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주
허영선 / 제민일보 기자
역사와 미술의 만남
제주와 관련된 고문서 중 가장 오래된 문헌 중의 하나인 「탐라순력도」를 따라 제주도의 화가들이 이색 그림기행을 하고 전시회를 가져 화제가 됐다.
「탐라순력도」는 3백년 전 제주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책, 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당시 제주도일원을 순력하던 중 당시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화공 김남길에게 기록화집으로 그리게 했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제주도의 과거를 복원하고 있는 이 순력도는 학계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행과 전시회는 제주의 역사를 미술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제주 세종갤러리가 제주도 내에서는 전문 큐레이터를 처음으로 도입한 후 시도한 것, 이번 화가들의 순려도 기행은 두 차례에 걸친 답사로 이뤄졌다. 도내에서 미술 비평활동을 하고 있기도 한 큐레이터 김유정씨는 "예술과 역사와의 만남을 시도하고 3백년 전 탐라순력의 길을 따라 그 풍경을 실사함으로써 실경산수의 정신에 다가서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그림기행 후 화가들이 그린 「신 탐라순력도」는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제주 세종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세종갤러리는 이번 기획을 계기로 계절·작가·장르에 따라 별도의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다.
초여름에 열린 2인의 지역작가 전시회
제주의 토속적 풍경을 주로 담아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여오고 있는 이 지역 중견 서양화가 김택화씨가 제주도 문화진흥원 초대로 6월 25일부터 31일까지 제주도문예회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추상화로 시작해서 풍경화로 천착해 온 그는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일종의 작가적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4미터, 7미터 가량 되는 대형 작품들도 많아진 이번 작품에는 30호 이상이 대부분이며 10호 이상의 소품도 50여 점 선보였다.
대부분 명암이 강해졌고 예전보다 근경이 많아진 이번 작품들은 독특한 제주의 중산간 마을의 눌, 초가, 농촌풍경, 해안마을의 포구 등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는 풍광들이 옛 정서를 되살려 놓았다. 작가는 현재 미협 제주도지회 지회장으로 있다.
옛 문인화의 전통적 소재이기도 한 소나무들의 모습에서 제주정신의 맥을 찾고 있는 30대 한국화가 강부연씨의 개인전이 6월 21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 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도 문화진흥원 초대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회에는 「삼무일기-해송」이라는 주제로 풍상을 겪은 제주의 소나무와 솔숲을 거칠고 섬세하게 그린 수묵화 30점이 출품됐다. 소나무숲을 그린 길이 20미터, 높이 2.4미터의 초대형 작품을 비롯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한 작품들도 선보였다.
작품들은 대부분 대형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현장에서 제작됐다. 작가는 "제주의 소나무는 섬바람을 많이 타기 때문에 다른 곳의 나무들 모양과 달라 섬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반영한다"며 "그날그날의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제작했다"고 했다.
강씨는 7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도울아트타운에서 주최하는 우수작가 공모전에도 초대돼 개인전을 갖게 된다.
제주 '노래빛 사월'이 꾸민 '환경콘서트'
'환경에 대한 관심을 노래로', 제주의 젊은 노래패 '노래빛 사월'이 6월 9일 오후 7시 30분 제주 해변공연장에서 '환경콘서트'를 가졌다. '환경은 우리의 친구'라는 주제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제주의 자연과 지금은 추억으로만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노래했다.
노래 「한라산이여」로 막을 연 이번 콘서트는 우리가 후손에게 잠시 빌려 왔을 뿐인 자연을 얼마나 훼손시키고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제1부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에서는 「꼬마 인디언」, 「콩밭 개구리」,「노을」등 동심을 담은 노래를 메들리로 엮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티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자리가 됐다,.
또「골프장 건설 10계명」,「개발풍속도」,「하와이의 꿈」,「푸른 하늘은 본 지도 오래되었지」등의 노래를 통해서는 지역주민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제주의 아름다운 환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풍자했다.
2부 '환경은 우리의 친구'편에서는 인기가수 류금신씨가 특별출연,「독도의 노래2」,「평화의 섬」,「한강」,「물 따라 나도 가면서」등의 노래로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은 우리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친구이며 같이 가야 할 동행자라고 암시했다.
고전「배비장전」을 제주말로 각색
우리의 고전「배비장전」을 제주말로 각색한 연극「살짜기 옵서예」가 제주도제 실시 50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려져 눈길을 끌었다.
6월 25일 오후 7시와 26일 오후 4시,7시 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번 무대는 조선시대 후기의 판소리계 소설이 각색된 것. 연극·영화는 물론 뮤지컬「살짜기 옵서예」로 수 차례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 목사의 심복으로 내도한 배비장을 제주기생 애랑이 온갖 기교로 농락하는 내용으로 당시 양반사회의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은 우리 고전의 백미이다.
이번 공연에는 '이어도'극단 대표 강용준씨가 각색 연출했다. 이어도, 가람, 무 등 제주의 극단 소속 회원들이 고루 출연했다.
배비장 역에는 20년이 넘도록 이 지역에서 오랜 연기생활을 해오며 배비장 역을 수 차례 한 적이 있는 송윤규씨가 출연, 완숙한 연기를 펼쳐 보였다.
한여름밤 해변축제
한여름밤 제주의 해변을 서정과 낭만으로 가득차게 해 줄 한여름밤의 해변축제가 7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두 달간 열린다. 해변축제는 그 동안 열린 무대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이번 축제에는 음악공연 14개팀, 무용 ·춤·민속공연 5개팀과 연극1팀 등 모두 20개 공연팀이 참가한다. 축제의 서막은 제주시립교향악단의 개막공연으로 시작된다. 이선문 지휘자의 지휘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아론 코플랜드의 「평민을 위한 팡파레」, 롯시니의「윌리엄 텔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모음곡「호두까끼 인형」중「꽃의 왈츠」와 만화영화「라이온 킹」주제곡 등 우리 귀에 친숙한 곡들을 풀어놓는다.
이어 6일에는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의 '민속춤 한마당'이 펼쳐지며 7일 기타협 도지부의 '클래식 기타의 밤'이 이어진다.
13일에 도문화진흥원 향토문화학교 출신 어머니 28명이 모여 만든 '어멍무용단'이 살풀이, 장고춤, 제주걸궁 등을 엮어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이밖에도 도내 전문 남성합창단인 '끌리오'의 공연, 극단 가람의「서툰 사람들」공연, 시민 연주단체인 한라윈드앙상불의「별이 빛나는 밤에」와 제주시립합창단의 '여름바당 음악회', 제주브라스 앙상블의 연주회, 서귀포 시립합창단의 공연, 무용제 등 갖가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모던발레의 진수 한눈에
미국 애틀랜타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의 발레무대가 5월 29일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져 오랜만에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날 첫무대는 애틀랜타발레단 무용수들의 장점을 한껏 살려낸 작품「애쉬」가 장식됐다.
서울발레시어터는 남미풍의 음악에 맞춘 관능적이면서도 퇴폐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의「도시의 불빛」을 선보였다.
이어 펼쳐진 전원의 아름다움과 환상이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로 전해져 오는 「패스트랄 댄스」(애틀랜타무용단)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발랄한 리듬의「당스 콘세르탕트」(서울발레시어터)는 다소 낭만적이고 고전적 분위기를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