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자연
서성록 / 미술평론가
자연의 시각적 실제성 중시한 서양미술
러브조이 A.O.Lovejoy는 자연개념을 적어도 66가지 의미로 분류한 적이 있다. 자연과 관련해 그 함의가 폭넓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양의 자연개념은 이 용어를 반대개념과 대조시켜 보았을 때 확실히 드러나게 된다. 초자연적인 것, 예술, 제도, 그리고 원시적인 것과 반대의미로서의 원시 이후의 것 등등. 그들에게 자연적인 것이란 아마 인위적인 것, 제도적인 것, 동시대적인 것보다 우월한 어떤 것으로 자리 매김 되어 왔던 것 같다. 물론 이 네 가지 용어 중 초자연적인 것만이 자연적인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자연적인 것이 초자연적인 것과 대립했을 때, 고대와 중세에 있어 후자는 전자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믿었다. 신과 천사는 정신성, 불멸성, 이상, 불변성 그리고 많은 사상가들이 지적했듯이 도덕적, 미적 우월성을 상징하는 이름에 다름 아니었다.
자연적인 것이란 직접적으로 물질적인 것을 뜻하거나,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실재적인 것을 뜻한다. 실재가 물질계에서 이상계로 떨어져 있다고 본 사람은 플라톤으로, 그는 이데아가 불변적이고 항구적이며 또는 무시간적인 데 반해 소위 말하는 물질이란 언제나 변화하고 한시적이라고 보았다. 그리스인들에게 자연이란 인간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세계, 다시 말하면 어떤 법식(法式)을 부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과학자들에게 있어 자연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이란 모든 변화 속에서도 규칙적이며, 보편 법이야말로 그러한 규칙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전통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여전히 현대 과학자들에 의해 신뢰를 받는다. 자연이 규칙적일 수 있는 근거는 실제로는 '자연의 기하학'에 연유하는 것으로 자연의 기하학은 합리적 윤리와 신고전적 미학의 합리적 토대를 이루었다. 자연의 규칙성처럼 사람은 일관된 성격을 지녀야 할 뿐 아니라 그의 행동은 이성에 기초할 것을 주문하였다. 정열적 삶의 난점은 일관성이 없고 신뢰를 저버린다는 데 있었다. 예술도 이런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합리적인 창조물의 작품은 규칙성으로부터 미를 이끌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성은 규칙이자 질서이기 때문이다.'(John Dennis)
자연을 대하는 서양의 관점은 그리스 이후에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의 외적 현상에 주목한 자연주의만 하더라도 자연 자체보다도 그것을 얼마나 인간화, 예술화시킬 수 있을지를 가장 큰 과제로 여겼다. 말하자면 자연을 형상화하되 형상화 과정의 시각적 실재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얼마나 리얼하게 재현할 수 있는지, 재현을 위해 필요한 제반조건은 구체적으로 확보되었는지가 관건이었지 자연 자체의 응시는 차후 문제였다. 선 또는 공기원근법을 발명했다든지, 빛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든지, 생명체나 무생명체의 구조, 표면, 텍스처를 묘사할 수 있는 수법을 개발했다든지 하는 등의 미술사의 성과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연을 어떤 가공의 대상으로 인식했던 서구인 특유의 세계관을 말해준다.
물론 19세기에 들어와 자연 자체를 응시하는 일군의 화가들이 출연했던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프리드리히(독일), 콘스타블(영국)과 코로(프랑스)로 대표되는 풍경화의 등장이 그러하다. 여기서 자연은 비로소 독자적인 의미를 갖게 되나 미술의 역사 전체로 볼 때 '한 철'의 단명에 그쳤고, 그것도 국부적으로 지속하는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다.
근대에 들어와 자연의 존재는 더없이 초라해지게 된다. 파노프스키 E. Panofsky가 말했듯이, 미학은 그 자신과 다투지 않으면 안되었고 19세기 후반 콘라드 피들로 K. Fiedler와 알로이스 리글 A. Riegl은 화가들의 상상력 및 형식구조를 강조하여 자연은 점점 더 멀어져가기만 했다. 물론 그 원인은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빈켈만, 레싱, 칸트, 쉴러 그리고 괴테 등에 의해 확고히 구축된 예술이론은 르네상스이래 탐구되어 왔던 것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론은 인간 활동으로서의 예술의 자율성에 현저한 '인식적 진전'을 가져왔다. 그 인식적 진전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지닌 창조적 능력에 대한 주목, 즉 예술작품은 자연세계와 현저히 구별된다는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연에 충실할 것', '생명에 충실할 것'을 주장하는 자연주의자들의 슬로건이 나왔다. 창조성에 궁극적이고 본질적 원천은 자연경험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으나 계몽주의자들의 거센 요구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의할 것은 이때의 자연주의자들이란 문명과 이성의 물결에 휩쓸리는 것을 거부하는 반문명론자, 반이성주의자들이지 동양에서 보듯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동양의 자연은 서양과 질적으로 내용을 달리한다. 동양에서 자연은 '가공되어야 할 대상' 이 아니라 흠모하고 존경해야 할 스승이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공자), '산을 본받고 물을 규범 삼는다'(사마상여)등 자연에 대해 말한 동양의 사상가들은 수없이 많다. 장자는 세속에 대해 혼탁하다고 느끼고 이러한 세속으로부터 초월을 희구하는 사상을 깨우쳐 인간 세상을 초월하여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면서 능동적으로 자연을 추구하였는데, 그의 물화사상은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는 단계로까지 진일보하였다.
자연 본질과의 융화 추구한 동양미술
흔히 동양의 산수화는 서양의 풍경화보다 1천3백 년이나 앞서 출연했다고 한다. 단지 앞섰다는 이유만으로 동양의 자연관을 설명하는 데는 부족할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에 대한 특별한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이 점을 설명해 보자. 피터 브뤼겔이 제작한 「알프스 풍경」과 11세기에 살았던 중국화가 곽희의 「계산추제도」라는 작품이 있다. 두 그림은 재료와 기법의 측면에서 매우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산을 테마로 삼았을 뿐 아니라 간결한 소묘로 처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브뤼겔의 작품에서는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의 장관이 펼쳐져 있고 곽희의 작품에서도 톱니 모양의 웅장한 봉우리들이 늘어선 협곡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외견상 브뤼겔의 풍경화나 곽희의 산수화나 자연에 대한 무한한 외경감이 이 두 명의 대가들의 작품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거기에는 근원적인 차이점이 숨겨져 있다.
'브뤼겔의 풍경화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농부의 모습으로, 그들은 자신의 고향이며 동시에 운명인 거대한 원형 경기장 같은 산 속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자연의 무한한 공간에 펼쳐진 드라마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한편 '중국의 산수화에서 자연의 영원한 형태는 그 자체가 시간의 거대한 파노라마 속에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인물이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역할이나 행선지는 중요하지 않다.(중략) 풍경의 형태는 그것들이 영원성이나 무한한 공간을 암시함으로써, 우주라는 기구에 생기를 주는 정신의 궁극적인 계기라는 중국인의 자연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Benjamin Rowland)
두 작품의 차이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같은 풍경을 주제로 삼았더라도 서양의 것이 농부를 중심으로 펼쳐진 광경이라면 동양이 것은 인간이 우주라는 커다란 기구에서 보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나아가 산의 우람한 자태를 강조하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연을 묘사하는데 서양에서 화가의 창조적 독창성을 강조했다면 동양에서는 생동적 정신의 공명(共鳴) 및 생명의 운동을 강조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의 한 방안으로 서양이 원근법, 명암법을 고안해냈다면, 동양에선 이른바 화육법(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 수류부채, 경영위치, 전이모사)이라는 것이 고안되었다. 물론 이 화육법 중에서도 가장 최상의 위치를 점해왔던 것은 기운생동이다. 기운생동에 따라 화가는 우주적인 힘과 결합하면서, 물질적 형식에 생명, 품격, 의미를 부여하는 우주적, 정신적 힘을 지녀야 한다. 만약 자연을 그린 그림에 생명력에 결여된다면 그것은 최하의 수준인 '전이모사'의 단계로 하락하고 만다. 자연의 살아있는 듯한 진동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파악해 왔던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운생동이 의미하는 바는 더욱 심오하다. 그것은 자연의 외형에서 오는 생명력과 함께 신묘한 정신적 깊이를 동반한다. 기운생동이란 단지 자신의 눈으로 파악된 대상형태의 리얼리티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대상에로의 심입을 통하여 대상의 형상이 작가에게 주는 구속과 허위성을 해탈하여 얻은 결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시각에 매달리는 단계에서 시각을 통해 얻은 경험을 지각활동과 상상력을 결합하여 대상의 보이지 않는 내부의 본질을 관통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화가는 형태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 형태를 상상력을 통해 얻은 본질과 융화시킬 수 있게 되고 아울러 그 본질을 통하여 규정된 형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마 장자가 「양생주」에서 소를 잡을 때 '정신으로 접촉한 것이지,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라고 한 말의 의미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연이란 우리가 반드시 그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획득하게 마련이다. '자연지화(自然之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동양미술의 태도가 자연을 관찰대상으로만 여겼던 서양인들의 태도와 크게 대조가 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