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환경 변화에 대한 적극 대응할 인재와 조직 필요
임원선 / 문화체육부 저작권과 사무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저작권법
미국 MIT의 네그로폰테 N. Negroponte 교수는 최근의 그의 저서에서 이제 바야흐로 원자(原子)의 시대가 가고 비트bit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우리의 생활양식은 바닥에서부터 뒤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바로 저작권 문제가 있다. 그 요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인간의 문화예술적인 창작행위의 산물인 저작물이 비트화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창작성이 없는 데이터베이스의 보호도 저작권의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다). 둘째는 인간의 욕구가 살아가는 것에서 즐기고 기여하는 것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작물은 고차원적인 예술에서 생활문화의 차원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저작권 제도는 바로 이러한 사회를 규율하는 게임의 규칙인 것이다.
인간의 정보와 오락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전화나 텔레비젼, 신문이나 백과사전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제는 시청각을 총동원한 멀티미디어와 이의 폭넓은 공유를 목표로 한 광대역 통신(초고속통신)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것의 성패는 새로운 시대의 승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성패의 기준은 질과 양적으로 더 나은 정보·오락물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할 때, 정보 제공자나 정보 전달자는 분명 창조력과 노력, 그리고 투자에 대해 보상받아야 한다. 이럴 때에만 더 나은 정보·오락물의 지속적인 확대 재생산과 유통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법 중에서 정보와 오락물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지적소유권과 관련한 법, 특히 저작권법이다. 저작권법은 창작자와 그 창작물의 유통에 기여하는 자에게 재산적인 권리와 인격적인 권리를 부여해 창작의욕을 북돋우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정보의 생산과 전달을 촉진하는 법으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권법도 법률이다 보니 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수가 많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간신히 인쇄·출판 기술이나 복사기 또는 녹음·녹화기의 발전을 수용하고 있을 뿐이다. 멀티미디어와 광대역 통신망이라는 환경 속에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저작물(정보)의 통상적인 이용 또는 유통과정은 거의 무시되고 만다. 누구든지 요즘 잘 나가는 음반을 단 몇 초 사이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판매점에서 구입한 것과 동일한 음질로 복제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자신의 취향에 맞게 편곡하거나 개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것을 수천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 다시 단 몇 초 사이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전송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간 저작권법이 염두에 두었던 전제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어느 일부분의 수정과 보완이 아니라 전면적이고도 전혀 새로운, 적극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를 저작권 법규의 정비, 관련 제도의 보완, 그리고 저작권 의식의 확산 등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신기술에 대응한 저작권 법규의 정비
이미 여러 나라들이 앞서 언급한 환경에 맞게 저작권법을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저작물이 통신망을 타고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드는 현상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적인 규범이 모색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최종 보고서를 백서형식으로 발간하여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연합도 지난해 2월과 7월에 각각 중간보고서를 발간하여 그 뒤를 잇고 있다. 유엔 산하의 지적소유권기구 WIPO도 이미 1992년부터 각각 저작권 분야와 저작인접권 분야의 국제규범인 베른협약과 로마협약의 실질적인 개정작업이랄 수 있는 베른 프로토콜과 뉴 인스트루먼트의 제정작업에 착수, 머지않아 새로운 규범이 마련될 예정이다. 선진 각국은 지적소유권 분야를 앞으로 다가올 지식사회에서의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미 그 시장을 규율하기 위한 규범을 자신의 틀대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서 언급한 베른 프로토콜과 뉴 인스트루먼트의 논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베른협약의 가입문제를 놓고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사이에 베른협약 그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멀티미디어와 광대역 통신망 환경 속에서의 저작권 보호에 대한 연구와 대비를 소홀히 한다면, 머지않아 미국 등 정보 강대국이 그들의 옷(저작권법)을 우리에게 입으라고 강요할 것이고, 우리는 그 옷이 우리에게는 너무 크고 또 체형에도 맞지 않는다고 어리광을 부려야만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회를 규율하게 될 질서가 기능적이고 발전적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의 의식과 관행에 합치하여야 하며, 기존의 저작권자와 그 이용자간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각국이 앞다투어 마련하고 있는 법·제도의 개선안들은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준거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내린 결론들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다. 이것 모두가 자국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이에 자국의 이익과 전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존의 저작권 개념과 의식을 새로운 환경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 가진 자의 논리라면,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 저작권자와 그 이용자간에 유지되고 있는 균형을 깨뜨릴 우려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금년부터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간의 연구는 전자출판 등을 중심으로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왔지만 많은 부분 개별적이고 총론적인 검토에 그친 감이 있었다. 이번 연구·검토 과정에는 신기술의 등장에 따라 새로이 등장한 문제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면 개정된 지 이미 10여 년에 이르는 현행 저작권법 전반에 대해서도 재검토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저작권 제도의 정비
현재의 저작권법은 1957년 저작권 보호의 기본법으로 제정되어, 문화체육부 저작권과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1987년 저작권 분쟁의 조정과 저작권 관련 문제의 심의를 위해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를 설립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한편, 1987년 미국의 저작권 보호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 저작권법의 특별법으로 제정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당시 과학기술처에서 관리해 오다 지난해 말 정보통신부로 이관, 현재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진흥과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컴퓨터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를 설립하여 저작권 중 컴퓨터프로그램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최근 저작권 분야에서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멀티미디어와 광대역 통신망 시대의 도래로 저작물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단계에서 컴퓨터프로그램과의 융합현상의 심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이원적 관리는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심각한 부담과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 WTO 무역관련지적소유권협정(TRIPs협정) 등 국제협약이나 각국의 저작권법에서는 컴퓨터프로그램을 어문저작물로 보호하는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컴퓨터프로그램을 별도의 법으로 보호하고 별도의 기구에서 관장하고 있는 나라의 예는 우리 나라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미국의 압력에 의해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를 별도로 입법화하였으나 그 관리는 역시 저작권국(國家版權局)이 일괄해서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자를 분리해서 취급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국제적인 대응 및 교섭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미국의 컴퓨터프로그램 보호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도 이미 사라졌으며, 실제로 다른 저작물에 비해 그 보호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므로 더 이상 같은 목적을 위해 두 개의 법과 조직을 운영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문제점을 감수할 별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 혹자의 주장대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컴퓨터프로그램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저작권법의 기본이념을 무시한 것이다. 컴퓨터프로그램산업의 지원을 위해서는 마땅히 그 용도에 적절한 별도의 법체계가 필요하다. 현재의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을 보완하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저작권법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통합되어야 한다. 단기간 내에 법의 통합이 어려울 경우에는 관리·운영만이라도 우선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며, 관련조직인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와 컴퓨터프로그램조정위원회도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로써 멀티미디어 저작물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며,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 의식 확산
아직 국내 저작권 환경은 침해가 발생하여도 덮어두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저작권 사상의 근본은 권리 존중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권리가 존중되어야 창작의욕이 높아지고 그 결과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문화가 단지 향수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산업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가고 있는 요즈음, 문화산업의 부가가치는 다른 산업이 필적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저작권도 산업발전의 시각에서 새로이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영화 「쥬라기공원」 한 편이 우리 나라가 자동차 1백 50만 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부가가치가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저작권이 단지 명예와 인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산업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라는 의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의 환경변화는 국민에게 커다란 위험을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멀티미디어와 광대역 통신망이라는 환경에서는 창작물의 복제와 배포가 마우스 클릭만으로도 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모든 이용자, 즉 모든 국민이 저작권 침해자로서 심지어 형사제재를 받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고생들이나 심지어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멀티미디어와 통신 환경에 가장 친숙한 세대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에 대한 저작권(저작권 존중) 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는 국민 각 계층과 연령별·직업별 등 다양한 부류별로 교육자료를 제작하여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홍보하는 한편 정규교육 과정에서도 초기단계에서부터 교과과정의 일부에 포함시켜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제적인 대응책 마련해야
최근 저작권 환경은 멀티미디어와 광대역 통신망의 확산과 아울러 WTO 협정의 발효로 인하여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변화의 시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있다. 금년 말로 예정되어 있는 베른 프로토콜과 뉴 인스트루먼트의 체결은 단지 짐작할 수 있는 변수의 하나에 불과하다. 일부 선진국은 늘 우리에게 자신의 저작권법 체계와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 국제규범이나 관례와 관계없이 자신의 것을 수용할 것을 강요하여 왔다. 저작권의 보호를 자국의 수출진흥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인터넷 등 국제적인 통신망을 통해 저작물이 자유로이 거래되는 상황을 고려해서 국제적으로 단일한 저작권법 체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소한 이에 앞서 국제적인 최소한의 의무의 수준이 앞으로 급격히 높아질 것만은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변화를 현재의 행정부와 관련 기관의 인력과 조직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출 수 없다. 저작권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을 갖춘 두뇌집단think-tank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