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의 도시 빛낸 인형들의 축제
-춘천인형극제
김순희 / 강원일보 기자
그대 세상이 지루하고 삶이 고단하거든 이곳으로 오라
지금 여기는 곳곳에서 인형극축제가 한바탕 열리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
춘천의 팔월, 아이와 어른이 한마음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때
나의 살던 고향의 복숭아꽃 살구꽃처럼
웃음이 다닥다닥 피어나는 곳
그대 천천히 걸어 오라
-춘천인형극제 협의회장 우정호씨 축사 중에서
유난히 이상기온 현상이 지독했던 지난 8월, 호반의 도시 춘천은 인형 옷으로 갈아입고 동화의 나라를 꿈꾸었다.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춘천에서 펼쳐진 춘천인형극제는 국내 최대 인형극제이자 지방자치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지역축제라고 감히 단언한다.
현재 국내에는 극장 공연 중심의 서울인형극제와 시민축제 형식을 띤 춘천인형극제, 광주인형극제, 원주창작인형극제가 있다. 이 가운데 춘천인형극제는 역사와 축제의 완성도 면에서 단연 손꼽힌다.
지난 1989년 9월 제1회 춘천인형극제를 시작으로 지역에 뿌리내리기를 시도한 춘천인형극제는 방학과 숙박 등을 고려해 2회부터 줄곧 8월에 개최돼 '춘천의 8월은 인형극축제의 달'로 자리잡고 있다.
'춘천시를 세계적인 문화도시, 인형의 꿈을 이루는 곳으로 만들어 갑니다'라는 부제를 달고 개최된 올해 춘천인형극제에는 국내 42개 극단(아마추어 24, 프로18)과 일본(3), 프랑스(1), 헝가리(1), 중국(1) 등 국외 4개국 6개 극단 등 모두 48개 극단에서 5백여 명의 인형극인 들이 참가했다.
춘천인형극제는 프로와 아마추어 극단이 어우러지는 그야말로 인형극인 들의 잔치한마당인 셈이다.
8월10일 시가 퍼레이드와 전야제로 개막된 올해 춘천인형극제에서는 시내 곳곳의 지정된 6개 공연장에서 총 70여 회의 인형극 공연과 거리공연, 버스극장 공연이 14일까지 연쇄적으로 벌어졌고 여기에는 4만여 관람객이 몰려 역대 '최다관객 참여의 해'를 기록했다.
그 동안 축제를 치러오면서 좀처럼 접하지 못했던 공연장 매진사태는 인형극인 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었고 축제 관계자들에게 는 인형극 인만의 잔치 무대가 아닌 시민축제임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이 가운데는 서울·경기지역 등 외지인들의 문의와 방문이 그 어느 해보다 두드러져 춘천인형극제가 실로 '소문난 축제'임을 과시했다.
축제 첫날, 시민축제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시가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참가극단들이 모두 인형으로 분장하고 거리를 활보하면 시가지는 온통 인형들의 천국이요, 무더위에 지친 표정들은 어느새 미소를 머금은 채 손뼉을 치고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춘다. 얼굴을 찌푸릴 수 없는 현장, 그래서 감히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오라고 손짓하는 축제의 장인 것이다.
올해 시가퍼레이드에서 가장 큰 인기를 독차지한 극단은 흔히 족마(足馬)로 불리는 장대를 발아래 장치하고 키다리인형을 연기한 헝가리의 '오르트-이키' 인형극단.
MASKARAS Group과 HATTYUDAL 극단의 연합 팀인 이들은 동유럽의 특이한 거리공연으로 시가퍼레이드에서 최고 인기를 끌었고 축제 내내 사랑을 독차지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던 시가 퍼레이드는 전야제로 이어져 춘천의 한 여름밤은 폭죽과 함성이 어우러져 달과 함께 호수에 내려앉는다.
전야제의 여운은 늘 강원도의 먹거리가 가득한 파티 연출로 절정에 달한다. 시루떡에 찐 감자. 옥수수가 무대 가득 오르는 야간 파티 장은 외견상 야외뷔페 식당 같지만 내용은 멍석 깐 어느 시골 잔칫집 마냥 흥겹다.
올해도 이렇게 축제 팡파르는 울려 퍼졌다.
이번 제7회 춘천인형극제는 전반적으로 아마추어인형극단들이 상승세를 보여준 자리였다. 아마추어 인형극단 가운데 시선을 모은 팀은 교사인형극단과 장애인 인형극단.
교단에서 인형극 특별활동을 해오고 있는 교사들로 구성된 교사인형극단 '소꿉놀이'는 뿔 달린 일본 도깨비 모습이 아닌 순박하고 뿔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도깨비를 소개해 아이들의 시각 교정은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남아 있는 뿔 도깨비 환상을 한순간에 깨뜨렸다.
이들 교사들은 전자오락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인형극이 얼마나 훌륭한 교육매체이고 즐거운 놀이문화인가를 강조한다.
장애인들로 구성된 성 베드로 학교 극단의 공연은 장애인들에게 표현의 영역을 넓혀준 의미 있고 뿌듯한 자리였으며 무엇보다도 인형극을 통한 장애치료효과를 암시해 준 계기였다.
인형극의 질적 향상을 위해 올해 처음 시도한 아마추어 인형극 경연대회에서는 부산인형극단 '사랑소리'가 최우수상을, 계명전문대 '피노키오'가 우수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인형극 경연대회의 자리 매김을 위해서는 평가 근거와 심사위원 문제 등 공정한 심사 방안이 거듭 논의돼야 할 과제다.
프로극단 가운데 눈 여겨 볼만한 극단은 주로 외국 팀이었다.
'피리'를 뜻하는 일본 '피코로' 극단은 1977년 30∼50대 어머니들이 주축이 이루어 창단한 극단으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을 자식처럼 여긴다는 점에서 인형극을 통해 자식사랑을 간접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주위에 널려 있는 폐품을 활용해 즐거움이 가득한 서커스로 창조해낸 일본 '크레용컴퍼니' 극단의 「잡동사니 서커스」는 재활용품을 멋지게 활용,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중국 목우(木偶) 예술극단의 작품 「학과 거북이」는 아이들이 보기에 다소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섬세한 인형의 움직임은 인형극인 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번 축제에 가장 큰 규모로 참가한 국내극단 '영'의 「날으는 손오공」은 무려 56개의 인형이 무대에 오르는 대규모 인형극으로 스토리 전개의 재미가 뛰어나 90분간 계속된 장시간 공연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막이 내린 후 한참이 지나서야 공연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몇몇 프로극단은 2, 3년 전 작품을 그대로 무대에 올려 꼼꼼한 시민들의 빈축을 샀고 인형극인들 내부에서도 상호비판이 뒤따랐다.
극장공연만큼 아이들의 발길이 북적거리는 곳은 어린이회관 주변에서 무료로 펼쳐지는 다양한 부대행사들.
종이 접기 강습 장에는 고사리 손으로 꽃이며 새를 만들고 환호하는 아이들로 가득했고 불필요한 장난감이나 물건을 학용품으로 교환해 주는 어린이용품 물물교환 장은 아이들에게 새 물건을 선물 받는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벽화 그리기에서는 크레파스로 피에로와 백설공주를 멋지게 그려 넣는가 하면 커다란 낙서 장을 만난 아이들이 매미처럼 달라붙어 진지하게 추상화(?)를 그려갔다.
어린이 좋은 책 전시장은 부모들에게도 큰 인기여서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고르는 진지한 손길이 있었고 인형극 포스터 전시는 인형극의 역사와 각종 국내·외 축제를 한눈에 감상하는 기회가 되었다.
티셔츠 디자인과 진흙공작을 펼치는 자리에는 손수 진흙을 주무르고 멋진 옷으로 디자인해내는 아이들의 재치와 상상력이 가득했다.
한 쪽에는 아마추어 햄 HAM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24시간 햄을 공개운영하며 전파를 통해 춘천인형극제를 전세계에 전하는 홍보사전 역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춘천인형극제는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모처럼의 놀이 장을 제공하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심어주는 자리이다.
한편 올해 춘천인형극제는 시민들의 관심거리이자 정부기관의 연구대상이었다.
문체부는 춘천인형극제가 지역의 사회, 문화,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연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방자치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지역축제로 정착해가고 있는 춘천인형극제가 타 지역의 유사한 문화행사에 유용한 근거자료가 되도록 산하기관인 문화 정책개발연구원에 연구, 조사 용역을 의뢰한 것이다.
이 결과는 오는 10월 전국지방문화예술인대회에서 공식 발표된다. 이번 연구착수는 단순한 소비제에서 투자제로 변모하고 있는 문화상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사하고 있고 이와 함께 지방자치시대의 도래로 지방정부의 문화정책 입안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춘천인형극제가 다른 지역의 축제에 유용한 근거자료가 될 만큼 성장했다는 점과 지방자치시대에 걸맞은 독특한 지역 문화축제임을 입증해 주었다.
춘천인형극제의 모티브는 이다 인형극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매년 8월초에 열리는 이다 인형극제는 올해 17회를 맞았다.
인구 8만의 이다는 인형극제기간 동안 도심이 온통 축제물결이다.
사과가 특산품인 이 지역은 이 축제기간에 이벤트축제인 사과 미인선발대회도 함께 치르고 일본 각 지방마다 독특하게 이어지고 있는 시민축제도 이 기간에 펼쳐진다. 4일간 펼쳐지는 이다 인형극제는 이들 축제들과 연계해 그야말로 도심 전체가 떠들썩한 시민축제로 연출되고 결국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춘천인형극제는 아직 도시축제라고 자신 있게 명명하기 힘들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짙다.
올해 축제가 증명해 주듯이 축제에 참가하는 관람객 수가 해마다 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성도 뒤따라주고 있다.
앞으로 남겨진 과제는 인형극의 도시를 꿈꾸는 춘천에서 인형극의 저변확대가 이루어지고 역량을 키워나가 축제의 집행력을 다지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호반의 도시 춘천은 축제도시를 꿈꾸고 있다.
일단 호수를 끼고 있는 춘천어린이회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첫 번째 축제형성의 조건이요, 교육도시 관광문화도시를 시정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방향과 맞물린다는 점이 축제의 정착을 단적으로 예측케 한다.
초록의 계절5월에는 한국 마임페스티벌, 한여름인 8월에는 춘천인형극제, 그리고 3년에 한번씩 춘천국제인형극제가 있다. 이 축제들이야말로 호반의 도시, 춘천의 아름다움을 가장 빛내주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