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향연 속에 펼쳐진 문화예술 잔치
- 제주 한라문화제
허영선 / 제민일보 기자
'가을엔 제주를 찾으라' 10월 상달 제주 섬을 찾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행운이었다. 제주도의 짙푸른 바다와 깨끗한 하늘, 보라에서 은빛으로 가는 억새들의 파도물결 속에서 문화예술 잔치까지 흠뻑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느영나영 둥그데 당실 제주문화 큰잔치'를 주제로 내건 제34회 한라문화제가 10월 7일부터 15일까지 9일간의 일정으로 제주도내 일원에서 펼쳐졌다.
이 문화축제의 현장인 탑동 바닷가에는 행사 기간 내내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 모았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새롭게 탈바꿈한 이번 한라문화제는 지금까지 제주도 주관, 제주도교육청, 예총의 주최로 개최되었는데 민간으로 이양된 것이 특징이었다.
예총 제주도지회(지회장 오성찬)가 단독으로 주최, 민간시대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행사장 역시 그 동안 한라종합경기장 등 닫힌 공간에서 베풀던 축제에서 탑동 열린 공간으로 이동,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행사종목 및 참가단체 수도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나 90종목 2백46개 팀으로 참여도민 1만 3천여 명에 이른다. 학생민속예술한마당 거리축제 등에도 총 3천여 명의 학생이 출연했다. 이번 축제는 개막축제, 민속예술축제, 민속놀이축제, 제주말(사투리)축제, 제주마축제, 바다축제, 미술전, 문학의 밤, 전국민요경창대회, 장애인 바둑대회 등 생활문화축제, 억새꽃 큰잔치 등으로 나눠 열렸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은 7일 오후 2시 제주시 산천단에서 올린 한라산신제를 시작으로 출연팀 전원이 참가하는 길놀이축제, 농악공연, 민속시연, 축등축제, 뒷마당축제, 아. 태 섬의 민속축제 등으로 진행됐다.
7일 오후 8시부터 탑동 해변 공연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아·태섬의 민속축제'는 이국적 향취를 풍기며 가족동반으로 나온 시민들을 자리에서 뜨지 못하게 했다. 제주. 발리. 해남성을 연결하는 자리였다.
인도네시아 발리문화예술단 90명, 해남성 문화사절단 67명 등 1백57명은 제주도립민속예술단과 함께 섬축제를 벌였다.
'아·태섬축제'는 제주와 발리, 그리고 중국 해남성의 민속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의 공연으로 시작해 이 날밤 9시 15분부터 10시 15분까지 발리 민속예술단이 공연했고 9일 밤 9시부터 10시 30분까지는 중구 해남성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도립민속예술단은 제주의 무속을 춤으로 형상화한 「무속의 군무」와 장구춤, 물허벅춤, 그리고 제주의 걸궁과 한국 농악을 적절히 혼합해 제주 가락에 알맞게 소화시킨 「제주판굿」 등을 선보였다.
'발리 덴파샤예술단'은 1시간여 동안 발리의 민속음악과 악기, 각양각색의 춤사위와 화려한 의상으로 8천여 명의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또 이날 공연에서 정의와 불의가 싸우면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자탈춤을 연상시키는 무언극 「르와비네타」를 비롯, 발리음악을 잘 보여주는 시끄러우면서도 빠르게 조화되는 「자야세마라」를 공연했다.
창을 든 남자와 꽃을 뿌리는 여인들이 전통 민속춤 「펜갈사마」 등 1시간 여의 공연이 이색적이었다.
'해남성가무단'은 야자수의 고향을 상징하는 해남 풍경화를 무대로 전통의상과 악기, 전통 춤과 전통노래 등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날 공연의 말미를 장식한 「대나무춤」은 해남성의 특성을 살린 춤으로 길다란 대나무를 갖고 흥겨운 놀이형식으로 진행됐다.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음악제가 열렸다.
이번 한라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민속예술경연은 북제주군의 「서낭굿놀이」, 서귀포시의 「지장샘농요」, 제주시의 「입춘굿놀이」, 남제주군의 「정소암 화전놀이」가 출전했다.
개막식에 앞서 올해 전국민속경연에 제주 대표로 출전하는 서귀포시의 「하원마을 옥가리 초집짓는 소리」가 시연에 들어갔다. 우리 고유의 초가지붕을 이는 원형을 재현한 놀이다.
9일 북제주군 민속축제인 서낭신(도깨비)에 대한 기원과 신병이 걸린 잠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극화한 「서낭굿놀이」가 눈길을 끌었다.
이 놀이는 예전부터 바다를 중심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특히 김녕리에서는 연희 적인 것을 제외한 굿놀이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통 해녀들은 평상시 길일을 택해 바다에 나가 서낭신에게 정성을 드린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해녀들은 그들의 애환을 담은 해녀노래를 부르며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한다. 그러나 바다나 산 주변에 노는 서낭신에게 대접을 소홀히 한 잠수는 서낭신의 노여움을 받고 그 잠수검에 찔려 동료해녀 및 사공에 의지 뭍으로 들어오고 본격적 굿이 시연된다.
이 놀이는 이번 한라문화제 민속놀이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걸궁은 북군 조천읍 걸궁팀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학생부인 고산상고팀은 목동법성이 용왕의 흉내를 내어 큰 물난리로부터 주민들을 구하고 뱀신을 만들어 마을 수호신으로 모신다는 내용의 「수월법성놀이」를 연희했다.
대정여고는 제주도 무속의례로 굿인 동시에 연희인 신과 인간이 서로 교접하는 접점으로 속세에서 신과 대화를 기도하는 행위를 전개하는 「영감놀이」를 펼쳤다.
중문상고의 「무오법정 항쟁운동」과 제주동여중 학생들은 민속가장행렬로 「의롭고 자애로운 김만덕 할머니」를 연출해냈다.
중앙여고 학생들의 연물놀이, 조천국교생들의 농악놀이와 중문중. 한림여중의 민속가장행렬, 한수풀 영등굿놀이 등도 눈길을 끈 내용들이었다.
이번 한라문화제를 통해 이러한 학생 팀들이 우리 토속적인 민속에 가까이 다가서는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학생들 특유의 역동성과 발랄함으로 우리 민속을 재해석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우리 것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 것의 맥을 잇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한편 제주도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걸궁의 시·군 경연은 관중들을 함께 들썩이게 했다. 연희 자와 구경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한마당을 벌이는 마을 화합의 축제를 펼친 조천읍 부녀회 걸궁팀이 흥겨운 가락을 연출해 관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날 저녁 8시 해변공연장에서는 칠머리당굿 기능보유자인 김윤수씨와 보존회원들이 큰굿의 재차인 초감제를 치른 후 남군 일대의 연희굿놀이인 「아기나청 상마을」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무용협회 제주지부는 제주 여인들의 강인한 삶과 애환을 그린 삼다의 정경을 선보였다. 또 「오고무」, 「한량무」 등을 시연해 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9일 오후 9시 40분부터는 제주시의 「입춘굿놀이」전야제 행사가 벌어졌다.
다음날 탑동에서 선보일 공연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마련한 것. 「입춘굿놀이」는 입춘날 제주목 관아에서 관민이 합동으로 벌이던 풍농굿이며 가면극이고 걸궁이다. 이 놀이는 민속놀이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남제주군 민속축제의 「정소암화선놀이」는 서읍리 정의마을에서 정의현감이 육방관속과 한량관기를 거느리고 정소암이란 곳에서 매년 3월 행해졌던 민속놀이.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화전을 부치며 관민의 화합과 대동단결을 꾀했던 것이다.
이동감옥에 실린 죄수와 칼춤을 추는 사령이 등장 눈길을 끌었다.
농악놀이를 펼친 대정읍 노인회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차고 신명나는 농악을 선사했다.
남제주군의 「정소암 화전놀이」, 서귀포시의 「지장샘농요」는 장려상을 받았다. 걸궁 부문에서는 서귀포시와 성산 농협이 우수, 제주시 농협 표선농협팀이 장려상을 수상했다.
거리축제는 일반부에서 서귀포시가 학생팀중 중앙여고가 우수상을 받았다.
또 한라문화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주말 경연대회.
한글날을 겸해 열린 이번 대회에는 초. 중. 고 9개 팀과 일반팀 4개 팀 등 모두 13개 팀이 출연, 열띤 경연을 벌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주로 제주의 전설과 환경 캠페인을 내용으로 한 제주말이 등장했다.
서귀포항에서는 잠수경연과 풍어제 등 바다축제도 벌어졌다.
제주시향과 시립합창단은 해변공연장에서 음악제를 열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밤 8시부터 해변공연장에서는 해변예술축제로 한라윈드앙상블과 재일대한부인회 오사카지방본부 어머니 합창단의 연주회가 열렸다.
대정여고생들이 선뵌 향토민속놀이 「영감놀이」도 색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번 한라문화제는 시·군 새마을부녀회와 청년회 등에서 마련한 향토음식축제는 먹거리로 많은 인파를 이뤘다. 그러나 음식값이 턱없이 비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찾기에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악인들의 관악축제 퍼레이드. 대중가수들의 연예제와 좋은 영화감상회, 만무방, 문학의 밤도 조촐하게 펼쳐졌다.
제주경마장에서는 조랑말경마대회, 마상마술재현, 조랑말 재마경주 등 제주 조랑말들의 축제가 경마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 제12회 전국민요경창대회도 이번 축제기간 중에 벌어져 민요한마당을 연출했다. 학생부 12팀, 일반부 30개 팀 등 전국 민요애창자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는 경기도 부천시의 이명희씨(26)가 대상을 차지해 문화체육부장관상과 2백만 원 상당의 부상을 받았다.
이 대회 최우수상은 일반부에서 경기 대표로 출전, 방아타령을 부른 이지영, 김창숙, 강미경, 강현주, 민경옥씨가 받았다.
학생부에서 「망건 짜는 소리」를 부른 태흥교 양인애 어린이 등 5명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 김판철(전주대사습보존회 이사장·전 국악협회장)은 "이번 대회는 제주의 토속민요에 연희를 곁들인 제주의 어린 학생들의 무대가 특히 감명 깊었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6시 제주 억새꽃 큰잔치 전야제가 열렸다. 14∼15일 이틀간 이시돌목장 억새들녘에서 축하 쇼, 제주굿놀이, 노래자랑, 가족 그림대회 등이 열렸다.
제주도는 10월이면 가을 들녘의 파도처럼 서걱이는 억새의 장관이 보인다.
이 억새를 느낄 수 있는 잔치가 제주도관광협회 주최로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서부 산업도로변에 자리한 이시돌목장 등에서 '제주억새꽃 큰잔치'가 펼쳐졌다. 이곳 5만여 평의 목장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릴 만하게 억새와 어우러진 둥근 오름들이 봉긋봉긋 솟아 있어 해질녘이면 더욱 장대한 풍경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
길가와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이 억새의 물결이 누구든 이곳에서 계절의 비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억새꽃 잔치의 전야제는 건입동 걸궁팀의 걸궁공연과 칠머리 당굿보존회의 길트기를 시작으로 한라윈드앙상블의 공연, 요들 및 컨트리뮤직 공연 등의 순으로 시작됐다.
한라윈드앙상블은 이날 공연에서 '억세 바람의 향연'이라는 주제 아래 「다이애나」 등 12곡을 연주했다. 국내 요들회 및 이탁호와 마운틴 컨트리 뮤직팀이 출연한 요들 및 컨트리뮤직 공연에서는 무대 주변에서 불꽃 점화놀이가 곁들여졌다.
요들 및 컨트리뮤직은 도내에서 처음 선보인 점에서 청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 도 문예회관 전시실에서는 도내 서예가 10여 명이 참여, 즉석에서 12폭 병풍을 만드는 퍼포먼스가 행해졌다.
14일 오후 개막식에서는 제주굿놀이, 노래자랑대회, 억새꽃 가족 그림 그리기 대회, 국악한마당 등이 열렸다.
쟁반 들고 달리기, 축구공드리볼, 장애물 넘기 등의 억새 4종 경기도 흥을 돋구었다.
이번 한라문화제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져 축제 분위기가 고조됐고 시·군 축제의 날을 만들어 마을 축제의 활성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야간축제가 활성화됐고 민간 주도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했다. 오성찬 지회 장은 "시민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면에서는 성공했지만 관중들이 행사내용의 질과 야외여서 날씨 변화 등에 상당히 민감한 것을 느꼈다"며 "앞으로 이 부문에서 향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행사장이 협소해 민속예술경연을 하는데 연출에 따른 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최측인 예총이 집행을 하는데 있어 인력 부족으로 관중들의 질서의식을 정립하는데 역부족이었다.
앞으로 한라문화제가 도민축제로 더욱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지원과 문화예술단체를 끌어 모으고 예술인들이 하나가 돼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라 하겠다.
또한 탑동광장이 아직까지는 도민들의 여가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나 곧 상가들이 들어설 부지가 많아 가능하면 문화예술 공간으로 한몫을 할 수 있도록 제주시가 이곳의 부지를 매입하는 방향 등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