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용과 창작무용의 징검다리
이종호 / 무용평론가
■ 리을무용단의 특별공연-배명균의 작품들
배명균이라는 이름은 일반 무용팬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무용계 내에서도 한국무용 계열이 아니거나 웬만한 연배가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보통 ‘배삼촌’으로 불리는 그는 50년대 이후 무용사에 있어서 신무용 시대와 창작무용의 발아기를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가교일 뿐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와 작품들이 지난 수십 년간 충분한 조명과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그 자신 철저히 무대 뒤에 있기를 원했고 2백여 편에 이르는 안무작들도 조카인 배정혜(서울시립무용단장)를 비롯한 한두 무용가의 공연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의 이름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4월 19∼20일 정동극장에서 그의 작품들로만 짜인 리을무용단의 특별공연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한 무용계 내외의 인식은 매우 막연한 상태로 지속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고희를 맞아 그와 배정혜의 가르침을 받은 리을 무용단(대표(황희연)이 마련한 이 무대에는 비록 그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일곱편 만이 올랐지만 시대를 앞질러 가는 예술가적 안목과 비범한 재능을 충분히 입증해준 놀라운 것들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작품들은 1958년과 1969년 작품들인데 당시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한 감각과 발상이었다. 그것은 당시 한국무용의 주류였던 신무용에서 벗어나려는 명백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고 오늘날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었다.
군무「청산별곡」(1969년)은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노래하는 옛 가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 같은 해 작품인「주마등」(배정혜 독무)과 마찬가지로 살풀이의 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수건을 들고 추는 살풀이의 변형한다는 것은 요즘의 안무가들도 거의 시도하지 않는 일이다. 춤동작 자체가 크게 파격적이거나 현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수건과 치맛자락의 활용이 전통과는 다르게 새롭고 리드미컬한 맛을 준다. 태평가를 쓴「주마등」은 식민지 여인의 비감을 바탕에 깔면서 전통적인 살풀이를 좀더 극적으로 만든 것이다.
「풀잎」(1958년 배정혜 독무)은 풀잎 한 줄기가 산골짜기 개울에서 마침내 넓은 강물에 이르러 강심에 가라앉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했다. 자연물의 동작을 소재로 삼은 것도 특이하거니와 부채춤의 새로운 응용이라는 측면을 주시할 만하다. 즉 부채를 이용한 무당춤을 개발했던 최승희, 김백봉에 이어 부채춤의 새 형태를 내 놓은 셈이다.
1958년작「황진이」(일명 송도의 시정. 황희연 독무)는 황진이가 기녀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과 후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자신을 그리워하며 상사병을 앓다 죽어간 젊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생기는 한 여인으로서의 심경의 변화와 삶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춤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요구이다. 이를테면 처녀에서 여인으로의 변화인 셈이다. 양식적인 면에서 보자면 장구춤의 활용이 눈에 띄는데 과거 최승희 이래의 기방 장구춤과는 달리 간단한 무용극 형식을 차용해 전체적인 구성에 좀더 맵시를 차리고 있다. 또한 종래 장구춤에서 흔히 쓰던 한강수 타령 대신 박연폭포를 깔고 있는데 이는 물론 황진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좀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또한 한강수 타령보다는 좀더 은은하고 아련한 이미지를 불러내기에 유리하다는 측면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혼령」(1969년 배정혜 독무)은 독 속에 가둬 놓은 아기의 혼령을 불러내 그 힘으로 점을 치는 무속신앙의 한 형태에서 착상한 것으로 흔히 창부타령을 가지고 하는 무당춤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당과 독속에 갇힌 혼령 사이의 교감과 대화를 춤과 소리로 묘사한 이 작품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무용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는 톱소리를 이용해 귀신의 출현을 상징하는가 하면 아기 혼령에의 조심스런 접근과 놀람 따위를 강렬한 춤과 표정 연기로 실감시킨다. 한마디로 귀기가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다.
「버들피리」(1958년 김현미 독무)가 비교적 신무용풍을 답습하고 있다면 풍자와 익살, 빠른 템포로 넘치는「각설이」(1969년 군무)는 가히 혁명적이다. 당시로써 맨발로 춤춘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고(확인해 보이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 작품이 적어도 한국무용으로서는 최초의 맨발의 춤이 아닌가 한다) 거지들의 생태를 소재로 삼는다는 것도 파격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동작들이 전통이나 민속에서 차용돼온 흔적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즉 안무자가 거지들의 이미지를 나름대로 관찰해 만들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무용예술에 대한 배명균의 남다른 시작과 의식, 재능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한다.
상업학교 출신에 교사와 세무공무원을 지냈던 비예술적 이력, 어린 조카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매니저가 되어 그를 길러낸 안목과 관리능력, 직접 춤을 배운 일이라곤 단 한번도 없으면서 놀랍게도 빚어 낸 숱한 작품들…
배명균은 분명 우리 무용사와 무용계에서 통상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뒤에서만 빛났던, 자칫하면 잊혀질 뻔했던 한 부분이다. 무용사학자들에게 그의 업적을 좀더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평가하기를 요청한다.
■ 향상과 개선의 징표- 제2회 민족춤제전의 몇 작품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춤위원회(위원장 김채현)가 주최하는 제3회 민족춤제전(4월 25∼28일 문예 회관 대극장)은 ‘푸른환경, 생명의 몸짓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작품들도 전반적으로 환경문제를 다루었으며 무용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정부부처(환경부)와 사회단체(환경운동연합)의 후원을 받았다. 1회와 2회의 주제가 민족의식이나 우리의 정치현실 따위에 치중한 것들이라면 금년에 세 번째가 되면서 환경을 내세운 것은 주최측이 이 행사의 성격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정착시켜 갈 것인가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내년의 공동주제로 설정된 ‘여성, 우리 세상의 절반’(가제)까지 감안하면 주최측의 관심이 서서히 정치에서 사회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정치사회의 환경 변화로 보아 자연스런 추이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제전은 다른 공연들과 일정이 겹쳐 작품들을 다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인상을 서술하기는 어렵다. 다만 참가단체들의 무대 능력이 지난해에 비해 향상되었다는 점은 언급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행사 초기에 보였던 상당수 무용인들의 근거 없는 편견(민족춤의 개념을 운동권이나 재야쯤에 결부시켜 생각하는 식의)이 그 사이 웬만큼 해소됨으로서 참여단체의 폭이 넓어진 덕으로 돌려야겠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민족문제나 정치문제를 주로 다루었으나 이런 주제를 취급할 경우 이념의 표출에 집착하는 나머지, 매우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좋은 작품을 생산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작품들이 각각의 무대물로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환경문제는 안무자의 입장에서도 다소 접근하기 용이하고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앞으로 이 행사가 진정한 민족춤의 이념과 방법론을 구축해 나가는 중심 현장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현대무용단 푸름의 「잿빛 강」(김성미 안무)은 제목이 암시하듯 물의 오염을 묘사한 작품이다. 무대 뒤편에 선 잿빛 의상 무용수들의 서서히 가빠지기 시작하는 호흡과 왼쪽 앞 붉은 옷, 솔로(김성미)의 헉헉대며 숨 몰아쉬기, 숨소리와 함께 깔리는 다소 고뇌스런 여자 목소리의 노래 같은 것들이 오염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두 팔을 가지런히 옆으로 붙인 채 쓰러지거나 천천히 눕는 군무, 링거병이 매달린 나뭇가지. 그런 속에서 네 사람의 따뜻하고 적극적인 껴안음(피아노 음악)과 경직된 동작들(타악)의 대비가 오염의 고통과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면, 마지막 부분 재를 한 움큼씩 뿌리는 행위는 오염된 자연에 대한 진혼이자 인간 자신에 대한 정화의 의지로 비친다.
솔로와 군무의 교차가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빈번하고(그러다 보니 김성미의 솔로도 어떤 ‘맛’을 보여주기 이전에 메시지 전달에만도 바쁜 형편이 돼 버린다) 군무 동작들도 좀 단촐해 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오염을 매개로 비로소 발생하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과장 없이 풀어간 방식이 차분하다. 김용복의 「청학동-두번째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1994년 ‘신세대 가을 신작무대’에서 발표된「청학동」과 궤도를 같이한다. 단순하게는 자연에의 회귀라고 할 수 있지만 나아가 인간 본성의 회복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 작품이 다소 직선적이고 정적인 가운데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이번에는 신비감의 증폭에 의해 모종의 기대심리를 유발하고 있다. 장치를 이용한 대나무 숲의 이동, 블랙조명을 비롯해 엷은 적색, 숲 그늘 모양 등 속세와의 거리를 보여주는 갖가지 조명, 아주 느리게 이어지다 이따금 한 번 씩 빨라지는 동작, 가볍고 청량한 실로폰 소리 등(음악 홍동기)이 찌들대로 찌든 인간들에게 문득 잊어버린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생각하게 한다. 거기에 소매 끝에 주름과 폭을 많이 넣어 부풀린 의상(이미현)도 효과를 더하고 있다.
상체를 뒤로 젖히며 팔을 앞으로 뿌리거나 전신을 한 껏 응축시켰다 활짝 내던지는 동작들은 김용복과 군무가 앉은 채 두 팔을 벌리며 무엇인가를 끌어안 듯 기원하는 마지막 동작과 함께 자연과의 접근이나 조화를 상기시킨다. 숲 사이를 서서히 미끄러져 다니는 무용수들의 자태(여기서 걷는다는 느낌은 거의 나지 않도록 처리된다)가 환기시키는 은은하고 여유로운 탐색의 맛은 이따금 적당량 삽입되는 춤동작과 어울리면서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유지해 준다.
하야로비현대무용단은 이 단체의 대표인 김경순의 「씨티 사피엔스」를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노현정의 「더 라스트 The Last」로 바꾸었다.「더 라스트」는 물질적인 환경오염이나 파괴가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무신경으로 인한 정신의 황폐를 그리고 잇다. 높낮이가 없는 불안한 소리와 자욱한 안개 속에 무용수들이 누운 채 사지를 들고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공연시간의 상당 부분이 눕거나 뒹구는 바닥 동작들로 채워져 있다. 둥근 조명 안으로 모여든 사지들의 꼬물거림과 서서히 일어나면서 빚어내는 덩어리의 질감, 그 다음엔 다시 흩어져 느리게 구르기의 반복이다.
짧은 팬티, 배꼽과 팔이 드러나는 상의 차림의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는 그처럼 진지한 반복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너무 오래고 잦은 반복 때문에)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식의 속도감의 변화와 기본동작들의 변형 시도이지만 내세운 주제와의 연관은 물론 그냥 하나의 무대물로 바라보아도 아무래도 좀 소박한 편이다. 마지막, 바닥에 누운 한 여자를 둘러싸고 다른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꽃을 던지며 노리듯 내려다보는 것도 다분히 작위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앞서 전개돼 온 맥락과 명백한 관계를 맺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