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미술

미술품 경매와 미술시장의 활성화 전략




윤진섭 / 미술평론가

세금 문제와 미술품 경매제도

미술품 경매는 미술품을 사고 파는 데 있어 가장 합리적인 제도로 서구에서는 수세기 동안 각광을 받아왔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회사는 런던과 뉴욕에 본사를 두고 세계의 주요도시에 지점을 설치함으로써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 미술품을 대중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합리적인 경쟁과 적법한 절차를 거쳐 미술품을 매매하는 경매는, 잘만 운영된다면 매우 바람직한 제도로 정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더비의 경우에서 보듯이 약 2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굴지의 미술품 경매회사가 오늘처럼 발전하기까지에는 자본주의의 역사에 비례하는 나름대로의 역사를 쌓아왔던 것과 달리 우리의 경매제도는 그 역사가 매우 일천하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대중들에게는 미술품 경매라는 제도 자체가 생소한 편이어서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매제도의 정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분의 노출이다. 미술품이라는 고가의 상품이 경매라는 오픈된 제도를 통하여 거래되는 과정에서 사고 파는 사람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고, 이는 곧 세금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미술계의 쟁점으로 부상했던 양도세 문제와 함께 경매제도 역시 구매자의 신분이 노출된다는 단점 때문에 발전을 저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윤이 있는 것에 세금이 있다'는 재경원의 입장처럼 조세평등의 원칙에 따라 경제적 이득이 있다면 당연히 세금은 물려져야 하겠지만, 미술계의 사정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현재와 같이 위축된 미술시장의 상황에서는 신분의 노출과 이로 인한 과세야말로 거래를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최근의 미술시장은 몇 년 전부터 계속되어온 경기침체로 인하여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미술시장이 이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물론 미술시장이나 미술계 자체의 문제에 있다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면에 더욱 깊이 연루되어 있다. 제조업, 무역업, 서비스업, 금융 등 경제 전반에 걸친 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미술품과 같은 불요불급의 품목은 거래의 활성화를 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미술내적인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객이 미술품이 투자가치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지, 미술작품의 음성 거래에 따른 가격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 및 비합리적인 가격체계에서 오는 중구난방식의 운용 따위가 그것이다. 이처럼 부정적인 요인들은 미술시장의 안정을 해치는 것이기도 하면서 그대로 방치할 경우 미술시장을 영원히 회복불능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암적인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미술시장의 불신과 반목을 줄일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의 경매제도

이러한 차에 최근 청담미술제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미술품 경매는 결과야 어떻든 향후 미술시장의 불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한 방법론으로 여겨졌다. 청담미술제 운영위원회가 개최한 금번 '한국 근·현대 미술 작품 경매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위기에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는 운영위원회측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술품 유통의 기본 형태가 될 수 있는 공개적인 경매제도를 도입하여 미술품의 유통을 발전 육성시킴으로써 고객과 화상간의 건전하고 신뢰감 있는 유대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데 있다"고 한 발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12일 갤러리아아트홀에서 열린 '한국 근·현대 미술작품 경매전'은 경매와 관련시켜 볼 때 몇 가지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첫째는 이번 경매전이 그 동안 미술시장의 한 관행으로 여겨져 왔던 호가와 실거래간의 간격을 좁힘으로써 이중 가격에서 오는 혼란과 불신을 제거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이러한 경매제도가 정기적인 행사로 자리잡았을 때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행사의 의의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경매의 장점은 미술품 매매에 관한 한 가장 합리적이고 투명한 거래방식이라는 점에 있다. 원매자의 이윤을 최대한 창출할 수 있으면서 구매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 즉 좋은 작품을 가장 비싸게 팔 수 있으면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경매는 현재의 미술시장에 팽배해 있는 불신과 반목을 좁힐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경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미술시장의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고객과 작가 혹은 작품과의 중개제도로 화랑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지만, 일찍이 경매제도가 자리잡은 서양의 경우, 미술시장의 형성과 경영에 이 양자가 상호 견제 또는 협력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한국형 경매제도의 개발이 요청된다.

셋째, 미술시장의 활성화에 미치는 경매제의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세제의 혜택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동안 논란을 거듭해 온 양도세 부과와 같은 근시안적인 세제의 적용보다는 오히려 미술시장을 실질적으로 부양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부가가치세 정도의 가벼운 세제를 적용시킴으로써 거래를 양성화시키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적어도 음성거래보다는 손해를 덜 볼뿐만 아니라 창출된 이윤에 대해 떳떳이 세금을 낸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그 동안 작가와 화상의 담합에 의해 매겨지던 작품의 가격을 시장의 자율성에 맡김으로써 합리적인 가격 산출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소위 호가라고 부르는 허수를 제거함으로써 현실적인 가격 산출을 이끌어낼 수 있다.

주먹구구식 관행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인식 필요

청담미술제의 부대행사로 열린 이번 경매는 오랜만에 열리는 것인 만큼 적잖은 진행상의 문제점을 낳았다. 번호표를 소지하고 호가를 함으로써 원매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적극적인 참여를 저해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 행사는 또 좋은 작품은 상황 여하를 막론하고 거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청담미술제에 참여했던 각 화랑들이 제공한 이번 경매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수작들이 드물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양질의 작품들 몇 점은 비록 고가일지라도 낙찰이 되었던 것이다. 35퍼센트에 달하는 낙찰율과 작품의 질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고객의 성숙된 태도, 신중한 판단 등은 우리의 미술 애호가들의 안목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주먹구구의 관행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