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정보/ 필리핀

다민족을 하나로 엮어내는 필리핀 문화예술계




김동엽 / 필리핀대학

문화예술계의 중심, 필리핀 문화센터

수없이 많은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 이름 아래 조화와 화합을 이끌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라 필리핀, 그 대들보 역할은 역시 정치적. 종교적 이념을 뛰어 넘은 문화예술계에서 떠맡고 있다. 각기의 독특한 문화의 맥을 한 흐름으로 모아 필리핀화시켜 나가는 사업은 마닐라 해변가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필리핀 문화센터가 그 중심이다.

1969년 당시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의 지원으로 개관된 필리핀 문화센터는 필리핀 문화예술의 발전과 개발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필리핀 국민의 예술. 문화. 전통을 승화 발전시키고 민족문화의 맥을 이어나감으로써 다양한 민족의 문화적 주체성을 일깨워 주고 그 속에서 총체적인 유사성과 보편성을 이끌어내어 국가적인 주체성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그 이념이다.

이러한 이상 아래 다섯 가지 기본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첫째, 필리핀화, 오랜 기간 동안의 식민지 지배와 급속한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상실되어 가는 주체성을 찾아 발전시킨다.

둘째, 민주화. 지역적.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각 그룹의 예술인들에게 동등한 참여의 기회와 지원을 제공한다.

셋째, 지방화. 문화행정의 중심을 중앙이 아닌 각 지방에 둠으로써 지방 예술인들로 하여금 각기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도록 후원한다.

넷째, 우수 예능인의 발굴, 도시와 지방의 숨은 예능인들을 찾아 훈련과 교육으로 전문 예술인으로 양성한다.

다섯째, 국제교류 증진, 다양한 국제예술 교류를 통해 국제 선의와 이해를 증진시키고 필리핀 예술인들의 문화적인 경험을 축적시킨다. 필리핀 문화센터의 시설은 무대예술 공간으로 1,860석 규모의 메인극장과 402석의 소극장, 그리고 206석 규모의 실험극장이 있다. 전시 예술공간으로 11,5×30.4미터의 소갤러리와 13.9×5.8미터의 소갤러리, 그리고 4층과 3층 복도와 현관 로비를 다양한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시청각실, 워크숍과 리허설홀, 도서관 등이 있고 부속 건물로는 8,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용 극장과 3층 건물의 프로덕션 디자인센터가 있다.

콘서트 열기로 가득찬 음악계

새로운 콘서트 시즌을 맞이하여 필리핀 필하모니오케스트라는 보다 날카롭게 조율된 선율로 낭만과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22년의 역사와 80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필리핀 필하모니오케스트라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8차례의 정기적인 연주회를 필리핀 문화센터 메인 극장에서 가진다.

올해 9월 1일에는 오스카 C. 야코의 지휘로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 9번」을 선보였고, 피아니스트 라울 수니코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1번 F 마이너」를 협주했다. 10월 6일에는 영국인 하프 연주자 유안 존스가 지나스테라의 「하프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독일 출신 소프라노 안디오 페르난데스는 모차르트의 「환희의 찬가」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영부인 아멜리타 라모스 여사와 국가문화예술위원회, 그리고 필리핀 문화센터의 후원으로 세계 청년오케스트라가 지난 7월 마닐라를 방문하여 19일과 21일 두 차례의 연주회를 가졌다. 세계 청년오케스트라는 37개국으로부터 92명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19일 개막연주에서는 재프리 칭의 새로운 작품 「심술쟁이 꼬마 도깨비」가 연주되었고 이외에도 칭의 작품 「심포니 2번」과 베토벤, 스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와 모차르트의 작품 등이 연주되었다. 7월 21일 연주회에서는 한국 출신 이민영양이 베토벤의 「제3의 피아노협주곡」을 솔로로 연주하여 현지 언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제1회 필리핀 재즈페스티벌이 지난 8월 11일 전통예술극장에서 연주자와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개최되었다. 기타 연주자 피터 화이트, 색소폰 연주자 보니 제임스, 필리핀 스타밴드 아슬라, 그리고 립핑톤스가 4일 동안의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변 제 1회 마닐라 재즈페스티벌은 필리핀에 최신 멜로딕 재즈의 씨앗을 뿌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재즈 공연이 필리핀 재즈음악가들의 맥을 잇고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무용과 전통춤으로 균형 잡힌 무용계

필리핀 무용계의 보석 발레 필리핀은 1970년에 구성된 이래 2백 작품이 넘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고 1천 회가 넘는 공연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올해 26회 정기공연을 맞이하여 8월 26∼28일 동안 「레스 실피데스」, 「파우베스」, 「미디어」 등을 필리핀 문화센터 메인극장에서 공연했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눈길을 모은 작품은 그리스 비극자가가 유리피데스의 「미디어」이다. 콜치스 왕국의 황태자비인 미디어는 어느 날 제이슨이란 이름의 야망에 불타는 무사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제이슨의 야망을 이루는 일에 헌신한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제들을 죽이는 범죄도 그녀의 가슴에 꽂혀 있는 큐피드의 화살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할뿐이다. 결국 야망을 성취한 제이슨에게 배신당하고 추방을 선고받은 미디어는 질투와 좌절의 늪으로 빠져든다. 복수를 결심한 미디어는 제이슨의 신부를 죽이고 자신의 두 아들의 목숨을 거둔 후 지붕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미디어 역에는 아난 비라돌 리가 열연했다. 그녀는 슬픔과 좌절, 질투와 증오 등 다양한 영역의 감정표현을 훌륭히 소화해낸다는 전문가들의 평이다.

1957년 설립된 바야니한 필리핀 무용회사는 지방의 독특한 의식과 춤에 관련된 문화를 발굴 계승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루손 섬의 비기독교 부족들의 종교의식에 관련된 춤, 남부 모슬림 지역의 전통춤, 그리고 기독교도들의 결혼과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춤 등을 연구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 8월 19일과 20일 제37주기 기념공연으로 필리핀 남부 팔라완 섬 지방의 따그바 누아 의식 춤인 런세이 Runsay를 필리핀 문화센터에서 공연했다. 따그바 누아 의식은 일년에 한 번 행해지는 의식으로서 매해 마지막 보름날 후 3일째 되는 날 팔라완 섬 해변가에서 행해진다. 현란한 색조와 리듬으로 장면 장면을 채워 나가는 이 의식 춤은 바다의 여신에게 계속적인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엄숙한 내용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형식의 춤으로는 중국의 「유안샨」, 일본의 「오도리의 센슈」, 한국의 「부채춤」 등이 있다. 한편 필리핀 독립 100주년을 맞는 1998년 기념행사 공연을 위해 특별한 레퍼토리를 연구하고 준비중에 있다.

필리핀 연극계를 이끄는 땅할랑 필리피노

필리핀 연극계를 이끌고 있는 땅할랑 필리피노는 각종 극작에 관련된 세미나, 워크숍, 콘테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필리핀 연극문화 발전에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정기적인 공연으로는 매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6개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올해의 공연은 스페인 식민주의자에 의해 처형된 필리핀 국가 영웅 호세리잘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아버지들과 아들들」이라는 주제 하에 호세리잘의 작품을 중심으로 공연을 갖는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향한 끝없는 추구, 현재의 우리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애정과 갈등의 근원, 시대를 앞서간 분들의 고뇌를 현대의 국가의식과 단결로 승화시켜 새로운 시대의 새벽을 여는 주체의식의 도출을 이번 정기공연의 테마로 잡고 있다.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두 편의 호세리잘 작품이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졌다. 리잘의 불멸의 영혼이 19세기 필리핀의 낭만과 열정으로 무대 위에 되살아났다. 그는 작품을 통해 필리핀 국민에게 독립과 자유, 그리고 나라사랑에 대한 요구를 용기 있게 표현하고 있다. 땅할랑 필리피노는 이 두 작품의 일본 순회공연에 앞서 필리핀 관객에게 고별무대로 필리핀 문화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땅할랑 필리피노는 또 하나의 작품 「헤다 가블러」를 필리핀 문화센터 소극장에서 7월 28일부터 8월 20일까지 16회에 걸쳐 무대에 올렸다. 「헤다 가블러」는 헨릭 입센의 작품으로 한 여성의 파괴적인 열정을 묘사하고 있다.

평범한 집안의 딸인 헤다는 조지 테스만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이내 지루함과 농촌생활의 고립감에 자신의 존재의식을 잃고 마자, 결국 자신의 전 애인을 설득시켜 그들의 비뚤어진 삶의 현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동반자살을 한다.

소수민족 따우 바투 부족 사진 전시회

뮤세오 낭 깔리낭앙 필리피노(필리핀 예술박물관)는 필리핀 예술인들의 창조성과 미적 표현을 국민 문화의 시각에서 깊이 있게 조명하고 이해하는 장이다.

지난 7월 20일부터 필리핀 남부 조그만 섬 팔라완 지역의 소수민족 그룹 중의 하나인 따우 바투 부족의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전시와 더불어 프랑스 사진 작가 겸 소수민족 연구가인 카를로스 맥도날드 박사의 따우 바투부족의 문화와 생활에 대한 강의와 필름 상영이 7월 21일 필리핀 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있었다.

따우 바투 민족은 약 40가구 정도의 소그룹으로 계곡 깊숙한 곳에서 원시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사진작가 페리 데 발롬브르스의 작품과 카를로스 박사의 과학적인 지식이 경의와 비밀의 계곡 따우바투 부족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그들의 일상생활과 문화 그리고 신앙을 사진에 담고 있다. '바위 위의 사람들'이란 의미의 따우 바투인들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집에서 생활한다. 8월부터 11월까지 태풍 기간에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 가운데 있는 동굴로 들어가 천둥과 폭우를 피해 산다, 그곳은 새와 박쥐 등 사냥감을 제공하며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준다. 그들 역시 바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추수 후에는 그들 나름의 의식을 거행하고 공동의 문제에 대한 토론회도 갖는다.

따우 바투 부족은 두 가지 종류의 생활로 구분된다. 하나는 농부이고 다른 하나는 사냥꾼이다. 농부들은 산 속에서 식물과 각종 약초들을 채집하고 집 주위의 조그만 뜰에 채소를 심어 수확한다. 사냥꾼들은 입으로 부는 대나무 화살과 덫 등을 이용하여 많은 동물들을 사냥한다. 그들은 또한 새들이나 동물들의 소리를 흉내내어 유인하여 잡기도 한다.

따우 바투 민족들은 다른 팔라완 부족들처럼 다신 숭배 사상을 가지고 있다. 전통 의식으로는 병을 치료할 때 행하는 의식과 농사일에 관련된 의식이 있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은 자연에 있는 각종 물체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따우 바투 사회는 평등의 원칙이 지배적이며 지배권력이 없이 상하 질서나 법, 의무 등은 혈연과 나이에 근거하여 철저히 규정된다. 남녀간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할은 구분된다. 남자는 사냥을 하고 나무를 자르고 덩굴과 송진 등을 채집한다. 여자들은 들에 풀을 뽑고 이이들을 돌본다. 남녀는 서로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의 생활과 사상을 이해하고 더 이상 문명세계의 손길에 오염되기 전에 사진으로 담아두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문학워크숍과 페스티벌 등의 문화행사

필리핀 문학 관련 워크숍이 필리핀 문화센터 문학부의 주관으로 7월 28∼30일 동안 바탕가스의 이반에서 열렸다. 이 워크숍은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문학평가, 둘째 창조적 표현, 셋째 성( 性)의 감수성 등이다. 추구하는 목적은 문학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이끌어내고, 창조적인 표현을 시낭송, 문학 발표 등을 통해 신장시키며,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통적인 이야기나 시들을 자료화시키는 데 있다. 4일간의 행사기간 동안 각기 다른 그룹, 다른 계층의 사람들로 12명에서 15명의 참석자들에 의해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제2회 민다나오 페스티벌이 8월 21일부터 25일까지 일리간 시에서 열렸다. 민다나오 섬은 필리핀 군도 남부에 위치한 필리핀 제2의 섬으로 아직도 기독교도와 모슬림 사이에 종교적 정치적인 갈등이 존재하는 섬이다. 이 축제는 민다나오에 근거를 두고 있는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지역문화의 발달과 화합을 다지는 목적으로 5일간 성대하게 치루어졌다.

각종 연극 공연, 영화 상영, 전시회 등이 이어졌다. 이 행사는 국가문화예술위원회 연극예술분과와 필리핀 문화센터가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