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무용

신인·중견들의 춤무대와 합동공연 관심의 초점




장승헌 / 무용평론가

한 무대에서 기량을 펼친 '서울발레시어터'와 '애틀랜타발레단'

지난 4,5월 우리 무용계에 페스티벌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6월초에는 싱그러운 계절 분위기에 걸맞게 신인 및 중견무용가들의 개인 발표회 공연이 풍성하게 줄을 이었다. 또한 최근 발빠른 행보를 펼치고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가 금년 하계올림픽 개최도시인 애틀랜타에 소재한 '애틀랜타 발레단(단장 죤 맥폴)'을 초청, 그들과 한 무대에서 기량을 펼친 '애틀랜타 발레단 & 서울발레시어터 합동공연’이 서울, 수원 그리고 제주에서 펼쳐져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5월 29일 제주 공연으로 시작된 이번 합동공연은 김혜영, 최광석이라는 한국 출신 무용수들의 금의환향 무대라는 점과 애틀랜타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초청된 세계적인 발레단의 작품 성격과 그들의 기량은 얼마나 되며 아울러 '서울발레시어터'와의 합동공연을 통해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발레예술을 통한 한미 양국간의 돈독한 우정을 확인(실제로 미국대사관, 미국 공보원, 델타 항공 등의 관심어린 지원이 있었음)하는 의미있는 공연으로서 공연 전부터 매스컴은 물론 우리 무용관객들에게도 큰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서울 공연(5월3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두 차례 공연과 수원 공연(6월2일,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을 지켜본 느낌은 '애틀랜타 발레단'이 보여준 모던발레레퍼토리는 상당한 수준이란 점과 공연을 가진 두 단체의 분위기가 서로 상당 부분 흡사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혜영과 최광석은 이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만치 빼어난 기량과 호흡을 우리 관객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김혜영은 이미 국내에서도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애칭을 받을 만치 기량이 절정에 올라 있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해 클래식과 모던발레를 골고루 소화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이제 입단 경력 1년이 채 안 되는 최광석의 경우, 괄목할 만한 급성장을 보인 것을 사실이지만 그 동안 국내 활동이 클래식 발레에만 주력해서인지 자유로운 음악적 감성이나 낭만성의 결여(프로에게 있어서의 미세한 결여)는 아쉽게 느껴졌다. 특히 어깨 근육을 이용한 편안한 동작선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아 일견 긴장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광석은 부단한 노력형의 무용수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2∼3년후 귀국할 때면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애틀랜타 발레단'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리드 마이 힙스 Read My Hips」(안무Daniel Ezralow),「패스트랄 댄스Patoral Dances」(안무 David Allen), 그리고 제주와 수원에서 피터 마틴 안무의 「애쉬 Ash」를 선보임으로써 이 단체가 「신데렐라」,「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레퍼토리 외에도 모던 발레와 네오 클래식을 함께 병행하는 최근 세계적인 흐름과 함께 하며 그 추세를 선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리드 마이 힙스」에서 보여준 강렬한 조명효과와 음악, 다이나믹하고 에너지 넘치는 무영수들의 테크닉과 표현력은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으며 신고전 발레인 「패스트랄 댄스」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목가적이며 전원풍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춤사위가 눈물을 자아낼 만큼 서정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작품은 주역으로 등장하는 최광석과 김혜영은 군무진들을 리드하며 일사불란한 호흡을 선보여 객석으로부터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신인 무용수 신진숙의 첫 개인 발표회

90년대 이후 부산에 이어 지역 무용계의 춤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대구 무용계에 신인 무용수 신진숙이 첫 개인발표회(6월 6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대극장)를 통해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루어 눈길을 모았다.

계명대 무용과와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동안 '장유경무용단'과 '다움무용단'에서 활동해온 신진숙은 1부 「우리춤」과 2부의「소도(蘇塗)」라는 창작춤을 안무하고 스스로 주역 무용수로 등장, 개성적인 표현력과 진중한 느낌의 춤사위를 통해 꽤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2부 작품인「소도」의 경우, 제의적인 분위기의 그로테스크한 작품 색깔을 나름대로 해석한 짜임새 있는 안무력과 군무진들과의 어우러짐은 이상만의 탄탄한 구성력과 호소력 넘치는 음악에 힘있어 상당한 시청각적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다만, 여느 무대에서도 드러나듯이 상대역(배성철)의 지나친 부각과 무대 세트와 조명의 부족함 탓에 다소 평면적이며 단순한 선의 움직임이 부담감으로 작용,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지난해 김용철에 이은 신진숙의 패기 넘치는 개인 공연은 이언화, 최혜정, 김정순, 박미영 등 '다움무용단'을 이끄는 중추신경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이즈음 풍성한 대구 무용계를 이끄는 신세대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한편 1부와 2부 막간공연으로 무대에 선 장유경의 「해바라기가 있는 풍경」은 한국춤 솔로의 한 전형을 제시해 줄만큼 우리적인 색채의 흥과 멋 그리고 한과 정서를 골고루 담은 소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스페인 지방을 여행하며 느낀 해바라기 무리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아 안숙선의 구음 시나위에 살린 활달하고 큰 지체를 이용한 상반신의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서늘하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스승이 제자의 첫 출발을 격려해 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사례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무용가 '김해경의 춤 공원'

80년대 중반 이후 한동안 침체일로를 걷던 현대 무용단 '탐'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는 것은 이 팀의 리더인 조은미가 이화여대 무용과로 부임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자연스레 '탐'으로 연계되어 또 하나의 인맥을 형성, 최근 가장 탄탄한 기량을 가진 젊은 무용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무용수들과 함께 중견 현대무용가 김해경이 '김해경의 춤 공원' 이라는 타이틀로 오랜만에 자신의 개인공연(6월 6∼7일, 문예회관 대극장)을 마련했다. 1부의 솔로춤 「블랙 Black」은 지난 1992년 '현대 춤작가 12인전'에서 초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검은 의상과 검은 관이 중앙에 놓여 장례식 분위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오른쪽 팔을 들고 시작하는 첫 장면의 경우 조금 더 길었더라면 느낌이 더욱 처연해졌을 듯하다. 한편 무대를 가로지르며 난해한 현대음악을 성악으로 소화해 낸 이동현의 출연을 통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김해경의 통곡과 슬픔을 대신해 주며 감정이입을 공유케 한다. 이 작품은 공교롭게도 현충일에 즈음하여 재공연된 것이라 추모공연의 의미를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세 작품 중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작품은 두 번째인 「겨울 산책」. 성미연·이광석의 2인무 사이사이로 연극배우인 전국향·손호성이 무대 왼쪽에 등장, 마임 연기를 실감있게 펼쳐주어 무용수들의 취약점인 연기를 대신하여 이 작품의 사회성과 이중구조를 적절히 이용한 재치 넘치는 감각적인 안무력을 보였으며 '탐' 단원인 성미연과 객원 초청 무용수인 이광석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코믹한 연기력은 늘 심각한 주제에 매달려 답답하고 추상적인 춤사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리 현대 무용계에 반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한마디로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겨울산책'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다만 무용수들과 연기자들이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게끔 다소 연출상의 기교가 필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2부 마지막 작품은 「미스 패러다이스」가 장식했다.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먹고 마는 유혹이 있기 전, 순수한 인간의 구원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이 중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무용수들의 즉흥성 강한 움직임과 테크닉은 훈련강도와 많은 연습량이 뒤따랐음을 감지케 해 준다. 다만 객원 무용수들인 곽규동·이광석·이진우 등의 캐릭터와 장단점 그리고 역할기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관계로 시종일관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빼어난 가량과 연기력을 갖춘 남성 무용수들을 초청했을 때, 특성을 파악하고 작품의 소재로서 유효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과 연습, 그리고 작품 제작에 앞서 서로의 요구사항에 대한 인정과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김승근의 개인 발표무대

현대 무용계에 때아닌 누드 공연 소동으로 파문을 일으킨 '김승근 댄스그룹'의 이탈리아 까르노극장 초청 공연 이후 귀국 공연 성격을 띤 이번 개인 발표 무대는 한바탕 씁쓸한 해프닝을 연출, 알맹이 없는 논쟁만을 야기시키고 말았다. 벗는다, 안 벗는다, 과연 벗을 것인가 등 상황에 따른 공연 내용의 변화라는 최후의 보루를 남겨놓은 채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안무자의 무책임한 행동은 결국 공연 후에도 문화예술계 전체에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순수 예술작품에 대한 표현력의 한계와 그 타당성에 대한 여부는 안무자에게 향후 큰 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초청 공연의 성황에 힘입어 극장측에서 재초청을 추진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이번 공연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이 안무자가 1994년 뉴욕 연수 이후 「줄타기」등에 꽤 신선한 작품을 안무하기도 했지만 이즈음 일종의 한계에 봉착,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일찍 찾아온 무더위만큼이나 답답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