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시대에 맞는 특성 살린 주민 중심의 축제를...
송하섭 / 단국대 교수
■ 몇년 사이 많이 생겨난 지역축제 및 각종 문화행사들
인간의 유희 본능은 집단을 통하여 더욱 그 충족의 넓이를 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이 가지는 유희의 본능이 집단화하면서 마을축제가 이루어지고, 나아가서 한 지역의 축제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에는 한 사회의 중요한 문화요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 축제를 통하여 주민생활의 에너지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그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농공시필기(農工始畢期)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즐겨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근세에까지도 동리마다 동제가 있었고, 명절이면 씨족들이 모여서 제의식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풍속이 번성했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마을이나 지역 축제들이 일제하에서 인위적으로 말살되었고, 광복 후에는 경제적인 궁핍으로 복원이 어려웠던 데다가 오랜 군사정보 통치 아래에서 이러한 전통문화들이 비생산적이라는 인식으로 도외시되면서 사실상 지역축제들이 살아남기 어려웠다.
또 한가지 마치 근대화가 서구화인 양 착각했던 지도층들이 놀이나 축제조차도 서구지향적인 것으로 이끌어온 잘못으로 고유한 민속을 바탕으로 하는 축제들이 많이 훼손되고 기층민들이 즐겨 참여하는 축제들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었다.
오랜 민주화운동과 경제적인 성장에서 문화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기 시작했고, 늦게나마 잃어버렸던 우리의 전통적인 축제를 찾아보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마친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으로 이 운동은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중간에 일제나 군사정부와 같은 저해요소만 없었더라도 자연스럽게 마을 축제가 이루어지고 여러 마을이 모여서 그 지역의 축제를 지역민에 의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관에 의해서 다른 지역의 축제를 이양시키는 듯한 운동들이 많았던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가령 일찍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무슨 문화제라 해서 축제를 마련하면 그 문화제를 모방해서 거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답습하는 경향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제 지방자치의 문이 열리면서 이러한 모순들이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방자치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방 경쟁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지역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자기 지역의 경제적인 발전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발전을 도모하므로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와 군을 기초와 광역자치단체로 하는 우리의 경우 군과 군간에, 또 도와 도간에 문화경쟁을 유발하게 된다. 어떤 군에서 이러한 문화행사를 하면 그 이웃 군에서도 그같은 행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치시대가 아닐 때에는 국가나 도 나름대로 지역을 선정해서 문화운동을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군마다 행사를 마련하고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아직 문화인식이 투철하지 못하고, 행사에 익숙하지 못한 지역의 경우 자칫하면 행정관리들의 생각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행사가 마련되고 완전히 관 주도로 진행되어 행사의 주인이 되어야 할 주민은 한갓 구경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전을 비롯한 충남북의 경우에도 요 몇 년 사이에 지역축제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가 상당히 많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각 군은 물론이고, 대전의 경우 각 구마다 축제가 마련되고 있다. 차츰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예산은 관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사실상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관의 입김이 세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관광상품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심지어 관광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자기가 갔던 지역의 관광상품을 선물할 때 집에 돌아와서 사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관광상품의 개성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문화축제의 경우에도 그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어느 축제를 가나 그게 그것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이 고장의 문화축제 행사를 일별하고 몇몇 특성 있는 행사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 충남북의 문화예술제들
문화체육부에서 펴낸「96 지역 문화행사 현황」에 의하면 대전광역시의 경우 11건, 충청북도 18건, 충청남도 37건, 도합 66건으로 나와 있다. 이 가운데 예술인들만의 행사인 미술경연이나 무용경연 등 예술행사와 특정한 위인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행사, 그리고 특정 지역의 전래 민속행사 등을 제외한 비교적 종합적인 주민축제의 성격을 지닌 문화축제는 대전에 3건, 충북에 10건, 충남에 18건으로 31건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위인을 가리기 위한 행사가 발전하여 이제는 10여 가지의 종합적인 주민행사를 겸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 것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인을 가리기 위한 행사나 전래 민속행사가 순수하게 그 지역의 특성을 지닌 행사이지만 이 글에서 요구하는 것은 문화축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행사를 중심으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 대전광역시
대전시가 충청남도로부터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부터 실시되었던 축제는‘한밭문화제’였다. 원래는 충청지역에서 유일하게 대규모로 벌어졌던 백제문화제가 부여에서 다시 공주로 도청소재지인 대전에까지 확대되었던 것인데 1983년 한밭문화제로 발전된 것이다. 처음에는 관 주도로 운영되었는데 이제는 문화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소요 예산은 시에서 배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의 의지가 많이 담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총 산하의 각 예술단체와 문화원 등에 행사를 계획하게 하고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자체의 기획에 따라 행사가 마련된다.
근래 대전 EXPO 개최를 계기로 과학행사가 추가되기는 하였지만 다른 지역의 축제에 비하여 뚜렷한 특색을 찾기가 어렵다. 자생적인 출발이 아니어서 시민의 참여가 극대화되지 못하고 있어서 관계자들만의 축제로 인식되고 있는 경향이다. 전 시민의 관심을 모으는 주제 찾기와 지역의 산업과 연계된 행사, 그리고 대도시인 만큼 국제적 규모의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밭문화제 다음으로 유성구의‘온천문화제’를 꼽을 수 있다. 올해로 8회째가 되는데 이는 유성이 온천지역이기 때문에 개발된 축제이다. 노래자랑, 백일장, 국악공연, 불꽃놀이 등 행사에 머물고 있는데 정작 온천을 이용한 외지인을 유인하는 수준 높은 행사는 없다. 온천수의 시설을 널리 알려서 이 기간에 온천을 즐기기 위하여 관광객이 몰려올 수 있는 행사의 개발이 아쉽다.
올해로 5회째나 되는 대덕구의 신탄진 봄꽃제가 있다. 이는 신탄진 연초제조창을 중심으로 한 거리에 봄이 되면 벚꽃이 만발하여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꽃을 즐기려 모여들게 되었고, 그래서 축제를 가지게 되었다. 늦게 출발했지만 가장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합동결혼식이나 사생대회 같은 것도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행사여서 그만큼 호응도도 높다.
한밭문화제가 관이 주도해서 만든 축제라면 온천제나 봄꽃제는 지역 특성에 따라 자생적으로 발전한 축제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금년부터 중구의 상가에‘으느정이한마당’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대전 상가의 단결과 번영을 기원하는 놀이판으로 짜여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대전의 경우 각 구마다 축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 하겠다.
● 충청북도
충북의 경우 단연 위인들을 기리는 축제가 많다. 근대 작가인 이무영을 기리기 위한 음성의‘무영제’, 시인 정지용을 기리는 옥천의‘지용제’가 있고 임진란 때의 의병 조헌장군을 기리는 옥천의‘총열제’, 조선조 음악의 대가인 난계를 추모하는 영동의‘난계예술제’, 우륵 선생을 추모하는 충주의‘우륵문화제’, 역시 의병을 기리는 제천의‘제천문화제’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지역 특산물을 자랑하는 행사가 축제마다 끼어들고 있는데, 단양군의 마늘아가씨, 보은군의 대추아가씨, 옥천군의 포도아가씨, 괴산의 고추아가씨 선발대회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더라도 충북에 얼마나 많은 특산물이 생산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고, 또 주민들이 선조를 기리는 마음씨가 무척 곱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북의 도 단위 축제는 아무래도 올해로 39회를 맞는 충북예술제와 16회를 맞는 청주시민의 날 축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충북예술제는 예술행사를 주로 해왔었는데 중간에 향토축제를 겸한 것으로 올해에는‘강서농자놀이’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전도민의 관심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고, 오히려 청주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의 날 축제가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무심천 고수부지에서 펼쳐지는 이 행사는 민속놀이, 무용, 합창, 국악, 교향악, 등이 연주되어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역 특성을 살린 축제로 우리의 눈길을 모으는 것으로는 수안보 온천의‘수안보온천제’와 단양군의‘소백산 철쭉제’, 보은군의‘속리산축전’을 들 수 있겠다. 수안보 온천과 속리산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관광지이기 때문에 성수기에 축제를 가진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전국적으로 이 기간에 이 축제를 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찾아오기에는 아직 그 행사의 특성이 뚜렷하지 않다. 앞으로 소백산 철쭉제는 잘만 개발하면 새로운 관광지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위인을 기리는 축제의 경우 앞으로 보다 심도 있는 학술행사를 겸한다면 학계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특산물을 내세운 축제의 경우 유통과 관련된 행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면 보다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회를 맞는 진천의‘상산축전’에는 걸마산 의병놀이와 소두머리 용신놀이가 눈길을 끈다. 제천, 청원, 괴산, 음성의 문화제들이 농악시연, 가장행렬, 각종 전시 등 비슷비슷한 종목들인데 비하여 진천의 전통적인 놀이 시연은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 충청남도
충남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축전은 역시‘백제문화제’이다. 올해로 42회를 맞는 이 축제는 부여가 백제의 고도이므로 제일 먼저 도민적 관심을 모았고, 충남도로서는 전국적인 문화행사를 계획할 때 백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여와 공주가 윤번으로 개최해 왔는데 1994년부터는 백제 도읍지인 위례성-웅진성-사비성으로 이어지는 백제 천도행사를 가짐으로써 사실상 전국적인 행사로 커가고 있다. 처음에는 부여군민들이 부소산에 백제 3충신 제단을 설치하고 제향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한 것인데 관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제는 도 단위의 행사로 발전되었다.
아직도 학생 위주의 행사, 과다한 나열식 행사, 특색을 찾기 어려운 행사 등의 지적을 받고 있지만,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는 몇 안되는 지역행사임에는 틀림없다.
문화유적이 산재되어 있고, 찬란하였던 백제 고도인데다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 준 지역이기 때문에 보다 과감한 시설과 홍보, 그리고 학술적인 행사로 발전시킨다면 국가적인 문화사업이 가능한 축제라 할 것이다.
충남의 경우 해안선이 인접한 지역이 많아서인지 제의적인 축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당진의‘안섬풍어덩굿놀이’, 태안의‘황도봉기풍어제’, 서산의‘볏가릿대놀이’, 공주의‘탄천장승제’, 정양의‘동화제’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풍어를 기원하거나 동민의 안녕, 혹은 풍년을 비는 제의에서 비롯한 놀이들이다.
지방 특산물과 관계되는 축제로는 연기의‘도원문화제’, 서천의‘저산문화제’, 천안의‘입장 거봉포도제’, 금산의‘인삼제’, 예산의‘능금축제’, 천안의‘성환배축제’등 다양하며, 위인을 기리는 축제로는 충무공 탄신기념행사를 겸한 아산의‘아산문화제’,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는 예산의‘매헌문화제’, 백제말 무명장졸을 기리는 부여의‘임천 가림성 충혼제’, 시인 한용운을 추모하는 홍성군의‘만해제’,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천안의‘봉화제’, 상록수 작가 심훈을 추모하는 당진의‘상록문화제’들이 있고, 전통적인 민속을 보전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는 부여의‘은산별신제’, 당진의‘기지시 줄다리기’, 논산의‘연산 백중놀이’가 있고, 공주의‘동학사 꽃축제’가 새로운 축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행사는 축제 이름에 해당하는 한두 가지 행사를 제외하고 거의가 비슷비슷한 행사들로 이어지고 있어 특별히 관심을 모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외에도 보령의‘대천해변제’, 홍성의‘홍주문화제’, 보령의 ‘만세보령제’, 서산의‘서산문화제’, 천안의‘삼거리문화제’등이 종합적인 축제의 형식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이들 또한 민속놀이, 백일장, 각종 전시, 농악, 국악, 공연 등 비슷한 행사들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 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 필요
이상으로 대전을 포함한 충청지역의 문화축제에 대하여 일별하여 보았다. 원고의 주문에는 성공사례를 쓰도록 했으나 모두가 나름대로 지역의 축제를 위하여 노력들은 하고 있으나 두드러지게 성공한 사례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실현이 일천한데다가 아직 자치단체에서 이런 행사를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데 세련되지 못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문화원 등 문화단체에서 행사를 계획해도 지방의회 의원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어서 오히려 자치시대 이전보다도 더 어려운 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고, 옆에 행사만 모방할 뿐 자기지역의 특성을 찾아낼 만한 역량들도 부족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문화축제가 실패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점차적으로 주민이 참여하는 축제,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축제, 산업과 연계되는 생산적인 축제로 자기 위한 발판들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에 몇 가지 제언을 한다면 첫째로 행정관련 가운데 이런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전문인력이 있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그를 위해서는 교육도 중요하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둘째로 도 단위의 축제와 군 단위의 축제를 구분하여 적어도 도 단위의 축제는 국제적인 수준이 되도록 하고 군 단위는 전국적인 수준이 되도록 특성화해야 할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나 거의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나열식 행사를 한다면 축제의 의미가 점점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시대의 문화적인 욕구가 충족되면서도 주민들의 한마당 놀이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문화적 단계를 한 차원 높이는 축제들로 발전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