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급의 어시스터
김미혜 / 고려대 강사
개념정의
어떤 국가든 선진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그 국민들은 삶의 질을 영위하게 된다.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위한 정책의 입안과 실현을 꾀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사회문화센터'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생성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본고는 '형태의 조건과 기본 기능, 직업으로서의 장(場)과 요구되는 자질'이란 부제를 가진 우도 후스만 Udo Husman과 토마스 슈타이너르트Thomas Steinert의 공동 박사학위 논문인 「사회문화센터들 Soziokulturelle Zentren」(Essen1993)을 참조하여 1987년 기준으로 전국에(당시는 물론 서독의 경우였지만 그 후로도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임) 120개가 산재해 있던 독일의 사회문화센터를 1. 개념정의, 2. 생성배경과 현황, 3. 과제와 제공 프로그램, 4. 운영방식과 실무자들의 현황, 5. 현 사회 및 지역사회에서 갖는 의미의 다섯 항목에 걸쳐 고찰하며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문화센터'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우선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센터'들은 적어도 독일에서는 '사회문화'의 주축이 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사회문화'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이때 사회문화는 하나의 문화개념으로서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문화'의 확대개념, 즉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문화Kulture furalle'를 의미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문화의 귀족주의가 아니라 문화의 민주주의가 표방되었던 것이다. 문화에 대한 이 확대 해석은 곧 문화정책의 수립에 영향을 주었다. 문화정책이 문화를 통한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문화의 전개 및 발전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졌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민주사회의 성원들로 하여금 개인의 삶,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와 국가의 삶에 대한 참여의지를 통해 보다 의식 있는 생활을 하게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한 실천의 장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사회문화센터였다.
그러나 '사회문화'란 개념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우는 문화 실현의 개념으로서 이다. 예술과 문화의 모든 분야를 포함한 자유로운 활동이 이 개념에 해당한다. 이 경우의 활동은 국가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지역사회나 문화 단체, 혹은 개인적 문화 실천이 주가 되며 이런 실천 영역이 바로 사회문화센터인 것이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시민의 집, 여가선용의 집, 청소년센터라든가 개인들이 운영하는 문화의 집 같은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문화'를 실천하는 장소로 간주되며, 지역사회에서 개최하는 거리축제, 도시축제, 여름축제와 같은 것들도 사회문화센터의 아이디어와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본다.
사회문화센터는 이렇게 사회문화 실현의 핵심적 장으로서 지역사회의 성원들이 제도권의 문화와 교육의 장과는 달리 억압이 적은 공간에서 여러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나름대로 문화적, 정치적 관심과 욕구를 실현하고 충족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센터들은 일상의 경험, 일상의 문제, 사회적 삶의 현실들을 포함하는 프로그램으로 문화를 엘리트의 향유물에서 해방시키고, 개인들에게 수동적인 소비패턴으로서의 문화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을 문화발전의 주체이자 적극적인 참여자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예술적이고 미적인 표현 가능성과 창조성, 판타지를 갖게 하며 독자적 작업을 하게끔 장려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 센터들의 과제와 프로그램의 복합성과 동시성, 또한 운영방법의 공공성과 운영 내용의 다양성은 어떤 일정한 카테고리화를 어렵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센터들은 몇 가지 난제들을 안은 채 활동하고 있다. 그런 난제들로는 행정 부서에서 일정한 담당 부서가 없는 점, 예술적이고 미적인 분야에서 분류하기 어려운 점등을 들 수 있으며, 결국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문화에 비해 예산 편성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공적인 인식도 낮은 경우가 많다.
생성배경과 현황
독일의 사회문화센터들의 설립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1977년부터 1983년의 5∼6년 사이에 가장 많이 생겨나 일년 평균 7군데 정도가 더해졌다. 이는 독일에서 70년대에 들어서며 문화정책에 관한 토론이 활발해졌던 것과 관계가 깊다. 이때 위정자들은 자국의 시의회, 유럽의회, 유네스코와 같은 기관들의 결의와 때를 같이하여 여러 이론가와 정치가들이 내놓은 문화 이론에 귀를 기울이며 공공 문화정책의 부족을 절감했고 사회와 연관성이 있는 문화정책을 수립하려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 방향이 예술과 문화의 민주화, 다양한 그룹에 그 그룹만의 특징적인 분화를 권장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생겨난 것이 '사회문화센터'들이다. 또한 70년대에 들어서며 60년대에 성행했던 학생운동이 힘을 잃기 시작했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시민단체들이 더욱 강한 자의식을 갖게 된 점,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실업률의 증가, 특히 고학력자의 실업률 증가는 이 인력들이 주축이 되는 센터들의 생성을 더욱 활발하게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센터들의 발기인 층을 살펴보면 지역의 여러 협회, 시민단체, 학생단체, 청소년센터, 시의 행정당국에서 개인들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중에서 가장 강한 주도권을 가졌던 층이 출신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모임인 시민단체들로서 이들은 '반원자력운동', '생태계보존운동', '제3세계운동', '여성해방운동'등을 내용으로 하는 소위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축이 되어 강한 자의식을 키우고 있었고 사회문화센터의 반 가량이 이들의 노력으로 가동되게 되었다.
그러나 센터들이 발기와 함께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정상적인 활동을 위해 반수 이상이 3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위정자들이 국민의 문화 향수와 여가선용의 문제가 특정한 발기자들의 손에 넘겨져선 안되고 공공적 과제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시 당국은 현재 시에서 제공하는 문화프로그램이 충분하고 그 지원에 이미 많은 재원이 충당되기 때문에 사회문화센터의 재정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센터들의 설립이 정치권이나 지역사회에서 곧장 긍정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가장 현실적으로는 센터들이 입주할 건물을 구하기가 어렵거나, 구했다 해도 용도에 맞게 수리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많은 센터들이 처음에는 일정한 입주처를 갖지 못한 채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이때의 활동 내용은 주로 행사와 페스티벌이 되었다. 또한 다 기능적 프로그램을 설립하고 그 성공을 위해서는 여러 다양한 사회단체로 구성된 후원회가 필수적이었으나 그런 후원회를 단시일에 결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어려운 점을 안고 시작된 센터들은 60퍼센트 가량이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고 나머지 40퍼센트 정도가 중소도시에 있으며,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근교에는 50퍼센트, 마을 단위에는 겨우10퍼센트 정도 소재 한다. 센터들의 규모도 제각각 이어서 대, 중대, 중소, 소규모로 구별할 수 있으며 이 규모의 차이는 활동 내용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다. 정규 회원의 숫자는 센터의 규모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나 평균 약 130명 정도이다. 그러나 5백 명 이상을 가진 경우와 단 20명 정도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평균 회원일 뿐 사회문화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숫자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으며 평균 7백만 명을 훨씬 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박물관과 연극공연장보다 더 인기가 있다. 참여 연령층은 20∼30대가 가장 많으나 6세부터 60세 이상까지로 다양한 연령층에 잘 수용되고 있다.
재정문제는 54퍼센트 정도를 자체 조달하며 46퍼센트가 연방관청, 주당국, 지역단체 등의 공공자금의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또한 현금 보조가 아니더라도 무료의 공간 사용이나 물자 등의 도움도 여러 단체에서 받고 있다.
센터들의 활동내용을 대별하자면 정치활동, 성인연장교육, 문화 및 창조영역, 프로젝트작업, 행사개최, 정보교환 및 커뮤니케이션 영역 등이 있으며 요식업(주점, 카페 등) 경영은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그러나 중소 및 소규모의 센터는 공간 부족으로 이런 시설을 갖지 못하며 이에 따라 중요한 수입원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이런 규모의 센터들에는 작업장(공작 조립, 사진, 영화, 금속공예, 도자기 등을 위한)이나 연습시설(음악실, 연극연습실)이 부족하여 문화교육과 창작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센터들은 전반적으로 재정부족 때문에 열악한 입주 조건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활동의 내용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연중 개방일은 평균 349일로 거의 매일 개방하고 있는데 이는 다양하고 많은 이용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서이다. 1일 평균 개방시간은 8.8시간이며 일요일과 월요일에 폐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과제와 제공 프로그램
주지하다시피 독일은 각 주마다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지역적 변별성도 상당하다. 결국 각 주마다 다른 사회여건, 문화정책, 교육정책 등을 갖고 있으며 사회문화센터의 활동 내용은 이런 기간의 상부구조의 타문화 기관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주제와 문제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하부구조 내의 다른 기관들과의 연계나 협동 작업을 하기도 하다. 이렇게 협업을 하는 경우 이 센터들은 다양한 격차를 지닌 조직체들과 상부 구조의 기관들을 연결하는 중추적 내지는 중간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사회문화센터들의 프로그램은 물론 소재 지역의 특성과 센터 내의 설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이미 언급했듯이 정치활동, 성인 연장교육, 문화 및 창조영역, 프로젝트 작업, 행사개최, 정보교환 및 커뮤니케이션 영역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이중 문화창조 영역이 가장 두드러져 음악, 연극, 무용, 스포츠, 도자기, 사진, 회화(그림)등의 분야에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가 제공된다.
행사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 재즈연주회, 연극상연, 연예공연, 영화상영, 문학작품 낭독회, 아동극 공연, 전시회 등이 개최된다. 이런 행사들은 단순히 사회문화의 실현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가들의 등장무대이자 계속적인 예술 활동의 터전이기도 하여 예술 전체의 실험과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프로젝트 작업 중 광범한 것으로는 연극 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양한 축제, 기념제, 문호개방의 날 등이 있다. 이런 행사들은 특히 공공 보조금을 거의 받지 못하는 소규모 센터의 경우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소수의 정해진 참여자들이 주된 테마를 가지고 계속 토론하며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강연을 듣는다든지 위크숍, 심포지엄 등을 여는 집중적인 프로젝트도 있는데 이때의 테마는 국내 정치의 현안, 사회문제, 소수민족정책, 외국인 근로자문제, 환경문제, 제3세계문제, 여성문화 등이 주가 되며 이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는 센터의 전반적 정치활동과도 연계되어 있다. 성인 연장교육으로는 영어, 생태문제, 건강코스가 가장 많이 제공된다. 또한 특정한 주제의 세미나도 열리며 특정한 계층(노인, 여성, 부모-아동, 외국인, 장애자, 동성애자 등)의 독자적 조직에 의한 여러 자주적 코스도 있다. 소규모의 센터에서 제공하는 여러 정보체계는 물론이고, 바자회, 물물교환시장 등의 룰을 통해 이루어지며, 특히 센터 내의 요식업 시설은 여러 사회계층과 연령층의 참여자들에 의해 정보교환과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이상에서 보았듯 사회문화센터의 프로그램과 업무는 매우 복합적이며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데다 지역 성원들의 참여도 활발하여 그 기여도에 있어 어떤 다른 문화기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기에 이 센터들의 활동은 사회 문화적 작업의 본질을 규정하는 요소가 되며 단순한 개개활동과 행사의 총화가 아니라 그 이상인 것이다.
운영방식과 실무자들의 현황
사회문화센터 운영의 기본적 특징은 '자치성'과 '민주성'이다. 자치성은 외부적으로는 공적 후원자들에 대해 독립성을 갖기 위한 것이며, 내부적으로는 모든 운영 실무자 및 참여자. 이용자들의 적극적 참여와 투명성을 보장한다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성은 63퍼센트 가량이 무보수의 명예직인 실무자들이 센터의 일에 매력을 느끼며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센터의 규모에 상관없이 자치적 운영은 내부의 협의체 내지는 결의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센터가 크면 클수록 이런 기구는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으며 회의도 더욱 빈번히 열린다. 센터 내의 결정사항은 24퍼센트 정도가 간부진-위계질서에 의한 것이 아닌 운영의 묘를 살리기 위한-의 회의에서, 38퍼센트 정도가 회원총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각 프로그램은 40퍼센트 이상이 해당 기획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며, 일상적 업무는 실무자들이 결정권을 갖는다.
이런 운영방식 때문에 실무자들의 수준과 자세는 바로 센터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질을 감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센터의 실무자들은 75퍼센트 정도가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미 언급했듯 무보수의 명예직이 많고 급여를 받는 경우에도 평균 주 35시간의 근무를 하므로 정상적 의미의 직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근무시간도 일상적 근무처보다 늦게 시작하여 밤늦게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며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등 열악한 근무조건임 에도 불구하고 센터의 실무자들은 활동 내용의 다면성과 다양성, 작업의 독립성, 책임의식, 구조의 민주성, 작업의 도전성과 실험적 성격 때문에 많은 매력을 느끼며, 작업에 임한다. 또한 근본적으로 '인간을 이해, 인간과 함께'하는 센터의 업무에서 실무자들은 보람을 느끼며, 인간으로서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자신의 가능성과 관심, 아이디어와 능력을 실현시키는 장으로서 스스로 사회문화의 실천자가 되고 있다.
현 사회 및 지역사회에서 갖는 의미
곧 21세기를 맞이하는 현 사회는 심각한 구조변화를 겪고 있다. 전래되어 온 삶의 형식과 단결된 사회환경 등은 이미 그 의미와 정체성을 잃어 가는 상황에서 탈전통과 개인화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 모던의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사회의 성원들은 이제 하나가 아닌 복수의 그룹과 기관에 연계되어 있으며 다양한 문화와 교육기관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사회에는 더 이상 어떤 '스탠더드'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들은 그야말로 '개인적인 문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고 특수한 개인의 문제가 일상적인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런 성원들로 구성된 사회는 그만큼 복잡해지고 있다, 개인들은 숲 속에 앉아 나무만을 볼 수 있을 뿐 숲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 주변의 현인들에 대해 생존의 불안감을 느끼는 형편이다. 더군다나 90년대에 들어서며 생태, 에너지, 기후문제, 다방면의 컴퓨터화, 다원적 문화, 실업, 피난민 문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 등이 지구적 위기현상으로 등장했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통일 이후의 산재한 문제들이 더욱 심각한 사회구조 변화를 야기 시키고 있다.
아무튼 현 사회에서는 해체되어 가는 사회구조와 깨어져 가는 삶의 연대감에 다시금 문명화된 공동의식을 불어넣기 위해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여러 부문에서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사회문화센터는 바로 이와 같은 요청에 부응하고 있는 기관이다. 위에서 소개했듯 센터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다양성, 복수성과 동시성은 참여자들에게 개방, 매개, 동화와 통합의 의미를 일깨운다. 또한 좁은 의미로 한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사회가 제공하는 사회 문화적 총공급에서 미비한 부문을 채워주는 기관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