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큰사전에서 컴퓨서적에 이르기까지
-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통해서 본 50년 출판의 역사
노정용 / 세계일보 문화부 기자
지난 광복 50년 동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많은 변천을 거듭 해왔다. 반세기에 걸친 우리 사회의 변화는 지성인 사회를 움직이는 출판계까지도 변화를 요구했고, 출판계는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발빠른 대응을 해온 게 사실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서 태어나지는 않는다. 저자는 물론이고 출판인과 독자, 그리고 사회적 상황과 조건이 한데 어우러져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난다. 이런 점에서 책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지나온 반세기의 한국 사회를 반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복 50년의 책 역사는 바로 '한국 사회사'의 축소판이다. 어떤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라 독자들의 행복한 사람을 받았는가 하면, 어떤 책은 출생신고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독자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광복 이후 반세기 동안 국내에서 출판된 도서 가운데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베스트셀러가 스테디셀러로 변한 것에 한함)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당대의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듯이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베스트셀러가 패스트셀러 Fastseller로 사라지거나 독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워스트세러 Worstseller인 경우도 많은 게 사실이다.
국내 최대의 서점인 교보문고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0년대까지는 소설이 스테디셀러를 주도했으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소설은 점차 퇴조하고 '경제경영'.'건강의학','컴퓨터' 등의 실용서가 초강세를 이루고 있다.
먼저 해방 후부터 50년대까지는 사전류와 문법책이 국내 출판 흐름을 좌지우지했다. 해방을 맞아 획득한 출판의 자유는 우리말을 표현수단으로 하면서 소설류보다는 사전과 문법책에 매달린 것이다. 최현배의「우리말본」(정음사긴)을 비롯해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큰사전」과 「조선어 표준말 모음」(정음사 간)이 나왔고, 백철의 「조선 신문학사조사」(백양당 간), 양주동의「고가연구」(박문출판사 간),「영어구문론」등의 문법책들이 소설에 비해 크게 히트했다.
특히 이 시기 작들의 문학작품 활동은 극히 저조, 이광수. 윤동주. 심훈. 모윤숙. 정비석씨가 베스트셀러 작가 군을 형성했다. 1954년 정비석씨의 「자유부인」(장음사 간)은 베스트셀러 소설로서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50년대 초의 극성스런 춤바람과 윤리도덕의 타락을 고발한 이 소설은 「서울신문」에 연재된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출간 하루만에 초판 3천 부가 매진됐다.「자유부인」은 또 곧바로 영화제작으로도 이어져 '베스트셀러=영화'라는 등식을 낳았다.
또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삼각관계를 다룬 소설 「청춘극장」(김래성 지음, 청운사 간)은 추리기법으로 쓰여진 최초의 소설로 북한 피난민들에게 인가가 높아 보름만에 2만 부가 팔렸다. 김용제의「김삿갓 방랑기」(문예서림 간)는 역사적 실제 인물을 재조명해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작가 김용제는 별명인 '친일 문인'에서 '김삿갓 전문가'가로 바뀌었다.
소설과는 달리 조병화의 「사랑이 가기 전에」(정음사 간)와 모윤숙의 「렌의 애가」(청구문화사 간). 최요안의 」마음의 샘터」(삼중당 간)는 시인 트로이카의 인기를 누린 시집들이다. 특히 시집「사랑이 가기 전에」는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라는 시구로 인해 1주일만에 10만 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저작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출판사 측에 출판중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4. 19와 5. 16군부 쿠테타로 얼룩진 60년대는 지난 50년대에 비해 독서분야가 크게 확대된 시기였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후 자유당 독재정권의 숱한 비리들을 모은「흑막」(신태양사 간)은 책이 나오기도 전에 신문에 예고광고를 내는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힘입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출간되자마자 단시일에 10만 부가 팔리는 호조를 보였으나, 출판사는 정치깡패들의 협박전화에 시달리는 등 베스트셀러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특히 60년대에는 국내 작가들 가운데 영원히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는 최인훈과 박경리의 작품이 선보였다. 최인훈은 1961년 「광장」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전해에 4.19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을 작품이다. 분단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한 지식인이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한다는 이 소설은 오늘날까지도 젊은 세대의 필독서로 손꼽히면서 분단 문학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 이어 출간된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유문화사 간)은 여성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90년대 들어 나남출판사에서 리바이벌돼 50만 부 이상이 판매됐다. 특히 30대 중반부터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발휘했던 작가는 대하소설 「토지」로 평론가들로부터 해방 후 최고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김형석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삼중당 간), 안병욱의 「사색인의 향연」(삼중당 간),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중앙출판공사 간)에 에세이집으로 독자들의 큰사랑을 받은 작품, 이 가운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60년대의 우울한 분위기와 어울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60년대 중반에는 박경리. 이문열등과 함께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이 출간됐다. 이때부터 외국문학 작품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번역문학이 호조를 보인 반면 출판계의 '암세포'로 불리는 중복 출판이 기승을 부리는 폐해를 낳기도 했다.
「데미안」에 이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70년대 벽두의 첫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이 주는 인생론적 분위기가 독자들에게 어필했고, 그 이후「자기 앞의 생」등 책제목 앞에 '생(生)'자가 붙는 번역소설들이 뒤이어 출간됐다. 또 장준하의 「돌베개」는 1971년 정치적 격변기를 눈앞에 두고 나와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70년대에는 또 '유선'이라는 암울한 정치적 상황이 도래했다. 독자들은 어두운 현실에서 자연히 한줄기의 '빛'을 찾기 위해 애썼고,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한 이른바 우화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비롯해 리처드 바크의 「조나단 갈매기」, 미카엘 엔데의 「모모」등 동화형식을 빌어 순수한 삶의 동경을 그린 소설들이 출판계를 풍미한 것이다.
반면 국내소설로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예문관 간)과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민음사 간)가 '호스티스 소설' 붐을 조성하며 크게 히트했다. 1974년에는 동명의 영화가 제작돼 독자들의 시선을 자극하면서 1975년 말까지 40만 부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잇단 소설과 영화의 히트로 당시 술집아가씨들은 모두 '경아'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뒤이어 한수산의 「부초」(민음사 간)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문학과지성사 간)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이나 도시빈민 등을 다룬 소설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가 확산됐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필독서'로서 6개월 동안 10만 부 이상이나 판매됐다.
70년대 중반에는 산사에서 수도만 하던 법정스님 「무소유 」를 발표 담백한 문체로 돌풍을 일으켰고 그의 인기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979년에는 두 개의 종교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였다.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이문열이 기독교를 소재로 한 「사람의 아들」(민음사 간)을, 김성동은 불교를 소재로 한 「만다라」(한국문학사 간)를 발표해 이번을 낳았다.
「사람의 아들」은 무거운 주제 때문에 상업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7개월 동안 10쇄를 찍으면서 이후 이문열 소설은 출간만 되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70년대의 마지막 한해는 소설 이외에도 이영희의 「우상과 이성」(한길사 간)과 송건호 외의 「해방 전후사의 인식」(한길사 간)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광주'로 상징되는 정치적 격변기를 맞은 80년대에는 출판계가 몸살을 앓은 시기였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념서적이 불티나게 팔렸고 출판사상 사회과학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현암사 간)과 이동철의 「꼬방동네 자식들」(현암사 간)은 당시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반영,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80년대는 또 처음으로 밀리언셀러가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나 황석영의「장길산」, 소설「영웅문」등이 가치혼란의 위기감을 영웅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에 편승해 크게 히트했다.
소설의 밀리언셀러 기록과 함께 시분야도 크게 성장한 시기가 80년대다. 사회과학서적과 소설의 좁은 틈을 비집고 이해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분도출판사 간)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실천문학 간)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고 서정윤의 「홀로서기」(청하 간)는 시집 사상 처음으로 1백만 부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밖에도 정비석의 「손자병법」(고려원 간)은 TV광고를 통해 출판광고의 신기원을 이루었고, 대재벌 총수인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영사 간)는 에세이로서 1백만 부를 넘어서는 신화와 함께 '세계화'라는 단어를 우리 시대의 화두로 만들었다.
이처럼 80년대가 사회과학서적, 소설, 시. 에세이에서 골고루 두각을 나타냈다면 90년대에는 '일본 때리기'도 서의 유행과 실용서의 강세로 특징지어 진다.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해냄 간)를 필두로 동경특파원을 지낸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지식공간소 간)가 이를 주도했다. 90년대는 또 소설 「동의보감」,소설「목민심서」,소설「토정비결」등 민족주의 색채의 소설들이 크게 유행했으며, 이와 함께 '소설'자가 붙는 책제목이 잇따라 선보였다.
90년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문학여행'을 주도하는 서적의 출판 붐. 문화여행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창작과 비평사 간)가 인문사회에서 는 보기 드물게 1백만 부위 대기록을 수립한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서점진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90년대는 시나 소설이 베스트셀러 분야의 쌍두마차에서 탈락하고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함께 불기 시작한 컴퓨터서적의 출판과 건강서적이 베스트셀러의 10위권을 장악한 것이 이채롭다.
지금까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중심으로 해방 후 50년간의 출판계를 둘러보았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대망의 21세기를 불과 5년 앞둔 이 시점에서 다음의 1세기는 어떤 도서가 국내 출판계를 이끌어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