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프트 자본주의 시대를 대비하여
- 문화산업
김승수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경제각도에서 문화산업의 가능성
(쥬라기공원)으로 번 돈이 자동차 몇백만 대 수출한 것보다 낫다느니, 21세기에는 문화산업이 전략산업이라느니 하는 말이 한창 유행한 적이 있다. 사회의 비중 있는 인사가 이런 말을 꺼내기 무섭게 말 깨나 한다거나, 돈푼 깨나 있는 사람, 그리고 기업들은 한결같이 "그래 문화는 돈이야" 하고 소리치는 듯 보였다. 그러면 과연 그런가? 문화산업이 그렇게 돈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허술한 곳인가?
문화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기업, 남의 나라 문화산업의 저변에 흐르는 이념과 이상은 모른 체하면서 문화산업에 진출하여 돈도 벌고 교양미 있어 보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문화산업 입구에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참으로 천박한 발상이며, 가당치도 않다. 왜냐하면, 문화산업이 그리 붕어빵 굽듯이 손쉬운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쥬라기공원에 투하된 자본의 규모, 엄청난 제작인력, 첨단기술의 동원, 세계적인 유통망, 지구적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미국이라는 배경 등 수많은 요소가 오늘날 미국 문화산업을 만들었다는 점을 잊은 것 같다. 특히 문화상품의 시장성 확보에 결정적인 영어라는 변수가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실정에 문화산업으로 세계와 경쟁하겠다는 발상은 오직 성과에만 현혹된 채 과정은 망각한 관념이 아니가 한다. 누가 지금 같은 정치, 경제, 문화구도에서 세계 문화시장을 겨냥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는가?
문화산업은 한 나라의 경제, 정치, 이념, 민족성이 총체적으로 반영되는 곳이다. 우리처럼 이념적. 정치적 장애물이 많아 가지고는 좋은 소프트웨어 제품이 나올 리 만무하고, 기껏 만들어봤자 팔 곳도 마땅치 않다.
문화산업의 전망을 검토하기 전에 우리는 걸어온 문화산업의 성장 사를 간략하게 짚어보고, 향후 문화산업의 전략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산업은 어떻게 축적됐는가?
우리나라 문화산업은 일제부터 50년대까지 신문. 잡지. 서적 중심의 무성문화시대, 60년대부터 70년대는 라디오와 영화 중심의 시청각시대였고, 텔레비전이 널리 퍼지는 80년대부터 90년대는 영상문화시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시대를 문화경제시대라 전망한다.
우선 무성문화산업시대는 수천 년을 거쳐온 것으로 활자문화가 문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때였다. 광복 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과 잡지가 매체산업의 핵심이었다. 무성문화산업은 신문과 잡지, 단행본 등 인쇄매체가 주도하는 문화였다. 이때는 여전히 농업이 국가경제를 좌우하던 시기로 소비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은 그야말로 맹아단계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광고가 있을 턱이 없었고, 신문사 하나 유지하기조차 어려웠다. 국민들의 욕구도 의식주를 해결해야 되는 일차원적 삶 속에서 고난 찬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어 영화가 국민들의 중요한 오락수단이자 문화공간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라디오의 대중화로 인해 가정마다 서울에서 발사되는 라디오 메시지에 귀기울이던 청각문화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한편 아쉽게도 이 당시 영화는 많은 관객을 모아 축적의 기반을 마련한 듯이 보였으나 효율적인 경영관리의 실패, 새로운 포맷이나 주제 등의 개발 미흡, 경직된 정부의 영화정책에다가 할리우드 영화의 적극적인 공세에 밀려 곧 파탄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일시나마 부흥했던 영화산업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역시 라디오는 문화산업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산업적으로도 라디오 수상기를 제조하거나 배터리를 만드는 기업들이 호황을 누렸다. 상업라디오의 출현은 기존의 매체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꾸었다. 라디오는 뉴스뿐 아니라 음악, 오락, 스포츠와 연결되어 산업화를 촉진하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의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축구 중계도 전국의 청취자를 열광시켰다. 그러나 라디오가 주도적으로 조성한 청각문화는 청취자에게 소리로만 다가갔기 때문에 청취자에게 소비문화에 대해 결정적인 환상을 심어 주지는 못하였다. 소비자본주의 경제를 이루는 의상, 화장품, 가전제품과 같은 물건을 만드는 기업에게 라디오는 별다른 매력을 끌지 못했다. 라디오를 이용한 소비제품 판촉이 청취자의 소비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약점과 함께 라디오는 여전히 소리문화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결국 텔레비전에 눌려 그 영향력은 급격히 감퇴하였다.
무성문화와 청각문화를 제압하는 새로운 수단이 나타났다. 컬러 텔레비전이 바로 그것이다. 90년대 들어서자 광고산업의 규모가 이미 1조억 원을 넘어섰다. 광고의 성장은 물론 신문과 텔레비전이 주도하였다. 컬러 텔레비전전이 널리 보급되어 문화환경은 급속히 시각문화로 기울어 졌고, 경제도 시각경제로 바뀌었다. 시청자들에게도 컬러 텔레비전은 감성문화의 문을 열어 주였다. 생각한다던가 논리를 따지기 전에 본대로 느낀 대로 생활하고 소비하는 문화양식이 이때부터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예쁜 것, 맛있는 것, 멋있는 것 등 미적 감각을 세련되게 단련시킨 시청자들은 서서히 텔레비전 소비문화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온 사회가 시각 사회로 전환한 듯이 보였다. 이것은 대량 생산, 대량소비가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각문화산업은 그 자체의 이윤 논리보다는 광고를 통해 소비문화를 확산시킴으로써 대기업의 이윤실현에 이바지한다거나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상당히 강조되었다. 문화자본의 축적은 가능했지만 독점화된 산업구조는 비효율성의 극치를 이루었다.
문화경제의 시대
한국문화산업은 1990년에 들어서자 또 다른 변화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때 문화산업은 질적 전환을 강제 당했다. 무엇보다도 국가독점권력이 시민항쟁으로 약화되자 재벌을 중심으로 한 대자본들이 문화산업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자, 문화산업의 질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문화산업으로도 충분히 이윤을 챙길 수 있다는 자본가들의 욕구가 발동하면서 이제 문화산업은 재벌과 신문재벌의 야심에 찬 21세기 프로젝트 가운데에 있다.
앞으로 세계는 누가 얼마나 경쟁력 있는 문화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21세기를 소프트웨어 조본주의시대, 문화경제의 시대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싶다. 문화경제 구조가 확립됨에 따라 감정, 정보, 지식, 노래, 오락 등 모든 소프트는 상업화, 상품화되었다. 문화상품은 소비자의 욕구, 대기업의 이윤 증식 욕구에 따라 한층 세분화되었다.
방송시장 2조억 원
신문시장 2조억 원
비디오시장 1조억 원
만화영화시장 8천억 원
전자오락시장 5천억 원
수신료시장 4천억 원
만화시장 4천억 원
잡지시장 3천억 원
음반시장 3천억 원
영화시장 2천억원
이러한 문화산업이 투기산업이지만 일단 시장을 확보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대기업들이 적극투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문화산업이 투기성과 수익성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단지 수익성에만 집착한 까닭에 자본실패를 당하게 되었다.
대자본들이 이렇게 문화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인정한 까닭은 자본주의 경제기반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제조업, 기술, 기계와 같은 하드웨어가 이끌어왔지만 이러한 추세는 주춤하고, 대신 지식, 정보, 문화라는 소프트웨어가 21세기를 열어간다는 추세를 인지한 자본가들은 문화산업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쇄문화산업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쇄문화사업 같은 재래산업에서 축적해 왔던 신문사까지도 구태의연한 신문산업은 결국 몰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예측하면서 너도나도 시각문화산업이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불모지에서 일정한 규모로 시장을 형성해 놓으면 꼭 외국기업들이 휩쓸고 가는 것이 문화산업이다. 지금 문화산업에 투자하는 형태를 보면 마치 외국자본의 이득을 위해 몸부림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케이블산업이나 위성방송 등 방송산업, 연간 4조억 원이 넘는 광고산업이 형성되자마자 일본과 미국의 전자업계가 호황을 맞은 것이 좋은 사례이다. 일본은 케이블산업의 실패로 수많은 케이블 기자재 공급업체가 도산하는 순간에 한국 기업들이 중요 수입원으로 등장하여 기사회생하였다. 그리고 우리 케이블산업도 일본에게 이득을 안겨 주고 실패로 끝났다. 위성사업도 마찬가지다. 4천억 원 가까이 투입된 무궁화위성이 정상작동에 실패하면서 수천억 원의 투자비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막상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문화시설을 만들고, 문화시장을 형성해 놓고 나면 그 시장에 공급할 상품이 마땅치 않아 결국 세련된 외국 문화상품에 기대게 되어 소프트 종속을 자초하게 된다. 미국과 일본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들어와 이윤만 챙겨 가는 것이 최근의 실정이다. 그래서 음반산업의 경우 빅 5가 약 7백억 원 정도 매출하여 시장점유율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영화, 비디오, LD등 영상 문화시장의 87%는 외제가 차지하였다.
이는 한국사회를 문화적으로 지탱해줄 만한 힘까지 없어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리하여 양적으로 비대해진 문화산업은 국민경제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되면서 외국 자본의 공세로 문화대란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문화대란을 예감하면서
대란을 일으키는 요소는 재벌, 미국자본, 일본자본이다. 물론 미국 문화산업이 세계 최강자의 위치에 있지만 옛날과 비교해 미국의 문화상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절대적인 경쟁우위를 상실하고 있다. 그 원인은 다각적이다. 우선 막대한 경영과 투자비로 인해 문화상품 가격이 폭등, 국제적으로 비용우위를 잃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과 유럽 자본들이 속속 미국 영화사나 제작사 등을 사들여 수출국으로서의 위상도 저하되었다. 순수 미국자본이 소유한 기업을 보면 음반산업의 경우 타임워너사만이 남았고, 영화사는 타임워너, 디즈니, 파라마운트 정도가 명맥을 유지한다. 단기차익을 노린 합병과 매수 Merger & Acquisition도 빈번해져 매체기업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1960년대의 7년에서 현재는 2년으로 줄었다. 이는 잦은 경영진의 교체, 일관성 없는 전략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거기에다 경기침체까지 덮쳐 문화산업의 평균 이윤 율은 매년 떨어졌다. 이런 악조건에서 문화산업을 떠받치는 광고요금 인상률이 10% 미만일 수밖에 없어 수입을 광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다 경쟁우위를 과신하고, 이윤증대에만 골몰한 나머지 시설, 장비, 인력, 조사 등 재투자가 절실한데도 이를 게을리 하여 다른 나라의 문화기업을 압도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러한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미국 문화산업에 유럽과 일본 자본이 도전하고 나서는 것은 자본의 생리상 당연한 것이다.
이들간의 격렬한 주도권 다툼은 결국한국문화산업의 완전개방이라는 압박으로 귀착될 전망이다. 빗장을 열고 들어온 외국 문화상품은 우리의 혼과 정서구조를 혼란시키고,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외국 자본의 공세는 우리가 당면한 문화적 공황상태와 상승효과를 일으켜 문화대란을 조성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산업을 형성하는 요소인 자본, 인력, 기술, 시장, 소비자, 이념적 환경 등 여러 요소들을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경제시대에 문화산업의 질적 발전을 유도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 단추는 정치적. 이념적 족쇄를 풀고 이념의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특정한 신념. 이념 등이 시장진입을 못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문화상품은 경직된 국가이데올로기일 뿐 경쟁력은 없다. 문화산업은 이제 독립된 경제영역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화산업의 정치적. 이념적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산업적인 독립성만 인정하면 냉전문화나 어줍잖은 상업문화, 쓸데없는 국수주의 문화를 양산하는 결과가 나온다. 문화 상품의 이념적. 문화적 보편성을 확보할 때 국제시장에서 구매자를 찾는 데 유리하다.
둘째, 문화시장기재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광고요금, 텔레비전 수신요금, 신문구독료, 잡지요금, 비디오대여 요금 등 각종 가격기제가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요금 결정이 주먹구구식이거나 정치적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문화산업에서 쟁점 중의 하나는 상품수요자의 욕구와 공급자의 욕구가 불일치 한다는 것이다. 수요자들은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원하지만, 공급자들은 독과점 지위를 악용하여 비싼 가격에 질 낮은 상품을 강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요와 공급을 가격이나 경쟁에만 맡기지 말고 독자적인 장치를 만들어 수요와 공급의 일치에 힘써야 한다.
셋째,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또 시장개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벌이 문화산업에 적극 진출해야만 된다는 허황한 논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 재벌은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내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어 외국에서 값싼 문화상품을 마구잡이로 수입하여 문화산업의 기반을 흔들어 놓고 있다. 재벌 산하에 있는 케이블방송을 보면 그런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재 문화산업에 잔뜩 눈독을 들이는 대기업, 문화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는 규모의 신화에 사로잡힌 나머지 문화산업을 채울 내용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93년 자본금이 영세한 17개 만화영화 제작 사들은 6천7백80만 달러 어치의 만화영화를 수출하였다. 고용된 인원은 총 2천8백90명이다. 이와 비교해 비디오. 프로그램 공급업, 영화에 투자하고 있는 거대 재벌기업들은 수출보다는 외제영상제품 수입에 온힘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누가 또다시 규모의 경제만이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넷째, 조급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투자하여 하루아침에 떼돈 벌려는 잘못된 투자 관을 갖고서는 외국문화시장 문턱에도 못 가 좌초할 것이다.
다섯째, 문화산업에서 기술과 판촉, 조사에 드는 비용은 원래 가변자본으로 처리됐으나 그 중요성과 비중에 비추어 지금은 사실상 고정비용으로 처리될 만큼 조사와 개발비를 과감히 투자하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하다.
여섯째, 현재 한국 매체기업을 비롯한 문화기업은 물자와 인력의 외부구매 Outsourcing, 조직과 권한의 다운사이징 Downsizing, 자산매각 같은 경영전략을 도입하며, 창조적 요소를 적극 유입토록 하고, 제작 중심의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 기대된다.
일곱째, 문화상품의 경쟁우위 품목과 그렇지 않은 품목을 가려 경쟁우위를 계속 지켜 나아가되, 경쟁열등 상품은 현상을 유지하거나 철저히 개조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여덟째, 정책적으로도 규제기구를 단일화하고, 정부통제에서 벗어나 독립된 민간규제기구로 통제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컨대 만화 규제기구만 해도 공보처, 경찰청, 내무부,문체부,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공연윤리위원회,보건복지부,통상산업부 등 이루 헤아리기조차 숨차다. 방송은 공보처,정보통신부,노동부,통상산업부,재경원,방송위원회,종합유선방송위원회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정치적 규제가 극심하다. 그러므로 문화영역을 규정하고 이를 규제하는 기구가 한 곳으로 통합될 때 문화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업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문화를 구성하는 각종요소 즉 이념, 정치, 관습, 경제 등 사회제도와 소프트웨어 모든 것이 시대에 맞게 철저하고, 완벽하게 변하지 않으면 깨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문화산업에서는 조급하게 서둔다고 성과가 나올 까닭이 없으며, 문화산업의 수준이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을 넘어서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끝으로 한국형 문화산업론의 정리도 시급한 바 문화를 경제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문화경제학 Cuitural economics 같은 이론의 정립은 중요한 학술적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