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국민의 '삶의 질'과 문화복지

21세기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문화복지 비전




김순규 / 문화체육부 문화정책국장

■ 문화복지를 개막하는 해

문화체육부는 지난 2월 15일 세계화추진위원회를 통하여 '삶과 질' 세계화를 위한 문화복지 기본구상을 발표하였다. 이 구상은 정부가 앞으로 추진할 문화복지의 기본방향을 밝힌 것으로 '문화복지'가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등장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기본구상에서 문화체육부는 진정한 의미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금년을 '문화복지를 개막하는 해'로 설정하고 21세기 문화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할 것을 밝혔다.

필자는 문화체육부의 '문화복지 기본구상'을 기획한 실무책임자로서 이번 구상의 내용과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 '삶의 질' 향상과 문화복지

1) 문화복지는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다. 근년에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의 논의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는 국민소득의 상승과 함께 나타나는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작년 말을 시점으로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불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런 추세라면 21세기가 열리는 2001년경에는 2만 불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민소득의 상승은 당연히 국민들의 생활패턴과 의식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 의·식·주와 같은 1차적인 욕구에서 문화, 건강, 여가와 같은 정신적·문화적 욕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소득증대로 인하여 늘어나는 여가시간과 함께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2) 이와 같이 급격히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질'은 무엇일까? 과거 국민소득이 낮았던 시대에는 의·식·주와 같은 1차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1만 불 시대에는 의·식·주만으로는 절대로 '삶의 질'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국민소득이 다소 높아진다고 해서 경제적·물질적 욕구나 사회복지가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보다 질 높은 사회복지도 동시에 요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동안 경제우선주의에 치중해 온 폐단을 생각해 본다면 정신적·문화적 욕구에 대한 보다 혁신적인 배려가 요망되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21세기에는 국민소득과 여가시간 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는 관계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의 질'이 절실하게 요망되고 있고, 이는 현재 선진형 사회가 갖추고 있는 문화생활, 체육생활, 여가생활의 기반을 우리도 하루빨리 갖추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3) 금년부터 정부는 종전의 사회복지 중심의 국민복지 구조에 문화복지를 추가하여 우리나라만이 갖는 독특한 형태의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복지라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복지를 연상을 정도로 사회복지 중심의 복지 체제를 갖추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거의 완벽하다는 서구사회조차도 근년에 들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사회복지는 완벽할수록 사회 각 계층간의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건전한 노동의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정신적·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복지는 보람있고 여유있는 삶을 보장하기 때문에 많아서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없고, 사회복지와 조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활력소를 공급하는 생산적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정부는 금년에 처음으로 국민복지의 틀 속에 사회복지와 문화복지를 함께 수용하는 특이한 한국형 복지국가 모형을 시도하였으며 앞으로 21세기의 국민복지정책은 이런 모형이 더욱 발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 문화복지 기본구상에서 고려된 기준

이번 정부의 문화복지 기본구상에서는 '문화복지'라는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실질적인 미래형 문화복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종전의 문화정책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였다.

1) 기본이념 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문화복지의 목표로 삼고, 구체적으로 각 분야별로 문화 및 청소년 분야에서는 '선진형 문화생활', 체육 분야에서는 '건강한 생활', 그리고 여가 및 관광 분야에서는 '쾌적한 여가생활'을 실천이념으로 정하였다.

2) 문화복지의 주체는 문화의 향유자인 개인과 가정을 전제로 하였다.

문화라는 현상에 있어서도 생산자 층과 소비자층이 있다. 과거 우리의 문화정책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소비자층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고 생산자인 문화예술인이나 소수의 문화애호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80년대 이후로 문화향수를 확대하기 위한 각종 시책을 펼쳐온 것은 사실이나 부족한 여건으로 인해 대도시 중심의 문화시설이나 문화활동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문화복지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문화향수자인 개인과 가정이 주체가 되어 이들이 과연 얼마나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가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종전의 문화정책에서 중시되어온 정부나 문화생산자층 중심의 계획에서 벗어나 문화복지 주체인 각 개인 또는 가정이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을 영위하느냐 하는 것이 문화복지의 초점이 되었다.

3) 지역 개념인 생활권 역을 기초로 하였다.

문화복지의 주체를 개인과 가정으로 할 때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 주민 각자가 자기 생활 주변에서 가까이 그리고 쉽게 이용하거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역성 개념이다. 이를 위해 문화복지의 기본구상에서는 1일 생활권인 시·군·구를 기초생활권역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거의 모든 문화시설 지원과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이 지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종전의 문화정책에서 주로 전국을 대상으로 하드웨어의 배치와 소프트웨어의 보급을 기획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를 위해 기초생활권역인 각 시·군·구별로 과연 그 지역의 주민들이 구역 안에서 얼마나 문화적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있는가를 비교하는 '문화복지지수(文化福祉指數)'가 도입되었다. 예를 들어 인구 15만 명의 서울 목동 지구에 살고 있는 주민과 인구 4, 50만 명의 베드 타운인 일산이나 분당과 같은 신도시의 주민들이 누리는 문화적 혜택을 객관적 기준에 의해 비교하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자신이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이나 교통거리가 수시간씩 걸리는 지역에 아무리 훌륭한 문화시설 자원이 있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지 않은 청소년이나 가정주부 또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문화복지 혜택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21세기를 불과 수년 앞두고 세워진 신도시가 영화관조차 하나 없는 삭막한 주택형 도시를 형성한 것을 개탄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자동차로 몇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각종 문화시설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겠지만 주민들의 문화복지적 차원에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그런 시설자원이 없다면 '문화복지지수'는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4) 문화복지의 대상은 단순한 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체육부의 업무 영역인 문화·체육·관광 및 청소년 분야를 망라하였다.

이는 넓은 의미의 '문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각 업무 영역과 관련하여 문화 분야에서 '문화적 삶', 생활체육에서 '건강한 삶', 그리고 관광 분야에서 '쾌적한 여가'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것은 말하자면 종전의 문화정책에서 그 대상을 단순히 문화예술활동에 국한한 것을 '넓은 의미의 문화'로 넓힘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5) 문화복지의 실현 수단은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각종 시설자원(하드웨어)의 확충과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각 지역별로 문화복지를 실현하는데 있어 하드웨어의 확충에 비중을 둘 것인지 아니면 소프트웨어에 둘 것인지는 매우 심각한 논쟁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이미 많은 문화체육시설이 지어졌고 기존 시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터에 하드웨어에 치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복지 시책에 있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의 구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어렵다고 생각된다. 문화복지시설로서의 하드웨어는 단순히 하드웨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담기 위한 그릇이다. 우리 나라의 문화시설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수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구미와 같은 선진국의 각 지방 도시가 갖추고 있는 문화시설과 비교해 볼 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쉬운 예로, 선진국의 웬만한 시골도시라도 도심의 지역문화센터, 공공도서관, 공연장과 같은 문화시설이나 수영장, 조깅로, 공공체육관과 같은 생활체육시설, 그리고 캠핑장, 휴식공원과 같은 주민들을 위한 여가 및 휴식시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대도시에 문화체육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각 지역에는 실질적으로 주민들의 문화복지를 위한 시설자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응이 전혀 없다면 우리의 국민소득이 2만 불대에 도달하는 21세기에도 선진형 문화생활이나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논의하기에는 요원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문화복지 정책도 역시 복지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문화적인 서비스라 할 수 있고, 이런 시각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개인적으로는 건립하기 어려운 시설자원을 연차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 체육, 여가 및 청소년에 관한 시설 자원은 문화복지를 위한 '사회간접자본'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여 계속 확충해 나가야 할 의무가 강조되었다.

■ 문화복지 기본구상의 주요 내용

1. 선진형 문화생활의 확산

국민소득 수준에 상응하는 '문화적인 삶'을 실현하며 사회병리현상을 문화적으로 치유하는 예방적 문화복지를 추구하기 위해 선진형 문화생활을 문화 분야의 목표로 정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먼저 국민들이 생활주변에서 손쉽게 문화예술에 접할 수 있는 기본적 문화시설의 확충에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한 문화시설로는 마을 단위(읍·면·동)에 작은 도서관, 영상 및 음악감상실 기능을 구비한 '문화의 집'과 기초생활권역인 시·군·구 단위에 공공도서관, 복합공연장, 전시관, 그리고 광역생활권역인 광역시·도 단위로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종합문예회관, 대중공연장 건립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이러한 문화시설의 연차적 확충과 병행하여 전국민의 문화향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지역별 문화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전국 문화기관의 경영개선과 프로그램의 네트워크 운영을 기하고 PC통신, 인터넷 등 미디어를 이용한 문화전달 체계를 확립하며 순회 프로그램의 확대나 가족이 함께 하는 문화활동도 촉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문화복지의 기본적 이념을 살려 문화소외층이나 소외지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였다. 이를 위해 점자 도서관 건립이나 문화, 체육 시설에 장애인 주차시설과 전용관람석 설치 등 장애인을 위한 문화복지 시책을 추진하며, 농어촌, 벽지, 폐광지역 등에 찾아가는 문화 프로그램을 확산하는 계획과 공단 및 근로자를 위한 문화프로그램 지원도 고려되었다.

2. 건강한 체육생활 보장

문화복지의 두 번째 목표로는 건강한 생활의 보장이다. 이것은 체육 분야에서 문화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의 생활체육을 지역별 특성에 따라 연차적으로 확충하고 다양한 체육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선 체육시설을 살펴보면, 마을 단위로 간이농구장,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수영장, 간이운동장 등의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초생활권역인 시·군·구별로는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 생활체육시설인 공립체육관, 공공운동장, 그리고 종합체육시설인 '생활체육공원'과 농어촌 주민을 위한 '농어민 문화체육센터'의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체육의 범국민적 확산을 위해 지역별로 스포츠 교실, 스포츠 동호인 클럽, 생활체육 지도자 양성을 통하여 국민들의 체육활동 참여율을 선진 수준(60퍼센트)으로 제고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3. 쾌적한 여가생활 보장

이는 여가 및 관광 분야에서 문화복지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여가시간이 많아지고 여행이나 관광을 통한 여가이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선진형 휴식공간을 지역별로 조성할 방침이며, 구체적으로는 해변, 산간, 호수 등지에 가족 단위로 휴식, 관광, 스포츠, 수련을 겸할 수 있는 '가족 휴양촌'을 조성하고 생활권역 단위로 시민공원, 자연휴양림 등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한편 이미 추진하고 있는 관광개발계획과 관련하여 전국의 관광자원을 5대권, 24개 관광권으로 구분 개발하며, '관광정보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안내 체계를 개선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복지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

21세기에 한국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복지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법적·제도적 정비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재정적 뒷받침이다. 아무리 좋은 구상도 재정적 뒷받침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우선 현재 전체 예산 중에서 0.5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문화부문 예산을 1퍼센트로 조기에 달성할 방침이다. 그리고 각 지역 문화복지를 추진할 주체인 각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도 광역자치단체 2퍼센트(현재 1.77퍼센트), 기초자치단체 3퍼센트(현재 2.11퍼센트) 수준으로 확대 유도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외에 기업체 등 민간 차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민간의 문화시설 건립 및 문화활동에 대한 기부에 대해 세제 혜택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규 예산외에 별도로 '문화복지기금'을 설치하여 각 지역의 문화복지 시설자원의 확충과 관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21세기 문화복지의 전망

21세기에 한국인들의 '삶의 질'은 어떤 모습일까? 이것은 21세기 문화복지의 전망과 대답이 일치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문화복지의 구상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문화, 체육, 여가 면에서 보다 수준 높은 선진형의 '삶의 질'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구상이 없거나 있더라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실현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에는 경제적으로는 국민소득 2만 불, 3만 불에 도달했더라도 '삶의 질' 의 측면에서는 후진성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입은 많더라도 여가시간에 갈 만한 곳, 쉴 만한 곳, 그리고 정신적 휴식과 위안을 받을 곳이 없는 삭막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터전을 보다 안락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복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며, 이런 점에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문화복지의 기본구상은 21세기 한국인의 '삶의 질'을 위한 청사진이 될 것이다.

참고로 지난 문화복지 기본구상에서 제시되었던 21세기 문화복지의 미래 모습을 도면으로 살펴보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