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 사람들. 8

무대의상 디자인의 이론과 실제를 겸한 인재

- 무대의상 김현숙




구히서 / 연극평론가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 극 시리즈로 기획했던 연극 집에서 자연스러운 색감과 세련된 선의 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던 무대의상 디자이너 김현숙씨는 올해 한양레퍼토리의 「춘풍의 처」, 「한 여름밤의 꿈」에서 재미있는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고 국립극단의 광복 50주년 기념무대인 「눈꽃」으로 무대의상 디자인의 다양한 세계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5월에는 고려원에서 「무대의상 디자인」의 세계라는 책을 내놓아 무대의상의 논리적인 작업방법을 제시했으며 오는 11월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될 에이콤의 대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의상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 무대의 의상디자인 분야는 그 종사인력의 숫자가 많지 않다. 전문인력의 수도 적고 전문인력의 양성에서도 체제가 갖춰진 상태가 아니다. 현재 의상디자인 분야에서는 극단 자유의 대표인 이병복씨를 비롯해서 최보경, 변창순, 이유숙씨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는 패션디자인과 겸해서 무대의상을 하는 경우, 무용무대를 주로 하는 의상실 체제 등이 있으며 무대미술가협회 워크숍 등을 거쳐 새롭게 무대의상 디자인에 뛰어드는 젊은 인재들이 있다.

김현숙씨는 지금 우리 무대에 얼굴을 내민 지 10년째,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9년째다. 미국일리노이대학에서 무대의상 전공으로 MA, MFA 두 개의 학위를 받고 돌아와 이론과 실제에서 학구적이며 감각적인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어 지금까지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함께 앞으로의 활동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하는 당찬 인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성장과정과 무대의상 디자인을 공부로, 이로 선택하게 된 것은 어떤 경위였는지 궁금하다. 그 최초의 인연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1954년 2월 11일 서울 태생이다. 아버님은 교육계에 종사하시고 나는 3남매 중 맏이로 두 남동생이 있다. 덕수국민학교와 이화여고를 다녔고 대학은 고려대 신방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고대극회에 참여해 4년 내내 배우로 스태프로 일을 했고 극단 예맥에도 참여해 연출을 한 적도 있다. 대학 시절의 이런 연극 경험이 나를 연극 공부를 더해서 연극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무대의상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것은 무대에서 배우들의 의상이 표현할 수 있는 색채와 선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와 그 역할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옷에 대한 기억들이 많다. 어머니는 맏이고 하나뿐인 딸을 예쁘게 차려 입히시기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는 머리 모양이나 구두, 스타킹, 옷에 대한 기억이 많고 그런 것들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었다. 배우로, 연출로, 무대 앞과 뒤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는 극장공간 무대와 객석이 주는 느낌을 굉장히 좋아했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것, 시각적인 모든 요소들에 대해 특히 감각이 예민했다.

화가가 빈 화폭을 앞에 놓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대 위의 빈 공간을 치우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움직이는 배우들, 그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들 그 모양과 색채, 선과 질감을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나는 그래서 무대의상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미국 유학시절의 공부는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었는가? 거기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일리노이대 시카고 서클에서 MA과정을 거쳤고 일리노이대 본교인 어바나 샴펜에서 MFA과정을 이수했다. MA과정을 하는 동안은 이론 중심의 교육이어서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 나는 공부와 병행해서 시카고 근교 오파크 에반스톤 지역극단과 극장에서 디자이너 또는 보조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가 있었다. MFA과정 3년 동안은 실기 중심의 강훈련이라서 학교 안에서 하는 실제작업이 주가 됐다. 밖의 일은 하 수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일리노이대에는 연극과. 무용과. 음악과 등 공연예술 전공 학과가 있고 그들 모두가 함께 이용 할 수 있는 공연예술을 위한 크래너트센터라는 상당히 좋은 공연 시설을 갖춘 공연공간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연중 수십 개의 작품이 올랐고 MFA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이 작품들을 할당해 실습을 해가며 공부를 하게 했다. 이 무대에서 일하는 것은 공부과정이며 동시에 아르바이트이기도 하다. 여기서 일하면서 배우고 실습하고 장학금도 받기 때문이다.

나는 6년간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 생각을 무대 위에서 실제화 할 수 있는 이론을 배우고 실제의 훈련을 받았다.

-귀국 후 우리 무대에서는 어떤 일들을 했는가?

공부도중이었던 1985년 일시 귀국해서 광복 40주년 기념무대였던 국립극단의 「내일 그리고 내일」의 의상을 했고 1986년 6월에 졸업을 하고 1987년 초에 귀국해서 문호근씨의 음악극연구소가 만든 「거지같은 오페라」, 「오르페우스」, 「우리들의 사랑」 등으로 일을 시작했고 김아라씨의 「독배」, 극단 현대극장의 연극제 참가작인 「로미오 20」의 의상을 했고 한양대 무용과, 서울여대 의상과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열심히 일을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로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열심히 배우고 학위를 획득해 왔는데 가르칠 곳도 없었고, 연극무대에서도 이해를 받지 못했다는 불행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무대를 떠나서 패션 쪽의 일을 해봤지만 그 역시 만족할 수 없었다. 같은 의상 일이지만 패션 쪽의 일을 하면서 나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2년 전 무대의상에 대한 책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고 나서였다. 지난해 2월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고 4월부터는 김광림씨의 「집」에 참여해 8월에 공연을 했다. 책을 쓰면서 나는 마음을 정리할 수가 있었다.

-무대 작업에서의 경험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 동안 해온 작품의 방향은 어떤 것이었는가?

1985년 「내일 그리고 내일」 은 변화나 창작적 요소가 강하지 않은 일반적인 한복이나 평상복 위주로 만들었다. 재학 중에 잠시 돌아와서 한 작업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일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독배」는 작품의 개념이 잘 파악되지 않았던 데다가 연출자와 의견이 잘 조정되지 않아 힘들었다. 문호근씨의 음악극들은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된 것이므로 나무 화려하지 않고 무게있게라는 방향으로 만들었다. 「집」은 모노톤으로 단순한 선, 무채색의 느낌으로 표현해 보았고, 올해 6월 무대였던 한양레퍼토리의 「한 여름밤의 꿈」은 되도록 이면 장식적으로 만들었다. 색감도 화려하고 너덜너덜하게 덧붙이는 것이 많은 풀풀 거리는 의상이었다. 작품의 경쾌하고 희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려 한 것이었다. 「눈꽃」은 그 시대의 평상복을 기준으로 하되 옷이 닳아 해진 느낌을 내는 것에 주력을 하고 낮은 채도의 색채를 여러 색 겹치는 배열에 신경을 썼다.

-명성황후는 윤호진씨의 에이콤이 오랜 제작 준비를 거쳐 내놓는 의욕이 넘치는 대작이다. 이 무대의 의상은 어떤 방향으로 잡고 있는가?

선과 형태, 실루엣은 전통적인 우리 옷 궁중의상과 귀족, 평민의 옷 그대로의 느낌으로 갈 예정이다. 그러나 그 옷 그대로는 아니고 창의성을 살려 그런 느낌을 내 보려고 한다. 색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서로 대비를 시켜볼 예정이다. 왕족이나 양반들은 깊고 풍요로운, 어둡지만 호화 장중한 색조로, 일반 백성이나 기타 인물들은 채도가 낮은 자연 색을 쓰려고 한다. 소재는 한복 소재를 피하고 질감이 두껍고 입체감이 있는 육중한 느낌의 것을 쓰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특성은 어떤 것이 있는가?

나는 채도가 낮은 한 번 걸러진 것 같은 중간 색조의 색감을 좋아한다. 의상의 색조는 작품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하지만 이러한 내 취향은 여러 모로 작업에 영향을 준다. 그런 색조가 어울리지 않는 경우인 데도 자꾸 그런 쪽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소재로는 요철 감이 풍부한 쪽을 찾게 된다.

-우리 무대에서 무대의상의 현황과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절차에 따라 이론과 실제를 함께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교육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해야 하고 어떻게 디자인을 시작하고 수행할 것인가, 그런 과정을 전반적으로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교육이 없다.

실제 작업에서는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리한 진행이 많고 건너 뛰기식 작업이 대부분이다. 작품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거쳐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내놓고 다시 연출 진과 의견을 맞춰 수정작업을 거쳐 확정을 짓고 제작을 한다는 기초적인 작업과정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작업과정이 합리적이지 못하다.

배우나 연출이 무대의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충분한 토론을 거쳐 디자인되고 제작된 의상을 잘못 입거나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상의 디자인 작업과 제작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가?

나는 집이 있는 여의도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다. 일은 내 개인 작업실에서도 하고 제작실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업무를 계속해야 하는 가게 형태의 작업실은 없다. 지금도 없지만 앞으로도 그런 장소를 가질 계획이 없다. 그런 장소를 열고 있으면 하고 싶은 작품만 선택해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장소 자체를 운영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항상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개 한 작품에 평균 3개월쯤 집중해서 충분히 토론을 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우리 무대의 무대의상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미국 유학 중에 경험했던 MFA 과정에서처럼 이론과 실제를 함께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무대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