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반의 의사소통 가능케 하는 구심점
정갑영 /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책임연구원
'문화의 집'에 관한 외국사례
정부가 문화복지를 사회복지와 더불어 국민복지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겠다고 한 지 거의 반년이 되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문화복지의 목표는 21세기에 대비하여 진정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정신적 풍요를 확보하는데 있다. 이 목표 달성 방안의 하나로서 '문화의 집' 건립이 계획되었는데 그것은 문화복지만큼이나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문화의 집'과 비슷한 조직체가 일찍이 건립·운영되고 있으며 그 활동은 문화복지의 측면에서 결코 간과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국가에 따라 '문화의 집'으로 불려지기도 하고,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이 같은 조직체는 자국의 환경에 따라 이념, 목표가 다르고 명칭과 운영방식이 다른 편이다. 하지만 문화복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뒤늦게 '문화의 집'을 설립하려는 우리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의 현실에 맞는 '문화의 집' 모델을 개발하여야 한다. 물론 외국의 사례는 참고자료가 될 뿐이다.
흔히들 1960년대부터 '문화의 집'을 비롯하여 문화와 관련된 활동이 조직으로 전개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조직적 활동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사회조건과 구조가 변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40년에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의 복지시책의 일환으로 노동자들 스스로 '문화의 집 Kulturhaus'을 건립한 적이 있고, 영국과 스위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다. 후일 동독에서는 '문화의 집'을 재현시켜 사회주의 이념 실현의 매개체로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고급문화의 확산 - 프랑스 '문화의 집'
그러나 대체로 '문화의 집'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가 1969년부터 시행한 문화정책의 일환인 '문화의 집 Maison de la culture'을 통해서이다. 문화의 지방자치, 고급문화의 창달, 수준 높은 현대예술의 지방확산 같은 말로의 문화정책 방향 속에서 건립된 '문화의 집'은 '모든 계층에 개방된 문화의 민주화 실현', '문화예술활동의 지방분산화'등을 지향하였다.
프랑스의 '문화의 집'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시설을 소유하고 일체의 운영은 각 '문화의 집' 이 독자적으로 책임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각 '문화의 집'은 각기 자체의 정관과 조직을 갖고 있으며, 조직은 운영협의회를 두고 관장과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영협의회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자와 지역의 저명인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사장을 포함하여 이사는 전원 비상근으로 되어 있다. '문화의 집' 예산은 초기에는 중앙정부가 50퍼센트, 지방정부가 50퍼센트씩 부담했으나, 오늘날은 국가가 30퍼센트, 주가30퍼센트, 시가 30퍼센트, 자체수입과 후원회가 10퍼센트씩 부담한다. 국가의 지원 정책은 고정지원 방식을 탈피하여 지방정부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프로그램의 지방공연비 혹은 지명도가 낮은 신진작가의 작품공연비, 흥행성이 낮은 순수예술창작활동비 등을 부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문화의 집'은 세 차례 정도 변화되었는데, 첫째는 말로 시절에 건립된 '문화의 집' 이라 불리는 모델로서 이것은 우리의 도와 유사한 행정단위에 하나씩 배치되어 있으며 시설규모는 우리의 종합문예회관 수준이다. 둘째는 1970년대, 건축비용과 운영비가 적게 드는 규모의 '문화활동센터'로 건립된 것이다. 셋째는 1983년도 수정계획에 의해 제시된 모델로서 건립과 운영비를 완전히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고 중앙정부는 필요한 경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문화발전센터' 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시설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세 유형의 모델을 '문화센터'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센터의 활동목적은 고급문화의 창달과 보급확산에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프랑스의 '문화의 집'이 지향하는 바는 이처럼 고급문화의 확산과 지방으로의 분산에 있는데, 여기서 문화는 통상 문화예술을 의미한다. 즉 대중성이 약한 고급문화예술의 확산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문화의 실현 - 독일의 사회문화센터
이에 반해 독일이나 이스라엘 같은 국가에서는 '문화의 집' 기능과 관련된 기관이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르다. 독일의 경우 이미 19세기에 '문화의 집' 개념이 있었으나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문화운동의 거점으로서의 문화기관 설립은 1960년대 이후에 활성화되었다. 흔히 사회문화센터 Soziokulturelle Zentren라고 불리우는 이 기관은 1970년대 사회문화 Soziokultur 개념의 대두와 더불어 확산되었다. 독일에서 독특하게 발전시킨 사회문화 개념은 단순히 문화예술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교육학적, 정치학적 그리고 문화학적 의미가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사회 문화적 학습'을 강조하는 '사회문화' 개념은 한편으로는 비판사회이론가들의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이, 노인, 여성과 같은 사회의 취약계층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는 복지적 관점의 주장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하여 설립된 '사회문화센터'는 연방과 지방 차원에서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통일된 원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연합체에 가입된 회원들간에 기본적으로 공통의 지향이 있는데 이는 연방연합체 규정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사회문화센터가 지향하는 바는 기층형성과 이용자 지향, 다양한 연령층, 사회계층, 그리고 국적들로 구분된 집단간의 통합, 개방성과 투명성, 민주적 문화와 같은 사회적·정치적 사업, 파시스트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저항과 문화의 민주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내용에 대한 강조, 민주적 결정구조, 반상업적인 사업 등이다.
사실 독일의 문화센터는 아주 드물게 복지재단, 혹은 기초자치단체가 운영주체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 운영자는 철저하게 동호인단체 Verein 중심이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시작한 만큼 시설에 대한 일정한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공공영역으로부터의 지원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흥미 있는 것은 사회문화센터의 건립주체의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즉 '지역단체', '시민단체', '학생단체', '청소년단체', '도시행정집단', '정당', '개인'등이 건립주체인 것이다. 현재 독일의 사회문화센터를 건립주체별로 분석해 보면 개인에 의해 세워진 경우가 26.1퍼센트, 시민단체에 의한 경우가 18.2퍼센트, 기타가 13.9퍼센트, 청소년센터가 10.9퍼센트, 학생단체가 9.7퍼센트, 지역단체가 7.9퍼센트, 도시행정집단이 5.5퍼센트로 되어 있다. 이렇게 건립과 운영주체의 범주가 다양한 만큼 사회문화센터는 다양한 고유 이름을 갖고 있다. 사실 문화센터의 1/3정도는 과거에 공장이었던 건물을 이용하고 있으며, 가게나 상점을 이용하는 경우도 10.4퍼센트나 되고 창고를 이용한 경우도 6.5퍼센트나 된다. 심지어는 역, 병원, 그리고 소방서 등의 건물 이용한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러한 건물들은 몇 단계씩의 보수과정을 거쳐 이용되고 있다.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며,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된다. 총회는 물론 개최되고 프로젝트에 따라 회원의 의견을 묻는 경우도 모든 센터의 40퍼센트에 달한다. 1년(1986. 4. 1∼1987. 3. 31)동안 71개 사회문화센터의 활동을 보면, 각종 행사, 집단의 만남,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서비스가 7만 8천 회 제공되었으며, 2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활동에 참여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서비스 제공은 문화예술에 관련된 행사는 물론 평생교육, 사회교육을 포함하고 있으며 드물게는 정치적 행사까지도 포함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행사는 정당활동이 아니라 제3세계, 평화, 반핵, 여성 등 사회적 관심에 관한 것들을 의미한다. 여기에 바자회, 벼룩시장, 축제 등을 주도하여 지역주민들간에 정보를 교환하며 의사소통을 촉진시키는 행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영화상영, 디스코텍 개방, 록콘서트, 재즈, 연극, 어린이극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사회 통합의 구심점 - 이스라엘의 커뮤니티센터
이스라엘은 지역사회의 발전과정에서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과정을 촉진하려는 정책의 선상에서 마트나스 Matnas라고 불리는 커뮤니티센터 Community Center를 세웠다. 이 센터의 궁극적 목적은 지역사회에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행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업은 개별적인 지역사회의 욕구와 가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주민들의 욕구, 갈망 그리고 문제들을 표출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커뮤니티센터는 전 인구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이곳의 교육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지역사회 프로그램은 개인, 가족, 집단, 그리고 전 지역사회의 욕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 기관은 지역사회의 구심점이자 집단 사회적 행위의 초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기관은 기존의 건물을 유효하게 활용하는데, 예를 들어 학교는 오후에는 커뮤니티센터의 연장으로 기능하고, 청소년클럽은 장년이나 어머니를 위한 클럽으로 바뀔 수 있으며 낮에는 아기를 돌보는 센터가 되기도 한다. 커뮤니티센터 활동의 주요영역은 매체에 의한 의사소통, 어린이 잠재력 개발을 위한 학습센터, 지역의 창조성을 촉진하기 위한 예술과 문화, 전 주민의 건강한 삶의 영위와 체육, 시오니즘의 전수 등 국가유산, 과학과 기술을 위한 교육,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 재활, 지역사회교육과 연결된 국제교류촉진 등이다. 수백만 시민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커뮤니티센터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프로그램들 이외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개인적 문제(편부모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고용문제(재교육, 재적응, 고용상담) 등에 관련한 특별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우리에 맞는 '문화의 집' 모델을 위한 고려사항
사회문화와 문화복지의 구심체로서의 '문화의 집'
앞서 서술한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보아 '문화의 집'이 지향하는 목표를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문화의 사회적 확산을 통해 사회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고, 복지의 일환으로서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되고자 하며, 고급문화의 확산을 통해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기본 목표는 급격히 산업사회를 이루고 탈산업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적합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가 겪은 사회 변동은 서구의 그것보다 훨씬 격심하였으며, 그 부작용 또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으며 이것은 사회문제의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향후 보다 분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로 인한 어려움은 한층 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상호간의 이해에 바탕을 둔 원활한 의사소통이 요구된다면, '문화의 집'의 각종 프로그램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의 집' 활동은 주민의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문화복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정신적 빈곤의 이유와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여야 하며, 특히 지역, 계층, 거주지, 연령 등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수요자 중심으로 파악하여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문화의 집'이 지향하는 문화의 개념을 문화예술을 넘어서 사회문화의 차원으로 확장시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외국 '문화의 집'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행중인 문화예술 관련기관, 대학, 언론기관, 백화점, 구민회관, 문화원, 지역단체 등과의 관계 및 차별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앞으로 건립될 '문화의 집'은 기존의 사회문화관련 사업을 시행하는 기관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상업성을 표방하는 기관과는 협력해서는 안 된다. 상업성은 문화복지와 사회문화 형성에 부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기관과의 협조는 시설 이용의 편의성, 프로그램의 지속성이란 장점을 갖지만, 그 핵심은 운영주체의 다양화, 다시 말하면 '모두로부터의 문화 지향성'에 있다.
다양성, 자율성, 그리고 민주적 운영
다시 말하지만 '문화의 집'은 자율성과 운영주체의 다양화를 원칙으로 하여야 한다. 물론 기본구상이 정부로부터 나온 만큼 초기에는 정부역할이 매우 크겠지만 점차 민간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집' 사업의 시행 초기에는 여러 모델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많은 단체의 공모와 심사를 통해서 지역 특성에 맞는 독특한 모델을 아래로부터 수용하여야 한다. 이때 우리도 독일처럼 폐공장이나 역, 공항, 아파트촌, 문화원 같은 공공장소에 '문화의 집'을 세울 수도 있다. 한편 전략적으로는 '문화의 집'을 파급효과가 큰 지역에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집'을 민간주도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문화활동의 자율성을 의미하며, 자율성은 다양한 문화를 낳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문화활동에 있어서 자율성은 하나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재정적 자립과 관련되어 있는 만큼, '문화의 집' 운영에는 재정확보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를 통한 지역의 통합이 '문화의 집'이 지향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만큼 재정지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철저히 지방자치단체, 특히 기초자치단체가 관할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적 운영도 우리에 어울리는 모델확립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개인이나 지방정부에서 출연할 경우 특히 민주적 운영원칙이 어려울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 운영위원회를 두어야 하며 운영위원회에는 여러 기관의 대표들이 선출한 문화예술 및 사회문화의 전문가가 위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율성과 민주성의 원칙에서 '문화의 집' 전체를 총괄하는 조직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 즉 개별 '문화의 집' 운영은 운영위원회를 두어 운영하되 기초자치단체와 협력할 부분이 있다. 지역문화복지, 지역분화진흥을 위한 프로그램 등은 기본적으로 기초자치단체가 협의하고 지원할 사항이다. 또 개별 '문화의 집'은 자신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문화의 집' 연합회를 구성하고, 이곳에서 회원의 자격과 기준은 물론 '문화의 집'이 나아갈 기본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물론 연합회는 개별회원의 활동을 구속할 수는 없지만 상업적 문화활동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정부분 공통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은 '문화의 집' 설립취지에 부응하는 고급문화의 확산, 사회문화의 육성 등 중앙 차원에서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구상한다. 동시에 '문화의 집' 연합회와 중앙 및 지방정부의 대표로 구성된 '문화의 집' 운영협의체가 구성되어 여기서 공동의 사업과 지원에 대한 심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원에 대한 부분만이며 운영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부분은 실험적 작품과 고급문화에 대한 지원을 주로 하는 프랑스의 경우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수용자의 차별적인 문화수용능력을 배려한 운영
누구를 주 대상으로 '문화의 집'이 활동을 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문화에 대한 관심, 요구사항, 사업의 결과 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문화의 집'만이 아니라 사회복지를 시행하는 사회복지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복지관의 경우에도 지역별, 계층별에 따라 그 욕구가 다르기 때문에 사업의 우선 순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매우 일반적이다. '문화의 집'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점은 앞으로 '문화의 집' 모델을 설정하는 데 특히 참작이 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 계층, 연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문화의 장르에 대한 기호, 삶의 여건, 문화수용능력의 정도 등이 면밀히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두 방식을 먼저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지역, 연령, 계층 등에 따른 분명한 구분을 한 뒤에 특정한 대상을 위주로 시설,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구분 없이 다양한 아이템을 제공하여 서로의 영역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삶의 환경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범적인 사례도 설립 시에 자생적으로 생겨나도록 유도한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설립자가 스스로 알아서 그 지역에 알맞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정체성 확보와 변화하는 사회에 계몽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문화복지의 이념을 구현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전국에 '문화의 집'을 2001년까지 1백 개소, 2011년까지 350개소 이상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그 실현가능성의 여부를 떠나 어떠한 형태의 '문화의 집'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사실 우리의 '문화의 집' 설립은 다른 나라들의 예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문화의 집' 설립 계획은 시의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보다 먼저 '문화의 집'을 설립했던 다른 나라들도 하나같이 경제 사회적으로 격변의 과정을 겪고 있었을 때 '문화의 집'을 설립했다는 사실은, 특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결국 '문화의 집'의 목적은 다원적으로 분화되어 가는 사회에 부응하고, 지방화를 촉진하며, 지역의 정체성 강화를 통해 전체의 결속을 가져오며, 발전과정에서 지역통합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문화복지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문화의 집'에 접근하고 있으며, 우리의 사회 환경이 다른 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가 전형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선행된 외국의 사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점은 '문화의 집'이 단순히 문화예술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문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우리사회에서 문화가 중심이 되어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에 단절된 의사소통을 돕고,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확보하며, 또 변화하는 사회에 계몽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화의 집'은 바로 이런 역할을 담당할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