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문화재 발굴과 보존

총체적 역량 결집 위해 힘 기울여야...

-문화재 발굴과 우리의 역량




김성범 / 문화재관리국 학예연구사

겨레의 얼, 세계의 자랑 경주를 고속철도로부터 지키자

부산에서 평양을 거쳐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까지 고속열차에 앉아서 그냥 갈 수 있다면…… 이는 전혀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다. 다만 민족의 비운인 국토분단 상태가 큰 벽일 뿐이다.

경주고속철도 경주 통과.

서울∼부산간 430.7㎞를 산 넘고 강 건너 시속 300㎞로 최고 4분마다 한 대씩 지나갈 수 있도록 계획된 경부고속철도가 고도(古都) 앞에서 주춤하고 있다는 게 요즈음의 언론보도이고, 18개에 이르는 범불교종단의 단체들은 '겨레의 얼, 세계의 자랑, 경주를 고속철도로부터 지키자'는 내용으로 마침내 백만인 서명운동에 몰입하였다는 게 엊그제의 뉴스이다.

원대한 포부를 가진 건설의 역군들에게 작은 벽 하나가 금년 들어 갑자기 생긴 셈이다.

일전 고속철도 경주 통과 문제와 관련한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대학 교수는 경주지역 '문화재 발굴'에는 약 30년 정도의 기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과장스런 엄포를 놓았고, 또 한 교수는 경주의 문화재 발굴은 솔직히 현재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여 충실한 발굴이 어려우므로 우리 후손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는 본질적이고 원론적인 고백을 고충스럽게 토로한 바 있다.

문화재 발굴, 여기서는 고고학적인 발굴 archaelogical excavation을 뜻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발굴(무형. 인간문화재의 발굴도 있으므로)의 실태를 간단히 설명하고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발굴 능력이 얼마 만큼인지를 가늠해 봄으로써 최근의 고속철도 경주노선에 관한 논의에 일조 하고자 한다.

주로 독일 학자들에 의해 신식학문인 고고학(발굴)을 전수 받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학자들이 국외에서의 발굴을 경험케 된 것은 합방전 1909년 어간의 조선에서였다. 제국주의의 문화적 침탈을 위한 첨병역할을 수행한 그들에 의해 '학문'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조선과 만주(고구려 옛 땅)에서의 발굴은 1944년까지 약 260건(조유전.「1945년 이전 유적조사년표」,「전국 문화유적 발굴조사년표」, 증보판 1, 문화재연구소, 1990. pp.153~191)에 달한다.

일본과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 우리의 발굴 현황

이는 그들 일인(日人) '학자들'에 의해 간단한 몇 줄 이상의 보고서라도 남아 있는 것을 대상으로 확인가능한 대로 모아 본 수치일 뿐이고, 그 외에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는 가야고분과 같은 유적을 비롯하여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유적이 일제(日帝)에 의해 도굴 당한 비참한 역사를 갖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광복 이후 문화재를 우리 손으로 지키려는 몇 뜻있는 학자들에 의해, 발굴에 관한 고등 기술·학문을 가진 일인 학자의 본국 송환을 막으면서까지 1946년 경주 노서동의 호우총과 은령총을 '합동발굴' 해야 하는 안타까운 고고학사를 또한 간직하게 되었다. 50∼60년대 준비기를 거쳐 70년대 이후 본격적인 발전기에 접어든 발굴은 1946년 이후 작년 말까지 뒤의 자료에서 보듯이 무려 1,357건에 달하게 되었고, 금년 9월까지의 통계를 합하면 1,462건, 올해 말이면 1,500건을 돌파 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인 성장에 걸맞게 경주의 천마총, 황남대총, 백제의 무녕왕릉 등 대형고분과 안압지, 전곡리 구석기 유적 등 학설사에 길이 남을 발굴에 따라 금관. 금동황로 등 값진 유물들이 출토되는 성과를 올렸다.

최근 3년간(1992∼1994) 통계로는 연간 발굴 100건에 발굴 비용 70억 원이 우리나라 발굴의 현황인 셈인데 이를 80여 개 기관의 약 3백여 명의 인원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1991년도 자료(일본 문화청 문화재보호부 기념물과. 「매장문화재 관계 통계자료」, 1992)에 의하면 연간 약 2만 6천 건의 발굴에 5천 여명의 전문인력과 930억 엔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어 우리의 현실과 비교할 때 엄청난 격차에 당혹스러울 뿐이다. 위에서 밝힌 80여 개 기관, 300여 명의 전문인력이라는 우리나라의 통계에 대해서마저도 매정한 이견을 내세우는 학자도 있다. 실제로 발굴할 조건을 갖춘 전문기관과 전문인력은 40여 개 기관의 50여 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부연한다면 문화재연구소나 국립박물관 등 국. 공립기관이 19개 기관에 100여 명, 대학박물관 51개 기관에 18명, 기타 사립미술관, 연구소 등 11개 기관에 20여 명, 그리고 작년과 올해에 걸쳐 뒤늦게나마 발족한 발굴전담 민간단체-(사)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과 (재)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굴조사실-에 약 40여 명 등 도합 80여 기관의 3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 기관중 대부분이 전시 및 행정 등 문화재 유관업무를 겸하고 있으며 자체 사정으로 인해 수년씩 발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기관이 수십 개소에 이르는 실정이고 보면 실제 발굴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과 인력은 통계적 수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발굴기관 없어 공장· 도로 적시건설 이뤄지지 못해 국가경쟁력 약화시킬 수도

이중 발굴전문 국가기관이랄 수 있는 문화재연구소는 장기 계획적인 대규모 발굴에 주로 치중하고, 국립박물관은 연차적인 학술발굴에 동원되고 있어 상당수의 발굴이 대학이나 기타 기관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다. 대체로 대학박물관의 경우 1년에 2건 이상의 발굴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인데, 현 실정은 1년에 1개 대학이 3∼4건, 심지어 5∼6건을 소화해내도 발굴 수요는 날로 늘어, 발굴할 기관이 없어서 공장과 도로 건설이 적시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 발굴이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유력한 한 일간지에서는 우리나라 발굴 능력의 한 단면을 진단하는 내용의 적절한 분석기사를 실었다. '문화재 발굴을 할 수 있는 전국 51개 대학박물관 가운데 33개 대학박물관의 관장이 고고학. 미술사학과는 거리가 먼 비전공자로 밝혀졌고, 이는 고속철도 건설 등 대규모 건설사업으로 문화재 발굴수요가 폭증, 대학박물관에 대한 발굴 의존도는 더욱 높아 가는 현 추세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내용이다.

현재 연간 발굴량의 60%이상을 담당해야 하는 대학박물관의 현실을 두고 볼 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발굴이 보다 학술적이고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당연한 과제 앞에서 매우 부끄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화재 발굴의 내실화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비전공 박물관장의 문제보다는, 전문지식을 기를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가 사학과·고고학과·인류학과·미술사학과 등 발굴 관련 학과 졸업생들에게 거의 마련되지 못하여 고학력 실업자 양성, 전문인력의 배양 불능이라는 사회·교육적인 측면에서의 비경제적·비효율성 문제가 더 해묵은 숙제이다.

필자와 연 전에 한 발굴 장에서 함께 일했던 '공루' - 0.2마력(?)의 힘과 기동성을 갖춘 중장비에 비유-라는 별명의 유능한 사학과 출신의 졸업생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발굴장 6년 생활을 청산하고 비디오카메라 촬영기사로 취직되었다며 명함을 건네주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오늘날 우리나라 '발굴계'의 현실과 역량을 웅변으로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드물게 배출되는 발굴 인력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려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전문기관의 확충이 시급한 실정이다.

전문인력 양성 및 여건이 불안정한 우리 '발굴계'

또한 최근 들어 부쩍 심화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은 발굴전문인력 양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대학시절, 야외나 유물정리실에서의 고된 실습과 훈련을 견디어낸 발굴의 예비전문가들을 맞아주는 곳은 오지에서의 풍찬 노숙과 불안정한 박봉의 생활이니 3D업종 중에서도 단연 수위인 것이며, 그나마 때로는 막노동자와 같은 힘든 일도 자주 해내야 하는 발굴이고 보면 유능한 병역필의 남학생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 '발굴자'에 의해서 행해지는 유적은 대체로 뒤의 표에서와 같이 여러 종류와 시대로 구분이 가능하거니와, 발굴이 매우 전문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구석기 유물 발굴의 예에서도 가능하다.

구석기 유적발굴의 경우 하루종일 파야 몇 센티미터밖에 발굴할 수 없는 상황에서 4미터 이상을 파 내려가야 끝이 보이고, 그 전 과정을 완전 기록화(사진·실측·측량 포함)하고 토양과 시료는 물론, 지질과 고환경 분석까지를 치밀하게 조사·연구해야 한다. 쉽게 말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두루 섭렵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친 학자들이 몇 개월의 시간을 단 몇십 평이라는 면적의 땅과 마주하여 얻어낸 결론이 일반인에겐 '몇 만년 전의 유적에서 나온 돌도끼'인 것이다.

토지나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유적 즉 매장문화재(고분·고인돌·사찰터……)는 원칙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가급적 원형으로 보존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재보호법'의 취지이고, 아파트를 짓거나 도로·철도를 건설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발굴을 인정(허가)하고 있는 게 현행 제도이다. 즉 건설에 따른 발굴은 유적과 유물을 공사전 파괴로부터 구제한다는 의미에서 '구제(적) 발굴'이라는 용어로 불리는데 이때의 발굴이란 곧 선조들의 남긴 우리의 공동재산인 유적의 멸실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원인행위 제공자 즉 건설 주체로 하여금 문화재 파괴에 따른 비용을 부담케 하고 있다.

발굴을 허가하는 또 하나의 예외는 학술적으로 꼭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이뤄지는 학술목적의 발굴이다. 1993년도말 부여의 한 논바닥에서 출토되었던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학술 발굴의 결과에서 얻어진 귀중한 사례로 들 수 있다. 학술 발굴의 경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또는 학술연구를 하려는 자가 발굴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익산의 미륵사지나 경주의 황룡사지와 같이 10년 이상의 진행 중에 있는 유적이 현재 국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발굴에 속한다.

대규모, 장기 발굴과 관련하여 일본의 경우 우리의 경주에 비견되는 고도(古都) 나라(奈良)에서는 평성궁지(平城宮址) 같은 유적의 발굴이 100년 예정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한데, 앞으로 경제적인 '우리의 역량' 이 배가되면 신라와 백제의 왕경유적에 대한 장기·종합적인 발굴이 지금보다도 더 치밀하게 진행될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

문화재는 공동자산, 함께 지켜야 한다는 의식 뿌리 내려야

문제는 현 상태에서 더 이상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파괴나 훼손이 없어야 후대에 있어서의 문화재 보존이나 문화재 발굴이 가능할 것일진대,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문화재가 공사도중 발견되면 발굴 비용을 부담하면서 발굴해야 하고, 그에 따라 공장건설도 지연되는 등 경제적 소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행법과 제도만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면 매장문화재 보존의 어려움은 단시일 내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개발과 건설을 하려는 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는 현행법과 제도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문화재는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이며 함께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내려야 할 것으로 본다.

법 자체로만 비교한다면 문화재 발굴에 관한 조항은 일본에 비해 우리가 훨씬 체계적이지만 그 운용 및 문화재 보존에 관한 결과는 국민의 의식수준과 직결되어 일본과 동등비교가 어렵다는 게 문화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식이며, (국토) 개발과 (문화재) 보존의 조화를 이루는 선진화 과정에서 본다면 한 세대 정도 늦은 속도로 가고 있는 게 오늘날 한국의 실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경주라는 단일문화재의 환경과 경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서두의 고속철도 이야기로 돌아가서, 일본의 경우 신칸센(新幹線) 건설시 노선 확정전 문화재에 대한 최대의 배려 결과, 노선 결정후 단 한번의 노선변경 예가 없었다는 사실은 고속철도 경주 문제가 논의되는 현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최근 한일합방에 대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비난하는 수위가 점차 높아가고 있지만, 60·70년대 개발 드라이브 정책의 지루한 터널을 지나오면서 우리 자신의 과거 부정적이고 반문화적인 역사인식 또한 상당 부분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경주노선문제' 에 관한 논란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주고속철도가 경주의 도심을 지나 남산 앞으로 통과하는 것으로, 그리고 정차장이 경주시내와 남산에서 훤히 보이는 곳에 설치된다고 가정할 때, 문화재 발굴에 30년이 아니라 3년이, 3개월이 걸린다 하더라도 '역사의 죄인이 되기 싫어서' 경주지역 발굴 자체를 거부하는 고고학 발굴전문가들의 동맹파업이 일어나지 않을까 매장문화재 발굴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고속철도와 관련하여 경주 지역에 묻혀 있을 많은 양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발굴이 과연 기한 내에 충실히 이뤄질 수 있는 가라는 물리적인 '역량'의 문제보다는 경주의 수많은 중요지정문화재와 몇백 점에 이르는 남산의 문화재 보존, 나아가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주'라는 단일문화재의 문화환경과 경관을 어떻게 하면 더 차원 높게 보전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의 총체적 '역량'을 결집하는데 힘을 다하여야 할 시점인 것이다.

만일 경주노선이 古都의 경관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결정된다면 올해의 고속철도 논의는 고려하여 결정된다면 올해의 고속철도 논의는 문화 선진화를 향한 과정에 있어서 뜻밖에 얻어버린 획기적인 수확으로 간주될 것이며, 문화민족으로서의 문화의식 수준 향상을 한 세대 정도 앞당기는데 절대적인 '역량'을 발휘한 촉매제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