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문화예술과 변화하는 저작권법. 연극

실무적 차원의 총괄부서 설치 등 대응책 마련을…




심정순 / 연극평론가, 숭실대 교수

국내 일반 대중들의 '저작권' 개념

우리 나라의 베른조약 가입에 따라 올 7월부터 지적 소유권 협정이 발효된다. 연극계에서는 벌써 5, 6년 전부터 외국 원작 공연의 로열티 혹은 저작권료 지불에 관해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오가고 있었고 저작권료 문제의 여파로 몇 가지 긍정적 및 부정적인 현상이 대두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 글의 뒷부분에 가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1994년 한 국제 연극회의에 참석했다가 '저작권법에 관한 워크숍'에 흥미가 있어 여러 외국인 참석자들과 함께 참석하여 나름대로 의문나는 점을 묻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짧은 워크숍이었으나 필자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지적 소유권'의 개념이 얼마나 막연하고 피상적인가를 깨우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저작권 보호'에 관한 문제는 문화적·예술적 뿐만 아니라 크게는 외교적·법률적·정치적 문제까지 연결되는 구체적이고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필자는 이 글에서 연극 문화계의 한 개인으로써 체험한 바를 바탕으로 문화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우리 나라는 그 동안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았던 관계로, 또한 그보다 더 크게는 여러 역사적·문화적·경제적 이유로 해서, 연극계만 하더라도 현대극 활동이 시작된 수십 년간 외국 원작 공연을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해 왔었다.

'저작권료 지불'(로열티)의 개념은 일반대중들에게는 갑작스런 생소한 개념으로 다가왔고 심하게는 서구 문화선진국의 문화제국주의와도 연결시켜 오해되기도 한다. 이제 자기들의 문화상품을 다 확산시켜 놓은 다음 돈을 거두어 간다는 식의 견해도 없지 않다.

연극계만 하더라도 현대극 공연이 시작된 지 수십 년 동안 외국 원작의 공연들을 저작권료를 지불치 않고 공연해 왔다. 이러한 손쉬운 희곡 대본의 확보는 우리 연극계 내에 창작극 개발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지연시켜 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최근 5,6년 전부터 저작권료 지불에 관한 개념이 구체화되면서 연극계는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처하느라 고심해 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행해 온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어질 수 없듯이 우리 연극계가 저작권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은 국제사회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비전문적이고 피상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말은 연극인들 모두가 그렇다는 식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자 하는 말은 아님을 덧붙여 두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인 대중 사이에 통용되는 '지적 소유권'에 관한 신화를 몇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즉 '저자와 잘 통하면 로열티를 조금만 내도록 봐준다', '말만 잘하면 운이 좋은 경우에 저작권료를 안 내도 된다'는 식의 신화적 이야기들이다.

구체적으로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저작권 보호의 개념이 서구 후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다국적 문화상품의 개념과 연관되어 토론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연극 대중사회는 아직도 전근대적 마을문화의 수준에서 저작권 개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또한 최근 수년간 소위 로열티를 지불했다는 국내 유수의 모모한 극단들도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마추어 공연'이라는 구실로 몇백 불 정도의 저작권료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제로 희곡 대본만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다국적 출판사인 새뮤얼·프렌치사의 희곡 대본 맨 앞장에는 아마추어 공연인 경우 로열티 5백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대학로나 기타 극장가에서 전문극단에 의해 공연되는 연극공연을 프로 공연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마추어 공연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연극인은 "서양 연극인들 눈에 우리 연극 공연은 다 아마추어 수준"이므로 아마추어 공연의 로열티를 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하고, 아마도 국내의 몇몇 극단들도 그와 비슷한 개념에서 아마추어 공연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와 같이 로열티의 개념은 우리 연극계에서는 아직도 여러 모로 생경한 개념이고, 그래서 '작품 사용료'의 돈 문제로 밖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문화 중심의 21세기를 위해 우리는 여러 모로 의식 수준을 국제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작권 보호와 그 사용료 지불 문제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본 개념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진작시켜 의식의 국제화를 도모해야 할 것 같다.

지구촌 국제사회의 '저작권' 개념



앞서 말한 '저작권 워크숍'에서 솔직히 필자는 깨우친 바가 많았고 그 느낀 바를 조금이라도 국내 대중과 함께 나누어 볼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저작권 보호'의 개념은, 사용료 지불이라는 상업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지만, 이에 앞서 한 개인의 정신활동의 산물을 인정, 보호해 줌으로써, 그 한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즉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작가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적 권리를 보호하는 도덕적 권리 moral rights 보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예술 활동의 경우 저작권은 '창작 활동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 그 기본 정신이다. 여기서 창작활동이라 함은 희곡, 마임, 안무 등을 망라한다.

'저작권'의 개념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광범위하여 외국 공연의 로열티 지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공연들끼리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고(외국의 경우) 토론들이 되어졌다.

'저작권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녹화나 녹음 등 반드시 물질적 자료의 형식으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저작권 개념은 이보다도 더욱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한 저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한 것을 빼앗겼을 때의 경우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공동 창작의 경우, 저작권은 창작자들 간의 토론에 의해 협약된 바를 문서화해야 된다고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던 한 공동창작 여성연극 공연의 경우, 초기에 저작권 개념을 명시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후에 가서 논란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저작권 워크숍' 당시 필자는 데이비드 마멧의 여성 문제극 「올리아나」 번역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작업은 저작권 보호와 관련되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물었다. 또한 이 작품을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장면을 변경, 구성 혹은 삽입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대답은 번역도 원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되고, 장면 구성이나 삽입 역시 원작자의 허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단 번역이 된 작품의 공연은 번역자와 원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저작권에 대한 국제적 이해 사항은, 후에 필자가 귀국해서, 데이비드 마멧의 대리인측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관행임이 입증되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연출 스타일'은 저작권 보호조항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저작권 보호 개념을 현실적으로 실천할 때 중요한 것이 계약서와 계약 사항의 문제다.

계약 사항은 근본적으로 협상의 문제라고 정의되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각 나라마다 저작권 사용료에 관한 규정률이 각기 다르게 통용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 원작자의 희곡에 관한 저작권 사용료는 대개 전체 입장권 판매의 6퍼센트 수준이고, 호주는 그보다 좀 낮아서, 시드니의 어떤 극단은 해외 공연의 로열티를 1퍼센트 책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외국 저자의 경우 대개는 저작권 관계를 대행해 주는 '대리인'을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저작권 업무를 처리한다.

우리의 몇몇 연극인들이 생각하듯, '작가를 잘 알면'은 실제 현실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는 듯 보인다. 문화예술과 계약의 개념은 얼핏 생각하면 무관한 것처럼 보이고 예술의 존엄성을 삭감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 숭고한 정신문화적 영역에서 이제는 대중 문화상품으로 다국적 판매 상품이 된 이상, 계약과 계약 조항을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하는 자세도 이 시대에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연전에 '연극의 해' 행사 때(?) 외국 극단을 초청하면서 그쪽에서 치밀한 세부사항까지 계약조항으로 요구하자 우리측 연극인이 '우리가 장사꾼이냐'며 화를 내던 일을 필자는 기억한다.

실제로 치밀하고 세부적인 계약사항은 유사시 쌍방의 이해를 명확히 구분해 줌으로써 분쟁의 가능성을 줄여 줄 수도 있다.

저작권 관계상 체험 사례

필자는 '저작권 국제 워크숍'에 참석하고 귀국, 곧 데이비드 마멧의 「올리아나」공연을 위해 뉴욕에 있는 그의 저작권 대리인과 연락을 시작했다.

대리인측 요구는 한국말 번역을 하기 전에 1천 5백 불 환급 불가의 로열티 선금을 지불하고 한국말 번역이 끝나면 한국말 대본을 데이비드 마멧에게 보내 번역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마멧이 한국말을 하느냐고 묻자 한국말하는 사람을 시켜 체크하겠다는 것이었으며 장면 변경이나 삽입은 물론 단어 하나라도 고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로열티는 원작자는 공연 전체 입장권 판매수입의 6퍼센트, 번역자는 4퍼센트를 갖게 된다고 했다.

필자는 여러 방법을 통해 6퍼센트라는 비율을 낮추어 보고자 했으나 대리인측은 양보하지 않았고 미국 원작의 경우 영국 공연의 경우에서도 대개 6퍼센트의 로열티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협상이 지연되자 대리인 측은 대학극단 공연이라면 5백 불만 내라고 덧붙여 이야기했다.

이럴 즈음 모 연극 전문지는 마멧의 「올리아나」를 무단 번역한 원고를 버젓이 게재했으며 이후 어느 극단은 아마추어 공연이라는 이유를 붙여 5백 불 로열티를 내고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다.

우리 연극계의 현실적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성숙한 문화국으로 자부심을 갖기 위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사례는, 필자가 1995년에 조직, 개최한 아·태지역 여성연극 국제회의와 관련된 일이다. 이 회의의 공식 연설자로 여성 연극의 어머니로 알려진 세계적인 극작가 미건 테리 Megan Terry를 모셔왔다. 회의 개최 등을 위해 많은 비용을 들였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물론, 한국 체류 기간 동안 그녀의 활동 스케줄에 대해서도 사전 협약이 되었었다.

테리는 한국 배우들과 위크숍을 3일에 걸쳐 가졌다. 그런데 첫날 어느 연극인은 이 귀중한 순간을 놓칠 새라 무단으로 비디오를 가져와 워크숍 내내 녹화를 했다. 물론 주최측과의 협의도, 테리로부터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였다. 테리는 약간 기분이 나쁜 듯이 그 점을 지적해 주었다.

'저작권 개념'의 부재에서 일어난 일이다. 심지어는 모 일간지의 한 젊은 기자 역시 주최측이 마련한 기자회견장에는 나타나지 않고, 워크숍 중간에 나타나 테리와의 인터뷰를 주최측과 한 마디 양해도 없이 오히려 무슨 특권이나 내려 주는 듯한 태도로 진행시키려던 경우도 있었고, 국제 회의 당일 어느 케이블 TV는 주최측과의 사전 협약도 없이 하루 종일 회의 내용을 모두 녹화하겠다고 무턱대고 카메라를 회의장 앞 정면에 설치하고는 녹화하기도 했다. 계약사항이 아니라며 저지하는 주최측과 실랑이가 벌어졌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렇듯 '저작권' 내지는 '지적소유권' 개념이 우리의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를 파악했음인지 테리는 연극원 학생들과의 극작 워크숍에서 "자신의 글 밑에 이름을 쓰고 사인하라"면서 "그러면 그 글은 너의 것이 된다"고 가르쳤던 것을 필자는 기억한다.

올7월 '저작권법'의 발효는 장단기적으로 우리 연극계에 여러 모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저작권료 지불'에 대한 명제는 우리 연극계에 스트레스적 요소로 작용, 근년 들어 많은 창작극들이 나오고 있다. 아직은 상당수의 이러한 창작극들이 극작법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연극계 인력들에 의해 씌어져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 창작극의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바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단기적으로는 로열티 지불로 인한 공연 생산비의 증가로 관객들은 더 많은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고 여간 작품이 좋지 않은 이상 이는 자칫 개개 극단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상업적 성공의 대명사인 양 외국의 뮤지컬 극단들이 이제는 초청 공연의 차원을 넘어서 국내 공연을 직접 생산·주관하겠다고 나오는 모양이다. 그것도 한국 스태프는 전혀 참여시키지도 않은 채. 이러한 경우에도, 캐나다 같은 경우는 외국 공연단체가 자국내에서 2주일 이상을 공연하는 경우, 캐나다 이민법에 의거 반드시 공연에 캐나다 자국인을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노스웨스턴 대학 트레이시 데이비스 교수).

올 7월로 저작권법 발효를 맞게 된 시점에서 볼 때 우리의 연극계는 이상에서 간략히 언급한 바 의식적인 준비의 차원에서나 실제적 협상 및 계약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국제화를 시작하는 초보단계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시적으로 시급한 일은 저작권 보호개념의 일반화 및 관련된 정보를 확산시키는 일일 것이다. 특히 국내 개개 극단의 입장에서는 외국 원저자의 저작권 대리인과 국제적 협상 및 계약 사무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공연관계에 관한 국제적 관례, 협약, 법률에 관한 전문 법률가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으며, 개개 극단들을 돕기 위해 외국과의 공연 저작권 관계 업무를 대행해 주는 실무적 차원에서의 총괄적인 부서의 설치도 생각해 봄직하다 하겠다.

동시에 밀려들어오는 외국 공연단체에 대비해 우리 연극계를 보호할 관계 법령의 정비도 시급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