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자본,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레 미제라블』
이상란 / 연극평론가
공연의 전제조건
거대한 자본과 첨예한 예술적 기량을 바탕으로 휴머니즘, 기독교적 구원, 프랑스혁명 그리고 사랑으로 무장한 멋진 문화상품「레 미제라블」이 한국에 수입되어, 지난 7월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만하게 채워 주었다. 공연을 둘러싸고 있고 공연의 전제조건이 되는 거대한 자본이 빚어내는 화려한 조명과 19세기 프랑스의 버려진 민중과 그들을 비추는 공연 내부의 어두운 조명은 서로 의미심장한 모순을 이룬다.
주식회사 형태의 기획은 영국에서 제작되어 세계 순회공연 중에 있는 뮤지컬「레 미제라블」을 수입하면서 대기업의 도움을 받아 32억 규모의 공연을 제작했다. 거기에 거대 언론이 전면 광고를 수 차례 내보내고 텔레비전 방송이 선전을 했을 뿐 아니라. 유수한 연극비평가들의 찬사는 공연의 가치를 배가시켜, 한국의 관객을 6만 이상 동원하였다. 옛 서양의 신분사회에서 극장의 관객석은 입장료에 의해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관객은 층 사이를 이동하지 못하도록 통제되었다. 공연을 협찬한 대기업들은 「레 미제라블」이란 문화상품을 이용하여 고상한 이미지 부각을 시도했는데, 이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자본의 '세련된' 협업 체계를 과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레 미제라블」도 다른 뮤지컬과 같이 자본의 논리가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번 공연에 주목하는 이유는 상당수의 뮤지컬들이 극중에서도 그 논리를 충실히 재생산하며 천민 자본주의의 조야함을 반복하고 있는데 반해「레 미제라블」은 공연의 전제조건을 거스르며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의 시공간
극적 시공간은 우선 자막으로 투영된다. 1815년 딘느, 1823년 몽트레이유-쉬르-메르, 1823년 몽패르뫼이유, 1832년 파리. 「레 미제라블」은 이러한 역사적 공간의 버림받은 민중에게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무대 위의 공간은 감옥, 공장, 창녀촌, 서민들의 주막, 빈민촌, 혁명의 접전 터인 바리케이트, 지하의 하수구 통을 형상화한다.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서로 합쳐지고 몰아가는 무대장치는 한 면은 빈민촌으로 다른 한 면은 바리케이드로 사용해 민중의 삶과 혁명이 뗄 수 없는 관계임을 형상화한다.
또한 이 무대장치의 역동성은 사회를 변혁하는 원동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적 공간을 비추는 조명은 빛이 아니라 차라리 암흑이다. 사회적 암울과 민중 개개인의 절망을 조명이라는 기호를 통해 선명히 한다.
어둠 속의 삶, 죽음의 빛-기독교적 구원과 사랑의 이데올로기
「레 미제라블」의 등장인물은 크게 익명의 군중과 몇몇 개인들로 형성되어 있다. 군중들은 죄수, 거지, 노동자, 창녀, 뚜쟁이, 빈민 등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가석방 죄수 24601로 국외자를 대표한다. 딘느 주교는 장발장을 세상을 저주하는 여느 국외자에서 위대한 개인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품의 가장 밑바닥을 받쳐주는 이데올로기는 기독교적 구원이다. 민중들의 삶은 어두운 조명으로 처리하는 반면, 절망의 끝인 죽음이 강렬한 조명으로 처리되는 것도 기독교적 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판틴, 에포닌, 어린 가브로쉬, 혁명 지도자 앙졸라스 그리고 나머지 혁명군의 죽음에 위로부터 집중된 빛을 비춤으로써 신에 의한 구원을 암시한다. 이는 극의 말미 장발장의 죽음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빛을 받으며 죽어간 민중들이 모두 나타나 하늘의 영광과 희망을 노래하며 장엄한 결말을 맺는다.
이렇듯 극의 결말에서 하나로 합류하는 장발장을 중심으로 한 민중연합체는 작품의 중심 축을 이루는 인물 군이다. 이 인물 군과 대립하는 곳에 경찰 자베르가 외로이 서 있다. 그는 하나의 개인일 뿐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법을 수호하는 것이 곧 정의임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자베르는 장발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조에 회의를 품게 된다. 범법자인 장발장이 오히려 인도주의적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더구나 자신이 죽음에 처했을 때도 조건 없이 구해주는 장발장을 바라보며 자베르는 삶의 목표를 잃고 결국 자살한다. 즉 국가공권력과 인도주의 대결에서 인도주의가 승리하는 구도로 짜여 있는 것이다.
장발장을 방해하는 또 다른 인물은 이익을 위해서 끝없이 타락하는 테나르디에 부부이다. 그들 역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이지만 장발장이 속한 인물 군에 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덕적 타락 때문이다. 이처럼 장발장이 속한 인물 군은 한편에는 자베르, 또 다른 한편에 테나르디에 부부와 대치한다. 따라서 이 인물 군이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배제되어 있는 국외자들이지만,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인도주의의 편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작품을 관통하는 맥은 사랑이다. 장발장의 코제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에포닌의 마리우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장발장과 코제트, 마리우스, 에포닌은 서로 다른 형태이지만 삶의 원동력이 사랑인 것에 일치함을 「내생애에 In my life」라는 합창으로 보여준다. 사랑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승화되어 결국 하느님의 사랑에서 하나가 된다.
위대한 인간 승리에 감동받는 관객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들의 자유·평등·박애의 노래. 그 안에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는 현대적 의미의 영웅 장발장, 그러나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환경의 모든 제약들을 비상한 힘과 사랑으로 극복하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구원을 받는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관객은 위대한 인간의 승리에 감동을 받는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임을 망각하고 극의 아름다움과 완결성에 몰입하여, 관객은 수동적인 기쁨을 얻는다. 프랑스혁명에서 피 흘린 수많은 민중들은 혁명의 덕을 입지 못하고 부르주아가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 부르주아의 후예들은 오늘날 유럽과 전 세계를 손에 넣었고, 훌륭한 문화상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자본을 모은다. 여기에 발빠른 한국의 예술기획 CMI는「레 미제라블」을 수입하여 관객들을 불러모아 감동을 선사하고 경영에 흑자를 본다.
한국의 중산층 이상의 관객들을 혁명과 사랑의 노래에 취해 눈물이 글썽이고 극이 끝나면 기립 박수를 보낸다. 자본의 전략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그러나 프랑스 혁명에서 민중은 아무런 대가도 얻을 수 없었듯이 오늘날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관객석 어디에도 「레 미제라블」을 향유할 수 있는 민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