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 작가의 문학세계
유숙자 / 고려대 강사
1.
일본문단에는 일본인 작가와 똑같이 일본어로 소설이나 시, 평론을 써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는 한국인, 한국계 일본인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 문학에 대한 호칭이 일정하지 않다. 우선 한국 사정을 보면, '교포문학(김윤식) '재일 동포문학' (이한창)이라 하여 일본문학과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교포', '동포'라는 어휘는 그 자체가 매우 제한된 범위를 지니는데,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우리(한국)쪽 입장을 일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얻어진 호칭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어떠한가. 소위 '재일 조선인문학'으로 널리 통용, 이해되고는 있으나, 완전히 정착된 용어라고 볼 수는 없다. 평론가 다케다 세이지의 '재일 문학'이나 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의 '<재일 하는 자(者)>의 문학'과 같이 '재일'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재일'이 곧 '재일 조선(한국)인'임을 지칭한다는 암묵적 이해가 깊이 깔려 있는 듯하다. 좀 생소하긴 해도 '재일 조선인 일본어문학' (하야시 고지, 林妿治)이라고 부르는 측도 있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에서 평론가에 따라 각각 달리 호칭되는 것은, 평론가 나름의 '재일 조선(한국)인에 의해 일본어로 씌어진 문학'을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 쪽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보다 객관적 시각에서 이들 문학을 조명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한국, 일본 어느 쪽에도 통용될 수 있는 호칭을 생각해 보았다.
'재일 한국인문학'이 어떨까. 이 문제는 앞으로 더욱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글의 진행상 편의를 위해 임의로 '재일 한국인문학'이라 부르기로 하겠다(이하 '재일 문학'이라 약칭, 또 '재일 한국인 작가'는 '재일 작가'로 약칭).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재일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자신 재일 한국인이면서 「'재일' 이라는 근거」(치쿠마문고, 1995)를 낸 바 있는 다케다 세이지(본명은 姜修次)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재일 한국 조선인에 의한 문학을 말한다. 과거 일본의 조선통치, 병합에 의해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정주 하게 되었다. 그 문학은 민족적 아이덴티티의 위기 가운데 그들의 고뇌와 저항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빛 가운데로」를 쓴 김사량(金史良)은 이들 최초의 주자(走者)라고 할 수 있다.'(「전후사대사전」, 산세이도(三省堂), 1991년)
그러나 재일 문학의 계보를 더듬어 볼 때, 제1세대에 속하는 김사량, 김달수(金達壽), 장혁주(張赫宙), 정연규(鄭然圭) 등의 문학에서 제2세대로 이어지는 주자들, 이회성(李恢成), 김학영(金鶴泳), 김석범(金石範), 고사명(高史明), 김태생(金泰生) 등의 문학적 특성이 이양지(李良枝) 이기승(李起昇)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재일'의 신세대 작가, 유미리(柳美里), 쓰카 고헤에(일본말로 '언젠가는 공평'이라는 어휘, 이쓰카 고헤이와 의미가 맞물린다), 원수일(元秀一), 사기사와 메구무(鷺澤萌)에 이르러서는 재일 문학의 특징을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 점은 이미 다케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짐작되거니와 제2세대의 작가들에게서 보이기 시작한 개별적 문학 특징이, 제3세대 작가(실제로는 재일 2세에 속하는 세대가 많다) 에서는 눈에 띄게 현저해지고 있으며, '민족적 아이텐티티의 위기, 고뇌, 저항'과 같은, 이른바 재일 문학을 재일 문학답게 한다고 여겨지던 요소들이 거의 모습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바로 재일 문학의 특징이자 현주소이며 이미 완결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끊임없이 진행·생성 중인 과정의 문학에 다름 아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일 문학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사고 틀로부터 벗어나기를 촉구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한편, 재일 문학의 다양성은 곧 재일 한국인의 시대와 현실인식, 상황과 직결되는 것이며, 동시에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실존적 상황에 대처하는 것 개인의 차이이자 다양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이들 문학에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 재일 작가들의 문학세계는 어떻게 출발, 전개되어 변모해 왔는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2.
1992년 정연규가 의병장의 이야기를 쓴「혈전의 전야」를 발표한 것이 일본 문학계에 알려진 최초의 단편이긴 하나 앞에서 인용한 다케다의 재일 문학에 대한 정의를 상기할 때, 아무래도 재일 문학의 출발은 김사량이나 김달수에게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제1세대에 속하는 이들의 특징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까닭에 일본어로 쓰인 작품 밑바탕에는 '원문'으로서의 한국어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이 언어를 그 표현수단으로 함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재일 작가에게 있어 언어의 문제는 그들의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강하게 얽혀 있으므로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것이다. 이후의 제2, 3세대에 올수록 한국어는 거의 외국어에 가까운 언어가 되고 만다.
김사량은 1914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고보에 입학, 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퇴학당하고 1931년 도일했다. 동경대 독문과에 진학하면서 '기항지', '제방' 등 동인을 결성하고 단편 「토성랑(土城廊)」(1936)을 발표, 주목받기 시작한다. 처녀작인 이 작품은 평양 변두리의 저지대 빈민촌이야기이며,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다가와(芥川)상 후보작으로 결정된「빛 가운데로」(1940)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학대받고 삐뚤어진 소년이 마침내 마음을 열고 순수한 동심을 회복해나가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창작집「빛 가운데로」의 '후기' 에 실린 다음 문장은 36세의 나이로 요절, 그의 문학이 좀더 오래 지속될 수 없었음을 아쉽게 만든다. '현실의 중압감에 눌려, 나의 시선은 여전히 어두운 곳에만 쏠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늘 명암 속을 헤엄치고, 긍정과 부정 사이를 누비며, 언제나 희미한 빛을 찾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빛 가운데로 빨리 나아가고 싶다. 그것은 나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빛을 구하기 위하여, 나는 어쩌면 아직 어둠 속에 몸을 움츠린 채 눈을 반짝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김달수는 1919년 경남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10세 때 도일, 일본대학 예술과를 졸업했다. 「가나가와(神奈川)신문」,「경성일보」의 기자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그 뒤 일어잡지인 「민주노선」의 편집을 담당했고, 대표작으로 장편「현해탄」(1954)을 비롯, 해방기 사회 정치상황을 묘사한 「태백산맥」(1969)등이 있다. 또한 소설 외에도 문명평론 「일본 속의 조선문화」는 일본인들에게 문화전래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준 역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재일1세대의 일본어에 모어(母語)로서의 한국어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반면, 제2세대 문학자인 이회성, 김석범, 김학영 등은 모어로서의 한국어, 조국으로서의 한반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아이덴티티로부터의 '거리'를 자신의 문학적 테마로 하게 되었다. '제1세대가 말하자면 <망명>의 문학으로서 일본에 <이주>한 것에 불과하다면, 이들은 망명자의 2세로서, 현재의 땅과 돌아갈 수 없는 부모의 땅과의 거리에 구애받으며, 그 경계에 선 입장에 자신의 위치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가와무라 미나토, 「'재일' 작가와 일본문학」)
이회성은 「다듬이질하는 여인」(1971)으로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한 최초의 재일 작가이며 한국독자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935년 사할린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러시아 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82년 고향인 사할린을 취재한 여행기 「사할린 여행」을 발간, 그 후 10여 년의 침묵 끝에 장편소설 「유역으로」(1992)를 발표하여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또 1994년에는 「백년 동안의 나그네」가 그 해 노마(野間)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명실공히 재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김석범은 1925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교토(京都) 대학 미학과를 졸업했다. 「까마귀의 죽음」(1967)이 아쿠다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주도의 4·3사건을 소재로 한 대작 「화산도」를 1983년에 출간했다.
이회성, 김석범과 더불어 제2세대에 속하면서 말더듬이로서의 고통과 슬픔을 묘사한 자전적 작품 「얼어붙은 입」(1966, 문예상 수상)을 발표, '<재일>이라는 의지할 데 없는 비애나 차별의식에서 오는 갈등을 인간 본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함으로써 재일 문학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가와무라 미나토)고 평가받는 작가로 김학영(1938∼1984)이 있다.
김학영은 동경대학 공학부를 졸업,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창작에만 전념했다. 아쿠다가와상 후보에 오른 「돌길」(1973),「여름의 균열」(1974),「겨울의 빛」(1976),「끝」(1978)등을 계속 발표했으나, 46세로 가스 자살이라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문학에 대해 평론가 다케다 세이지는, 김학영과의 만남을 통해 글쓰는 길로 접어들었다며, '체호프나 다자이 오사무(大幸治), 나쓰메소세키(夏目材石) 등을 읽고 완전히 감동해버린 것과 같이 김학영의 소설 또한 이들 작가들과 문학적 본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금방 이해했다'고 하였다.
이회성과 김학영 이후 거의 20년 정도의 공백을 깨고 등장한 이양지와 이기승은 '순수한 전후세대로서 재일의 신세대 작가에 속한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소위 80년대 후반의 '한국붐'은 이들 재일 문학의 경향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하나가 모국을 방문한 젊은 재일 세대의 문화적, 언어적 차이의 인식이라 할 것이다. 군상(群像) 신인상을 수상한 이기승의 「제로한」(1985)에는 모국을 마치 외국여행처럼 방문하는 재일 젊은 세대의 감성이 묘사되어 있는가 하면, 서울에 유학 온 교포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양지의 「각(刻)」(1984)이나「유희(由熙)」(1988. 아쿠다가와상 수상작)는 모국에서 느끼는 이방인으로서의 내면세계를 그린 것이다.
이양지(1955∼1992)는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1982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다시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공부하였으며 일본으로 돌아가 장편「돌의 소리」에 착수, 집필 중이었으나 급성심근염으로 37세의 나이로 아깝게 타계했다.
문단 데뷔작이자 아쿠다가와상 후보에 오른 「나비타령」(1982)은 이양지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요소가 적지 않으며, 이러한 요소는 그녀의 자전적 사실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를테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으로부터 받는 위화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를 벗어나고자 한다. 가족, 가정의 불화로 인한 가출, 자살미수, 서울 유학의 결심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위협받고 불안해하는 자기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정체성 확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한국유학 중에 직접 배우게 되는 전통음악(가야금), 전통무용(살풀이)과의 만남이며, 춤과 소리를 통해 내면적 갈등이 해소되고, 세계와 자아의 삐걱거리던 관계가 화해를 이룬다. 음악선율, 소리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모국에 와서 배우는 우리말의 음성적 울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한글의 사용이 쉽게 눈에 띄는 것도 말의 의미보다 소리, 더 정확하게는 소리의 감촉(感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이양지 문학에서 빠뜨릴 수 없는 특징은, 그녀 특유의 감성에서 포착되는 여성성feminity이다. 여성의 심리, 내면세계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더불어 육체적 변화에 대한 주의 깊고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다. 이렇듯 이양지 문학은 제2세대와 시간적으로 꽤 격차가 있지만, 기존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재일 문학을 선두에서 예고한 교량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이라는 양극만의 관계가 아닌, 보다 보편적인 시야에서 재일 이라는 입장을 보는 시각이 있다. 재일 작가로서 최초로 나오키(直木) 문학상을 수상한 쓰카 고헤이나 문예평론가 다케다 세이지, 성미자(成美子)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원수일처럼 오사카의 재일 한국인 거주지 이카이노(猪屎野, 미유키모리(御御森)라고도 부름)를 자신의 문학적 고향으로 삼고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다.
이와 같이 제3세대에 오면 재일 문학은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을 띠고 확산되어 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향은 보다 개개인의 문제성 속에 강하게 수렴되어 작가의 독특한 개성으로 표출된다. 그러면 이제 최근에 발표된 이회성, 유미리, 사기사와 메구무의 작품을 중심으로 재일 한국인 문학의 의의와 전망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3.
재일 문학을 논의할 때, 그와 동시에 혹은 그에 앞서 우리가 파악해 두어야 할 것 '재일 한국인' 에게 있어 '재일'이 담고 있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재일>이라 함은, 공동체의 틈바구니에 있음으로써 최초의 불우성(不遇性)이 생겨나는, 세계에 대한 이화감(異和感)이라는 하나의 사건 현장이다. 따라서<재일>은, 한편으로 이 불우성을 부정하여 늘 자기 본래의 공동체를 꿈꾸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이 꿈꾸는 능력을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현재의 세계나 공동체를 언제나 계속 초월해 나가려고 하는 인간 욕망의 깊은 뿌리를 우리들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다케다 세이지,「'재일'이라는 근거」)
이와 같은 다케다의 '재일'을 보는 시각은 다분히 김학영의 문학을 의식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재일 문학을 '재일 문학'이라는 좁은 테두리에 국한시키지 않고, 보편성을 지닌 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다만 다케다가 사용하는 재일의 '불우성'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적합한가를 따지기보다, 우리는 재일 문학의 1세대, 2세대 작가들이 주로 그려온 관념상의 이데올로기 문제나, 민족적 아이덴티티로 인한 갈등과 고뇌, 모국지향의 정서가 소위 신세대의 재일 작가에게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혀 새로운 재일 문학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지난달, 일본문학잡지 「문학계」(1996. 5)는 두 사람의 재일 한국인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싣고 있어 흥미를 끈다. 제2세대 작가로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근년에 활동을 재개한 작가 이회성의 「죽은 자와 산 자의 시장」과 제3세대에 속하는 유미리의 「소년구락부」이다.
간단히 살펴보자면, 전자는 23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재일 작가-이회성 자신임을 금방 알 수 있다-가 젊은 시절의 옛 친구와 서울에서 재회를 하고 남대문시장 등 여기 저기를 둘러보면서 한국인과 일본인과의 차이, 한국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한편 후자에는 일본의 소학교 6학년 아이들의 또래에서 볼 수 있는 짓궂은 행동들-주로 성(性)에 대한 어설픈 호기심에서 유발된 코믹한 사건들이다-을 통해 사춘기를 맞는 소년들의 다감(多感)한 한때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이 굳이 재일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읽는다면 또래 중의 하나가 '죠센징'이라는 이유로 다른 패거리로부터 '이지메'를 당하는데, 원래 김(金)이라는 성을 지닌 기무라(木村)가 자신은 이미 귀화했으므로 일본인이지 죠센징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대목을 발견하게 되는 정도이다. 기무라는 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니며, 이 작품이 재일 한국인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에는 그 요소가 극히 희박하다. 이들 두 작품에 앞서 거의 동시에 발표된 것으로 역시 이회성의 장편 「유역으로」(1992. 6)와 사기사와 메구무의「진짜 여름」(「신조(新潮)」, 1992. 4)이 있다.
이회성의 소설은 재일 작가가 카자흐공화국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민족문제를 다루고 있는 반면, 사기사와의 소설에서는 재일3세대에 속하는 남자주인공이 일본인 여자친구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국적이 탄로 날까봐 몹시 당황한다. 그 동안 한번도 심각하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고민해 보기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자각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비교적 긍정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수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렇듯 제2세대와 제3세대 재일 작가간에는 눈에 띄게 '재일'의 양상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같은 제3세대에 속하는 '재일'한국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적 차이가 뚜렷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작가는 아니지만 논픽션「아주 보통의 재일 한국인」을 써서 아사히 저널 상을 받은 바 있는 강신자(姜信子, 자신의 이름을 교 노부코라 부름으로써 모국에도 일본에도 아이덴티티를 갖지 못하고 어느 쪽도 아닌 아이덴티티 즉, '재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나타낸다)는, 제3세대의 재일 한국인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경우라 할 것이다. 우리는 재일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통해 '재일'을 사는 그들의 사고와 문제의식에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의 생각과 생활이 얼마나 일본인적으로 되어 버렸는가를 실망하고 개탄하기 위해서 그들의 작품을 읽는 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방학을 이용해 모국 방문 차 한국말을 배우러 온 재일 대학생들에게 원망 조로 묻는다. 왜 우리말조차 제대로 못하느냐고).
재일2세대의 작가가 보여준 '민족이냐 동화냐', '북쪽이냐 남쪽이냐' 하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는 시기는 이미 끝났는지도 모른다. 재일 한국인은 다만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그들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니면서 문학을 하고, 존재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미 두 번의 아쿠다가와상 외에도 나오키상 수상 등의 경력이 말해주듯 재일 한국인 문학에는 일본문학 작품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재일 한국인 문학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세대 재일 한국인 문학에는 현대 일본문학이 보여주는 흐름과도 유사한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나는, 이를테면 여기서,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같은 일본의 현대작가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문학 역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고도 소비사회 속에서 '자의식'상(象)을 어떻게 확정지을 것인가에, 기본모티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공통항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 또한, 과거의 정치적 세계의 전망이 상실된 이후의 장소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세계에 살고 있다는 뿌리깊은 위화감각(違和感覺)이, 처음 겪는 경험으로서 주의 깊게 포착되지 않는 한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실이, 암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다케다 세이지, 「'재일'이라는 근거」)
이렇게 볼 때, 이제 재일 한국인 문학은 재일 문학이라는 특수성과 더불어 시대적 보편성을 담은 문학으로서, 일본 현대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리라 기대된다. 문학은 결국 누구에 의해 쓰여졌느냐 보다, 무엇을, 어떻게 썼느냐를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재일 한국인 문학은 또한 우리 문학에도 일종의 문학적 자극으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보다 큰 관심이 요구됨을 지적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