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1995년도 문화예술 결산 및 새해 전망. 연극

성숙과 전문화의 시대적 요청 받고 있는 연극계




이강렬 / 연극평론가

세계 연극계의 주공연장으로 변모할 의왕시

1995년 한해의 연극계는 외형적으로는 떠들썩한 해였다. 신년 벽두부터 시작된 연극협회의 상연되고 있는 몇몇 상업극에 대한 공연중지 가두 캠페인이다. 그중 연극 「미란다」는 연출자가 형법의 잣대에 의해 유죄로 인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위 동숭동의 상업연극 바람은 이전에 「미란다」, 「마지막 시도」외에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겠지만 상당수에 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극단 상업주의가 만든 「포르노도 좋아하세요」는 한국연극협회에서 '관람위원회'까지 만들어 연극이라 볼 수 없다라는 공연에 대한 소견서를 만들고 공연중지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결국 극장 앞에서 공연중지를 요구하는 가두 캠페인까지 벌이기도 했다.

설령 문제된 공연이 저질의 내용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극인 개인의 양식적 문제지 협회라는 기구가 마치 특정한 밀(?)을 지닌 기구인 양 행세한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모든 게 성숙되지 못한 과도적 모습을 띤 연극계에서의 이런 작태는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내버려두었어도 관객에 의해 저절로 정화되고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우울한 면도 있었지만 국제극예술협회 ITI세계총회 회장에 연출가인 김정옥이 선출된 반가운 소식도 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선출된 이번 계기를 통해 한국연극을 세계에 알리고 세계연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이는 자극이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데 주목되어진다. 이를 계기로 1997년에는 세계공연예술제 Theatre of Nations를 경기도 의왕시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고 총회도 있을 예정이어서 기대된다.

의왕시는 세계연극제에 참가할 세계연극인들의 축제 무대가 될 청계산 아래 백운호수 주변에 1997년까지 390억 원을 들여 문화예술회관과 야외극장의 축제문화길, 전통마을, 풍물거리 들을 집중 조성할 계획이다. 축제문화길에는 3천 석 규모의 야외대극장과 2백 석 규모의 소극장, 맛의 거리, 전통마을, 풍물거리, 세계의 정원 등이 조성되고 백운호수 주변 자연공원에는 2만 9천 평의 야영장과 잔디광장, 자연학습장, 전시장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1997년 완공될 1천 5백 석 규모의 문예회관은 대극장과 소극장 야외극장을 갖추고 세계연극제 주공연장으로 이용될 계획이다.

그리고 제2회 베세토 Beseto 연극제가 11월 3일부터 21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열리고 있다. 글로브극장과 쇼게츠 홀에서 공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복근 작·한태숙 연출의 「덕혜옹주」가 참가했다.

세계의 명작가 시리즈를 비롯한 기획공연들

이러한 내외적 행사를 떠나 공연 작품으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기획 공연으로 눈길을 끌었다. 큰 기획으로는 예술의 전당에서 만든 '세계의 명작가 시리즈―셰익스피어편'이다.

한양레퍼터리 극단의 「한여름 밤의 꿈」과 76극단의 「미친 리어」, 그리고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우리의 현실에 맞게 윤색되어 독특한 볼거리와 재미를 안겨주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한국적 소재로 윤색하여 대중적 기호에 맞게 다양한 기법을 차용한 점이나 무대전환의 독특함 등으로 인해 연출자 오태석의 예술적 감각이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이런 복고적 기획 바람은 이어 극단 청우의 조광화 작 김광보 연출의 「오필리어」의 공연이나 국립극장에서 상연중인 「리처드 3세」로 어느 해보다도 셰익스피어 작품만은 풍성한 무대였다.

그러나 이런 대형무대에서 느끼는 공통적 느낌은 기획에 비해 무대형상화에서 드러나는 예술성 부족의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편으로 소극자장 연극의 기획으로 연우무대의 '한국 현대연극의 재발견Ⅲ'을 꼽을 수 있다. 조현 작·정한룡 연출의 「의자 연석회의」, 김희창 작·정한룡 연출 「멍추 같은 영감」, 그리고 박조열 작·윤영선 연출의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였는데 연우무대답게 내실 있고 의미 있는 무대로 소극장 연극의 특성과 역사인식을 확대시키는데 기여했다.

3편의 단막극, 즉 40년대와 50년대 그리고 60년대를 말하는 극으로 중심을 삼은 '역사의 가슴을 여는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들은 연설과 슬라이드 그리고 짧은 극으로 우리에게 자칫 잊고 사는 문제들은 일깨워 준다.

말 그대로 빛을 되찾았지만 외세에 의해 일제의 청산은커녕 면죄부를 얻은 친일 세력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냉전과 씻어내지 못한 역사의 잔재의 영향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난다. 결국 강대국들의 놀이판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다시금 통일이라는 화두만 남게 된 오늘 우리의 현대사를 이 작은 극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 편의 단막극과 서두로 제시되는 연설, 슬라이드와 짧은 극은 순서에 따라 역사의 한순간에서 멀어진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하게 치장된 상업극의 범람하는 한 귀퉁이에서 이런 연극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채롭다.

반면에 1991년 연극의 해부터 문예진흥원의 지원에 의해 연극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사랑의 연극잔치'는 외형적 풍요 속에서도 몇 개 극단의 티켓 독점 구입 등의 잡음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치답게 대학로를 비롯하여 서울 전역에 공연되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참가하고 있었기에 양적인 증가와 함께 관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데 자찬할 정도이다.

서울연극제를 비롯한 이채로운 공연들

연극계의 가장 큰 행사로는 제19회 서울연극제를 꼽을 수 있다.

8편의 공식참가 공연과 7개의 공식 초청공연, 그리고 12편의 자유참가 공연으로 나뉘어진 27편의 공연들로 관객들에게는 선택의 폭을 한층 넓게 부여한 축제적 성격이 보인 것이 특징이었다.

연극제 출품작들은 소재에서나 무대화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선보인 게 특색이었다. 특히 영상세대들의 감각에 어울리게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이랄 수 있는 박준용 작·최용훈 연출의 「九데TA」, 최인석 작·연출의 「사상 최대의 패션쇼」, 그리고 대상을 받은 장정일·김아라 작·김아라 연출의 「이디푸스와의 여행」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제 공연작품들에게서 느끼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미지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한국 연극계의 고질적인 상상력과 예술성의 빈곤에서 비롯되어진다. 그러나 이강백 작 「영월행 일기」는 이번 연극제에서 좋은 희곡을 하나 건진 결실이었다.

전체적으로 평균작에도 미치지 못한 느낌이 들게 되는 공식 참가작들에 대한 인상은 공식 초청공연의 상대적 영향으로도 보인다. 특히 이청준 작 김명곤 연출의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연일 관객들의 장사진을 이뤄 다른 공연장에 비해 시설이 좋은 공연장인 문예회관에서의 공식 참가공연에의 썰렁한 객석과는 대조적으로 관객들의 호응이 컸다. 그밖에 김경화 작·정동숙 연출의 「산 너머 개똥아」도 좋은 호응을 얻었으며 양희경의 모노드라마 「늙은 창녀의 노래」역시 연일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룬 무대였다.

올해 모 기업에서 지원되어 처음으로 시상하게 된 공식 초청공연에게 수여하는 현대연극상이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 선정된 것이나 연출상, 연기상(권병길)까지 수상한 것이 특히 이채로웠다.

한편으로 극단 유의 창단공연으로 선보인 이윤택 작·연출의 「문제적 인간 연산」은 역사적 인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고, 여러 무대언어로 형상화하여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물론 그의 연극이 형상화적 측면에서 일본의 70년대 실험연극의 기수인 테라 야마 슈지 아류의 연극 붐을 타고 탄생된 잡다한 형식의 모방―거칠고 난자하며 자극적이고 원시적 에너지의 발산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것들과의 유사성도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어떻든 이 작품에서는 연산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해체하며 정상인과 광기, 이승과 저승, 장엄과 속됨의 이율성을 연출자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한국적 정서로 무대화를 이룩해 낸 성과로 보여진다. 다만 전체적으로 이 극이 연산이란 인물의 구체성의 미약과 사유를 촉발하는 연극적 감동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유명배우의 인기가 큰몫한 호응 높았던 대다수 작품들

올해는 특히 정동극장을 비롯하여 정보소극장 그리고 두레소극장 등의 극장의 확대도 연극의 외형적 풍요에 한몫을 차지했다. 어려운 연극환경에 극장의 설립은 매우 큰 경제적 어려움을 낳게 하기에 자칫 연극의 상업화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뮤지컬은 말할 것도 없고 관객의 호응이 높았던 대다수의 작품들은 대체로 소위 유명배우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연극제에서 장진 작 박원경 연출의 「서툰 사람들」에서의 송채환, 공식초청작 작품상을 받은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의 김명곤, 「바람 분다 문 열어라」의 김갑수, 「늙은 창녀의 노래」의 양희경 등이 그 예이다.

오죽했으면 올해 서울연극제의 포스터에도 선정적인 상반신 벗은 어느 여배우의 모습으로 치장되었을까.

연극의 상업화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오늘날 극예술의 실세는 극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그리고 비디오, 이들 모두는 연극에서 비롯되었지만, '복제'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어느 정도 표현의 무한한 자유 아래 대량생산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비는 연극에 비해 천문학적 액수이지만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소비자의 측면에서는 매우 싸고 쉽게 감상할 기회를 갖게 한다. 이러한 예술생산 구조적 관점에서 연극은 영화나 방송을 따라갈 수 없다.

공연예술로서의 연극이 영화나 방송극을 누를 수 있는 힘은 바로 극장이라는 특이한 체험 속에서 살아 있는 배우와 함께 예술적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뿐이다. 연극의 상업화는 바로 이 점에서 숙제를 풀어야 한다.

올해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모두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이 컸던 것이다. 선정적인 포스터와 「열려라 방」, 「부킹」, 「누드모델」, 「마구간」등 자극적인 연극 제목으로 관객을 호도하기에는 연극계는 외화내빈의 침체 속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해까지 관객 모으기에 큰 역할을 했던 뮤지컬이 올해 들어 작품으로나 흥행면에서 시들해진 것도 원인이다. 「인터내셔널 에어포트」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그렇다.

뮤지컬은 많은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한국연극처럼 직업극단으로 내세울 만한 단체가 별반 없는 것도 요인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현대연극에서 우리가 심혈을 기울이고 전문성을 되살려내야 하는 한 분야이다. 뮤지컬만큼 공연예술이 상업적으로 대우받는 분야도 없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한국에서는 황금시장으로 인식시킬 만한 일로 방송사인 SBS에서 주최한 「코러스 라인」의 성공이나 세계적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 재벌기업인 쌍방울 계열의 EX에서 10주에 무려 32억 원을 요구하여 결정되었으나 공연장 및 부수적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된 경험도 있었다.

이같은 외국 공연단체의 초고액 시대는 지난여름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공연되었던 어린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가 약 5억에 달하는 액수로 국내 공연된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참여로 성사되는 외국단체의 내한 공연은 소득수준과 문화욕구가 높아진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의 관람기회를 부여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반면에 이같은 초청공연 투자액의 일부분만이라도 한국의 연극에 투자할 자세만 되어 있다면 한국 뮤지컬의 장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보여진다. 왜냐면 고액 외국단체들의 대거 진출은 높은 비용이 높은 입장료로 전가되어 문화상품의 내용보다는 비싼 가격과 명성 자체를 즐기는 '거품 문화관객'을 낳기 쉽다. 일시적 관람 붐이 조성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연극계의 자생력과 기량을 키우는 데는 더 큰 문제를 심어줄 수 있다.

장기적으로 외국과의 공동투자 들을 통해 기술을 이전 받고 전문력을 키우는데 더 큰 안목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내년에는 서울시립극단이 창설될 모양이다.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에 시립극단을 창단하고 하반기에 첫 공연을 열기로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립극단의 창설은 연극계의 오랜 숙원 중의 하나였다. 지난 1992년 시립극단 창단이 추진되다가 1993년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오랜 숙원이던 서울시립극단 창설 위한 준비작업들

시는 올해 말부터 연극계의 의견 수렴과 관련법규 검토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내년 시립극단 창단과 1997년 세계공연예술제 등으로 이어지는 연극계는 점차 성숙과 전문화의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일각의 구태의연한 구습에 얽매여 발전의 전기에 주저앉고 마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한편으로 극단이나 연극인 자신들이 예술가적 자존을 지켜 명료한 성격과 다양성의 인정 등 횡적 확대에 노력해야 한다. 예술가와 교육자와의 구분이나 전통극과 실험극 그리고 청소년·아동극까지 모두 특정한 단체나 실리에 의해 해체가 조각이 되는 종적 예술 행위가 아니라 서로간의 정보교류나 전문성을 되살리려는 재교육 등의 방법으로 횡적으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공연예술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공연예술이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방자치제라는 제도적 민주화의 문화방향이기도 하며 예술 향수자들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같은 특정한 행사 위주의 외형적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무대보다는 극장에서만이 체험 가능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데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대중매체의 홍수 속에서 연극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며 한국 연극은 결국 이러한 방향으로 정리되며, 전개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