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문학의 해.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

인간과 세계의 총체적 이해를 위해…




김용직 / 서울대 교수

7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의 상황 여건 크게 바뀌어

70년대 이후 우리는 산업사회의 길을 걷게 되었고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거쳤다. 이것은 우리 문학의 상황 여건이 크게 바뀌어졌음을 뜻한다. 8·15를 맞이했을 때 우리 문단의 인구는 그 총수가 150여 명 안팎이었다(1947년도 발간 예술신문사 문예연감에 의거). 그런데 오늘 우리 문단의 인구는 중견 이상의 시인, 작가만을 손꼽아도 3천여 명에 달한다. 더욱 충격적인 현상은 작품활동의 실제를 통해 나타난다. 50년대 이르기까지 우리 문단에서 시집은 거의 상품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일류 시인의 시집이라도 두어 판을 찍으면 발행성적이 상당히 우수한 경우였다. 그것이 70년대에 접어든 후 크게 바뀌었다. 이 무렵부터 여러 시인의 시집이 몇만 부씩 발행된 것이다.

수필과 소설 분야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사태가 나타났다. 60년대 이후 에세이는 빠른 보폭으로 문학시장을 휩쓸고 들었다. 이 무렵 어느 비평가 출신의 에세이스트는 예리한 시각에 신선한 말솜씨를 날로 한 글들을 써서 출간시킨 책마다 단숨에 10여 판씩을 찍는 기적을 연출했다.

팽창계수로 보면 소설 분야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우리 문학의 오늘이다. 근대문학기에 접어든 후 우리 문단에서 장편은 대개 200자 원고지 500장 이상 분량의 것을 뜻했다. 그런데 일제 36년 동안 그런 이름에 값하는 작품은 2~30편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 작품이 두 권 이상의 부피로 출간된 예는 더욱 드물다. 이런 사정은 70년대 이후의 우리 문단에서 뿌리째 뒤바뀌었다. 지금 우리 작단에는 박경리, 홍성원, 황석영, 조정래, 이문열 등 한 작품을 다섯 권, 여섯 권 이상의 부피로 엮어낸 작가들이 1백 명을 넘는다. 이들의 시장 점유율 역시 엄청나다. 이들, 대하소설의 작가들 대부분이 한해에 수만 부의 작품집을 판매해냈다. 어느 의미에서 우리 문학은 지금 대팽창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될 정도이다.

그 동안 우리 문학의 상황, 여건은 줄곧 좋지 못한 편이었다. 8·15 이후 우리는 곧 격심한 이데올로기의 물결에 시달렸다. 이어 6·25 동란을 거치면서 우리는 매우 혹독한 정신과 물질의 동토지대에 내동댕이쳐졌다.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경제원칙, 성장제일주의의 논리에 지배되어 왔다. 거기에서 문학은 고작해야 문화적 장식품으로 셈쳐졌을 뿐이다. 많은 시인·작가들에게는 집필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5.16 이후 우리 사회는 거듭,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쪽은 우리 시인·작가를 제도권속으로 이끌어들이고자 했다. 그리고 반체제 운동을 벌이는 쪽에서도 비슷한 입장이 취해졌다. 그들은 그들 자체의 목적과 의도, 전략에 따라 가능한한 많은 시인·작가를 그들 편에 포섭시키고자 했다. 대부분의 경우의 시인·작가들은 정치·사회활동의 문외한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정치세력의 유혹과 작용 역시 바람직한 사태가 아니었다.

이런 여건을 감안하면 오늘 우리 문학의 활기찬 모습은 그대로 우리 모두의 보람이다. 일단 우리는 이런 추세가 성공적으로 확충 전개되기를 바란다.

문학의 이름 팔고 이루어진 상업행위들

대비약, 팽창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 문학과 문단에는 물론 자랑이나 보람만이 지배하고 있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 주변에는 문학, 예술의 진실을 얼마간의 은전에 팔아 넘기려는 듯한 사례도 있다. 구체적으로 일부 문학인들 가운데는 시장상인과 결탁하여 독자들의 저미한 기호에 영합하는 직품은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는 경영·판매자의 홍보·광고 전략에 따라 스타덤에 오르기도 한다. 분명히 문학 소비자임에 틀림이 없는 작품의 독자들은 이런 상품 조작의 메커니즘에 따라 그렇지도 못한 시인이나 소설가의 작품을 명품· 걸작으로 믿고 거기에 빠져든다. 그리하여 상당 부분의 우리 주변 정서가 무기력해지거나 퇴보·소아마비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런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면 이미 60년대에 마르쿠제가 한 현대사회 비평론이 떠오른다. 그에 따르면 그 이전 우리를 지배해 온 경제원칙은 소비자가 생산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생산, 자본가란 넓은 의미에서 재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재화는 많은 상품을 기능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와 아울러 그들은 최대한 효과적으로 소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는 길이 마르쿠제 이전에는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소비자의 기호, 취향, 이익세계를 잘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를 통해서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최대 요건인 대량소비·대량생산의 차질없는 실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마르쿠제는 60년대에 접어들자 이런 자본주의 문화론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는 앞으로 사회에서 소비를 지배하는 것이 상품일 수 없다고 단정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산이 소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한 보기로 젊은 여성들 사이에 퍼진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우리 사회에 청바지가 수입되었을 때 그것은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시민의 복식으로 상당한 반감을 샀다. 그러나 그 무렵 극장가를 휩쓴 미국 영화가 그런 우리 사회의 통념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어 안방극장으로 자리잡은 텔레비전이 가세했다. 흑백시대 때부터 우리 나라의 텔레비전은 방영 프로 속에 미국 것을 상당히 많이 포함시켰다. 그런데 거기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이 대개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 같은 청바지라도 우리나라 회사에서 만든 것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무렵 우리 제조업계는 아직도 노동집약형 상품 제작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 기능공들의 솜씨는 아주 훌륭했다. 그들은 적은 보수를 받고도 그나마 얻은 직장에 만족해서 정성들여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 공장에서 만든 청바지가 미국의 대단위 공장에서 만든 것보다 월등 질이 좋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아가씨들이 국산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원산지가 미국인 것만을 그것도 우리 것보다 몇 배씩 더 비싼 값을 주고 사서 입었다. 이것이 생산의 소비 종속화 현상의 가장 단적인 예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베스트셀러 만들어내기에는 분명히 이런 소비자 종속원리가 작용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곧 우리 문학이나 문학의 전면적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대범하게 셈쳐도 문학과 청바지는 한번 입고 버리면 그만인 옷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은 그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학 가운데도 명작·거편에 값하는 시와 소설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해, 수용하는 독자에게 끊임없는 정신의 자극 계열이 되어 준다. 그것은 또한 시공을 초월한다. 유학의 경전, 불교와 기독교의 교리서, 당시의 한 부분, 이백과 두보의 작품, 단테와 셰익스피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와 희곡, 소설들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널리 읽히며 몇백 년, 천여 년의 시간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명백해진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는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문학의 이름을 팔고 이루어진 저질 상업행위다. 뜻있는 시인·작가가 그런 일에 신경을 쓸 것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곳 밧줄에서 떨어지는 곡마단의 곡예사 신세가 될 것이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감각 내지 의식의 편향성

오늘의 우리 문학을 진단하는 자리에서 또 하나 감안되어야 할 것이 그 감각 내지 의식의 편향성이다. 오늘과 같은 우리 문학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전에 한국문단의 정신 경향은 다분히 반정치, 순수문학 쪽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상당한 사정이 개재한 터였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 체제의 어두운 갱도를 빠져 나왔을 때 우리 사회는 미국과 소련의 군정 아래 놓였다. 일제의 식민지적 질곡을 벗어나는 것이 곧 완전환 해방, 자주독립의 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 민족에게 이것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8·15를 맞았을 때 우리 문단 인구의 9할 이상이 서울이 자리한 남쪽에 있었다. 남달리 시대 상황에 대한 감정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시인·작가들이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제를 대신해서 남쪽에 진주한 미군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런 문학인들의 기분과 감정을 카프 출신인 임화, 김남천 등이 재빨리 포착, 이용하려 들었다. 그리하여 일제 잔재의 소탕, 진정한 민족문학 건설, 무산대중과 인민에 봉사하는 문학활동을 표방하는 문학가동맹이 조직·가동되었다.

그 초기에 문학가동맹은 전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안회남, 오장환 등의 다수 순수문학자들이 그에 참여했다. 그러나 1946년2월에 이루어진 전국문학자대회 이후 문학가동맹은 곧 그 속셈을 드러냈다. 그 조직활동의 배후에 도사린 것은 박헌영을 정점으로 한 재건파 공산당이었다. 임화, 김남천 등은 문학가동맹의 일체 행동을 그들의 전위부대 형태로 몰고 갔다. 그들의 이른바 비평들은 입을 모아 계급사관에 입각한 문학을 주장했다. 동맹의 전위작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군정 반대를 외치는가 하면 인민정권의 쟁취를 역설했다. 그것은 카프식 이데올로기의 독무대였지 문학이 아니었다. 이에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 박종화, 김광섭, 김동리,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두진, 조연현 등의 우파 문인들이다. 이들은 문학가동맹의 정치사상, 문학의 일방적 포기가 사무치게 싫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정치적인 발언에서는 민족을 내세웠지만 작품활동의 실제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순수문학의 입장을 취했다.

50년대를 거쳐 6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은 대체로 이들 우파, 민족진영의 행동논리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물론 문제가 도사렸다. 우선 문학가동맹식 문학의 이데올로기 시녀화(侍女化) 노선이 부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문학, 특히 근대 이후의 문학이 인간의 편에 서야 하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었다.

문학이 인간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과 역사를 외면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 청년문학가협회와 그 후 신인 한국문인협회는 대체로 그런 일을 기피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한 반발은 60년대 중반기에 나타난 신세대 작가들에 의해 매우 격렬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시도되었다. 특히 70년대초부터 세력화된 일부 진보적 시인, 작가와 비평가들의 이에 대한 시도는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들은 대담하게 문협식(文協式) 순수한 문학, 곧 우리문학의 정통문학식 도식을 비판, 공격했다. 그들의 따르면 민족의 주체는 서민, 대중들이다. 그들의 고민, 방황, 아픔과 생활을 담지 않는 문학은 모름지기 극복되어야 했다.

이후 우리 문단에 등장·활약한 상당수의 신인들은 또한 문학을 체제 비판의 방편으로도 사용했다. 이 유형에 속한 시인과 작가들의 다수 작품에서 정치 권력의 모순이 파헤쳐지고 그비리가 폭로되었다. 강대국들에 의한 군소 민족, 국가들 농락도 대담하게 제재로 쓰여졌다. 70년대 이후 가속화된 우리 문학의 이런 단면에는 명백히 그 의의가 인정되어야 한다.

다시 되풀이되지만 문협 정통파가 지향한 정치기피주의 문학은 너무 단선적인 것이었다. 그런 문학으로는 우리 자신의 피와 땀이 배어 있고 머리와 가슴이 트일 명편, 대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 극복의 시도라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우리 문단의 일각을 차지한 반체제, 서민대중의 편에 선 문학도들의 활동 의의가 인정된다. 그러나 이들의 창작태도에 난점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들 진보적 문학도들은 제도권이 지닌 비리 척결, 그 모순의 지적과 비판, 공격에 너무 치우쳐 왔다. 정치적 상황은 얼마든지 변한다. 실제 우리 정치 여건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현저하게 바뀌었다. 그 결과 진보적 문학도들의 최대 창작근거가 된 제도적 비리, 모순이 차례로 개선되는 중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이들 작가는 그 활동 근거가 박탈되고 존재의의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편협한 줄세우기는 지양되어야

또 하나 이들 문학도에게 보내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올바른 문학활동을 한다는 것이 서민의 무조건 옹호와 등식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서민과 그 생활은 어느 의미로 이야기되는 문학의 한 감(素材)일 뿐이다. 그것을 재조직, 집약하여 새로운 구조, 형태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그것이 문학이며 예술, 작품일 수 있다. 그 사이의 사정이 이처럼 명백하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주변의 일부 문학도들은 서민대중 무조건 옹호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문학의 일각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도 극복되어야 한다. 새삼스레 밝힐 것도 없이 문학의 힘은 그 개방적이며 포괄적인 데서 빚어진다. 그렇다면 진보를 표방한 문학도들의 단선적인 행동양태 역시 당연히 극복되어야 한다. 그들의 역사와 현실을 파헤치려는 용기는 이미 우리가 인정한 터이다. 그렇다면 그 기세를 몰아 문학의 본령인 인간과 세계의 총체적 이해, 부각을 위한 시도도 가져야 할 것이 아닌지. 오늘의 우리 문학을 위해 편협한 줄 세우기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문학의 당면 과제는 위대한 문학을 만들어내는 일이며 그를 위한 풍토조성이다. 문학의 해에 우리가 바라는 일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