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지방자치시대의 지역문화축제. 영남지역

원형보존과 현대성 맞물리는 효과적 기획을…




이하석 / 영남일보 기자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축제

축제만큼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축제는 요즘의 형식적이고 나열적인 각 시·도 문화축제 같은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온 일종의 대동놀이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문화, 민속놀이 또는 민속축제,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각 지역의 각종 축제들이 멀리는 70년대 이전부터 가깝게는 최근의 지방시대 바람을 타고 생겨나 치러지고 있다. 영남지역에서 치러지는 이러한 축제는 특히 1시·군 1문화제 정책에 따라 경북도내의 23개 시·군을 비롯, 5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축제들은 각 지역의 상징적인 명칭을 따서 ○○문화제니, ○○제니, ○○축제니, ○○문화예술제로 불린다. 이들 축제들은 대부분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처럼, 가을, 그중에서도 10월에 주로 열린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에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문화제를 찾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신라문화제는 지금처럼 격년으로 열리지 않고 해마다 열었다. 필자가 신라문화제를 찾았던 것은 이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고교시절 신라문화제 백일장은 어린 글쟁이들에게는 대단한 기대를 안겨주었다는 기억이 난다. 백일장은 주로 황성공원에서 치러졌는데, 백일장을 치른 후에는 당일 오후에 시상식이 있어서 이를 기다리며 공원 일대에서 치러지는 각종 놀이들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신라문화제에 대한 기억은 그런 것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비록 신라문화제의 백일장이 우리들에게는 대단한 추억거리라고 해도 그것이 축제라는 의식으로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는 이러한 감정 이상의 것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 많지 않을 터이다. 각 축제에는 이런 류의 행사들이 어디에나 있다. 백일장만 하더라도 안동민속축제나 밀양 아리랑제를 비롯하여 많은 곳에 축제의 일환으로 끼어 있다. 백일장뿐만 아니라 미술실기대회, 음악경연대회들도 어느 축제에나 꼭 끼어 있다. 이와 함께 각종 민속잔치 속에는 국악경연대회나 각종 전시회, 미인선발대회(이 경우는 각 지역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이른바 능금아가씨 선발대회, 화랑 원화 선발대회, 복사꽃아가씨 선발대회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치러진다) 같은 행사들이 꼭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밖의 잡다한 놀이들과 체육대회 같은 것들, 흡사 백화점 식의 나열 같다.

신라문화제와 김해의 가락문화제를 비교해 보자. 지난 1994년 10월에 열린 제24회 신라문화제는 모두 6억 4천2백만 원의 예산으로 사흘간 치러졌는데, 내용은 서제 등 9개 부문에 37개 종목에 걸쳐 다채롭게 펼쳐졌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결산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관중 동원에는 성공했으나 이 축제가 벽두부터 떠벌린 도민축제로서의 승화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길놀이의 조형물은 조잡했고, 무엇보다 예산 부족으로 이 행사가 끝나자마자 다음 2년 후의 행사 걱정을 해야 했다. 한편 가락 문화제도 대개 사흘간 열리는데, 석전(石戰)놀이 등 40여 개의 각종 문화·예술·민속행사가 치러진다. 김수로왕의 탄생설화를 재현한다든지 가야금공연대회, 시립합창단 공연 등 지역 특성을 살리려 노력하지만 신라문화제와 마찬가지로 종류만 많을 뿐 집다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김해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김수로왕 즉위식 경축기념행사는 생산적인 의미보다는 1회적인 소모성이 짙은 행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이런 식의 행사 위주 축제는 어느 지역축제나 대동소이하다. 대부분의 축제는 축제전야 행사와 경축식 행사를 통해 지역특성을 부각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지만 그밖의 행사는 십중팔구 주관단체의 행사에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축제가 갖는 이런 잡다성이 왜 생겨났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구 시민축제를 두고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각종 행사들이 이른바 관변단체들이 주로 중심이 되어 예산을 배정받아 치르는 극히 형식적인 것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부문의 행사들은 대부분 예총 산하단체들의 몫이다. 문학행사, 미술전시회, 음악 및 연극공연들은 으레히 관의 예산을 타서 그 한도 안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치룬다. 그런 만큼 이들의 행사는 보편성을 찾기가 어렵고, 기획력도 없어 자발적인 청중 동원도 잘 되지 않는다. 이런 형편이니 잡다한 행사들은 그야말로 통일성도 없고, 의미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설득력도 없다. 축제가 기획되고 예산은 책정되었으니 그 한도 안에서 이것저것 일들을 벌여 보자는 극히 안이한 발상이 그 안에서 비친다. 이러한 형편은 전국의 어느 축제에서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지역축제가 갖는 의미의 일반화 또는 유행성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서 기인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진정한 축제는 지역의 문화적 소산이며 역사적 소산이다.

진정한 축제는 축제가 갖는 이른바 ‘취한 영혼의 자유로운 풀어놓음과 어울림’이 이루어지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즉흥적인 기획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각 지역의 문화적 소산이며, 그런 만큼 역사적 소산이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져 내려온 것’속에서 찾아 확대하고 입체화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또한 가장 바른 태도이다.

영남지역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다. 우선 떠오르는 것으로 통영오광대놀이, 고성오광대놀이, 영산줄다리기, 통영승전무, 경산한장군놀이, 동래야류, 수영야류, 안동차전놀이, 안동하회탈춤 , 동해안 별신굿 등이 있다. 이들 놀이(제의까지 포함해서 놀이로 본 것이다)들은 모두 대동적인 놀이로서의 보편성과 지역성 그리고 전체적 의미로서의 제의성들을 잘 갖추고 있다. 그 지역에서 그 놀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 지역 주민들을 끌어 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한 것들이다. 이러한 놀이들은 물론 지금도 무형문화재나 다른 것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축제로 승화되어 확대되지 못하고 일률적인 지역축제의 일환으로 축소되어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각 지역 축제에서의 이런 놀이 공연은 흡사 민속경연대회에서의 공연처럼 거두절미한 토막공연이 되거나 이상하게 짧게 변형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놀이로서도 완전하지 못하며, 제의로서도 불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놀이에는 주민들과 멀리서 찾아온 이들의 완전한 참여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기껏해야‘아 저것이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런 것이야’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종의 저급의 계몽성밖에 줄 것이 없는 그런 것이라고 봐야 한다. 더욱이 그들 각각의 놀이들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던 이른바 결정적 시기에 그 놀이가 적절하게 펼쳐지지 못하고 가을의 축제에 끼어‘공연’됨으로써 그 어정쩡함이 더해지는 것이다. 전국의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대부분 그런 것이라고 봐도 틀림없다.

지역축제의 바람직한 모습은?

그렇다면 지역축제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무엇보다 잡다한 구색 갖추기를 벗어나야 한다. 축제의 시기도 지역별로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때를 택해야 한다. 한 축제가 정월 대보름에 열려야 한다면 그때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고 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하나의 축제의 절대성을 인정하여 그 절대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이를 확대하고 대중화하는 관의 지원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못하고 잡다한 구색 갖추기로 떠벌리는 축제는 축제의 냄새나 피우는 형식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런 각각의 행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축제라는 이름을 빌릴 것 없이 각 행사마다 그때그때 지원하여 열리게 하면 된다.

제안한다면 각 지역이 가지는 축제는 그것이 갖는 원형을 보존하면서 이를 현대적인 놀이로 확대하는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도록 효과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전승보존을 위한 예산과 이를 새롭게 축제 화하는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여 지원함으로써 그 놀이를 지키면서 동시에 확대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전승자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축제로서의 유지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영남지역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축제로 필자는 영산 줄다리기를 꼽는다. 경남 창녕 영산에서 전승되어온 이 민속놀이는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단일품목으로 축제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물론 이 놀이의 전승자인 조성국의 집념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놀이의 의미를 그대로 살림으로써 공감대를 넓혔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는 이를 지키려는 관과 주민들의 열의가 식음으로 말미암아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 이 놀이는 원래 넓은 보리밭에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학교 운동장에서 하며, 줄의 크기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가늘어 졌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산읍 서쪽의 넓은 논, 보리밭에서 줄을 다리었으므로 줄의 굵기에 제한이 없어 그 열의에 따라 사람의 몸둘레 만큼이나 굵었었다. 그러나 놀이 장소를 영산 중학교로 옮기면서부터 운동장의 넓이에 맞추어 줄 한쪽의 길이를 40미터로 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따라서 줄의 굵기도 가늘어졌다. 원형 보존의 어려움이 실감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정도이나마 영산 줄다리기는 그 원형을 지키려는 노력에 비례하여 관심을 끌고 구경꾼들도 많이 모여 그야말로 축제로서의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살린 희귀한 예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