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이 알리는 필리핀 문화예술 축제
김동엽 / 필리핀대학
■ 폭죽의 절정으로 시작되는 새해
흰눈 위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산타클로스의 그림이 추운 계절에 사는 국민들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보편적인 상징이다. 털모자에 벙어리장갑을 낀 어린아이, 코트깃을 세우고 두 손에 곱게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든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한해를 보내는 풍경이다.
더운 나라 필리핀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이색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아시아 제일의 가톨릭 국가로 자부하는 나라답게 크리스마스 시즌은 일찍이도 찾아온다. 11월이 되면 거리와 집안에 트리며 각종 장식이 시작된다. 어디를 가나 캐롤송이 끊이질 않는다. 지루하던 장마철도 이즈음에 끝나고 건기가 시작된다. 각종 야외행사들이 연말 분위기를 들뜨게 만든다. 각급 학교며 관공서 그리고 일부 기업들은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긴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긴다.
연말의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폭죽이다. 12월이 되면서부터 아이들의 폭죽놀이는 시작된다. 골목마다 화약 터지는 소리는 길가는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폭죽놀이의 절정은 12월 31일 해가 바뀌는 순간이다. 거의 모든 가정이 화약이며 폭죽을 준비하여 이때에 터뜨린다. 온 도시가 안개가 낀 것처럼 화약연기로 자욱하게 변한다. 일부 어린아이들은 빈깡통에 동전을 넣고 흔들어 소리를 내고, 자전거며 오토바이 뒤에 빈깡통 등을 달고 달리며 소리를 낸다. 소리를 많이 크게 만들수록 새해에는 더 큰 복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집안 여기저기에는 둥근 모양의 물건을 매달아둔다. 이는 돈을 상징하며 새해에는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는 기원이다.
이처럼 시끄러운 연말이 지나고 나면 병원은 화약사고로 인한 환자들로 북적댄다. 매년 거듭되는 이 진통은 많은 사상자와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를 남긴다. 지난 연말에도 화약사고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766명이 다치는 결과를 낳았다. 필리핀 정부는 법으로 화약이나 폭죽의 제조·판매·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또다른 사고의 원인은 총기소지가 가능한 현실에서 폭죽 대신 실탄을 담은 총을 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폭죽 대신 나팔의 사용을 권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 덕분인지 해마다 피해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필리핀의 새해 아침은 웨딩마치와 함께 밝아온다. 필리핀에서 1월은 결혼의 달이다. 연중 가장 많은 쌍이 이달에 결혼식을 올린다. 필리핀 국민이 1월을 결혼의 가장 좋은 달로 여기는 이유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믿음에서 유래한다. 즉 행운과 번성, 그리고 행복은 언제나 새로운 것과 연관해서 생각한다. 새로운 달, 새로운 집, 새로운 옷, 새해 등이 복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또다른 이유는 필리핀인들에게 1월은 추운 계절이다. 추운 날씨는 결혼생활의 결손을 더욱 긴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 이색적인 캠퍼스 풍경
해마다 12월 중순경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기 전날, 필리핀 대학에서는 재등행렬이 행해진다. 스페인 식민지 당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재등행렬의 뿌리는 어두운 밤길을 밝히며 성당의 미사에 참가한 데서 유래한다. 1922년 이래 매년 열리고 있는 이 행사는 해마다 그 주제가 바뀐다. 등의 모양을 만들고 길놀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그해의 주제에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해의 주제는 '학교와 국가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단함'이었다.
매년 심사를 통해 상이 수여되는데 평가 기준은 가장 상징적인 등, 가장 창조적인 등, 가장 감동적인 프로그램, 가장 볼만한 구경거리 등이다. 각 단과대학, 행정기관들, 서클들, 기숙사들, 심지어는 학교내에서 형성되어 있는 판자집 주민들도 이 행사에 참가한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규모도 가지각색이다. 손전등만한 것에서부터 트럭으로 운반되는 거대한 것도 있다. 2주간의 방학의 시작과 크리스마스 시즌의 들뜬 마음은 이 행사를 축제 분위기로 몰아간다.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파티며 행사는 이날 밤이 절정이다. 이후 대부분의 학생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기 위해 학교를 떠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이색적인 행사는 '봉헌달리기'이다. 희귀한 이름의 이 달리기는 1977년 이래 매년 12월 16일경 필리핀 대학에 있는 알파 필 오메가라는 이름의 서클 Fraternity 회원들에 의해 행해진다. 이는 필리핀 대학 입구에 벌거벗은 채로 두 손을 벌려 자신을 바치는 봉헌 동상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건장한 남자 7∼8명 정도가 얼굴과 머리만 가리고 벌거벗은 채로 학교에서 가장 붐비는 통로를 뛰어다니는 것이다. 이 행사는 해를 거듭하고 각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학교 학생 이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행사가 되었다.
이 행사의 시작은 1977년 이 서클의 회원중의 한 명이 한 연극을 홍보하기 위해 옷을 벗고 건물 통로를 뛰어다닌 데서 유래한다. 그 연극은 서클에서 지원하는 것이었고, 연극을 기획한 롤리 아바드라는 회원은 연극이 공연되기 얼마 전 어떤 싸움에 휩쓸려 죽음을 당했다. 그후 이 서클은 형제 롤리 아바드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로 매년 같은 날 이 행사를 갖기로 결정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 행사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국립대학의 학생으로서 봉헌의 정신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즉 국가에 젊음을 바친다는 의미이다. 매년 이 행사가 치루어질 때는 근간에 이슈가 되는 문제를 피켓으로 만들어 들고 다니며 홍보한다.
이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은 서클 회원중 스스로의 지원에 의해 선택된다. 모든 지원자가 다 선택되는 것은 아니고 얼굴 가리개의 수와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인원 등을 고려하여 참가자 수를 정한다. 또한 통념과는 달리 신입회원에게는 참가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이행사가 신입회원들에 대한 통과의례라는 오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공식적으로 이들을 제외한 것이다.
행사 참가자는 엄격하게 규칙을 지켜야한다. 여성 구경꾼들에게는 신체 접촉이 허락되지 않으며, 각자는 장미 한 송이씩을 여성 관객에게 전달한다. 꽃을 던지거나 떨어 뜨려서는 안된다. 선택된 여성이 기꺼이 꽃을 받으면 머리에 쓴 두건을 벗을 수 있으나 아직까지 아무도 얼굴을 드러내 보일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 검은 예수상 행렬
필리핀의 가장 기초적인 행정구역 단위는 '바랑가이' 이다. 이 바랑가이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소단위 지역구로 그 결속력이 대단하다. 거의 모든 바랑가이는 그들 나름대로 지켜져 온 축제가 있다. 이를 보통 '바랑가이 피에스타'라고 부른다. 보통 이 축제는 며칠간에 걸쳐 이루어지며 마을마다 전통으로 내려오는 특별한 행사들이 있다. 마을은 각종 장식물로 치장되며, 마을 주민들은 전통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전통춤을 춘다. 이는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흔히 주민 장기자랑대회, 미인선발대회, 풍성한 음식과 술, 그리고 춤이 있는 파티가 이 피에스타의 주요 레퍼토리이다.
지난 1월 9일 있었던 퀴아포 피에스타는 세간의 염려와 관심을 끌었던 축제였다. 행정구역상 마닐라에 속해 있는 퀴아포는 스페인 식민지 당시 건축된 수백년된 유서깊은 가톨릭 성당이 있는가 하면 모슬림들의 성전인 모스크와 모슬림 슬럼가가 공존하고 있다. 가톨릭 국민들의 편견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 모슬림 지역은 각종 마약과 무기 거래, 매춘 등 불법 행위가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퀴아포 피에스타의 행사 중 그 절정은 검은 예수상의 행렬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는 이 행렬은 폭력으로 얼룩진 예가 많았다. 특히 근간에 마닐라 시장의 모슬림 슬럼가 정리 계획은 두 종교 신자들 간의 갈등의 불씨로 존재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축제 행렬은 특별한 사고없이 평화스럽게 끝이 났다. 검은 예수상은 유서깊은 퀴아포 성당을 출발하여 시내를 행진한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관광객 등 수천 명이 모여든다. 이들은 가능한한 행렬에 가까이 접근하여 손수건이나 타올, 셔츠 등을 검은 예수상에 접촉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검은 예수상이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관심을 끄는 전시회들
● 미술전시회
필리핀의 국보급 화가 빅토리오 에다데스의 타계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에다데스의 작품과 13인의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필리핀 문화센터 주 전시관에서 1995년 12월 14일부터 1996년 3월 10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에다데스와 13인의 모더니즘 작가'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필리핀 모더니즘 예술의 개척자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기획되었고, 젊은 필리핀 화가들이 새로운 예술관념 속에서 자신들 나름의 개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1920년대부터 1950년대의 필리핀 시각예술의 역사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개인 소장품이나 각종 단체들로부터 모아진 것으로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필리핀 미술의 초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몇몇 작품들은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라 많은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13인 모더니즘 작가들은 에다데스 생시 그에 의해 열거된 강한 모더니스트의 성향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다. 에다데스는 대학시절 건축학을 전공했고 미국에 유학하여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28년 당시 많은 논쟁을 일으켰던 모더니즘 성향의 작품 개인 전시회를 필리핀 콜롬비아 클럽에서 가졌다. 1930년에 산토 토마스대학에 건축학과를 신설하고, 그후 건축예술대학 학장으로 재직했다. 1964년 마닐리데이 상을 수상했고 1976년에는 시각예술 부문에 국가 예술인으로 지명되었다.
● 영화의 탄생
영화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필리핀 주재 영국문화원 주최로 1995년 12월 15일부터 1996년 1월 15일까지 필리핀 문화센터 전시관에서 열렸다.
'영화의 탄생'이란 주제의 이 전시회는 영화의 발달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결코 발명되지 않았고, 오랜 기간 동안 조각조각을 짜맞추는 퍼즐과 같이 변형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 전시회에서는 그 조각들이 어떻게 짜맞추어졌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다.
영화의 핵심요소인 영상기술의 발전이 그 첫번째 조각이다. 고대시대 불빛에 반사된 손그림자에서부터 출발하여 램프와 렌즈를 이용하여 스크린에 그림을 영사하는 마술랜턴 기술은 17세기 중엽에서야 발명되었다. 이 기본적인 기술원리가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듬어지면서 현대에 이르고 있다.
두번째 조각의 그림을 움직이게 하는 작업이다. 활동사진의 원리는 '시각의 지속'으로 알려진 생리학적 현상을 개발함으로써 발전의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이 원리의 시작은 가장 기본적인 실험에서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불빛을 원형을 그리며 돌렸을 때 하나의 완성된 원으로 보이는 현상에서 그 원리가 발견되었다.
세번째로는 상(像)의 포착이다. 영화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인 사진기술은 1839년부터 실용화되었고 그 이전에는 그림이 이를 대신하였다.
결국 영화 기술발달의 궁극적인 문제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종합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1895년은 활동사진 영사기술의 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해였다. 유료관객에게 공연된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영화는 1895년 11월 1일 베를린에서 스클라다노브 형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전시회는 각 시대별로 영화 발달에 관련된 발명가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