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문화예술 전략적 협력 관계 모색을...
-문예진흥기금 기부금 현황 분석을 중심으로
양경학 / 문예진흥원 기금운영부
기업은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주체가 되어야
'문화예술'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자주 사용되고, 우리에게 가까이 느껴진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나라 살림이 궁핍하던 시절에는 문화나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의 배부른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먹고사는 문제, 즉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이후 60, 70년대의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 '한강의 기적' 이라 일컫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1인당 국민소득 GNP 1만 불, 수출 1천억 달러라는 세계 10위 권의 무역대국이 되었다. 또한 금년내로 선진국의 경제협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 경제가 저개발 상태에서 성장위주 정책을 추구하고 있을 당시에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산, 고용 등의 경제행위를 통해 기업이 속해 있는 사회에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기업이 행한 불법이나 탈법, 불공정한 행위마저도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기업이 행한 불법이나 탈법, 불공정한 행위마저도 책임을 지지 않고 넘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요사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환경오염, 산업재해, 부당 해고, 저임금, 불공정거래 등은 이러한 개발과정에서는 경제개발이라는 최우선 목표에 의해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경제환경이 변화되고 기업의 역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기업이 지켜야 할 도덕적 윤리의 폭은 예전에 비해 훨씬 확대되었다. 기업은 이제 법과 시장규칙의 범위 내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체로서만이 아니라 기업의 고객인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활동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는 기업의 이익과 함께 사회적 책임 및 사회적 봉사라는 기업 윤리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변화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가 성장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예전과 같이 정부의 보호 아래서 각종 특혜를 받아 성장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장기적으로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지속기업ongoing concern으로서의 자세를 확립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기업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논의하게 될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도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더욱 그 논의의 중요성이 있게 된다.
앞으로 이 글은 우선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왜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동안 기업의 문화예술지원방법 중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문예진흥기금 기부금 체납 현황 분석과 끝으로 향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왜 필요한가?
기업이 사회 질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하기 위해서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기본개념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은 바로 기업은 그것이 입지하고 있는 장(場)을 사회로부터 제공받으며, 또한 사업을 전개하는 기회를 사람들로부터 부여받아 존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이익의 일부는 당연히 사회에 환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법인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직분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자본주의하에서 기업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것이 원칙적으로 영리활동을 통해 경제의 성장에 공헌함으로써 국민복지를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영리추구라는 기업가적 입장과 국민복지 향상이라는 사회적 입장 사이의 모순 갈등이 일어나 여기에서 두 입장을 조화시키려는 데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문제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아니며, 사회에 대한 특별징수금 납부와 같은 형태로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기업은 공익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좀더 세련되고 알차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훌륭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게 되고, 다른 분야의 사회 일원들과 협력함으로써 경제활동이 아닌 분야에 진출하여 다양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현재 우리 기업들도 문화예술, 학술연구, 환경, 사회복지,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대사회의 상황에서 기업의 사회공익사업이 문화예술 분야만 특화 시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이 그 어떤 분야보다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창조성과 다양성'을 길러준다는 의미 하나만으로도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의 지원활동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필요성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가주도형이면서 강력한 문화정책을 시행하는 많은 유럽국가(특히 프랑스)에서는 문화에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초기에는 공공지출로써 조달하였으나. 막대한 문화예산을 더 이상 늘리는 것이 곤란해지게 되어 기업의 지원활동이 문화예술 지원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국가의 경제규모가 훨씬 적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즉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예산 중 최우선 순위를 문화에만 두라고 하는 것은 무리이고, 무한정 문화부문 예산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국가의 역할은 줄이고 좀더 많은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기업은 자신의 성장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반사회적, 반윤리적, 반문화적인 폐단을 제거하는 임무도 지게 되어 생산, 판매기능 외에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통한 문화적인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이 문화를 지원한다는 것은 결국 문화라는 정신적 창조작업이 왕성하게 꽃필 수 있도록 투자하는 간접자본 즉 문화인프라culture infrastructure인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와 능률의 사회이지만 경쟁에 의해 자극되는 소비욕구는 사회에서의 모든 관계를 힘의 관계, 즉 대립관계로 바꾸어버릴 위험이 있다. 결국 시장법칙만이 존재할 경우, 문화는 일개상품의 지위로 격하되어 예술가, 작가, 시인 등은 생활의 터전 및 그 창작목표, 방향 등을 상실해 버리기 쉽다. 기업이 그 자금과 선의의 일부로 문화를 후원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의무이다.
셋째, 기업이 수행하는 이러한 사회적 의무의 이행은 기업 이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원활동은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일부이고, 지원활동에 의해 기업 이미지가 창출되면 결과적으로 기업 지명도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기업이 문화예술 지원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전략적인 측면에만 비중을 두지 말고 문화예술이라는 파트너와 멋지고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한다.
넷째, 특히 80년대부터 급속히 진행된 정보화사회에 있어서 어떤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를 갖지 않고서는 그 보급과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프트웨어는 거의 전부가 문화예술의 소산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VTR은 비디오프로그램을 가지고서야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PC 시장의 급성장은 컴퓨터 게임 타이틀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위성에 의한 방송의 눈부신 발전과 정보고속도로의 진전은 문화를 세계적으로 동시화·단일화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존 산업사회의 제품들까지도 보다 문화적이며 미적 가치를 가진 제품으로 개선되기를 요구하고 있고, 또 앞으로 거의 미적 가치가 선택기준이 되는 단계로 진행될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문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함께 문화 없이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있고, 문화재단을 설립하거나 전담 부서를 설치하여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아직 단순한 자금 지원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제 우리 기업도 단순히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나 시혜 차원에서가 아니라 문화예술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고 문화창조의 토양을 살찌우는 제도와 체계를 만들기 위한 문화투자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진흥기금 기부금 체납 현황 분석
문화예술진흥기금 기부금의 체납은 법률적으로 문화예술진흥법 제18조 제2항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개인 또는 법인으로부터의 기부금품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에도 불구하고 받을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근거는 1982년 11월 제114회 정기국회에 상정, 의결됨으로써 1982년 12월 28일자로 공포된 법률 개정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을 신설한 이유는 당시까지 묵시적으로 존재해 온 기부금 체납을 합법화함과 동시에 공연장 등으로부터의 문예진흥기금 모금에만 의존하던 기금 재원의 절대적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조세감면규제법이 1981년 12월 31일 제정되어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하는 금액' 에 대해서는 전액 손금에 산입할 수 있도록 하여 문예진흥기금 기부금은 소득세법 및 법인세법상 기부금과 마찬가지로 '법정기부금'에 속하게 되어 파격적인 세금감면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러한 법률 개정에 힘입어 1983년부터 기부금 체납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문예진흥기금 기부금에는 기부자가 기부조건 없이 기부하는 '순수(純粹)기부금'과 구체적 기부대상과 기부조건을 지정하여 기부하는 '조건부(條件附)기부금'등 두 가지가 있다. 기부금이 조성되기 시작한 1973년부터 1995년 말까지 23년 동안 체납된 기부금의 총액은 1,439건에 45,375,899,867원이다. 이중 순수기부금은 94건에 2,184,180,000원이며, 조건부기부금은 1,345건에 43,191,719,867원이다.
문예진흥기금 기부금 체납현황 분석은 기부금 중 절대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건부기부금 체납현황 중 최근 6개년간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방법이나 형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역대 기부금 체납 현황
<표3>를 보면 1973년부터 기부금 체납이 시작된 이래 1973년, 1974년, 1975년, 1977년 등 4개년은 아예 체납실적이 전혀 없고, 또한 1980년도까지의 체납액도 2천8백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세감면 규제법과 문화예술진흥법이 개정된 이후인 1983년부터 기부금은 대폭 늘어나 연평균 10억 원 이상의 기부금이 체납되고 있다. 특히 1983년, 1984년, 1995년 등 3개년 도는 다른 해에 비해 아주 두드러지게 체납액이 늘어나는데, 1983년과 1984년의 경우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인한 국민의 반일감정이 계기가 되어 건립하게 된 독립기념관의 건립 지원을 위한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회원기업들의 기부금으로 1983년에 58억 4천9백5십만 원, 1984년에 52억 4천8백만 원이 각각 체납되었기 때문이며, 1995년의 경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미술제로 광주에서 성공리에 개최되었던 광주 비엔날레 기금조성 및 관련사업 지원을 위해 62개 기업으로부터 92억 9천1백만 원이 기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금액은 많다고 하더라도 1개 사업에 집중되어 기부금이 체납된 관계로 타 분야에 대한 기부금액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부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집중지원 현상은 1985년 이후도 계속된다. 1985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의 기부금 체납내역 중 집중 지원된 사업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85 : 문화예술정책 연구비 및 민족문화회관 확보비 등 2건(689,980,000원 / 전체의 71 퍼센트)
1986 : 현대문화사상연구소 운영비 및 사업비(999,470,930원 / 전체의 67퍼센트)
1987 : 윤봉길 의사 숭모회관 건립비(1,515,000,000원 / 전체의 62퍼센트)
1988 : 올림픽문화예술축전 행사 경비 지원(1000,000,000원 / 전체의 82 센트)
1989 : 자유민주이념을 위한 도서출판비(1,200,000,000원 / 전체의 80퍼센트)
1990 : 서울국제미술제 개최 경비(500,000,000원), 소설가협회 운영비(200,000,000원)
해외 동포 사랑의 책보내기 경비(217,070,000원) 등 3건(전체의 52퍼센트)
1991 : 해외동포 사랑의 책보내기 경비(114,000,000원), 연변조선족 작가의 집 건립비
(220,000,000원), '91우정의 문화행사 경비(120,000,000원)등 3건(전체의 42퍼센트)
1992 :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1,400,000,000원), 춤의 해 행사 경비(300,000,000원) 등 2건
(전체의 65퍼센트)
1993 : 휘트니 비엔날레 행사 경비(243,500,000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전시 경비
(98,620,000원), 아시아현대음악제 개최경비(92,500,000원)등,3건 (전체의 40%)
1994 : 예술의 전당「영고」공연지원(200,000,000원),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개최 경비
(100,000,000원), 인쇄연구소 설립기금(203,000,000원)등 3건 (전체의 28퍼센트)
여러 기업이 연합하여 일부 사업에 집중 지원하는 현상은 90년대 들어 약간 둔화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이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하나로서 자주적, 개별적으로 행하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분야별 기부금 체납현황 분석
1990년 이후 6년간 기업들의 분야별 기부금액 순위는 미술, 종합, 음악, 문학, 전통예술, 연극, 무용, 영화의 순으로 나타나고, 기부 건수로는 종합, 미술, 문학, 음악, 연극, 전통예술, 무용, 영화의 순이다. 미술 분야가 단연 타 분야에 비해 월등하게 기부 액이 많은 이유는 1995년 광주 비엔날레 개최를 계기로 무려 62개 기업이 행사 기금 조성 및 관련 사업 지원에 92억 9천1백만 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한 해에 기부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광주 비엔날레 기금지원은 향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방향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형태는 대체로 일회성 행사지원이나 소모적인 운영비 지원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항구적인 지원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금fund지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국 행사가 존속하는 한 조성된 기금의 이식 금으로 행사경비는 충당되고, 아울러 단체도 안정적으로 사업계획을 구상할 수 있어 항구적 지원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술 분야 다음으로 체납액이 많은 종합 분야는 예술장르로 구분하기 힘든 복합기능의 예술단체(한국문화학교 등)와 종합문화예술제 등을 여기에 분류하였기 때문에 미술 분야 다음의 순위는 큰 의미를 갖기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음악 분야는 미술 분야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많은 금액이 체납되어 있다. 기업의 지원이 왜 음악 분야에 집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음악은 고상하다는 사회적 평가가 이미 내려져 있고, 다른 예술 분야보다도 지원하기 쉬운 안정성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나라 음악교육이 서양음악 일변도로 진행되어 누구라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바흐 등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친숙해져 있고 어느 정도의 감상 능력이 있어 청중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티스트 측의 매니지먼트 체제도 타 분야에 비해 잘 정비되어 있어 조직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문학분야는 소설가협회 운영비 지원 및 연변조선족 작가의 집 건립 지원, 해외동포 사랑의 책 보내기 사업지원을 제외하면 별로 두드러진 것이 없다. 한편 전통예술이 오히려 연극이나 무용 분야보다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는 이유는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전반적 사회분위기와 기업의 사업기반이 되는 지역의 문화행사 지원을 통해 지역밀착형 지원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2>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종합 분야에 기부금 체납 건수가 타 분야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이는 곧 기부 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업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종합분야가 이렇게 기부건수가 많은 이유는 한국문화학교 교육협의회(삼성출판사 등 10여 개 사가 매월 일정액 기부)와 같이 기업들이 예술단체의 후원회를 결성하여 주기적으로 해당 단체의 운영경비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원회의 결성을 통한 지원은 바람직한 기업의 지원형태로서 해당 단체가 안정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업은 어떻게 문화예술을 지원해야 할 것인가?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본적인 출발점은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법인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단위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직분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그 이익의 일부는 당연히 사회에 환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문화활동이 국가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문화활동은 국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시민사회 특히 기업의 전폭적인 참여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문화예술 지원을 해야 할 경우 각 기업은 자신의 역사와 사시(社是), 그리고 동종 기업과의 차별화, 자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환경 등을 감안하여 프로그램을 결정하되 시혜 차원의 일회성 지원보다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어떤 단체의 운영자금을 지원한다든지, 더 나아가서 기금을 지원하는 형식의 항구적 지원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사회를 맞이하여 기업은 문화예술을 별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긴밀한 파트너의 관계를 유지하며 문화예술을 기업의 제품생산이나 경영전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이제 다가오는 시대는 기업이 문화와 함께, 문화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문화인프라에 대한 투자이다.
여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의 주식회사 캐논의 문화예술 지원방법을 참고로 소개한다. 캐논은 1991년 사회문화지원센터를 발족시켰는데 본업의 연장선에서 '아트라보'라는 문화 예술 지원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아트라보'는 새로운 영역인 일렉트로닉스 기술과 예술의 만남, 즉 양자의 공동작업을 목표로 하였다. 캐논이 소유하고 있는 디지털 화상처리기술과 예술가의 창조성이 만나는 장을 확보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으로서,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실험실과 고액의 기재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엔지니어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원조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캐논 측에서도 장기적 메리트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예술가로부터 오는 무한정한 기술상의 요구로 인해 이 프로그램은 기기의 개발, 차세대 기기의 구상이라는 상품개발에서 결여할 수 없는 지혜와 활력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아트라보'의 성과는 기획전에서 소개하고 나아가 이 활동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아트에 관한 정보를 게재한 잡지를 발행하여 예술가와 관계자의 네트워크를 촉진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 문화투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일례로 삼성그룹에서 금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멤피스트 제도는 앞으로 우리 문화예술계를 이끌어나갈 신진들을 뽑아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를 부여해 주는 제도로서 바로 문화인프라를 겨냥한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더 세련된 문화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종사할 고급인력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연예술에 있어서도 좋은 대본과 연기자뿐만 아니라, 무대를 운영하는 양질의 스태프와 무대미술, 의상의 상상력이 더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방법이 꼭 금전적인 지원만이 아닌 보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장비나 재료를 대여해 주거나. 사옥 내에 여유공간을 예술활동을 위해 무료로 빌려주거나, 직원들 중 자원봉사를 원하는 사람은 예술단체의 회계업무, 자금관리, 홍보업무, 각종 인쇄물의 디자인업무 등을 돕도록 함으로써 금전 지원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