓한 사이에 모든 기획과 시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돼왔다. 대단한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은 그 강한 추진력으로 인해 졸속행정이니 밀어붙이기식 군사문화정책이니 하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비엔날레의 추진과정이 구체적 밑그림이 먼저 나온 뒤에 예산과 개최 일정이 자연스레 도출돼야 할 것인데 거꾸로 예산과 개최시기가 결정된 다음 여론 수렴 및 주제 선정 등의 과정이 따르고 있어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비판과 행사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가 남길 여운

문제제기는 주로 그 동안 관의 지원 없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광주 지역의 상징성을 토대로 15년 동안 이 지역 미술문화 활동을 주도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민예총 광주지부 회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첫째 이유는 행사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개최 일자를 미리 못박아 놓고 보니 시일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논의나 토의가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매사가 소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

예를 들어 커미셔너 회의도 내용 있게 납득할 만한 토론이 되어야 하는데 개개 커미셔너의 역량과 양식에 맡겨버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광주 미술인이 소외된 광주 비엔날레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꼭 전시회 참가·불참가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 자체가 서울에 있는 몇몇 명망가를 통해 추진됐고 광주시가 앞장서다 보니 지역 미술 인들이 열과 흥이 나는 기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

광주 비엔날레의 이상적 운영은 광주 문화인들이 주도하는 속에 전국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국제적 개최 경험과 역량 문제를 떠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대로 라면 광주는 마당과 예산만 내준 껍데기 행사를 치르게 될 뿐 지역의 국제화나 지역 작가의 세계화라는 명제에서도 거리가 멀어지는 꼴이다.

세 번째 문제제기는 비엔날레의 철학과 관련해서다.

전체 행사를 관통하는 철학이 주체적이기보다는 서구문화를 여과 없이 수용한 사대성이 농후하다는 것.

'광주 비엔날레는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추진과정 어디에서도 이것들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서구 미술전시회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제기가 강하게 터져 나왔다. 이밖에도 주최 시기와 함께 격년제 행사의 부담, 무리한 예산편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관련미술인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광주 비엔날레의 앞날과 관련하여 그리 밝지만은 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광주 미술인들 안티 비엔날레 추진

광주비엔날레 행사진행의 비민주성을 계속 비판해 왔던 광주미술인공동체(광미공, 회장 이준석)가 중심이 된 추진위원회는 급기야 6월 9일 모임을 갖고 광주 비엔날레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반anti 광주 비엔날레를 행사기간 중인 9월 20일부터 20일 동안 망월동 5·18묘역과 금남로 일대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광주 비엔날레가 선언문에서 주창했듯이 '분단의 한국사를 극복하고 분절된 세계사를 예술로 밝히는' 취지에 맞지 않게 광주정신을 담지 못하고 '증인으로서의 예술전'과 '5·18광주 정신전'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별도로 5월 광주전을 옥외에서 대규모로 갖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안티라는 부정적 어휘를 유화 시켜서 '통일미술제'로 명칭을 바꿨지만 이들의 전시 기획 안을 보면,

첫째, 광주 비엔날레가 파행,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내용 없는 일과성 행사, 행정 주도의 전시성 행사로 전락하는 까닭에 순수민간주도 미술제가 요청된다는 것.

둘째, 광주 비엔날레가 광주정신을 훼손할 철학 부재의 미술제로 귀착하고 있어 광주정신 형상화 작업의 전통을 계승하는 미술제가 필요하다는 것(즉 광주 비엔날레가 화합보다는 야망의 구조로 흐르는 현실을 고발하는 차원에서 자율적, 자생적 미술제가 고려된다는 것)이다.

셋째, 당대의 미술문화의 전형을 확정하기 어려운 문화현실 속에서 광주 비엔날레의 지향점과 길항관계에 서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회화담론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안티 비엔날레 논리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광주정신의 상징인 망월 묘역 일원에서 회화, 조각, 판화, 만화, 사진 ,걸개, 설치, 행위 등의 장르에 걸쳐 전국의 지역작가 2백여 명과 함께 작업을 펼치게 된다.

부대행사로는 안티 광주 비엔날레 당위성을 홍보하는 워크숍과 테마 파크 오프닝, 길놀이, 씻김굿, 5월 미술상 시상, 또는 광주항쟁, 미술관련 영화상영을 포함하는 개회식과 시내까지 이동 가능한 설치작품 및 만장으로 집체 퍼포먼스를 하는 폐회식을 계획해 놓았다.

이렇게 되면 외견상 광주비엔날레는 1회 대회부터 두 개의 장내, 장외 행사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장외전의 전통이 서구 쪽에서는 일반화된 실정이고 베니스 비엔날레의 경우도 1980년부터 10여 년간 오히려 본 행사보다 장외전 폭력과 생존의 문제 등 구체적인 인간 삶의 문제를 건드려 신선한 관심을 끌어온 것을 볼 때 주최측 입장에서야 떨떠름하겠으나 미술 수용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비엔날레 성공을 위하여

이제 행사개막을 20여 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본말이 어떻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 이상 큰 소모전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가장 순수해야 할 예술활동의 비순수성으로 인해 미술계 일각에서 겪는 상처이며 지역 민들이 떠맡아야 되는 과중한 짐이다.

2백억 원에 가까운 예산이 소모되는 거대 행사를 시민적 합의 없이 강행하는 데 따르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 행정당국은 광주비엔날레를 저 1981년도의 '국풍'에 비유해도 또 '광주 순치를 위한 고단위 정치적 산물'이란 의구의 눈초리에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왜 시작 단계 때부터 강하게 제기돼 온 '규모축소', '짜임새 있는 기본 기획안 마련'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규모 잔치성격의 미술축제를 그렇게 강행할 것인가.

어떻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두 달 동안 광주에서는 현대미술의 다채롭고도 역동적인 세계가 갖가지 공연 문화 행사들과 함께 펼쳐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광주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자족해온 시민들로 하여금 외부에 눈을 돌리고 적극적으로 만나게 하며 나아가 세계를 향하여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1세기 고도 정보사회, 문화와 첨단기술의 사회로 나가는 국민적 세례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뭔가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것,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을 빼고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광주 지역에서 발행되는 두 월간지가 이번 여름호 특집으로 각각 비엔날레를 다룬 시각은 지금 광주지역 미술인과 시민들의 두 가지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어서 무척 흥미롭다. 보수적 성격의 예총 광주시지회 발간 「예술광주」(지회장 강봉규)특집 좌담회의 제목은 「하늘이 점지해 준 광주의 영광, 광주 비엔날레」이며 진보적 성격의 「사회문화 리뷰」의 특집 좌담은 「재검토 없이는 죽도 밥도 안 된다」-광주 왜곡하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 -이다.

'광주의 영광'인가 '광주 왜곡'인가.

이 단어의 차이만큼 벌어진 틈을 아우르며 장장 두 달에 걸친 비엔날레를 일과성 잔치가 아니라 진정 성숙하고 수준 높은 미술축제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게 이제 남은 과제다.

우선은 영광스런 광주 비엔날레가 되도록 온 국민적 애정과 관심이 모아져야 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관 주도에서 민간의 자발성과 참여가 더 강조된 조직개편으로 항구적인 비엔날레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인 '경계를 넘어서'는 이념과 국가, 종교, 인종, 문화, 인간과 예술 사이의 복잡다단한 경계를 넘어 세계 속의 시민으로 자리잡는 것이며 미학적으로는 무기력한 다원주의를 극복하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제고하며 예술을 통한 화합과 치유를 바라는 메시지다.

모든 기획과 행사에 주제의 정신이 진정으로 반영될 때 비엔날레는 더 이상 광주 왜곡이 아니라 광주의 영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