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흔적 두드러진 춤제전
김경애 / 월간 춤 편집장
9월 춤계의 하이라이트-예술의 전당 주최 '우리 시대의 춤'
'춤으로 돌아가자'는 캐치프레이즈를 주장하며 매년 개최되는 '우리시대의 춤'제전이 9월 춤계의 하이라이트였다(9월 4일∼14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이 제전이 우리 시대에 가장 크고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적어도 작품의 질 문제를 우선으로 하고 참신하게 우리 시대의 극복된 춤 수준 이상의 작품을 건져보려는 노력의 흔적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춤제전들은 규모가 크고 타이틀은 거창한 듯하지만 한꺼풀을 헤치면 완벽하게 속빈 강정들이 많다. 작품의 질보다는 행사를 했다는 실적이나 세 과시 정도에 그치는, 그래서 무용가들의 대충 무대에 올리는 실적주의만을 부추기는 폐단 속에서 알차게 '기획'을 해서 성의를 다하는 춤제전을 본다는 것은 여간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춤'은 매초토라는 특정팀이 관계를 해서 출전자를 선정하고 공연의 제반 업무를 맡아 진행한다. 준관기관인 예술의 전당이 민간단체를 적절하게 끌어들여 성공하는 예를 보여준다.
젊고 신선한 우수 무용가들을 뽑는 이 제전의 금년 출연자는 이윤경, 김선미 등 9명이었다. 그 중 몇몇 출연자는 과연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선발되었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춤의 성가가 없었던 이름이어서 의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제전은 다양한 젊은 춤 정신을 보여준 잘 치루어진 행사였다. 이윤경의 「홀로아리랑」은 회색의 둔탁한 커다란 벽으로 무대장치를 했다. 그 벽이 움직이는 그림자를 조명으로 활용하면서 짙은 푸른색의 현대적인 감각의 의상을 입은 이윤경의 솔로이다. 소외된 삶, 혼자 사는 고독, 그러나 이윤경은 혼자사는 삶에 긍정성을 부여한다. 솔로의 격렬한 움직임은 그의 춤이 늘 그렇듯이 매우 테크니컬하다. 단발머리의 그녀는 공포의 음악으로부터 빠져나와 성악음악 속에 폭발적인 감정을 진정시킨다. 이윤경의 개성은 드라이한 주제의 작품도 열정을 분출하듯 감정표현이 세다. 테크닉이 강한 만큼 조형미가 있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김선미의 「숨·결」과 김인희의 「수평선」
김선미의「숨·결」은 바닥에 조명이 희미하게 비추고 백색의 가지런한 의상을 차려입은 출연자가 누어있는 데서 시작하는 춤이다. 원형탑 조명이 떨어지는 그 아래의 김선미 솔로, 거기서 미세한 다리 벌리기와 오무리기, 미니멀리즘의 동작이다. 바람소리 속에 흰옷의 여성이 제자리를 따라 돌고 구르고 마침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빨라지는 타악기의 음악에 잦은 발걸음, 신면의 떨림, 고운 풀어짐의 춤사위, 그후 대각선으로 그려지는 그림자, 세련미있는 조명이다. 마치 김선미는 그림자와 대화하는 것 같다. 조명을 큰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무대 위에 떨어뜨리고 그 위를 발끝으로 걸어나올 때의 톤이 높은 전자음악은 존재에의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안무자는 '숨은 호흡이고 결은 흐름이고 숨결은 생명의 찬가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결국 생명찬가의 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김인희의 「수평선」은 해변의 에피소드를 그렸다. 작품의 내용은「두 친구가 놀고 있는 해변에 수영복 차림의 여인이 나타난다. 평화롭고 범상하던 두 남자의 분위기는 여인의 등장으로 조금씩 비틀거리면서 일종의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진 듯한 파장……. 로이 토비아스의 안무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 김인희와 곽규동, 문경환이 출연하는 이 무대는 해변의 낭만이 넘치는 젊음의 장이다. 언뜻 큰 극적 전개없이 일상적인 상황의 잔잔한 변화처럼 작품은 가볍게 흘러간다. 김인희의 무용수로서의 몸의 표정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소극장의 무대 덕이다.
그의 진한 체취가 더 요염하게 보여진다. 관능적인 매력이 한층 살아 있다. 세 출연진의 기량과 무대를 사로잡는 노련미로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무대의 대화를 성공으로 이끈다. 안무자가 목표대로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과거 어디쯤을 돌아보게 하는 춤이다. 하늘색과 흰색, 파라솔, 그리고 육체가 있는 바다풍경, 낭만적인 음악……흘러간 시대의 면화를 보듯 작품은 환상을 제공한다.
김순정의 「신화의 끝」은 그의 우아한 자태를 십분 발휘한 춤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간주곡과 이졸데의 죽음. 비제의「카르멘」간주곡과 전주곡을 음악으로 썼다. 그 음악들은 제목만을 봐도 강렬하고 드라마틱하다. 김순정은 음악의 극적인 변화로 상황을 연출한다. 그는 검은 배경의 흰빛 아래 흰 의상에 검고 긴 리본을 베일처럼 메고 등장한다. 머리의 검은 드리움은 신성과 가까워지려는 마음의 부담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의물은 두번째 장에서 몸에서 떨어뜨려진다. 머리를 풀고 긴 검은 천을 버렸다. 그의 프로그램의 말을 쫓아 대입하면 인간화하는 화려한 동작과 느낌의 춤이 후반부를 차분하게 장식한다. 김순정은 동작이 크고 품위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얼마간은 비의적이기 때문에 그가 붙인 그의 「신화의 끝」이라는 제목과 그 내용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져다가 붙여도 얼마든지 해석을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구체성이 없는 추상성, 그 이상의 표현이었다.
홍승엽 안무「아다지에토」는 홍승엽과 한금련이 출연하는 2인무였다. 한금련은 국립발레단의 주역무용수로 이름을 떨친 인물, 홍승엽을 현대무용의 표현적인 몸과 발레의 현현하는 몸을 대비시키면서 그것이 창출해내는 반대의 정서 속에서 주제를 구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여기서 여자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혼란한 상태의 몽유병 증세를 보이는 배역이다. 남자의 사랑으로 이것이 순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극히, 정적인 것과 난폭하고 거친 것의 조화를 안무자는 겨냥한다. 무대의 시작은 삼각 구도로 되어 있다. 표정 잃은 두 남녀가 대각선으로, 그리고 의자 하나. 좌절의 현대인처럼 둘은 시선이 없다. 상체를 벗은 홍승엽은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며 나오고 무대 앞쪽의 여자는 혼자 꿈의 세계를 허우적거린다. 둘의 만남의 2인무는 접촉 즉흥이라는 포스트모던 댄서들이 즐겨 쓰는 기법을 연상시킨다. 동작은 매우 잔잔하고 느리지만 둘의 접촉 순간에는 빠르게 돌아간다. 한금련은 발레리나로서의 아름다운 몸과 큰 동작으로 소극장을 사로잡고 회색조의 홍승엽의 움직임과 표정은 내밀한 정신세계로 유도한다.
안은미의「하얀 무덤」과 안주경·김형남의 이인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은미가 초청되어 이 무용제에 참가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유망한 젊은 무용가들을 국내 무대에 세워 기회를 주는 기획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11월 뉴욕에서 공연될 안은미무용단의 두번째 공연 주제인 '무덤' 연작 시리즈 중의 하나인「하얀 무덤」이 올려졌다. 안무자의 즉흥무적인 요소가 강하며 자유분방한 개성의 작품이다. 오른쪽 뒤쪽에 하얀 주름이 많이 든 패티코트와 같은 흰 치마가 놓여 있다. 그 안에 안은미가 들어 있다. 얼룩은 보이지 않고 흰 무덤이 움직인다. 안의 페티코트는 붉은색, 한편 무대 오른쪽 앞쪽에 천정의 줄을 따라 걸려 올라간 검은 자켓, 그래서 무대는 흰색, 검은색, 빨강, 그리고 푸른 조명으로 원색의 감각이다.
흰 무덤 속의 안은미는 다리만을 먼저 보인다. 흔히 창녀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빨간 스타킹의 레이스 줄의 허벅지가 관능적이다. 손끝으로 손가락이 먼저 공간을 찌르며 상체가 등장, 안은미의 평소 모습대로 빡빡 깎은 머리에 형광색으로 분장을 하고 가슴은 완전 노출해 커다란 꽃그림으로 바디 페인팅을 했다. 피노키오의 움직임과 같은 안은미의 동작이다. 우화적인 표정이 코믹하게 사이사이를 연출해 관객은 웃음을 터뜨린다. 일상동작도 섞이고 테크니컬한 현대춤 기법이 날렵하다. 갑자기 튀어드는 팝송의 한가락, 그 노래는 한 소절을 못 넘어가 끊기고 계속되고 끊기고, 안은미의 회화적 표정도 우울한 웃음, 무표정을 반복하면서 계속된다. 후반부 매우 환한 조명, 그래서 무대는 회빛 같다.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가운데 안은미는 특색있는 색깔을 연출해 관객을 이색체험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안은미는 평소에 춤을 심각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관객을 즐겁게 하고 그 즐거움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카타르시스가 되는 한마당, 그러나 그 쉽게 보이는 춤을 만들기란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풀어가는 작품보다 얼마나 어려운가. 안은미는 현대춤의 기량이 높기 때문에 이런 우화를 춤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다만 염려하는 것은 그의 이런 이미지가 다른 작품에서 얼마나 변신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창조의 장을 지켜볼 수 있도록 국내무대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안주경의 춤은 무대 뒤의 호리존트에 비스듬한 높은 단을 놓고(마치 침대처럼) 안개와 빛 속에서 시작되는 춤이다. 김형남과의 이인무, 안주경은 속옷의 란제리 레이스 차림이고 김현남은 상체를 벗은 짧은 팬츠의 의상이다. 특히 다른 단체보다 발달한 신체의 미를 과시하는 툇마루무용단의 두 주역은 자유소극장 무대를 최대한 넓게 움직이면서 빼어난 지체와 동작을 과시한다. 음영감이 뚜렷한 무대에서 가운데 호롱불이 내려져 있는 벤치가 가로놓여 있는 이 무대는 침실이나 응접실의 실내이다. 남녀가 함께 사는 실내, 둘은 같이 있지만 혼자 있고, 얽히는 듯하지만 따로 헤어지고, 같이 있어도 뭔가 다른 그리움이 부딪히는 만남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잎지는 초저녁 어느 사이 나는 고개숙여 걷고 있다. 흘러가는 하늘, 일부는 맑아져 흐르고 사람없는 곳으로 빨려든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물은 흐르고 흘러 고요히 바닥에서 나와 합류한다. 몸이 훈훈해진다. 아는 사람 하나 우연히 만나고 싶다……' 안주경은 혼자 있는 공허는 둘이 있을 때라고 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오히려 둘의 부딪힘 속에서 서로의 고독은 상승된다. 창살무늬가 희미한 호리존트의 단상의 검은 무대, 흰 의상의 무용수, 격정적인 움직임, 호롱불을 위시한 희미한 조명, 마치 새벽 안개속을 걷는 가을 여자처럼 센티멘탈의 잔잔한 슬픔이 배어나오는 춤이다.
남수정의「별」과 윤성주의「들꽃」은 한국창작춤이었다. 대체로 이런 연합의 무대에서는 이 분야의 춤이 작품성에서 떨어진다. 평소 남수정의 작품적 성과에 대해 체크할 기회가 없었지만 새로운 신인의 등장으로 기대를 했었다. 메시지를 슬라이드를 통해 전달하는 이 작품은 평범한 한국춤의 움직임의 연속으로 끝이 난다. 국립무용단에서 주역으로 성장했던 윤성주의 춤은 노련한 한국춤이었다. 작품으로는 춤만을 잘 춘다고 해서 완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