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음악을 통해 생각해 보는 전통의 깊이와 특징
송혜진 / 음악평론가
대금과 페르시아 음악이 한 무대에 섰다. '원장현과 아시아 음악'(9월 16일, 호암아트홀)의 기획공연으로 열린 이 음악회는 무르익은 원장현의 대금 세계와, 원장현 특유의 아기자기한 음악회 구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여간해서 만나보기 힘든 페르시아 음악공연이 곁들여진다는 점이 국악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세계적인 산유국', '종교적 규범이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는 회교국가', '호메이니', '아라비안나이트의 나라'로 인식될 뿐, 그들의 전통과 전통 속에 녹아있는 정신의 깊이를 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장현에 의해 이루어진 페르시아 음악 초청 기획이 한국의 청중들의 따뜻하고도 진지한 호응을 얻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이 발현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삼국시대에 실크로드를 통하여 페르시아 문명과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문명과의 만남은 우리의 먼 역사 속에서 씨줄과 날줄로 겹겹이 교합되어 있으리라는 무의식적인 공감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오랜 역사와 높은 정신성을 반영한 정통음악 명인들의 즉흥연주
그동안 세계전통음악학회ICTM의 한국총회나 올림픽 문화행사, 엑스포 행사의 일환으로 이란음악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한국 청중들은 이번 '원장현과 아시아음악' 연주회를 통해 가장 본격적인 이란음악을 만났다. 특히 이번에 내한한 이란의 연주자들은 전통적인 음악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전통음악을 수업한 후 현재 이란 전통음악보존회의 소속으로 활동 중인 음악가들이어서, 유서 깊은 이란 전통음악의 역사와 내재된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전체 연주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은 프로그램 끝에 연주된 '성악을 곁들인 페르시안 고전음악 합주'였다. 성악가 바람 사랑 BAHRAM·SARANG, 현악기인 타르TAR와 세타르SETAR를 연주한 모하마드레자 라히미 MOHAMMADREZA·RAHIMI, 타악기 틈반을 연주한 다보우드 야세리 DAVOUD·YASSERI, 관악기인 네이 NEY를 연주한 하산 내히드 HASSAN·NAHID와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산투르 연주자 포우리 나마비안 POURI·ANAVIA, 에시 데라니 ESSI·THERANI가 함게 연주한 이 음악은 거의 변화없이 진행되는 장단에다 주로 음역과 선율에 자유자재로 즉흥적인 변화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그 즉흥은 흥겨움이나 신명으로 치닫기 보다 절제된 미를 보여주었다.
페르시아의 산투르와 우리의 양금
한편, 산투르 연주는 그 악기가 우리의 양금과 같지만, 연주방법이나 이 악기로 표현되는 음악세계가 상이하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양금은 피아노의 전신인 덜시머이며, 이것이 서남아시아 일원, 중앙아시아, 중국 등지에 널리 퍼져 각 민족의 전통음악 연주에 수용되었다. 그 정착시기는 민족마다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정조 무렵에 청나라를 통해
소개되었다. 그러나 철사줄을 가진 양성의 양금의 소리는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은은한 '명주실 소리'를 선호하였던 우리 음악정서에 썩 잘 어울리지 못했고, 더욱이 자유로운 현의 놀림에서 음악미를 찾았던 우리의 심미안에, 한 음 한 음 연주해야 하는 양금이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근의 여러 나라에서는 피아노에 버금가는 현란한 주법으로 양금을 연주하고, 그 음악이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의 양금은 오직 줄풍류의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그 사용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페르시아 연주회를 통해 페르시아의 산투르음악과 우리의 양금음악을 비교해 보겠다는 관심이 더 증폭될 만도 했다.
혹자는 양손으로 치는 페르시아의 현란한 연주기법과 한 손으로 드문 드문 음을 두드리는 우리 양금음악을 비교하면 '왜 우리는 이 정도밖에……'라는 식의 '우열'을 가늠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주기법은 음악성을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므로, 평면적인 비교는 곤란하다고 본다. 동일한 악기를 놓고도 각 민족마다 다르게 활용해 온 것. 그것이 문화이며, 전통이기 때문이다. 전통은 그 풍토에서 우러나서 거기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고,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악기의 외형적 쓰임새에 관심두기 보다는 악기를 통해 표출되는 민족성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일이 '비교음악 연주회'에서 우선해야 할 일인 것이다.
이번 연주회에서 만난 포우리 나마비안 POURI·ANAVIA과 에시 데라니 ESSI·THERANI가 두 톰바크 반주에 맞추어 연주한 산투르 중주는 아름답고 화려한 명연주였다. 그러나 객관적으로는 이 음악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양금 채 끝에 고무 재질을 붙여 연주하는 그 양금소리를 들으며 필자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줄풍류를 들을 때에 카랑카랑한 음색을 내던 그 양금소리를 떠올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양금채를 만들 때 대나무를 가늘게 깎아 만드는데, 이때 칠현과 맞닿을 부분은 도톰하게 살을 붙여 둔다. 연주자는 오른손에 채를 쥐고 손목 끝의 탄력을 이용해 양금 현을 두드리는데, 이 소리는 나무와 실을 주재료로 하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피리, 대금, 단소, 장구의 따뜻하고 은은한 소리 울림 중에서 도드라지게 명징한 음색을 낸다. 또한 줄풍류를 위한 양금연주에서 음악의 본체를 흐트릴만한 번거로운 주법도 허용되지 않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외래악기인 양금을 받아들여 이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줄풍류를 즐긴 선비들의 음악정신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