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뽀. 2 / 시화전

한마당 시잔치, 문학계의 커다란 화제

-'96문학의 해 기념 시화전-




'96 문학의 해 기념 시화전이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주최와 문화체육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후원으로 지난 7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시 감상인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열린 문학 실천을 위해 마련된 이번 시화전은 우리나라의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백여 명의 시를 유명화가들의 화폭에 담아 인간의 따뜻한 정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글과 그림으로 함께 보여주었다.

서정주, 박도진, 고은, 김남조, 김종길, 설창수씨 등 원로 시인에서부터 정호승, 조태일, 함동선, 김시철, 이수익씨 등 중견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101명의 작품을 송수남, 송성룡, 송진세, 장진우 화백 등 화단의 중진 50여 명이 시인들이 쓴 시의 밑그림을 그려, 시와 그림이 한 작품 속에서 어우러지는 이색적인 전시회였다.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서기원 위원장은 "이번 시화전은 예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와 그림이 함께 어울리는 만남의 장으로서, 감상하는 이에게 공감과 친밀감을 더해 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시화전 개최의 의의를 설명하였다.

시의 위기를 곧 문학의 위기로 이해했을 만큼, 시는 우리 역사에서 문학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시대 정신과 가치 수위를 상징하는 장르로서 그 입지를 굳건히 지켜왔다. 그러나 80년대 이데올로기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훼손되기 시작한 시의 표상은 급기야 상업주의와 영상매체의 득세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전면적인 침체, 위기 국면에 빠져들게 되었다. 문학의 위기, 특히 시의 위기란 단순히 일개 예술 장르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 시대 정체성과 가치관의 위기를 의미한다. 사회정신과 미래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번 시화전은 따라서 문학의 해를 빌미 삼아 일과성으로 치러지는 행사가 아니라, 시의 위기를 근심하는 국내대표시인 1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대중들에게 시의 미덕을 전하려는 충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늘이 / 하도나 / 고요하시니 / 난초는 / 궁금해 / 꽃피는거라' (서정주의 「하늘이」)라는 시에는 화가 송수남씨가 그윽한 자태의 난초를 그렸고,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란 박두진의 「해」는 주홍색으로 힘차게 꿈틀거리는 황혼을 배경으로 한 장윤우씨의 그림이 함께 어우러졌다.

시인 구상의 「수침(羞恥)」는 김봉태, 설창수의 「감」은 조원섭, 고은의 「수평선」은 송수남, 김광규의 「노동절」은 정차석, 이시영의 「질주」는 이양우, 정호승의 「미안하다」는 허용씨가 각각 시인의 가슴에 떠올랐을 법한 시상(詩想)을 때로는 화려한 색채로, 때로는 잔잔한 배경으로 담아냈다.

시인 김규동, 이상범씨 등 자신의 시에 걸맞은 그림을 직접 그린 시인도 11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조병화, 성춘복씨는 이미 수 차례 개인전을 열 정도로 문단 내에 이름난 시인겸 화가다. 또한 고은, 정호승씨 등을 비롯,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화전을 위해 새롭게 쓴 작품이나 미발표 작을 선보였다.

이번 시화전은 몇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문단 내부의 갈등을 벗고 오랜만에 각지의 시인들이 대승적 명분으로 결집했다는 의미에서도 자못 아름다운 무게를 가진다. 비교적 오랜 기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엄선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시를 '읽는' 즐거움과 함께 '보는' 즐거움까지 제대로 얻을 수 있는 한마당 시잔치로 문학계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호응 속에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