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만의 자랑, 세계 아마추어 연극축제
김순희 / 강원일보 기자
춘천 국제연극제는 사실상 '춘천 국제아마추어 연극제'라고 해야 적합하다. 세계 아마추어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국의 독특한 문화를 담고 있는 연극작품을 선보이는 국내 유일의 아마추어 연극제이기 때문. 만약 이 연극제가 프로극단이 참가하는 국제 연극제였다면 국내 연극계의 관심이 어떠했을까 ?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 춘천 국제연극제는 중앙의 무관심 속에 치러졌다. 1993년 첫 회 연극제에서 보여준 문체부 등 중앙행정부처와 연극인들의 관심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단지 아마추어 연극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홍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첫 회만큼 철저하게 준비되지 못했고 3년 전과 비교해 국제적인 예술행사도 그만큼 잦아져 희소성 면에서도 주목을 끌기에는 부족했던 탓으로 보여진다.
아마추어 연극제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임을 의미한다. '아마추어니까 작품이 볼품 없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들의 연극예술에 대한 열정은 프로의 그것과 다를 바 없고 작품 수준도 높은 경우가 많다. 특히 아마추어만의 독특한 소박함이 있다.
춘천 국제연극제는 IATA(국제아마추어연극협회) 산하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 아무추어 연극제 가운데 하나이다.
IATA란 International Amateur Theater Association의 약자로 1952년 브뤼셀에서 설립, 현재 5개 대륙의 9개 조직체로 구성됐고 유네스코의 비정치적인 기구의 하나이다. 활동으로는 국제 아마추어 연극제, 국제 연극 워크숍 세계총회와 세미나 등을 펼친다. 춘천 IATA는 1986년 5월 스위스 세계 아마추어 연극제에 참가하면서 춘천극단 '혼성'을 중심으로 창립됐다. 아시아지역에는 일본 토야마현 토야마시에서 열리는 토야마 국제연극제와 춘천 국제연극제가 있다. 토야마 국제연극제는 4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데 지난 9월말에 5회 연극제가 열렸었다.
춘천에서는 지난 1993년 7월 세계 16개국 2백50여 명의 연극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1회 연극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세계 아마추어 연극제는 개최지는 달라도 국경을 초월한 연극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심성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나아가 바로 그 나라의 문화를 홍보하는 민간외교의 장이란 점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무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춘천 국제연극제가 춘천시민들만의 색다른 체험으로 막을 내린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연극을 통한 인간의 이해와 협동 그리고 교육'을 주제로 열린 올 춘천 국제연극제는 국내 1개 극단 외 13개국 13개 극단 등 모두 14개국 14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졌다. 한국 대표작품으로는 원주극단 '치악무대'와 '노뜰'의 합동작인 「봉천내 ! 봉천내 !」(양정웅 작, 원영오 연출)가 무대에 올랐다.
14개 극단이 각각 1회 공연을 원칙으로 14회 공연을 펼친 이번 연극제는 작품의 우열을 가르기보다는 상호교류에 목적을 둔 페스티벌인 만큼 시상제를 폐지하고 무궁화상, 개나리상, 난초상, 국화상 등 한국과 춘천 가을을 상징하는 상을 만들어 모든 팀들이 상패와 기념패를 받았다.
참가작품 면에서 프랑스, 라트비아 등의 작품이 주목받은 반면 1회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이 적었다는 평가다. 그루지아, 루마니아 등 수준 있는 작품을 선보여 왔던 동구권 국가들이 자국사정으로 이번 연극제에 불참한 것도 한 이유로 꼽혔다.
프랑스 '레 뜨리꼬티즈' (뜨개질하는 여자들이란 뜻)극단의 「나무 위에 오른 남작」(이딸로 깔비노 작, 장 모리스 부댈 연출)은 18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으로 12살 된 어린 귀족이 나무 위에 올라 그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를 꼬집는다. 배우들의 연기가 고른 편이고 배우들이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져 남자 역에 인형을 등장시킨 점도 매우 독특한 기법이었다.
라트비아 '벤츠필즈' 극단의 「의자들」(이오네스코 작, 이마니스 야운젬스 연출)은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마지막 삶이라는 단순한 줄거리에서 의미심장한 사고를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조명, 음악,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 연극인들을 사로잡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연극평론가 한상철씨는 '연출의 과잉'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작품이 연극인들의 관심을 샀다면 중국, 미국, 스페인, 불가리아, 러시아 극단의 작품들이 일반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특히 미국 '차파쿠아' 극단의 셰익스피어 작품 모음에는 1천6백여 명이 입장,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일단 알려진 작품인데다 연기는 코미디에 가까워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연기보다는 무예에 가까운 중국 경극, 대사 없이 발레와 팬터마임으로 연기한 스페인 '알렉시아' 극단이 초등학생들의 관심을 샀다.
마지막 공연인 러시아 작품도 마임으로 연기를 펼쳤는데 단순한 무대 위에서 단조롭지 않은 연출을 펼친 것은 높이 살만했다.
한국을 대표해 무대에 올려진 「봉천내 봉천내」는 원주지역의 봉천내를 소재로 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작품으로 젊은 연출자다운 시도는 보였지만 욕심이 과해 무엇을 말하려는지 주제 전달이 미흡하고 일관성 있는 연출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고려할 때 극본에 대한 해석과 연극예술의 연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인들이 쉽게 동화하는 작품은 대사중심 극보다는 무용, 음악 등 대사 외적인 표현으로 내용을 전달하면서 코믹한 작품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국제 연극제가 해결해야 할 점은 바로 작품에 대한 관객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크린 자막처리를 비롯해 작품 안내 팜플렛을 꼼꼼하게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하다.
또 짧은 기간 동안 14개국을 무리하게 초청하다보니 1국 1회로 하루에 3국의 공연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고 싶은 작품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됐기 때문이다. 관객 분포도 면에서는 입장객 대부분을 청소년들이 차지해 어른 관객의 관심도가 낮게 나타났다.
연극공연 외적인 부대행사 가운데 가장 오래 기억남을 만한 프로그램은 국제친교의 밤이었다. 무대에서의 의상과 분장을 지우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만나 장기자랑을 펼치고 또 춘천의 예술단체들이 준비한 축하공연도 선보인 국제친교의 밤은 정말 '연극을 통한 인간의 이해'를 실감할 수 있는 장이었다.
'한국문화를 배웁시다' 프로그램도 참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다도와 사물놀이를 강습하고 영화 「서편제」를 상영하는 등 한국의 문화를 소개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춘천지역 예술인들이 협조해 참가자들의 식당으로 사용된 장소에 사진, 시화, 미술작품을 내건 것도 좋았다.
지역축제에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올해 참가팀과 지역의 작은 회사나 개인이 자매결연을 맺어 축제기간에 선물을 교환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춘천시 통역자원봉사협의회 회원들이 적극 나서 축제 진행에 중요한 몫을 해낸 것도 박수를 보낼 일이다. 연극제 참가자들이 춘천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귀국해 춘천을 해외에 홍보하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춘천 국제연극제는 국내 유일한 세계 아마추어 연극제란 점에서 춘천만이 자랑할 수 있는 좋은 상품임에 분명하다. 춘천 인형극제, 춘천 국제마임축제와 마찬가지로 춘천이 내세울 수 있는 문화예술 축제이다. 앞으로 좀더 내실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전개돼야 할 것이다.
다시 3년 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