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미술품 공방 그 침묵의 정화의식
김영재 / 미술평론가
미술품과 저작물
저작물이란 말은 주로 문학 등의 분야에 쓰는 말이다. 미술에서도 쓸 수 있는 말이로되 식별하여 미술 저작물Work of Art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회화·조각·서예·공예·디자인 등 일정한 조형 질서에 의해 제작된 미적 창조를 일컫는다. 이에 비하여 예술 저작물 Artistic Work 이라는 말은 음악 저작물 등을 포함한다.
미술 저작물의 저작권은 매우 애매한 개념이다. 미술 저작권의 설정 근거가 애매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으되 독창성을 판별하는 것이 인상과 감성이기 때문이다. 원래 저작권은 표현의 형식 또는 방법이 보호된다는 뜻이지 저작자의 사상이 보호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문 해석대로라면 인체를 다루는 조각가가 인체를 다루는 다른 조각가를 저작권 침해로 제소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 미술 저작물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 미술에서의 저작권 논의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서 정립되어 있지 않기도 하려니와 저작권 따위를 운운하는 것이 해괴하게 느껴지는 것이 한국미술의 풍토이기 때문이다.
장부 없는 미술 회계
많은 한국의 화랑이나 미술관은 작가와 인간적인 친분 관계에서 운영된다. 전속작가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랑과 작가는 구두나 묵계를 바탕으로 하는 수의계약에 의해 전시, 판매, 배포 등의 화랑 업무를 치르고 있다. 최근 의식 있는 화랑들이 속속 생겨나지만 아직도 많은 화랑들은 정상적인 회계업무에 따른 세무보고를 하고 있지 않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요, 주먹구구가 손가락구구라는 식이다.
한때 엄청난 시장 규모에 눈독을 들인 국세청에서 미술품의 양도소득세 부과안을 시행하려다 슬그머니 연기한 바 있다. 화랑 주의 속주머니 수첩이 회계장부라는 이 나라 화랑에 양도소득세를 매길 경우 미술계가 아예 고사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런 풍토에서 작가들은 철저히 현실적인 감각이 없거나 없는 것처럼 처신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다. 주먹구구 화랑과 눈뜬 봉사의 작가가 만나야 기획전·초대전 따위의 전시에서 잡음이 없게 마련이었다. 그러한 풍토이기에 화랑과 작가가 만나야 기획적·초대전 따위의 전시에서 잡음이 없게 마련이었다. 그러한 풍토이기에 화랑과 작가가 분쟁에 멀려들 소지가 생겨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덮어두지 못하면 털어 먼지 안 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먼지를 털 수 없는 구조가 한국 미술계의 한 단면이다. 복제의 풍토가 그러하다.
애교와 합법
복제는 창의가 무엇보다 존중되는 미술에서 작가의 인격을 의심할 만한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청동 주물의 복수 복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샌드 캐스팅 Sand Casting에서 청동 주물은 대개 석고 원형에서 떠낸다. 석고 원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점토 원형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리콘 등의 대안을 사용하지 않는 한 점토 원형이 석고 원형으로, 석고 원형이 청동상으로 바뀌기 위해 점토 원형과 석고 원형은 대부분 파괴된다. 남는 것이 청동 주물을 만들기 위한 형틀이다.
이 형틀은 복수 제작이 가능한 조립 구조이다. 하나의 청동 주물을 만들고 난 다음 원론적으로 형틀은 해체되도록 되어 있다. 아깝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보존상 두어 점, 애교삼아 서너 점 뜨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이 작품들은 마치 지구상에 두 점도 없는 유일한 일회적 완결성을 가진 작품처럼 고객에게 팔려 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청동의 작품을 원형으로 형틀을 다시 만들어 대량 복제하기도 한다. 서구에서 많이 사용하는 주조 기법인 실납법Lost Wax Method 은 원작과 다름없는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어낸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다.
문화향유권을 공유한다는 명분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등이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에서 원작과 같은 예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복제는 합법적 절차에 의해 행해진다.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다.
국화빵
복제란 저작 재산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기본 이용 형태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가시적 복제는 인쇄, 사진, 복사, 녹음, 녹화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복제이다. 재생적 복제는 각본이나 악보 등을 공연, 방송, 실연한 것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저작물의 경우 형태가 바뀌어 복제되는데 반해 국화빵 찍어내듯이 그대로 재생할 수 있는 것이 미술품의 복제이다. 그래서 미술품 복제의 무제는 미술 저작권과 직접 연결이 된다.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란 창의적으로 표현된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자가 구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 허가를 줄 수 있는 권리이다. 이 권리를 침해하면 위법이라는 것이 저작권법이다.
복제는 경우에 따라 저작권법에 저촉된다. 제98조 제1호에 해당되는 범죄이다. 문제는 이 저작권법이 자생적인 이 땅의 풍토를 반영하거나 절대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관례와 입법 사이에서 혼란이 야기된다.
저작권이 생소한 나라
우리 나라 저작권법은 1986년 12월 31일 개정법률 제3916호, 1993년 12월 14일 개정 법률 제4117호, 1996년 11월 17일 개정 법률 제5015호에 근거한다.
저작권은 저작 재산권 Economic rights 과 저작 인격권 Moral rights 으로 나뉜다. 저작 재산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품을 이용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이다. 복제권, 배포권, 공연권 2차 저작물 작성권으로 구성된다. 다른 물건들처럼 양도·상속·채권의 대상이 된다. 미술에서는 복제, 전시, 판매, 팸플릿 제작 등의 활동이 포함될 것이다.
저작 인격권은 저작자가 자신이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정신적·인격적 이익을 법률로써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공포권·성명표시권·동일성 유지권으로 구성된다. 미술의 저작 인격권은 때로 실명이나 이명으로 작품과 동일시된다. 작품을 통해 주의 주장을 할 수 있고 발표된 작품이 어떠한 경로로건 변형되거나 수준 낮은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권리라 할 수 있다.
저작권은 지적재산권, 무체재산권, 소유권이라고도 부른다. 특허권·실용신안권·의장권·상표권 등의 공업소유권 혹은 산업 재산권과 같은 개념이지만 발생상 다른 구조를 가진다. 미술 저작권은 특허청 등록 등의 절차나 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저작물의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한다. 수준이나 윤리와 상관없이 미술 저작물은 저작물로서 보호받는다. 어린 아이의 낙서도 그렇다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국민 정서에 그다지 부합되는 규정은 아니다. 저작권법 자체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08년 일본인들의 요청에 따라 명치칙령 200호로 공포하여 사용한 것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한국 저작권법이다. 1910년 명치칙령 338호에 의해 이 땅에 일본 저작권법이 시행된다. 1945년 미군정 법령 제21호에 따라 일본 저작권법이 원용된다. 1957년 한국 저작권법이 제정된다. 역시 골격은 일본 저작권법을 따른다.
1987년 7월 1일 국회를 통과한 한국 저작권법이 시행된다. 1986년 미국측 지적소유권 보호 차원에서 개정된 후 한국은 UCC에 가입한다. 1994년 7월 1일 발효한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라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이어 1996년 7월 1일자로 발효되는 소급보호안 등이 제정된다.
저작권법이 미술계에 별 의미가 없듯, 한국 미술에서 저작권이란 최근까지 큰 의미가 없었다. 사농공상이라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장사치보다 낫게 봐준다 하더라도 역시 선비나 농사꾼의 아래에 위치했던 조선의 계급제도는 물론이고 신라시대부터 향·소·부곡 등의 천민 집단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에 만든 사람의 이름이 있을 리 없었다. 만든 사람의 이름이 없으니 권리가 있겠는가.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와 이름없는 그림들, 민화 등이 그러한 예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저작권법 자체가 서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로마시대나 오늘날 우루과이라운드 등으로 대변되는 경제전쟁의 틈바귀에서 생소한 서구의 저작권법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처지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미술 저작권법
저작권법과 마찬가지로 미술에서의 저작권법은 주로 서양의 몫이었다. 로마 시대의 유스티니아누스법은 재료 귀속의 법이다. 다른 사람의 양피지, 종이 등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 주인은 양피지, 종이 주인이었다. 그런 오랜 관례 속에서 조각가법이 영국에서 제정된 것은 1735년의 일이었다. 1709년 앤 여왕법 The Statute of Anne에서 보장된 출판물의 복제권 Copyright을 조각가들이 요청하여 성안된 것이다. 1886년 스위스 베른에서 성립된 '문학적 및 미술적 저작물의 보호에 관한 베른협약 Bern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Literary and Artistic Works'은 다국적 협약의 필요성을 반영한다. 이어 1952년 UNESCO의 주도로 세계저작권협약 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UCC이 성립하여 국제적 보호를 위한 양대 산맥의 기능을 한다.
세계적인 저작권법의 태풍 속에서도 우리 나라의 저작권법은 아직 그 틀이 정비되지 않았고 판례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러한 사정은 저작권법 자체의 초국가적 성격에도 기인한다. 바야흐로 저작권법은 내국적 판례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국제적 판단의 기준이 도입되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그러나 그 국제적 판단 또한 정비의 여지가 많다. 더욱이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시차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한 WIPO 와 UNESCO 역시 지금 이 땅에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1967년에 창설된 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세계지적소유권기구)는 국제연합 UN 소속의 정부간 기구이다. WIPO는 저작권 및 저작권 인접권과 관련된 파리협약·베른협약·로마협약·제네바협약 등을 관정한다.
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1945년 창설된 국제연합 UN의 교육 과학 문화 기구이다. UCC는 1947년 제2차 총회에서 채택한 저작권 보호 촉진 관련 결의에 의해 1952년 성립한 기구이다.
WTO/TRIPs Trade-Related Aspect Intellectual Property Right including Trade in Counterfeit Goods은 위조 상품의 교역을 포함하는 지적소유권 협정이다. 이 협정은 베른협약을 모태로 한다.
베른협약은 네 가지의 국제 표준으로 여겨지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저작물은 완성과 동시에 아무 조건 절차 없이 보호를 받는다는 무방식주의, 협약 체결국의 어느 나라에서 발행되건 그 국가의 국민과 같은 보호를 받는다는 내국민 대우의 원칙과 아울러 체약국의 저작권을 소급하여 인정하는 소급주의 원칙이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
세계 저작권법의 근간이 되는 베른협약과 같은 국제저작권협회는 현재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의 일원이 되는 한국으로서는 가입하지 않을 수 없는 기구이다. 그것은 국제화 사회에서 당연히 우리가 치러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법에 관한 한 한국인은 우리의 체질에서 우러난 법이 아니고, 우리의 풍토에서 저절로 성숙한 규범이 아닌 법에 의존해 판단하게 된다. 더욱이 미술에서의 저작권법은 미술 저작물에 대한 법이 아닌 일반 저작물의 부수 법안이다. 자연히 법 이전의 인정과 친분과 묵계와 담합이 더욱 친근하게 통용되는 한국 미술계에서 더욱 생소하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저작권 분쟁 논의
테라코타 작품을 청동으로 복제한 사건이 있다. 작가는 화랑을 고소했다. 화랑 무혐의 판정에 따라 화랑이 작가를 무고 및 명예훼손 고소―작가 무혐의 판정―상고―작가 무혐의―재기 수사로 이어진 이 사건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 재판에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은 저작권 재판의 판례가 될 수는 있겠지만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거나 선고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또한 아니다. 미술에서의 저작권이 어떤 형태로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한 방증 사례로 제시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미적지근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일 년 이상 끌어온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인적 사항이나 당사자들의 거취에 지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구체적인 내용은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것이 한국 미술계 저작권 논쟁의 현주소이다.
작품을 작가에게서 인수한 화랑이 작가에게 작가 홍보와 작품 판매를 위해 미술 견본 시장에 출품할 것을 제의한다. 작가는 작품의 출품이 작품 소장자가 결정할 일이라고 답변했다고 진술한다. 구두계약이 이루어진다.
이 문답에서 화랑과 작가는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공식 절차를 생략했다. 오해가 발생한다. 화랑은 작품에 관한 모든 것을 작가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화랑은 당연히 작품을 출품한다.
호주·뉴질랜드 및 영국의 저작권법에 의하면 양도인에 의해 문서로 서명되지 않는 양도는 무효라 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러한 절차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구두에 의한 제안과 승낙에 의해 출품이 결정되었더라도 한국의 저작권법의 절차상 하자는 없다.
한국 저작권법의 제42조는 저작물의 이용 허락License이다. 1항은 저작재산권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할 수 있다. 재산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규정이다. 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허락을 받은 자는 허락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3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허락에 의하여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저작 재산권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이를 양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것을 저작물의 이용에 관한 배타적 권리Exclusive right 라고 부른다. 즉 허락을 얻지 아니한 이용은 위법일 수 있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하다.
허락의 종류에는 단순 허락과 독점 허락이 있다. 단순 허락은 저작자가 여러 사람에게 이용 허가를 해도 제재의 수단이 없다. 독점 이용 허락은 채권·채무 계약을 맺은 사람에게만 독점 이용을 허락한다.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할 경우는 채무불이행의 계약 위반만 추궁할 수 있다.
이 경우의 저작권법 규정에는 공표권이 포함된다. 저작자는 그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아니할 것을 결정하는 권리를 가진다. 이 공표권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수 있는 것이 제42조이고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제32조의 규정이다. 이러한 허락과 양도를 한 저작물은 그 상대방이 일회성 공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다. 화랑이 작가에게 통보하는 것, 미술 견본 시장에 출품하는 것이 그 공표의 합법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날개 없는 추락
화랑은 작가의 테라코타 작품을 청동으로 복수 복제한다. 테라코타 Terra-cotta 란 초벌구이점토 작품이다. 그러나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중간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 완성된 작품의 형식이다. 더욱이 조각에서의 테라코타의 비중은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진흙의 원형이 석고로, 다시 청동으로 바뀌는 바람에 엄청난 변형과 변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테라코타는 흙의 질감과 정서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테라코타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복제가 허용되지 않는 범주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테라코타는 견고한 재료가 아니다. 파손의 위험이 크다. 일반 대중에게 청동보다 작품성이 높다고 설득할 수 있을 만한 단계는 아니다. 대중들은 더 많은 구입비를 투자하더라도 보다 197.908값나가는 청동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화랑이 미술 견본 시장에 출품하기 위한 방편으로 청동 복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랑은 이 과정에서 복수 복제를 한다. 한 점의 테라코타 작품이 몇 점씩의 청동 작품으로 복제된 것이다. 화랑으로서는 폭넓은 작가 홍보를 위해 충분한 복제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제의 과정에서 테라코타의 원형이 한 점 파손되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화랑은 작가의 홍보가 아니라 화랑의 영리를 위해 복제를 했다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복수 복제의 가치성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작품의 일회적 완결성과 원작의 분위기를 예술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했다. 기계 복제에 의한 작품의 복제품이 원작의 가치를 따를 수 없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검증이었다. 그것이 예술 작품의 원론적 가치이다. 사사키 겐이치가 「예술 작품의 철학」에서 말한 걸작 소멸의 위기는 이 원작의 일회적 완결성을 부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사키는 물리적 개체와 불가분하며 한 점밖에 존재하지 않는 원작을 개작하면 본래의 작품이 소멸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작가가 몇 점 더 복제를 하는 경우가 묵인되었다. 결과적으로 청동 작품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두어 점 복제를 하더라도 작가는 모른 체하거나 혀를 차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거나 작품 폐기를 종용하는 정도로 끝났던 것이 관례였다. 이것은 작가와 공장에서의 일이었다. 화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나 공장의 복제는 상거래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원작의 상품성이나 가치가 희석될 염려가 비교적 적다. 그러나 화랑에서의 복제는 결과가 어떠하건 예술성 및 상품성의 추락과 아울러 작가의 인격권까지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청동 작품이 몇 점씩 복수 제작되는 현실에 비추어 테라코타를 고집하는 작가는 비교적 순수한 작가로 치부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대중사회에 테라코타를 원형으로 하는 청동 복제품이 나돌 때 대중의 작가를 보는 눈이 고을 리 없다. 그 내막을 광고하고 떠들며 다닐 수 없을 때 작가의 저작 인격권은 손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복제권이라는 두 가지 꿈
화랑과 작가는 복제권이라는 동상이몽을 꾼다. 작가는 테라코타를 출품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작가로서 작품의 내용 및 형식 그리고 명제 등에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방법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테라코타의 작품을 테라코타로 전시해야 하는 것은 '테라코타의 작가 누구누구' 등으로 인지될 수 있는 작가의 자기동일성 유지권에 속하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에 부여하는 형식과 내용은 작가의 인격이 구체화한 것이므로 작가가 작품에 불어넣는 사상과 감정의 표현에서 완전한 동일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화랑은 자신들이 구입한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복제권을 취득하는 것으로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저작물에 있어서 창작성은 특허법에서 말하는 신규성과는 다르다고 본다. 창작물은 유형물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테라코타의 작품을 매수하는 것은 작품의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지 저작권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복제권 역시 이전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해진다.
화랑이 미술 견본 시장에 출품한 것은 복제된 청동 작품이었다. 출품 자체는 공표 Disclosure에 속하는 작가 및 저작품 소유자의 고유 권한이다. 공표는 원작의 전시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복제는 아예 거론되지 않는다.
이 경우 화랑에서 배포권Distribution rights까지를 주장할 수 있다. 저작물을 이용하고 시장에 유통시키는 방법이 배포권이다. 화랑의 중요 업무이므로 이 부분에는 의의가 있을 수 없다. 역시 문제는 그 원작이냐 아니냐의 것이다.
2차 저작물
화랑으로서는 원작이냐 복제품이냐의 문제가 작가보다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 화랑측으로서는 견본 시장에 청동 작품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는 테라코타의 소품을 출품하는 위험을 피하려 할 수도 있다. 물론 화랑의 입장에서 원저작물을 제2차 저작물로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2차 저작물은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 제작 등의 방법으로 재창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의 편집물은 엄연한 저작물이 된다. 그것을 작성한 사람 역시 저작자가 된다.
저작권법은 제5조, 2차적 저작물에서 원저작물을 번역, 편곡, 변형, 영상 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2차적 저작물을 독자적 저작물로서 보호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2차적 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나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변경하는 제2차 저작물의 경우는 작가의 허락을 얻어 가능한 사안이다. 테라코타를 테라코타 외의 방법으로 복제한다는 것은 내용과 형식을 바꾸어 작가의 의사와 무관히 주제를 바꾸는 것이 된다. 원작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결국 제32조의 미술 저작물 등의 전시 또는 복제에 위배된다. 제1항 2호는 조각 또는 회화로 복제하는 것은 미술 저작물의 복제로써 허용되지 않음을 규정하고 있다.
화랑으로서 이러한 까다로운 저작권법을 헤치고 불법 복제의 혐의를 벗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변형Transformation이 있다. 테라코타의 부조 형태를 환조로 바꾸거나 조각 작품을 그림으로 그리는 등의 방법적 전환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표절 등의 혐의로 변형을 했거나 2차 저작을 한 사람의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는 소지는 남아 있다. 때로 표절 등은 작가의 인격권에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으므로 법적으로 규제되지 않더라도 기피되는 사회적 불문율이라 할 수 있다.
사사키 겐이치는 「예술 작품의 철학」에서 회화작품에 붓을 대어 고칠 수 있는 것은 원작자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조차도 무조건적인 권리는 아니라 주장한다. 작가의 창작 작업은 작품의 완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그 방향은 작품이 결정화로 향하는 심성이라 했다. 작품의 완전성을 해치는 수정을 행할 권리는 작가에게도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타인의 경우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밀치기 땅기기
국내외를 막론하고 순수 조형예술에서 이러한 분쟁이 야기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판례는 이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외국의 판례들 중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례에는 일본의 '불단 조각 저작물 사건'이 있다. 원고는 불단(佛壇) 내부 장식의 조각 원형을 완성하고 원형에서 복제한 플라스틱 제품을 판매하여 온 자이다. 원고는 독자적인 미술 감각에 따라 독특한 미술 감각과 방법으로 미적 표상을 완성, 제작하여 저작권을 획득하였다고 평가된다. 피고는 불단제조를 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무단으로 원고의 조각을 복제하고 그 복제물을 판매, 배포, 전시함으로써 저작권을 침해한 혐의로 제소되었다.
이 재판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1. 피고는 원고가 완성한 문양과 형상을 가진 조각을 복제하고, 위 복제물을 판매, 배포, 전시를 해서는 안된다.
2. 피고는 복제물의 완성품 반제품 및 제조 형판을 폐기하라.
3. 피고는 원고에게 175만 엔을 지급하고 내입금에 대한 연5푼의 금원을 지급하라.
4. 소송비용은 원고와 피고가 2분하여 부담한다.
창작과 더불어 성립된 저작권을 무단 침해하여 허락 없이 복제한 경우에 대한 원고의 승소 판결이다. 불단 조각의 예는 국내의 사례와 같지 않다. 그러나 유형적인 비교는 가능할 것이다. 또한 테라코타 사건은 단순한 도움이 아닌 다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저작 인격권의 문제이다.
인격의 침해는 보상된다
국내에서 일어난 청동복제사건의 핵심은 저작 인격권과 저작 재산권의 혼동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된다. 저작권법 제14조의 규정에 따르면 저작 인격권은 저작자의 일신에 귀속된다. 작가가 자신의 이름과 인격을 걸고 제작한 테라코타는 저작 인격권의 범주에 해당된다. 즉 테라코타가 아닌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도 작가적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없다고 작가가 판단했다면 그것은 저작 인격권에 해당된다. 자신의 창의적 발상의 전환에 의해 다른 매체로 전환하지 않는 어떠한 경우에도 작가적인 인격을 지킬 수 없다는 작가적 자각에서 나온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저작 인격권의 침해로 판명될 경우, 작가는 화랑에게 저작 인격권의 침해를 입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물질적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위자료이다. 테라코타의 작가로서 입신하고자 하는 작가의 인격적 욕구가 침해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정 공방의 예견
1994년 개정된 저작권법의 권리침해죄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첫번째는 저작 재산권 그 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를 복제·공연·방송·전시 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로 되어 있다. 두번째가 저작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가 해당된다.
이 경우 화랑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저작 재산권의 확대해석과 관례적 적용을 주장하는 것이다. 저작 재산권은 전체 혹은 부분적인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일정 권리를 양도받은 사람이 저작 재산권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작품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매수하였다는 명문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면 아마 법적 대응에서 훨씬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의 정화
테라코타의 청동복제사건을 보는 미술계의 시각은 차다. 행여 불똥이 튈까 팔짱을 끼고 관망한다. 화랑과 작가의 외로운 투쟁은 그들의 몫일 따름이다. 사실 그것이 한국 미술의 생리이다. 똥이 묻건 겨가 묻건 묻을 수도 있다는 가정에 몸을 사리면서 한국 미술은 스스로 정화되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