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 미술

미술시장 개방과 우리의 과제




윤진섭 / 미술평론가

■ 미술시장의 침체 극복할 방안은 찾아질 수 없는 것인가?

미술시장에도 과연 봄이 찾아올 것인가? 마치 한 편의 영화제목을 연상시키는 이와 같은 질문이 요즈음 미술인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몇 년 동안 꽁꽁 얼어붙어 좀체로 풀릴 줄 모르는 미술시장 경기가 가뜩이나 우울한 미술인들의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속설에 의하면 부동산 경기 다음에 증권,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미술시장 경기의 활성화하고 하는데, 부동산 경기가 꿈쩍도 않고 있는 탓인지 좀체로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내년부터 시행될 미술품의 해외시장 개방이 국내 미술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현재의 입장으로서는, 더욱 암담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술시장 경기가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다. 미술계 전체를 위해서도 사그라진 불씨를 회생시킬 다각적인 노력이 범화단적으로 일어나야 할 필요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이는 반드시 미술품 판매와 유통의 주체인 화랑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술품을 공급하는 작가와 수요자인 고객 모두가 떠맡아야 할 과제이다. 왜냐하면 미술시장의 침체를 가져온 미술외적인 요인을 제외한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내부적인 요인에는 이 삼자(화랑, 작가, 고객)간의 복잡미묘한 관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술시장의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전혀 찾아질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국면을 거꾸로 잘 활용한다면 기사회생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해결의 열쇠는 앞서 말한 삼자가 쥐고 있다. 미술품을 판매한 화상, 그들로부터 이를 사들인 고객, 작품을 제공한 작가들 모두가 조금씩만 양보한다면 일은 훨씬 쉬어질 수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래되고 있는 미술품 가격은 대체로 비싼 편에 속한다고 본다. 그 가운데는 터무니없이 높아서 국제경쟁력이 전혀 없는 경우도 없지 않다. 국내외 미술계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호당 50만 원대 이상의 작품은 경우에 따라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국제경쟁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첫째 국내 작가들의 외국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국제시장에서의 지명도다. 최근 들어서 국제 아트페어에 국내 화랑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우리 작가들의 이름이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이 얼굴을 알리기에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된다. 따라서 아직은 내수용 작가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외국작가들의 합리적인 가격과 국제시장에서의 지명도다. 국내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작가들의 작품이 국내미술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내년으로 다가온 미술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이 점을 재빨리 간파한 일부 화랑들은 얼마 전부터 해외미술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일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낀 작가들과 화랑,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사들인 고객들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작품값이 급등한 작가들은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고가의 작품들은, 개별적인 예외는 있겠으나 당시 예외적인 경제상황에서 가격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여겨진다.

■ 미술품 가격은 오를 줄만 알지 내릴 줄은 모른다.

필자는 주식에 전혀 문외한이지만 주식 값이 시장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투자가는 어느 전문가 못지 않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객장에 나가 주식동향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투자가들은 주식 값이 오르고 내린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미술품에 대한 정서는 이와 다르다. 관례상 그 어느 고객(투자가)도 미술품 가격이 시장상황에 따라 내리고 오를 수도 있는 상품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술품 가격은 오를 줄만 알지 내릴 줄은 모른다. 화상이나 작가 그 누구도 선뜻 가격을 낮추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술품 역시 가격이 오르고 내려야 마땅한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다른 공산품과는 달리 문화상품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문화산물로서의 미술품은 작가들의 예술혼이 담긴, 때론 금전으로 환산될 수 없는 지고의 정신적·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값으로 환산시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예술품도 일단 시장에 나오면 엄연히 시장경제의 원리에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의 원인은 바로 이 점에 있다.

해외의 화랑들이 국내에 들어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국내 화랑과 제휴를 맺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종의 간접적인 접근방식인데 그렇게 함으로서 국내 화랑계의 저항을 최소화시킴과 동시에 시장에 대한 탐색도 꾀한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내 화랑들은 이 과정에서 해외미술품 판매에 따른 단기적 이익을 볼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는 국내시장을 잠식당함으로써 발판을 잃을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한국미술의 정서와 상황을 파악한 해외 유명화랑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지사를 설립하였을 경우 상대적인 열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 국제경쟁력 갖춘 작가 양성을…

국내 작가들의 경우, 특히 고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들은 외국작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조정이 요청된다. 여기에는 물론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미묘한 사정 때문에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으로는 가격조절에 힘쓰면서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성가를 높임으로써 합리적인 국제가의 취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국내 미술계의 입장에서는 명실공히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말 그대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작가로 키워야 한다. 국제적인 작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제미술계에서 우리의 발언권은 커진다. 화랑들 역시 외국 화랑들과 제휴를 맺을 경우는 국내 작가들의 해외진출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해외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익을 가져오는 슬기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모 미술전문지에서 조사한 작가들 중심의 미술계 동향 분석은 몇 가지 면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그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른바 세대간의 공동화 현상이다. 국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삼사십대 작가들 중 거의 대다수가 미술시장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심히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작에의 열정과 노력이 어느 정도는 금전으로 환원되어 재투자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후원조차 얻기 어려운 우리의 실정으로는 자칫 창작에 대한 이들의 의욕이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화 및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우리의 사회 전체가 심각한 도전을 맞고 있다. 굳이 토인비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러한 도전에 슬기롭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미술계 역시 여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관용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