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포. 1 / 장보고축제

천백년 전 화려한 영광 되살려낸 장보고 축제




심재식 / 전남일보 기자

취지문은 ‘왜곡된 과거 속에 묻혀있는 한민족의 위대한 영웅 장보고의 역사적 재조명과 진취적인 민족기상 정립을 그 추진 배경으로 한 장보고 축제는〈세계화·국제화〉를 지향하는 정부 정책 방향에 가장 적합한 행사다’라고 밝히고 있다.

5월 14일 전야제에 앞서 펼쳐진 길놀이는 먼저 장보고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짚어보고 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전통무예인 본국검도, 통일신라의 복식이 재현된 장보고선단, 영거행렬은 1천 1백년 전 화려했던 청해진의 모습을 축소판으로 보여 주었다. 이는 청해진의 옛 영광을 보여줌으로써 완도라는 곳이 결코 녹녹치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지역민의 자긍심 고양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나아갈 길을 보여 주겠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의미성을 지닌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5월 15일 완도항 부두터미널에서 펼쳐진 해양탐사단 출정식이었다. 장보고 선단이 바닷길을 나서기에 앞서 가졌던 의례를 재현한 출정식은 육지와 바다에서 출발한 길놀이팀이 출정식장으로 모이면서 분위기가 한껏 올라 청해진 본영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장좌리에 전해지고 있는 당제를 비롯 청해진 군단의 군고악이 재현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어 21세기 해양시대를 열어갈 것을 당부하는 장보고 메시지가 전해지면서 식장은 순식간에 1천1백여 년의 벽을 넘어서 버렸다.

이날 보여진 장좌리 당제 또한 각별한 의미로 참가자들에게 다가왔다. 장보고를 해신으로 추앙하며, 그와 그의 부하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당제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었던 장보고의 영혼을 안아 이어오면서, 우리의 기상을 꺾으려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그 맥을 이어오면서 1천 1백년 전 청해진 사람과 오늘의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이제 출정식을 통해 문자상으로만 전해오던 장보고는 역사의 실존 인물로 뚜렷한 형체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오고 그의 해상개척정신은 우리의 사표로서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장보고가 동북아뿐 아니라 남양 항로까지 상권을 지배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그가 그러한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이며, 신라 변방의 조그만 고을에 불과한 완도 청해진이 어떻게 세계무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15일 출정식을 통해 이 과제의 해결은 극동항로 탐사에 나선 탐사단에게 주어졌다. 장보고 복원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는 국내외 학자를 비롯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대학생 등 190명으로 구성된 탐사단은 목포해양대학의 실습선 ‘새유달’호에 승선 완도를 출발, 중국 산동반도와 일본 큐슈를 잇는 항로를 탐사했다. 고대항로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장보고 해상왕국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으며, 거대한 해상왕국의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 중국과 일본의 유적들을 살펴봄으로써 일본이나 중국의 일부 학자들이 해적으로 폄하하면서 애써 그 의의를 약화시키려는 장보고의 해양 경영사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탐사단의 의도인 것이다.

탐사단은 출발에 앞서 물론 학계에서 연구된 몇 가지 사실을 전제를 가지고 답을 확인한다. 이는 완도 청해진터 장도는 실재했으며,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범선시대에 있어 청해진은 한·중·일 항로를 장악하고 방어함에 있어 천혜의 요새로, 오늘날의 싱가폴이나 홍콩 같은 국제무역 및 서비스의 중계기지로 자유항이었다는 것이다.

또 완도 상황봉 법화사, 중국 산동반도, 적산의 법화원, 일본 경도의 적산서원 등은 모두 장보고와 관련이 깊으며, 장보고가 무역왕으로 단시일내에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장보고에 앞서 중국의 주요 교통요지에 진출해 있던 넓은 의미의 재당 신라인의 해로 및 수운 장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이다. 청해진의 입지에 대해서는 최근 학계에서 여러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해류이다.

황해도 5∼6월에 완도 앞바다에서 범선을 띄우면 저절로 황해도 지역으로 북상하며, 서북풍이 부는 계절에 뱃머리를 중국 양자강 쪽으로 향하게 하면 순풍에 돛단 듯 자동항해한다, 반면 8∼10월이면 중국 강남지역에서 호남지역으로 해풍이 분다. 게다가 황해와 남해안의 해류는 한·중·일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해류와 바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고대 황해의 상황에서 장보고는 해풍·해류·조류·완도해역의 다도해 등의 자연 조건을 1백퍼센트 살려 완도에다 청해진을 설치하고 황해무역을 독점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황해무역의 독점과 남향항로를 연결함으로써 세계 무역왕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장보고가 청해진을 거점으로 국제 해양 경영을 펼쳐 나갈 즈음은 신라와 당의 중앙 통제력이 잦은 정변으로 약화되어 공무역보다는 사무역이 성행하고 이를 약탈하는 해적떼들이 극성을 부릴 때였다. 장보고 등장 이후 사무역을 방해하던 해적들이 잠잠해졌다고 역사서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가 해적들을 소탕했다는 해상무역 질서 확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보고 상단의 급부상은 막강한 재당 및 재일 신라인들의 튼튼한 재력, 정보력, 그리고 조선술과 항해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중국과 일본에 산재한 유적들의 확인을 통해 입증하는 것이 탐사단의 임무이자 우리가 계속해서 탐구해야 할 과제이다.

이제 남도의 조그만 항구 완도는 축제를 통해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재부상하고자 하는 부푼 기대를 드러냈다. 우리 민족이 신해양시대 개막을 통해 세계사의 주도국으로 부상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장보고는 오늘의 우리에게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완도의 축제는 그 서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