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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상품'으로 새롭게 포장된 『삼국지』열풍




노정용 / 세계일보 기자

국내 출판계-주목되는 소설 삼국지

먼저 소설을 살펴보면 국내에는 현재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텍스트로 한 정비석 평역의 「소설 삼국지」(고려원간)를 비롯해 박종화 역의 「삼국지」(어문각 간), 황병국 역의「삼국지」(범우사 간),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민음사간), 김원중 역의「정사 삼국지」(신원문화사간) 등 10여 종이 나와 있다. 이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소설은 단연 소설가 이문열 평역「삼국지」10권.

이 「삼국지」는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인 민음사에게 월3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려주는 '민음사의 황금거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는 10만질 1백만 부가 팔려 국내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능가하고 있다.

지난 1988년 선을 보인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는 지난해의 1백만 부를 포함해 지금까지 5백만 부 가까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흔히 베스트셀러는 시류에 영합한 나머지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판매실적이 저조하다가 1∼2년만 지나도 독자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는 이 같은 베스트셀러와는 달리 스테디셀러이자 초베스트셀러로서,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행운을 누리며 '신기록'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3∼5년간 우리 출판계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태백산맥」,「아리랑」,「일본은 없다」 등 '밀리언셀러'의 신화를 낳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신화가 사라져 가는 추세여서 「삼국지」의 5백만 부 돌파는 우리 출판계에 주목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흔히 말하는 「삼국지」의 정확한 제목은「삼국지연의」, 원 말 명 초 나관중(1330∼1400?)이 쓴 소설로 진나라의 진수(233∼297)가 쓴 「정사 삼국지」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진수의 「삼국지」는 '위정통론'을 바탕으로 조조를 백성을 다스린 제왕으로 그리고 유비를 처자식을 3번이나 버리고 도망친 못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존유반조'의 사상 아래 유비를 성군으로 그리는 대신에 조조는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하고 있다. 정사와 소설의 이 같은 차이는 송대 이후 주희의 성리학적 명분론이 군신의 의를 강조한 '촉정통론'으로 이어져 「삼국지연의」의 사관을 지배했기 때문에 유비와 조조에 대한 인물평가의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정사삼국지」의 역자 김원중씨의 말).

시대에 맞춰 재해석되는 삼국지 영웅들

왜 「삼국지」가 이토록 인기를 누리고 있을까. 출판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장대한 스케일에 긴장감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 「삼국지」의 재미를 첫 원인으로 손꼽는다. 춘추전국시대라는 약육강식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삼국지」는 영웅호걸들의 지혜를 겨루는 재미에다가 수백만 명의 인물들이 등장, 온갖 유형의 인물을 창출함으로써 인간처세술로서도 손색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인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조조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의 정형'을 이룸으로써 직장인들에게는 처세술로, 경영인들에게는 경영교과서로, 군인들에게는 병법서로 읽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는 다른 소설 삼국지와는 달리 주요 장면마다 등장인물에 대한 성격묘사와 더불어 당시 상황에 대한 고증과 해석을 곁들여 삼국지 내용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현대 샐러리맨과 비교, 분석한 서울대 조동성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비는 겉으로는 의젓해 보이지만 내면적인 자기계산 때문에 답답할 정도로 <신중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관우 같은 면을 지닌 사람은 철저한 충성심에 성격이 단정하고 행동에 절도가 배어 있으나 외곬 적인 사고로 인하여 상황변화에 대한 신축성 부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비형의 사람은 저돌적이고 호쾌한 면을 보이면서도 인정에 이끌려 객관성을 잃는 면을 종종 나타낸다. 그리고 제갈공명 같은 사람은 폭넓은 심성과 지혜를 갖고 심오한 경륜을 바탕으로 천하의 전운을 좌지우지하지만 세상만사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삼국지」의 영웅들도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위·촉·오가 각축을 벌였던 후한 말부터 진나라 초기까지에는 유비, 관우, 장비가 불세출의 영웅이었지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들의 성격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환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백성을 다스린 조조의 성격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더 적합하다는 판단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소설과 함께 '「삼국지」시장'을 양분할 것으로 예상되는 홍익리서치의 「만화인간 삼국지」는 이처럼 현대인들의 성격에 잘 맞으면서도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저본으로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정확한 역사인식과 탁월한 화필 「만화 삼국지」

작가 이지청(34)은 일본과 중국, 동남아 일대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홍콩 출신의 신세대 작가로 홍콩의 3대 신문사 중의 하나인 천천일보가 운영하는 문화전신출판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정확한 역사인식과 탁월한 화필로 「삼국지」,「사서삼경」,「손자병법」등 중국고전들을 계속 장편극화하고 있는데, 주인공들에 대한 독자들의 오랜 편견과 오해를 무너뜨리는 파격적 인물 설정이 그의 작품의 특징. 「만화인간 삼국지」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삼국지」의 틀에서 벗어나 조조를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의 시대적 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지청은 '난세의 간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조조의 단호함과 포용력, 시대를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과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물을 배치하는 뛰어난 통솔력, 그리고 백절불굴의 정신력을 활달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고 유비를 평가절하하고 있지도 않다.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시대를 기다리는 영웅다운 풍모, 인고의 달인답게 온갖 어려움에도 인의 후덕한 면모를 잃지 않는 유비의 모습을 통해 '우리시대의 영웅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끔 하는 것이다.

「만화인간 삼국지」는 의상이나 병기, 건축 등 작품을 구축하는 모든 것에 철저한 고증을 거친 사실주의적 만화를 완성함으로써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2부로 구성된 이번 만화는 조조, 손권, 유비에 의해 중국 대륙이 삼분되기 전의 혼란기에서부터 시작해 유비가 제갈공명을 휘하로 맞아들이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는 장면으로 1부(10권)를 장식한다.

또 2부(10권)는 중원의 주인공을 다투는 조조와 유비의 극렬한 대항을 큰 줄기로 하여 그들 주변에 포진한 참모들의 쫓기는 머리싸움과 혼란을 빚는 대륙의 모습, 그리고 중원의 패자가 된 유비가 끝내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역사의 뒷 무대로 사라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만화인간 삼국지」는 조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후 이를 만화로 그렸다는 점 이외에는 일반「삼국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그 동안 소설「삼국지」가 국내 출판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만화인간 삼국지」가 초·중·고등학생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삼국지 독자층'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홍익리서치의 「만화인간 삼국지」가 출판계에서 크게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일반 단행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점 공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만화는 국민들의 낮은 인식으로 인해 대본소 중심의 유통을 해왔을 뿐 서점에서 일반 단행본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소설에 이어 '삼국지 전쟁'에 뛰어든 만화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며, 1부 10권이 간행된 현재 급속하게 새로운 '삼국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고전에 잠재된 국제경쟁력

소설과 만화「삼국지」가 고전적(출판)의미에서의 문화산업이라면, 컴퓨터게임과 비디오「삼국지」는 영상 분야의 신종 문화산업, 비디오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80년대 이후「삼국지」는 몇 차례 극영화와 만화비디오 프로그램으로 출시됐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참패를 했다. 그러나 지난 1994년 서진 통상의 대하「삼국지」가 출시되면서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비디오는 중국 CCTV가 원전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재현한 90분 짜리 42개로 오락 전문 케이블 TV인 HBS는 이 비디오의 판권을 사들여 지난해 말까지 1년간 방영, 인기를 얻기도 했다. 성인용「삼국지」가 인기를 거두자 어린이용 만화비디오도 지난 1월 새롭게 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컴퓨터게임의 「삼국지」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지난 1990년 일본 코에이사에서 출시한 이후 국내에서도 대학생과 3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현재 게임 「삼국지」를 필두로 그 아류작들이 양산돼 15∼16종의 게임이 출시된 실정이다.

「삼국지」가 소설, 만화, 컴퓨터게임, 비디오 등 문화상품으로 새 포장을 함으로써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5천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도 이 같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과거로 돌려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