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의 기반조성과 발전방향
서연호 / 고려대교수
■ 두레축제의 쇠퇴
한국 전통문화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개념으로는 두레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두레는 농어촌의 생산을 위한 공동체 및 노동조직으로 좁게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개념은 경제학자들이 두레의 활동양상과 목적, 조직, 역할 등을 생산적인 측면과 의식주의 측면에 비중을 두고 논의해 온 데서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일(勞動)’의 경제 사회적 가치가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두레는 이런 노동공동체, 생산공동체적 성격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격을 복합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두레가 노동공동체적 성격 이외에 방위공동체, 건설공동체, 교육공동체, 보건공동체, 그리고 축제공동체로서의 성격도 겸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두레의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역할을 정서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뒷받침해주고 결집시키는 상징적 의식(儀式)이 바로 축제였다. 축제공동체라는 개념은 제사공동체, 의례공동체, 유희공동체, 풍속공동체, 혹은 의식(儀式)공동체라는 용어로 달리 표현될 수 있다. 두레는 공동의 제사대상 혹은 신앙대상을 지님으로써 집단의 번영과 다산을 기원하였고 정신적인 안정과 마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각종 의례는 삶의 내용과 의식(儀式)과 지향성을 신성하게 지속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두레는 가능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함께 놀고 함께 연희(演戱)하였으며, 이러한 유희들은 세시풍속으로서 전승되어 왔다. 매년 주기적으로 새로운 기원 내용을 지니고 신성하게 치루어진 축제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상징적으로 되살아나는 의식이었다. 전통문화에서 두레와 축제가 분리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사상 처음으로 본격적인 근대화가 추진되면서 한국의 두레문화는 불가피하게 심대한 타격과 변화를 맞아야 했다. 물론 일제시대, 광복, 6.25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토지제도와 생산방법, 생활양식의 변화와 영향에 의하여 두레 자체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수반되었지만,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정책의 전면적인 가동은 수천 년간 골격을 유지해 왔던 두레에 엄청난 충격과 변신을 강요하였다. 80퍼센트의 국민이 농어촌에서 살아왔던 기조가 급격히 역전되는 도시화, 이농화, 산업화의 시대를 맞았다. 한국민에게 근대화는 오히려 때늦은 몸부림이고 절실한 시대적 요구였으나 상대적으로 전통 두레문화의 붕괴와 파괴는 곧 심각한 가치관의 상실과 혼돈과 무질서와 갈등을 초래하였다.
두레문화의 변화와 붕괴는 자연 전통축제의 변질과 상실로 이어졌다. 현재도 문화체육부가 주도하고 있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약칭 전국대회)는 한국 축제연희의 잔존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대회는 1958년 8월 장충단 육군체육회관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축제로서 하회별신굿놀이와 은산별신제, 그리고 각 지역의 축제에서 공연되었던 다수의 연희종목들이 참여하였으나 그 당시에도 원형의 손상이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노정되는 상태였다. 그러나 일제시대 초기, 비교적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던 두레에서 축제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수 생존한 것은 향후 전통 축제를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 정국의 혼란으로 2년간 중단되었다가 제2회 전국대회는 1961년 9월 덕수궁에서 재개되었다. 그 이후 1995년 제36회 공주대회까지 연례대회로 개최되었다. 전통문화의 보전과 계승이라는 제3공화국의 문화정책이 이같은 전국대회를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정책은 당시 저항적인 지식인들로부터 독재적인 군사문화를 엄폐시키려는 저의에서 발생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급격히 소멸되어 가는 두레문화를 재생시키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1967년 제8회 전국대회로부터 공설운동장 같은 넓은 장소에서 개최됨으로써 소규모의 연희종목만이 아닌, 대규모 축제의 모습과 관련 연희종목들이 다수 발굴, 본격적으로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 축제의 혼미와 혼돈
이같은 전국대회가 매년 새로운 복원 종목을 추가하면서 현재까지 대규모의 행사로 계승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아직도 한국인에게 강인하게 잔존하고 있는 두레문화 의식과 풍부했던 축제의 유산을 들 수 있다. 장년층과 노년층 세대들에게 과거의 풍부했던 축제 문화는 여전히 즐겁고 바람직한‘놀이문화’로서 강인한 향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에게 축제는 ‘마음의 고향’‘고향에로의 회귀’인 것이다. 둘째로는 지난 30년간을 주도해온 군부정권의 강력한 동원력을 지적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급격히 영세해 가는 농촌의 노동력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북돋는 한편, 정책적 차원에서 전통문화를 보전, 계승시키고 아울러 농촌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한 방법으로서 국고를 들여 경연대회 형식으로 전국대회를 시작하였다. 그러한 형식은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셋째로는 이상과 같은 두 요인이 한국인들의 잠재적 기능과 지역경쟁심과 자긍심을 동시에 촉발시켰다. 중앙정부에서 주는 적은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망각하거나 은폐시켜왔던 자기만의 기능과 기술을 세상에 과시하고, 자기 지역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지역적 자존심을 재발견하며, 지역인의 단결을 북돋는 계기로써 전국대회는 큰 자극제가 되었고 활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그간의 노력과 과정에도 불구하고, 과연 한국에는 전통적인 우레의 축제나 민속놀이나 민속연희가 얼마나 현지 및 현장에 제대로 살아남아 있는지, 이 시점에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두레축제, 향토축제는 현재 원형대로 살아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는 아마도 누구나 당황하고 주저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필경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낼 것으로 짐작된다.
1960년대 이후 전통축제의 복원과 더불어 새로운 축제들이 많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축제들은 ‘○○제’, ‘○○문화제’,‘○○예술제’, ‘○○축전’, ‘○○잔치’등의 명의로 불린다. 새로운 축제들은 그 나름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행사의 대개가 10월에 이루어진다. 제3공화국은 10월을 ‘문화의 달’로 정하고 문화예술의 중흥을 정책으로 표방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하여 각 지역에서는 10월에 이러한 관제(官製) 축제적 성격의 행사가 마련되고 점차 성행하였다. 행사에서는 대개 그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기릴만한 대표적인 인물을 대상으로 하여 제사를 지내고, 그것이 끝나면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민속놀이와 연희, 전시회와 강연, 백일장과 장기자랑, 오락과 공연 등을 준비한다. 행사의 주최자는 지역의 문화원으로 돼 있지만 대체로 행정관서 주도로 이루어지고, 고인의 사당, 운동장, 공원, 고수부지, 회관, 실내체육관 등 여러 장소가 행사장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축제들은 이미 순수한 두레문화의 성격을 벗어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른바 ‘문화제’라는 축제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농촌문화와 도시문화, 노.장년층 문화와 청소년층문화, 혹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온통 뒤섞인 혼합형을 드러낸다. 개성이 없는 축제, 정신 부재의 무질서한 행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성공적인 복원 사례
이상과 같은 혼미와 혼돈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이후 새로 생긴 축제 가운데서도 몇 개 지역은 훌륭한 축제로서 정립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전남 진도의 영등제는 매년 4, 5월 중 고군면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마을 사이에 나타나는 갯벌 노출시를 기하여 벌어지는 축제로서 진도 주민만이 아니라 전국민, 심지어는 외국인들까지 수만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행사이다. 이 행사는 대자연의 신비와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아직도 풍부하게 보전, 계승되고 있는 진도에서 그곳의 각종 민속적인 연희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데서 향토성을 빛내고 있다. 넓고도 깊은 바닷물이 갈라지는 우주적 장관과 더불어 농악, 들노래, 강강술래, 북춤,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등이 신명지게 연행된다. 참여자들은 오늘날 다른 지역에서 좀처럼 체험하기 어려운 한국적인 원형성을 여기서 찾게 된다. 이러한 진도의 축제야말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몇 안 남은 인류사적인 유산으로서 귀중하게 평가된다.
여수의 진남제와 충무의 한산대첩제는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가리는 한려수도의 대표적인 축제다. 5월에 열리는 진남제는 충무공에 대한 유교식 제사 이외에 충무공 사당굿, 용신맞이 풍어굿, 현천의 소동패놀이, 농악경연대회, 궁도대회, 그네뛰기 등이 연행된다. 특히 모든 시민들의 성원과 참여 가운데 전개되는 등불시가행진은 장관을 이루며, 여수 주민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전국의 대표적인 행렬축제다. 충무공의 혼백을 무조신(巫祖神)으로 섬기는 사당굿은 매우 특이로운 자료적 가치가 있고, 아울러 소동패놀이는 드물게 잔존하는 원형적인 민속놀이로서 이채롭다.
10월에 열리는 한산대첩제는 제사 이외에 사또행차, 대풍어제, 승전무, 통영오광대놀이, 통영검무, 각종 배행진 등이 연행되고, 특히 경상·전라·충청의 삼도수군을 총집결시켜 통제영에서 거행하던 군점(軍點)이 대규모로 재연되는 것이 장관이다. 충무공의 구국의 고뇌가 깊이깊이 서린 한산섬의 수루와 삼도수군을 자애로운 어버이와 같이, 때로는 맹호 같은 기개로서 지휘하던 장군의 통제영을 사이에 두고서 대첩제는 말 그대로 생생한 역사성을 느끼게 해주는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 두 축제는 아름다운 청정 해변의 자연과 문화를 바탕으로 한 생동감 넘치는 행사이며, 배타적 감정이 잔존하고 있는 영호남 사람들이 충무공의 정신을 통해 서로 교류하고 화합하고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를 갖는다.
또한 안동의 민속축제는 10월 중 안동시 일원에서 열리는데, 명칭 그대로 놋다리밟기, 하회별신굿, 탑돌이, 차전, 궁도, 씨름, 그네대회 등 민속놀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놋다리 밝기는 정원 대보름날 달밤에 부녀자들만이 하는 행사로서 특색이 있고, 하회별신굿놀이는 인근 하회에 전승되었던 탈춤으로서 탈놀이 자체를 별신굿으로 연행한다는 점에서 원형성이 있으며, 차전놀이는 건장한 청장년들이 정월 대보름 달밤에 차전을 메고 격렬하게 경주하는데, 놋다리밟기와 대칭을 이루는 남성놀이라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이 세가지 민속놀이는 한국 전통성을 대표할 만큼의 원형성과 특색을 지니고 있기에 안동의 민속축제는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큰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기왕에 잘 돼 가는 축제라고 하더라도 개선의 여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전통축제인 강릉단오제와 복원축제인 충무의 한산대첩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강릉 단오제는 원형성이 잔존하고 있는 점이 의의 깊다. 그러나 산업화, 도시화, 국제화 되어가는 오늘날 남대천 주변에서 산발적으로 벌이는 무녀굿, 농약, 탈춤, 그네, 체육대회, 난전만을 가지고는 가치 지향적이고 창조적인 축제라고 할 수 없다. 대관령의 성황신을 받아 하산하여 시내로 내려오고, 여신과 남신을 결합시키고, 그 신들을 모신 자리에서 신을 즐겁도록 연희하면서 동시에 신에게 강릉 사람들의 일년 동안의 모든 소망을 기원하는 등 일련의 신화적 제의양식을 살려서 의미 있게 재현하는 행사가 무엇보다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왜 축제를 하는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물론 현대적인 종교갈등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단오제는 스스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이 한국적인 전통양식임을 진지하게 설득할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충무의 한산대첩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커다란 전공과 훌륭한 인격을 기리고 그것을 한국인의 정신과 교육의 지표로 삼자는 취지에서 현대적인 보편성이 있다. 한때 이충무공에 대한 추앙이 군사정권의 이데올로기라고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가치지향적 관점에서 이 충무공은 축제의 중심 인물로서 최적격자임이 분명하다. 다만 현행 한산대첩제는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제전과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축전을 현대적으로 더욱 연구하고 질서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충무공에 대한 추모제를 축제의 시작으로 하고, 환생한 충무공이 삼도수군을 통제영에서 총점검하며, 충무공을 선두로 해서 수군들이 시가를 행진하여 부두로 나아가고, 거북선과 각종 전선에 올라 전진을 치고 싸우다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모습 등을 진솔하게 재현하는 것이 바람직스럽게 여겨진다.
■ 지역축제의 활성화를 위하여
바람직한 축제의 정립은 그 사회적 기반의 조성과 격식 있는 축제를 만들려는 창조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문화적 삶과 문화적인 창조력이 축제의 기반이고, 축제는 그 사회문화의 조화된 결집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는 개개인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개인 창작, 특정 조직과 집단 발표회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공동체적, 문화공동체적 역량의 총화이고 상징이다. 여기서는 지역축제의 기반조성 및 발전 방향과 관련하여 소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전통적인 두레문화의 원형성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산업사회문화로, 민주사회 문호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에서 축제의 활성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현재의 시점에서 현실의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성을 신장시키며, 아울러 미래에의 발전을 위해서 축제를 하는 것인 만큼, 일방적인 과거에의 회귀나 복원이나 예찬은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과거의 두레공동체를 새로운 산업공동체로 발전시키고, 진정하고도 생산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정신적 토대 위에서 신화적 원형성을 찾고, 신성한 마음을 회복하는 실천적 의식으로서의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고, 지역의 문화적 특징이 살아나며, 지역의 경제에 이익이 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대대적인 참여가 성패의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지역자치체의 책임자들과 유지, 지식인들이 진실한 자세로 앞장을 서야 한다. 지난 시대와 같이 관 주도의 일방적인 행사나 소수 극성스러운 유지가 주도하는 복고적인 행사는 일시적으로는 가능해도 장기적으로 굳건한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또한 지역적 문화성이나 생산성의 신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셋째로, 현재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그간의 일정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인 지역축제의 발전을 위하여‘경연대회의 성격’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일본의 경우와 같이, 많은 향수자들을 위한 전국민속예술의 발굴과 공연을 도와주는 것은 앞으로도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연 대회의 폐지에 대응하여 각 지역에서는 자기 고장의 민속예술을 지역축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안으로서 반드시 현재보다 더욱 지원하고 육성시켜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해서 원형성이 살아 있는 민속예술을 본 고장에서 맛보게 하고, 그곳 출신들은 동시에 그 행사에 참여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로, 지역축제의 부활운동을 통하여 대대적인 귀향운동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마도 국내의 여러 일간지나 매스컴, 정부의 해당 부서나 회사, 기업체에서도 이러한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지원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지역축제가 귀향운동의 기폭제가 되기 위해서는 축제의 날짜가 가족 나들이가 가능한 명절이나 주말이나 공휴일을 겸하고 있어야 한다. 약간의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는 직장에서 휴가를 허용해 주어야 한다. 물론 축제기간에는 해당지역의 관공서나 학교, 모든 직장들이 휴무에 들어가서 진정한 공동체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
끝으로, 각 지역의 축제준비위원회는 전통성과 전문성, 조직력과 관리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명실공히 주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신임과 공정성과 자격, 축제를 축제답게 시종일관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실력, 축제를 실행하는 조직적인 힘, 그리고 축제를 제대로 차질없이 관리하는 능력 등이 선결 문제다. 어느 축제나 비용이 많이 들게 돼 있다. 돈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만 돈을 제대로 공익적으로 쓰는 것은 더욱 어렵다. 축제비용의 출납에 부정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그 지역 전체의 불명예요 문화적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