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명인들이 펼친 뿌듯한 연주회
윤중강 / 음악평론가
민속음악을 이끌 손색없는 여덟 명의 주역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고 뿌듯하게 해주는 연주회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3월 28일 연강홀에서 있었던 '젊은 산조'가 바로 그것이다. 연주회의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무대는 여덟 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산조' 음악에 뿌리를 둔 연주곡만으로 구성한 음악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연주회를 통해서 무대에 오른 여덟 명의 연주자는 앞으로 우리의 민속음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주역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그들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인 이른바 '차세대 명인'이라는 찬사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할 만큼 충분한 기량을 펼쳐 보인 무대였다.
이번 무대는 '젊은 산조'라는 같은 제목을 붙인 세 번째 연주회가 된다. '젊은 산조'는 음반의 타이들이기도 한데, 지금까지 모두 석 장의 '젊은 산조'의 음반이 출간되었고, 이런 무대들은 음반 출간을 기념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젊은 산조'음반에는 이름 그대로 젊은 연주가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10분 정도의 산조음악이 녹음되어 있는데, 이런 음반 작업에 동참한 젊은 기악 연주자들이 뜻을 같이 해 만든 음악모임이 바로 '메나리'다.
메나리란 순수한 우리말로 '메'는 산을 뜻하며, '나리'는 꽃을 뜻한다.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홍사용은 「조선은 메나리나라」라는 수필을 쓴 바 있다. 이 글은 우리 고유의 음악문화를 예찬한 글이다. 또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때 애송했던 시로 김소월의「산유화」를 들 수 있겠는데, 이 산유화를 순수한 우리말로 풀이하면 바로 '메나리'가 된다. 한국음악학에서 '메나리'란 강원도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 나라 산간지방에서 뻗어 나간 음악이나 음계를 말한다.
실내악단 '메나리'는 젊은 산조 음반작업을 이끌었던 연주가인 이태백을 중심으로 모인 연주단체이다. 메니리의 다른 실내악단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현재까지는 순수한 민속적인 기악곡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실내악단이 국악 대중화를 의식해서 대중적인 노래곡이나 연주곡 등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타나 신시사이저 등을 함께 편성하고 있음에 반해서, 메나리는 우리 악기만의 합주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메나리의 큰 특징이자 미덕으로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연륜이 연주력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메나리'의 리더인 이태백은 올해 나이 서른 일곱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다른 연주자들의 평균연령은 이십대 후반이데, 이들이 음반을 만들 때 사용한 젊은 산조에서 '젊은'이란 표현이 적잖이 논란거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젊은 산조'라는 말은 기성 음악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였으며, 또한 보수적인 성향을 띤 음악인들에게는 거북살스런 용어이기도 했다. 메나리가 연주하는 음악이 젊은 산조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늙은 산조'인가 하는 다소 비아냥 섞인 항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민속악을 다루는 음반을 제작하거나 음악회를 마련하면서 '젊음'을 강조한 것은 민속학계, 더 나아가 우리 음악계의 하나의 고질적인 타성을 깬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 민속악은 그 동안 '연륜'에 의한 서열주의가 팽배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곧 '나이가 벼슬'이라는 속담대로 연륜이 지긋한 연주가가 대접을 받은 것이 사실이나, 이런 연륜이라는 것이 반드시 연주력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국악계에서 지나치게 연륜에 의한 서열주의를 따지는 것은 국악발전의 지장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우리 음악계의 풍토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자신들 나름대로 또한 자신의 나이에 맞게 산조음악을 재해석해 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곧 민속악의 산조와 시나위 같은 음악은 오랫동안 연주이력이 있고, 또한 다양한 인생경험이 있을 때 제대로 된 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불문율을 깨고, 자신들의 세대에 맞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산조음악을 만들어 보려는 도전정신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번 연주회는 모두 여덟 명의 메나리 연주자가 참여했는데, 그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젊은 연주가이다. 이들이 두루 아울러서 '메나리'라는 이름을 함께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현재 메나리를 이끌어가고 이태백의 노력의 결과이자 그의 음악적 저력 때문일 것이다.
진도 출신인 이태백은 앞으로 우리가 크게 주목해야 할 연주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가야금, 아쟁 등의 현악기와 북, 장구 등의 타악기를 두루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데, 특히 그의 '대아쟁'은 크게 기대해 봄직하다.
새로운 연주형태 가능성 보여준 대아쟁, 아쟁, 해금의 산조중주
우리 악기는 중간 음역의 악기가 많아 곧 목소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악기들이 대부분이어서, 국악기 자체에서 연주를 들어보면 저음부터 약한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들의 음악적 기호를 반영하듯 현재 많은 이들은 국악기의 저음부의 취약점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현재 새로이 만든 작곡된 대중적인 창작곡에 신시사이저가 등장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국악기의 저음을 보강해 보려는 의도라 해석할 수 있고, 또한 우리 현악기의 저음부를 보강하기 위하여 첼로나 콘트라베이스를 함께 편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신중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이런 저음부의 문제점을 가능한한 우리 악기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인데, 일단 '대아쟁'에게서 우리 악기의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대아쟁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연주자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런 연주가 중에서 첫손에 꼽을 연주가가 바로 이태백이라는 생각이다. 평론하는 입장에 서 있는 필자로서는 연주가에 대한 찬사를 절제하려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태백이 있음으로써 우리 민속음악의 내일이 밝다는 말은 꼭 부언하고 싶다. 그는 민속음악을 새롭게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애정과 노력, 그리고 실력의 삼박자를 고르게 갖추고 있다.
이태백과 함께 이 메나리의 음악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이가 바로 서용호이다. 서용호의 아쟁은 그의 부친이기도 한 민속악의 명인인 서용석이 인정을 하고 있다. 산조아쟁에 관한 한 아들인 서용호가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다. 서용호의 아쟁에는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것이 없어서 좋다. 그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번 무대에서 해금은 김성아가 연주했다. 대학 졸업 후 일찍이 국립국악원 민속악 연주단의 일원이 되어 나이 지긋한 어른들 사이에서 해금을 탄 김성아는, 우선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번 무대에서 이태백·서용호·김성아가 함께 실험했던 대아쟁, 아쟁, 해금의 삼중주로 연주한 산조중주―「공명(共鳴)」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는 앞으로 보다 갈고 가다듬는다면, 우리 음악의 또 하나의 새로운 연주형태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국악팬들의 관심 집중된 퉁소와 철현금의 실연
이번 연주회에서 뜻있는 국악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퉁소(퉁애)와 철현금의 실연(實演)이었다. 퉁소는 이용구가 연주했다. 대금 연주가인 이용구는 지난해 젊은 산조무대에서는 단소산조를 연주해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퉁소산조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관악기 중에서 대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퉁소는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퉁소는 탈춤의 하나인 북청사자놀이의 반주음악으로만 쓰이고 있는 정도이다. 70년대 민속악의 명인이었던 한범수가 퉁소산조를 만들어 무대에서 연주한 바 있으나 이후에는 뚜렷하게 무대에서 퉁소산조를 연주한 기억이 없다. 현재 퉁소는 북청사자놀이의 반주음악으로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데, 이런 '사라져가는 악기' 퉁소가 젊은 연주가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철현금을 연주한 이는 유경화이다. 그는 '메나리' 이외의 연주단체에서는 거문고와 타악기의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일찍이 사물놀이의 초창기 멤버로 요절한 김용배에게 쇠(꽹과리)를 배운 바 있는데, 젊은 여성으로서 쇠를 유경화만큼 잘 치는 연주가는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거문고였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철현금(鐵絃琴)을 연주했다. 철현금은 과거 줄타기의 인간문화재였던 김영철이 만든 악기로, 기타와 거문고의 특성을 두루 합쳐 놓은 악기라 평가할 수 있다. 연주법은 거문고와 비슷하고 음색은 기타와 비교될 수 있는데, 특히 작은 술대로 만들어내는 농현은 때로는 하와이언 기타를 연상하게 한다. 김영철이 거문고(현금)를 바탕에 두고 만든 개량악기인 철현금은, 과거 허희·안향연·성창순 등이 종종 타기도 했으나, 오랫동안 철현금을 공식적인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그는 가야금 연주가인 임경주에게 철현금을 배웠다고 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거문고(현금)와 함께 이중주인 거무고병주(거문고·철현금 이중주)를 연주했다. 한갑득류 거문고산조에 바탕을 둔 이 거문고병주는 하지만 아쉽게도 음악적인 구성은 다소 지리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거문고와 철현금의 유사성과 차이성이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선율과 음역에 보다 고민했다면 더 좋은 연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며, 아울러 병주에서 철현금의 비중이 보다 높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거문고병주의 매력이 객석에 잘 전달되지 않은 원인 중에는 음량적인 밸런스도 무시 못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악기는 음량이 적은 관계로 마이크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 거문고병주에서는 철현금과 현금의 음량적인 밸런스가 무너져 있었다.
거문고를 연주한 허윤정은 연주력이 점점 성장할 수 있었다. 허윤정의 거문고를 비유한다면, 그는 이제 해서체를 완전히 습득하고 전서체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가락의 굵은 줄기를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성실하게 타던 '뼈'와 같은 음악에서, 장단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라거나 장단을 피해 가는 노련미가 돋보이는 '살'을 붙인 음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남도(전남대) 출신의 두 명의 신예 연주가를 만나는 것도 큰 반가움이었을 것이다. 피리의 박경현과 가야금의 문경아가 그 주인공이다. 박경현은 볼수록 그 모습이나 성격이 피리와 참 어울리는 연주가라는 느낌이다. 다른 무대를 통해 박경현의 피리를 들은 바 있었던 필자는, 그가 나이에 비해 기량이 뛰어난 신인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식적으로 첫 데뷔를 하는 중앙무대에서는 그가 저마다 내로라 하는 젊은 연주가들 사이에서 다소 위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 박경현의 피리성음은 참으로 듬직하다. 그는 피리를 통해서 잔재주를 피우려 하지 않는 모습이 늘 보기에 좋다. 피리가 '피리다운' 것은 어쩌면 그 '뻣뻣함'에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는 피리의 거칠 것 없는 옹골찬 성음을 마음 속이나 머리 속에서는 이미 터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번 연주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연주자는 문경아였다. 그는 현재 전남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라 하는데, 중앙무대에서 가야금산조를 연주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는 지금 당장 기성 독주자로 나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가야금으로 만들어내는 산조적인 성음이 관객은 좋았다. 현악기인 가야금은 연주중에 많은 농현(弄絃)을 한다. 그리고 이런 농현 때문에 필연적으로 연주중 가야금줄이 조금씩 풀리거나 안족이 조금씩 움직인다. 따라서 가야금 연주자는 연주중에 음정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데, 문경아는 가야금으로 아주 정확하게 음정을 내고 있다. 국악인들 사이에서는 종종 하는 말이지만, 그가 정말 '남도 출신'이기 때문에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만큼 연주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산조음악을 배스린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산조음악이나 판소리음악에 농익어 있는 전라도 사투리의 율조라거나 강약을 자연스럽게 터득했기 때문에, 그토록 능숙하게 줄을 가지고 놀 수―농현(弄絃)이라는 원래의 의미가 그렇듯이―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해주었다.
산조음악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이번 젊은 산조에 무대에 오른 여덟 명의 연주를 보면서 느낀 것은, 산조음악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음악은 필연적으로 어떤 시대의 전반적인 조류나 당시 시대의 음악적 미감(美感)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하겠는데, 이번 산조연주에서 느낀 것은 '이 시대의 젊은 산조'는 가락이 무척 깔끔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산조가 깔끔해졌다는 것은 산조음악에서 불필요한 장식음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는 말도 되고, 또한 서구음악의 '앙상블'처럼 많은 연주자들이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염두에 두고 잘 들어가면서 연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물론 과거 연주자들의 '시나위합주'나 이번 무대에 오른 '산조합주'의 음악적인 속성의 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메나리' 연주에는 다른 사람의 가락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락과 음량을 절제할 줄 하는 미덕이 있었다.
우리 음악계의 늘 싱그럽게 피어 있는 꽃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메나리'에게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산조음악을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과거 산조를 만들어 냈던 사람들은 기존의 음악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가 있었고 또한 당시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인 기쁨과 슬픔을 음악적으로 성숙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산조라는 양식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타성적인 구습에서 벗어나 새것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바로 '산조'인 것이다. 이제 '메나리'를 비롯한 젊은 연주가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산조음악의 형식이나 선율 못지않게, 산조음악에 내재되어 있는 내용과 의도를 알아내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민중음악이라 할 '산조음악'의 내용과 형식을 잘 이해하고 있는 '메나리'의 젊은이들에게, '이 시대의 참된 민속음악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그 해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