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삶의 질을 높이는 참여형 문화복지
이수명 / 문화체육부 문화정책과 사무관
■ 문화복지의 필요성과 참여형 문화복지
우리 나라는 현재 전국민 의료보험, 각종 연금제도 등을 포함하는 사회보험제도 및 생활보호사업 등의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 증대, 의료서비스 확충, 주거환경의 개선 등 인간의 물질적, 경제적 욕구 충족을 복지의 전부로 생각했던 기존 복지제도는 현재 그 탄생처인 서구 각국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구미 각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기존 사회복지제도 시행결과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삶의 질' 향상에 있어 경제적 복지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신적 복지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2월 15일 발표한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기본구상'에서 정신적 복지를 충족시키는 제도적 장치로서 문화복지에 대해 사회복지와 거의 대등한 비율로 언급하고 있다.
문화복지의 필요성은 앞에서 언급한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 외에도 국민소득 증대로 인한 국민욕구의 변화, 국민생활 패턴의 변화, 고도산업화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제문제 등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위의 기본구상에서는 문화복지에 대해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국민들의 문화적 생활, 건강한 생활, 쾌적한 여가 생활을 실현하는 제반 공공서비스'라는 정의 아래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위 문화복지의 정의 위에 '참여형 문화 복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즉 제반 공공서비스라는 정부→민간차원의 복지뿐만 아니라 민간, 국민 스스로 일깨워내는 문화복지의 한 형태인 '참여형 문화복지'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참여형 문화복지의 한 형태로서 문화봉사활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오늘의 논의에서 봉사활동의 범위는 체육, 관광 부문을 제외한 문화예술 분야로 한정하기로 한다. 체육, 관광 부문의 경우는 문화예술 봉사활동의 적용방식을 그대로 준용하여 봉사활동에 접근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 문화 봉사활동
1. 21세기와 자원봉사활동
자원봉사 Volunteer Service란 '자발적인 이타심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워 지속적으로 보수 없이 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미 전세계에는 2억 5천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환경을 돌보고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자신들의 재능과 시간을 바치고 있다.
자원봉사에 대해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는 제4의 물결로서 자원봉사의 사회적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럭커 교수는 '21세기에 자원봉사는 최고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인류의 미래활동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은 특히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아닌 민간 부문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하에서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자원봉사활동은 '제3섹터'라고 불리우며 생활 속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선진국의 예를 들어볼 경우, 미국은 전 인구의 21퍼센트, 네덜란드 18퍼센트, 프랑스 10퍼센트, 싱가포르 10퍼센트, 일본 9퍼센트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규모의 자원봉사단체가 조직·정비되어 있다. 그리고 국가적인 제도의 뒷받침까지 받아가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2. 한국의 자원봉사활동
1993년의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현재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15세 이상의 성인남녀의 4.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선진국의 1/2에서 1/5에 불과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한 '자원봉사' 캠페인을 시작으로 하여 각계각층이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봉사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대학의 경우, 한양대, 동덕여대 등 전국 10여 개 대학이 자원봉사 과목을 신설하였으며 한양대가 '사회봉사활동 특별전형제'를 발표하였으며 1996년 이후 중·고생의 종합생활기록부에 사회봉사활동란이 신설되었다.
기업에 있어서는 삼성·현대 등 대기업들이 봉사단을 창단하거나 신입사원 채용 및 인사에 자원봉사 경력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발표하였으며, 정부 각 부처에서도 공무원 채용에 자원봉사 경력을 반영하는 것을 포함한 공무원의 사회봉사활동 활성화조치를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민간사회단체들이 환경보호, 소년소녀 가장돕기, 선거감시 등 각종 봉사활동을 조직적으로 펼치고 있다.
3. 문화봉사활동
문화예술 자원봉사활동이란 쉽게 말하자면 '사회구성원과 자신의 문화복지 증진을 위한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보수 없는 활동'이 될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좀더 쉽게, 좀더 많은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자원봉사활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 모두에게 활성화된다는 것은 '삶의 질' 증진에 기본 토대가 된다.
문화예술 자원봉사활동을 통해서 기존 사회봉사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개인 및 사회적 효과 외에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문화예술인 공연 등의 봉사활동을 통한 문화예술향수 기회의 확산이다. 문화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산간벽지나 장애인 등을 찾아가는 공연활동과 생활주변에서 전시, 그림 배우기, 노래 배우기 등의 활동을 펼침으로써, 문화 소외지역과 계층 및 일반주민이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질 수 있다.
둘째, 문화예술 접속기회의 확대를 통한 문화예술의 생활화이다. 문화는 마약과 비슷하다. 문화예술을 접해본 사람들은 점점 문화예술 향유를 즐기게 되지만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 접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 기관, 문화유적지 등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는 사회봉사 외에 활동과정에서 친숙하지 못했던 문화예술과 접촉기회를 가짐으로써 문화예술을 생활화할 수 있을 것이다.
4. 문화 봉사활동의 구분
1) 활동내용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인의 공연 등 봉사활동과 ⸂문화예술 기관 및 문화유적지 등에서의 봉사활동 등이 있다.
2) 봉사주체를 중심으로 ⸁중·고·대학생의 봉사활동, ⸂문화예술인의 봉사활동, ⸃주부 등 일반인의 봉사활동, ⸄기업 봉사활동 등이 있다.
5. 문화 봉사활동의 경과
현대미술관과 문화재관리국 등에서는 1995년부터 대학생들의 문화예술 봉사활동을 실시한 바 있으며, 각 대학의 경우도 문화봉사활동에 대해 학점 인정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올해 3월 '사랑의 문화봉사단'이 창단되었다. 이 단체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이 탄광촌, 양로원, 산간벽지의 각급 학교, 병원 등을 직접 찾아가며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한 국립문화예술 기관 및 산하단체에서의 봉사활동이 1996년에 확산되어 실시되고 있다. 이 봉사활동에는 한양대, 숙명여대, 홍익대, 동덕여대가 참여하고 있으며, 4백여 명의 학생들이 문화예술기관에서 봉사활동을 1학기 동안 계속할 것이다. 문체부에서는 우선 국립 문화예술기관에서 1년간 시범 운영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 문화예술기관으로 확산시켜 갈 예정이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의 경우, 이미 중·고생을 위한 전국 3천여 곳의 문화봉사활동기관이 지정되었으며, 각 교육청 및 해당 학교의 사정에 맞추어 봉사활동이 실시될 예정으로 있다.
■ 문화예술 자원봉사활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1. 문화봉사활동 장기계획과 전략의 수립
이러한 문화봉사활동이 체계화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연령별, 직업별, 봉사대상기관별로 진행될 봉사활동 프로그램과 절차, 중개역할을 맡을 기관 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 의식의 전환
첫째, 사회전반의 의식변화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사회·경제적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민을 위한 사회봉사만을 자원봉사활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적절한 양의 문화예술을 접해보지 못한 문화소외계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간의 새로운 기본권으로 강조되는 '문화향수권'을 증진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자원봉사활동은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자원봉사자의 의식변화이다. 자원봉사활동이 체화(體化)되거나 일상화되지 않은 현실에 있어 제도적인 각종 장치들을 통해 정착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경우 생활기록부 반영, 학점 인정 등이 그 실례이다. 이 과정에서 단지 학점이수 또는 입시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생각, 또는 시간 때우기 식의 급급한 태도 등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자원봉사자를 받아들이는 문화예술기관의 자세이다. 많은 문화예술기관들이 일반자원봉사자들의 활동에 대해 일상적인 아르바이트를 대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의 목적은 아르바이트의 대체를 통한 경상비의 절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봉사기간 동안에 문화예술 교육 또는 이해 프로그램을 별도로 준비하여 문화예술과의 접촉기회를 늘려줌으로써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을 마친 후에 친근감을 가지고 문화예술과 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3. 청소년 자원봉사센터의 활용
문화체육부는 1996년도부터 서울과 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청소년 자원봉사센터를 시범운영하고 이를 연차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종합생활기록부에 봉사활동이 기재되는 등 일련의 과정 속에서 청소년들의 봉사활동 공급은 급격히 늘어나는 데 비해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극히 미미한 상태이다. 이를 적절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전국의 문화예술기관을 봉사센터가 적절히 연계하는 중개센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봉사활동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4. 시범 민간중개센터의 운영
봉사활동의 정착을 위해서는 중개역할을 담당할 민간중심의 중개센터가 필요하고, 이 중개센터를 이용한 시범운영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봉사활동의 확산이 요청된다.
예를 든다면 봉사주체에 따라 중·고·대학생의 경우 청소년자원봉사센터, 기업인의 경우 기업문화재단이나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여성의 경우 한국문화복지협의회나 여성단체 등을 시범중개센터로 운영하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확대운영하는 것이다.
향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기업의 자원봉사활동이다.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재정적, 물적 지원 외에 기업인의 참여를 통해 이들이 단기간 동안 예술단체에 파견되어 그들의 전문적인 경영기술을 문화예술에 접목시키는 활동, 기업문화예술단체의 봉사활동, 기업구성원의 봉사활동 등이 기업봉사활동의 실례가 될 것이다. 기업봉사활동은 문화예술기관과 기업 이미지, 사회 전체에 긍정적 효과를 많이 가져올 수 있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등에서 기업봉사활동에 대해 체계적 연구를 하고 문화예술기관과의 접목 등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5. 문화봉사프로그램의 개발, 확대
프랑스의 경우 '자원봉사 작업장' 샹티에서 펼치는 문화유적 보호 자원봉사활동 등 전문적인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전문성과 취미를 동반하는 봉사활동의 영역을 찾지 못한 채 관람안내, 도서관리, 청소 등의 단순업무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봉사자의 연령, 취미 등을 고려하여 다양하고 전문적인 봉사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일례를 든다면, 국립극장과 수화동아리의 수화공연, 국립미술관과 미술대 학생들이 함께 하는 벽화 그리기, 각지역 사회복지관과 지방대학 문화예술관련 학생들이 연계한 사회복지관에서의 문화 프로그램의 개발과 그 활동 등이 있을 것이다.
■ 참여형 문화복지를 향하여
많은 사람들은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서는 문화예술 접촉 기회가 증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화복지는 사람 개개인의 개성과 '삶의 질' 향상, 그리고 국가산업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또한 문화복지는 공공 부문에서의 무조건적 제공물이 아니며 민간 부분의 적극적 참여 속에서 스스로 얻어나가는 부분도 존재한다. 따라서 문화 봉사활동은 그 의의가 더욱 크다.
밝은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설문조사가 있다. 현대리써치연구소가 조사 의뢰한 설문 중 '만약 무보수 자원봉사활동이 주어진다면 적극 참여하겠는가'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1.1퍼센트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였다. 이 설문은 문화예술 자원봉사활동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으며, 더욱더 높은 응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아를 위해 음악 등을 통해 태교를 하듯, 청소년의 정서순화를 위해, 일반인들의 기본적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문화예술을 접하게 해야한다. 그리고 그 방법의 일환으로서 문화예술 자원봉사를 통해, 문화예술인과 학생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타인과 스스로의 문화접촉 기회를 증진시키고 문화향수권을 찾아간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봉사자 개인의 자아실현 이외에도 장기적으로는 문화 복지, 국민복지 증대의 밑거름을 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