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관광이 공존하는 세계적 이벤트로...
허영선 / 시인
■‘축제의 섬’이란 이름 붙은 제주
칼칼한 바람이 쌓아올린 화산섬, 일만팔천신들의 고향, 제주에 축제다운 축제라 이름할 만한 것이 있다면 글쎄, 그것은 각박한 생활 중간중간에 간혹 구성지고 간혹 한서리게 늘어지던 노동요의 축제말고 다른 무엇이 있었겠는가. 지금 노년인 사람들은 축제를 벌일 여유조차 없이 살았던 각박함 속에서 기껏 흥이 나면 이 지역 토속 항아리인 허벅을 장단 삼아 두드리며 즉흥 사설을 붙인 노동요와 어깨춤을 들썩였던 게 전부였다.
그러나 제주도의 선택받은 자연은 바로 온갖 축제의 배경으로 놓여질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게 한다. 봉긋한 오름, 바다, 돌밭, 억새밭…… 그래선가, 꽤 늦은 감이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제주도에 ‘축제의 섬’이란 이름이 튀어 나오고 있다. 제주도적인 이벤트야말로 세계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봄의 화신이 남극을 맨먼저 찾아오면서 사람들은 거친 노동에서 짬을 내 봄날의 축제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축제들은 도민과 관광객들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봄날엔 벚꽃축제와 유채꽃 큰잔치 그리고 칠선녀축제가 몰려 있다. 한여름밤의 해변축제, 또 가을의 억새꽃 큰잔치와 한라문화제가 펼쳐진다. 최근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제는 10여 개나 된다.
4월 초입만 되면 벚꽃 길을 수놓고 있는 제주시 전농로에서 벌어지는 벚꽃잔치는 금년 들어 다섯 번째로 치러졌다. 야간 볼거리가 거의 전무한 이 지역에서 이 잔치는 그나마 밤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지난 4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벌어진 이번 축제의 관람인원은 20여만 명. 관람객 수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주 벚꽃 큰잔치’는 지역의 차별화된 전통축제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축제의 장소가 교통혼잡이 심한 거리여서 축제기간 동안 주로 장사를 하기 위해 간이음식점 등이 주변 일대에 설치돼 민원이 끊임없다. 주최측인 제주도관광협회 역시 생활소음, 교통문제 등으로 인해 이곳을 축제장소로 하는데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전 개최가 불가피한 시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을 위해서는 제주종합경기장이 가장 적격이 아니냐는 여론도 최근 들어 강력하게 일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열린‘칠선녀축제’는 올해 두번째였다. ‘세계인을 제주 품안에’란 케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중문관광단지에서 이 축제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펼쳐졌다. 중문 칠선녀의 전설을 토대로 마련된 이 축제에는 연인원 10만여 명이 참여했고 산남지역 봄 축제로서 관심을 끌고 있다.
■ 세계인을 제주 품안에-칠선녀축제
이 축제는 서귀포시가 국제적 관광지로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에 소개되면서도 이렇다 할 관광이벤트가 없던 중 마련됐다는 점에서 관광식품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축제 첫날에는 펼쳐진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는 칠선녀가 보름달이 뜨던 날 구름을 타고 천제연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돌아갔다는 칠선녀 전설을 재연,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작년에는 어설픈 기획으로 도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던 이 축제는 젊은 세대를 위한 축하공연과 비록 취소됐지만 번지점프가 기획됐었다. 이 행사 또한 축제라 이름하기엔 협소하다. 축제장소가 너무 비좁고 교통통제에 따른 주차문제 해결이 문제이며, 우 천시에 대비한 대안이 없었다는 것. 가설무대에 온 관중이 집중돼 관광단지 주변 활용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여름엔 주로 문화예술 공연 쪽에 축제의 방향이 모아진다. 이는 제주도에 야외무대인 해변공연장이 1994년 3월 탄생돼 이것을 활용하는 공연행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본격적 축제의 장을 연 이 ‘한 여름밤의 해변축제’는 주로 제주시가 주관해 벌이고 있는 데 날짜와 각 공연일정을 정해 한달 내내 벌어진다. 이곳에서는 음악·무용·미술전시 등을 할 수 있다. 관중의 이목이 쏠리는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작년만 해도 7월 12일부터 8월 26일까지 대규모로 펼쳐졌다. 이곳에서 제주국제관악제까지 펼쳐져 일본과 홍콩 등 국내외 20여 개 관악대가 출연, 흥을 돋구기도 했다.
■ 제주의 10월-한라문화제
제주의 10월엔 한라문화제가 놓여 있다. 행사기간 동안 내내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발길을 끌고 있지만 주제가 보이지 않는다. 도민 축제로서는 한계가 보인다는 여론이다.
그동안 한라종합경기장 등 닫힌 공간에서 열리던 이 축제는 지난해 탑동광장에서 민속경연과 공연, 장터 등을 펼쳐 난장을 형성했다. 서른네 해째를 맞아 오랜만에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막축제, 민속예술축제, 민속놀이축제, 제주말(사투리)축제, 제주마축제, 바다축제, 미술전, 문학의 밤, 전국민요경창대회, 장애인 바둑대회, 억새꽃 큰잔치가 바로 이 축제의 메뉴였다.
이 가운데 아·태섬의 민속축제는 제주의 해안경관과 어우러져 이색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제주, 발리 해남성을 잇는 자리였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새롭게 탈바꿈한 이번 한라문화제는 지금까지 관주도형에서 벗어나 민간으로 이양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억새꽃 큰잔치’는 처음엔 도관광협회가 단독으로 열었으나 지난해는 한라문화제 기간 동안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제주시의 서부산업 도로변에 자리한 5만여 평의 이시돌목장 등을 빌려 펼쳤다. 축제의 연계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해질녘이면 둥근 오름들이 동과 서로 반짝이는 이 지역 일대는 누구든 탄생과 계절의 비감까지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걸궁공연, 무속공연, 민간음악단체인 한라윈드앙상블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다시 이 한라문화제의 장소 문제로 벌써부터 고민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이곳은 그동안 상가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빈 공간을 활용했지만, 금년 들어 대부분 상가가 들어서 버려 해변공연장을 제외하고는 활용할 마당이 줄어들었다는 데 있다.
축제는 많으나 진정한 축제문화는 어디에 있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축제엔 일단 일상적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 지역방송사의 프로듀서는“어떤 이벤트에서 제주도 무속의 하나인 도깨비놀이를 30분 동안 한 적이 있었다. 복장과 가면을 쓰고 횃불을 들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설을 풀며 해학을 자아내게 하는 이 놀이는 원래 7명이 등장하지만 20명으로 연출했다. 마음에 와 닿는 무엇이 있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한다면, 지금까지 축제는 동네잔치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가. 끝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앞으로 축제문화는 소비지향적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근간이 어디에 있는가가 깔린 대주제를 갖고 치러져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자연은 관광도 하고 축제도 즐길 수 있는 관광이벤트화가 가능한 지역이라는 데 누구든 공감한다. 자치시대를 사는 시점에서 지방의 고유한 공감대와 화합의 장으로 좋은 축제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 축제는 지역문화의 배경을 깔고 열리는 문화행위가 아닌가. 문화체험관광으로 유도하는 것이 관광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더구나 제주도가 4자회담을 제의한 한미정상회담의 장소로 1991년의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 1995년의 강택민 중국주석 등이 방문하는 등 세계속의 섬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축제의 관광이벤트화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제주도는 이러한 이점을 활용해서 섬과 섬의 거대한 연결 축제를 기획, 공을 들이고 있다.
■ 세계 28개 섬 특별초청 방안 검토중인‘세계 섬 문화축제’
‘세계섬문화축제’이다. 이 축제는 오는 1998년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를 겨냥해 최근 기본계획안을 수립, 실질적 추진단계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축제형식과 다른 이벤트를 위해 제주도는 민간 위주의 ‘섬 문화 축제 추진 기획단’을 구성 3개월 동안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이 축제는 오는 1998년 5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섬 늘 푸른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이십 일간 야외의 본 행사장을 정점으로 제주도 전역에 걸쳐 베풀어진다. 본 행사장은 목장지대나 해안가를 대형 오픈세트로 해 민속벨트화할 계획이다.
참가섬은 도단위 행정지역을 원칙으로 하고 국가단위 섬지역도 특별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하는데 참가 유치 검토 대상 섬은 28개 지역, 이 가운데 15개 섬 내외로 유치할 계획이다.
아시아지역은 오키나와, 하이난, 발리, 세부, 보흘, 푸켓, 페낭, 사할린, 마카오 등 9개 섬이며 대양주는 타이트, 타스메니아, 피지, 서사모아, 괌 사이판 등 6개 섬, 미주지역은 하와이, 뉴펀들랜드, 이사벨라, 그랜드바하마 등 4개 지역, 구주지역은 크레타, 시칠리아, 몰타, 샤르데냐, 코르시카, 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7개 섬, 세인트헬레나, 모리셔스 등 2개 아프리카지역이다.
섬 민속축제와 제주 문화축제로 분류, 참여 유도형 부대행사와 제주적인 퍼레이드 축제를 구성하게 되는데 본행사와 부대행사 퍼레이드형 행사로 나눠 진행된다. ‘섬과 인간-선들의 연대와 섬의 미래, 그리고 인간의 미래’가 바로 이번 축제의 핵심어이다.
개막식은 대형 오픈세트에서 격식과 형식에 벗어나 자유분방하면서도 단순명료한 진행을 유도하게 된다. 섬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하면서 주제 부각형 행사로 진행한다는 의도가 깃든 것.
주요 프로그램은 섬 민속춤·음악 페스티벌, 전통제례(혼례·장례 등)의식 퍼레이드, 제주무속공연, 전시행사는 섬 상징물 조각전, 민속공예품 전시회, 섬 고유의상 패션쇼, 섬들의 영상제가 된다. 제주문화 축제는 마을 또는 관광지 4∼5개 지역을 특구로 선정해 전통혼례축제나 덕수민속마을 공연, 도깨비공원, 칠선녀 레이져쇼, 물의 축제 등을 펼치게 된다. 폐막식은 행사 최종일 밤시간대에 바닷가 등에서 모든 행사를 마무리하는 축제구성으로 하게 된다.
참가 섬, 국내외 관광객이 마음껏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 마련 및 축제구성, 해안가에서 어선 2백여 척이 집어등을 켜고 서서히 해안으로 접근하면서 해안의 2백미터 전방에서 동시에 불꽃을 터뜨리는 것을 신호로 폐막축제를 시작하게 된다. 섬축제의 부대행사는 도 전역에서 펼쳐지게 된다.
제주도는 축제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유도하고 축제 참가대상 섬의 참여동기를 유발하는 한편 다른 문화생사와 차별성을 부각하고 범도민적 협조 분위기 및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장 중요한 예산문제는 확정되지 않았다.
축제준비조직은 1997년 재단법인으로 확대 개편하고 제주도지원본부를 따로 두기로 했다. 범도민지원협의회는 도내외 각계 대표 50명 내외로 하게 된다. 기본 계획은 4월중 수립했고 문체부, 외무부, 관광공사 등 유관기관 지원 협의를 오는 6월말까지 확정키로 했다. 축제준비조직위은 오는 9월경 구성하고 세부 추진계획 수립을 10월부터 12월까지 하게 된다.
■ 자치시대 축제가 지향할 것은?
축제에서 사람들이 희열을 갖는 이유는 진부한 일상성에 대한 반란이 이뤄진다는 점에서다. 이 축제의 장판에서 흥에 겨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유에 대한 갈망 탓이기도 할 것이다.
축제는 당대의 사회적 삶과 문화를 반영한다. 향토축제도 새로운 형식의 축제가 돼야 한다. 정신적인 측면이 무시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비지향적인 축제로서 그것이 결국 잔치가 끝난 후 휴지만 뒹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주의 축제가 신화로부터 연유했다면 이 신화를 현시대에 와서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자치시대의 축제는 바로 이 지역의 사라지는 공동체의식을 깨워주고 닫힌 마음, 맺힌 마음들을 풀어줄 수 있도록 지향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좀더 생기발랄한 축제로 가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돼 획기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좀더 현대화된 축제마당을 기획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민의 공감대와 역량 있는 전문 연출가들에 의한 이벤트가 기획돼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관의 적극적 지원과 각 문화예술단체의 역량결집이 필요하다. 자치시대에 대형으로 기획되는 첫 축제인 세계 섬 문화축제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세계 속의 전통축제로 나갈 가능성을 열어줄 것인가. 이 축제에 조심스런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