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보존 위한 발판 마련의 해로
대담자 고병익 /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장
백승길 / 세계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백승길 이번에 정부가 내년을 문화유산의 해로 정하고 고병익 선생님이 위원장을 맡으신 것에 대해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동안 음악의 해, 미술의 해, 문학의 해 등이 있어왔지만 문화재 관리에 있어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 등을 부각시켜서 조명해 볼 수 있는 문화 유산의 해가 지정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유산의 해 사업계획도 확정되었으니, 선생님께서 내년에 수행할 사업계획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선 내년 문화유산의 해 의의를 어디다 두고 계신지 간단히 소개해 주시는 것이 문화유산의 해를 치르는 취지에 대한 설명도 될 것 같으니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고병익 저는 올해가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된 것이 매우 시의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우리 일반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높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우리의 개발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규모가 커져가고 있으며 거기에 따른 문화재나 환경의 훼손 정도도 그만큼 커져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특히 고속전철의 경주 통과 문제로 대형개발에 따른 문화재 훼손이나 보존 문제 등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우리의 문화재가 바깥세계의 관심을 끌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기적인 상황과 더불어 문화유산의 보존이나 관리에 대한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문화유산의 해가 지정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승길 지금 서두부터 매우 중요한 것을 지적해 주셨는데 개발과 보존의 문제는 여러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는 곳도 많습니다만 주로 우리나라처럼 개발도상국인 나라들이 발전이 너무 빠르다 보니 문화재 보존과 개발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가장 심한 편입니다. 좀전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고속전철의 경주 통과 문제, 경주에 경마장을 짓는 문제 등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해인사 경내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해서 문화체육부하고 골프장 짓는 업체간에 소송이 제기되어서 법원에 기소 중입니다.
이 소송에서 문화체육부가 패소한다면 문화재 보존, 자연유산 보존에 굉장히 큰 여파가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는 개발과 문화재 보존의 관계에 있어 내년의 문화유산의 해에 정부나 문화재, 자연유산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고병익 글쎄요. 과거에는 개발을 해도 규모가 적었기 때문에 문화재 훼손 규모도 훨씬 적었습니다. 이제는 개발 자체의 규모가 커지고 여러 군데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하니까 정부나 관계기관에서도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이런 것들이 직접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에만 여론화되는데 그보다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것을 꾸준히 여론화시켜 우리 국민 모두의 의식 속에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정부가 국가정책으로써 개발을 할 때도 그렇고 개인기업체가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도 문화재라는 관념을 일단 염두에 두고 시작할 수 있도록 의식을 개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승길 일본이나 영국, 프랑스 등의 외국에서는 문화재 보호 지정지역으로 정하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본에는 고도문화재보존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기 전해에 경주에서 고도보존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고병익 일본에서는 고도보존법이 잘 수행되고 있습니까 ?
백승길 일본에서 고도보존법이 제정된 것이 1960년대 말쯤인데 교토, 나라, 가마쿠라 등이 고도로 정해져 있는데 역사 또는 사찰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등 37개 지역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문화재법을 잘 모르지만 정부가 의지가 없어서 그렇지 지금 법을 고치지 않고도 이런 것을 시행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경주, 부여 등 여러 유적지에 대해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법과 같은 법을 알맞게 만들어서 개발로부터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병익 물론입니다. 문화재 보존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서 제도나 관계법령의 문제점을 살펴서 개선하고 보안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 내년 문화유산의 해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백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법안을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러한 것이 실행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그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요즘에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주위 환경과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는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을 왕왕 보게 되는데 공주라든가 부여 등 우리나라의 고도에 갑자기 고층의 아파트를 짓는다든지 한다면 고도의 분위기가 완전히 깨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이런 곳을 개발 제한만 하고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면 현지 주민들의 반발도 있을 테고 하니 이 점을 아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면서 보존토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일본의 예가 우리에게 합당한 점이 있다면 참고하는 것도 좋겠지요.
백승길 그렇습니다. 프랑스에도 그런 문화재 보존의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럽을 예로 들면 유럽의 시골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물의 스카이라인이 똑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논바닥에 20층 짜리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론도 조성하고, 교육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나 프랑스 ,영국에는 문화재관리국 내에서 대외관계부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부서 안에 대외홍보관계와 국내교육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중요한 문화재를 점자로 그리고 점자로 설명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화재 안내책자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고병익 대외관계부라면 외국과 관련 부서입니까 ? 아니면 문화재관리국의 차원에서 대외관계부입니까 ?
백승길 외국과 국내를 포함한 양쪽 다입니다. 한쪽에서는 외국에 문화재를 홍보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문화재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자국 국민을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 관리에 대한 홍보와 교육 활동을 전담하는 부서가 문화재관리국 내에 있어서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 관리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가 매우 미약한 실정입니다.
올해를 계기로 해서 학교교육에 이것을 연결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방의 사적지나 공원 등에 학생들이 가서 청소도 하고 관리도 하면서 그 사적지에 관한 이야기도 듣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주변에 있는 문화재부터 알면서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재관리국에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부서를 신설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고병익 문화유산의 해 표어가 '알고, 찾고, 가꾸자'입니다. 지방자치단체, 각 지방의 학교, 자원봉사자 또는 명예 관리인 등에게 고장의 문화재를 알고, 찾고, 가꾸는 운동을 확산시켜 보자는 것이 이 해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즉 규모가 크고 알려진 것뿐만이 아니라 규모가 작고 덜 알려진 것이라도 자기 고장의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고, 아울러 자기 지방이 아닌 곳에 있는 문화유산도 친숙하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관광문화를 개발하는 것도 추진할 생각입니다. 국민들에게 우리 문화유산을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 전문가를 동반하여 문화재에 대한 설명도 하는 등 관광코스를 개발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백승길 아주 좋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또 하나 말씀드릴 것은 문화재를 이용해서 그 지방의 산업과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촉진하는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병익 아까 말씀하신 고도보존법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
백승길 네, 고도보존법이 아니고 고도 안에서 예를 들면 그 지방의 유형문화재나 무형문화재가 있으면 지정된 장소에서 그것을 이용해서 지역의 경제와 산업발전 문화발전에 기여토록 돕는 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문화재 지정은 잘하고 있는데 전수자나 이수자의 경우 사람을 구하자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럽 같은 곳은 장인을 기르는 교육이 중세의 길드와 똑같은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고병익 그런 후계자들은 어떻게 나옵니까 ? 수입이 생겨야하는 문제, 경영문제 등에 대한 상당한 보수나 대우가 뒤따라야 할 텐데요.
백승길 예를 들면 프랑스에는 석공들이 많은데 왜 많으냐 하면 프랑스는 현재 건물들이 거의 석조건물들입니다. 그런데 교회라든가 사원 등의 보수사업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것을 정부가 등급에 따라 라이센스를 주는데 제도적으로 유형,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수만 맡아서 해도 충분히 생활이 되기 때문에 후계자 양성이 가능한 것이죠. 그러므로 문화재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정부가 무조건 돈을 주어서 시키는 것보다는 보수, 복원사업을 할 때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도록 제도적으로 정하면 됩니다. 낙축장 같은 기술은 지금은 사라져 가는 기술인데, 그것을 보존해야 되겠지만 그냥 보존해서만은 유지가 어렵습니다.
고병익 그런데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공예라든가, 문화유산 같은 것은 어떻게 합니까 ? 아무리 라이센스를 주더라도 응용할만한 방도가 있어야 활용과 발전이 되는 법이고 그 외에는 생활비라든가 보수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되는데요.
백승길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문화재를 지정하는 것, 전통예인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 같은 문제도 무형문화재를 다루는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고병익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지정제도도 상당히 괜찮은 제도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 데요. 다른 나라에서 배워가려고 하는 경향도 있고 우리가 어느 정도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것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 가지고는 그런 기능이라든지 문화유산을 발전시켜 나가기는 어렵고 훨씬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승길 물론입니다. 그래서 1996년 10월 달에 세계 무형문화재 보존방법에 관한 정책회의에서 한번 거론된 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제도는 좋은 대로 좀더 발전을 시키고 더 좋은 제도는 받아들여 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수, 보존을 다루는 곳으로 우리나라에 국립문화재 연구소라는 곳이 있고 문화재관리국이 있습니다. 일본을 보면 도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있고, 교토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있는데 전자는 1930년대에 생겼는데 인원이 48명밖에 되지 않고, 교토는 1952년부터 생겼는데 인원이 82명이나 됩니다. 프랑스는 이러한 기관이 더 많이 있는데 지방정부하고 연결해서 하는 일이 각 지방마다 분리되어 있습니다. 우리처럼 옛날 문화재는 많지 않지만 중세 이후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지 않습니까 ? 우리나라도 문화재관리국이나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을 강화 확장했으면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계획은 없으십니까 ?
고병익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증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절실하게 와 닿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론조성 사업의 하나로써 그 필요성을 정책관계자나 일반국민들이 느끼도록 추진해 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승길 문화재관리국도 공원이나 사적지 외에도 박물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궁중유물전시관이 하나 있고, 해양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이런 곳들을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국립박물관 시스템하고 마찰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는 일본의 3대 박물관이 모두 문화재관리국 소속입니다. 동경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등이 그렇습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제에 우리도 유물전시관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차라리 박물관이라고 해서 박물관 시스템에 맞게 운영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
고병익 알겠습니다. 그러한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논제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의 토론과 세미나를 개최해서 적절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국민들의 일반적인 여론까지 수렴할 수 있으면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또한 이번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발굴해서 재현해 보고 발굴된 문화 보존도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궁중문화 중에서 무예에 대한 것이 거의 소실되어 가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것을 한번 재현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시행되었던 무과시험이나 말을 타고 했던 격구놀이 같은 것이 있고, 왕이 사냥을 나간 적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유교사상이 들어와서 많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궁중문화뿐만 아니라 지방의 시, 가사, 놀이문화 같은 것도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윷놀이, 투호놀이, 널뛰기, 같은 것은 근래에도 해오는 것인데 그것이 현대에는 컴퓨터나 개인적인 놀이가 발달하면서 사라져 가는 추세입니다. 이런 놀이들을 현대에 맞도록 해서 보급을 시키면서 학교나 지방단체에서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번 문화유산의 해에서 과거의 문화유산으로써 잊혀져가고 있는 것 중에서도 현대에도 부흥시킬 수 있는 것은 되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승길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전국민속경연대회 같은 프로그램으로 추진하면 좋은 재현의 장이 될 것 같습니다.
고병익 그렇습니다.
백승길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연희 관계는 상당히 많이 되살려지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희종목이라든지 무예 같은 것은 전혀 재현이 안되고 있거든요.
고병익 그런 것 같습니다.
백승길 그래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바로 문화재관리국을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문화재 선전을 제일 잘하는 나라가 프랑스하고 영국인데요, 프랑스는 중세 때부터 샤또와 요새화 된 성당이나 수도원이 많거든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이 관리하는 것만 3백 개가 있습니다. 그런 유적지를 관광명소로 만들어서 관광코스 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적들은 로마시대부터 중세에 걸쳐 축성된 것으로 건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군사유적입니다. 거기를 보고 나서 아까 말씀드린 낙안읍성 같은 데서도 사람들이 성이나 돌아보는 게 아니라 무슨 디오라마를 사용하든지 하는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했으면 좋겠는데 저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경복궁을 복원한다고 하면 말이지요, 그렇게 두지 말고 각 전각에서 행해진 특징적인 행사들을 재현하면 어떨까 합니다.
고병익 그렇지요. 고궁의 전각들에서 특징적인 행사나 의식들을 그 전각에 맞게 재현한다면 입체감이나 동적인 느낌이 있어서 훨씬 좋을 것입니다.
백승길 최근 30경비사단이 나갔다고 하는데 정말 잘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전시 문화재 보호법에 가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법을 보면 보존 지역 내에 군사시설이 있으면 보호를 못 받지요.
이번에 30경비사단이 경복궁을 나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경복궁을 복원한다면 지붕과 전각만 복원해 놓을 것이 아니라 기록에 보니까 궁중의 무희들이 100명이나 상주를 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이용한 내용적인 복원도 해야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70년대만 해도 창덕궁에 가면 전각에 유물이 그대로 있었는데 지금 다 치워버렸습니다. 베르사이유에 가도 그렇고 이태리 피렌체에 가면 메디치 궁전의 아파트 같은 것이 그대로 그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역사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전각에서 일어났던 제일 기억할만하고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들을 복원해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병익 그렇습니다. 텅 빈 전각만 전시하는 것보다는 그러한 것들이 추가되어야 하겠지요. 옛날에는 시골에서 투호놀이, 널뛰기, 그네뛰기, 가사 같은 것을 베껴 외워서 경송하는 놀이 등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어요. 또 옛날에 일본에 통신사로 가면 자랑을 하고 왔던 마상재라는 것도 있었는데 마상재는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그대로 재현을 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매년 한두 번씩은 특정한 장소를 빌려 재현하는 기쁨을 주고 또한 그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백승길 그렇습니다. 전국민속경연대회가 그런 것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는 이러한 것들에 상설무대가 있어서 훈련의 기회도 되고 발전의 기회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 내년 문화유산의 해에 대해서 대부분의 분야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마지막으로 발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요. 재작년에 어느 대학에서 전곡리 부근에서 유물을 발굴했는데 그때 마침 중국 상서성 문화재연구소에 근무하는 조선족이 방문했었는데 학생들이 발굴작업에 동원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라워했습니다. 전문발굴단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해야지 무슨 학생들이 발굴에 참여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도 작년에 문화재보호재단에서 발굴단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발굴작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발굴을 하려면 보존 문제 등 상당한 준비가 있어야 되거든요.
고병익 문화재보호재단에 발굴 부서나 교육훈련 부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로군요.
백승길 그렇지요. 발굴 부서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문화재보호재단에서도 만들려고 하고 있고 영남고고학회, 전남대학 등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정부가 도와주고 라이센스는 아니더라도 훈련을 받은 사람, 또는 훈련시킬 프로그램을 마련해야겠지요. 지금 몇 개 많지는 않지만 일부 건설회사에서는 고고학 전공생들을 모집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발굴하는 것을 자문 받고 있습니다. 그런 데를 도와주고 교육사업을 해주는 등의 일을 문화재관리국에서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고병익 알겠습니다. 지금처럼 대학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차라리 영남고고학회 같은 식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지도하고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군요. 발굴사업에는 여러 측면에서 지켜야할 규범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까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백승길 그렇습니다. 영국하고 프랑스는 1992년부터 박물관과 문화재관리를 하는 곳의 직원들을 대학원 수준으로 높여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고병익 우리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전통문화학교라는 곳이 그런 것 아닙니까 ?
백승길 그것은 아닙니다. 문화재관리국도 그렇고, 박물관도 그렇고 두 군데가 다 문화재 보존의 관련기관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도 그전까지는 문화재 관련 부서의 직원을 따로 뽑았고 박물관도 따로 뽑았는데 1992년부터는 1년에 120명에서 160명을 뽑습니다. 외국학생들도 받고 있는데 공채로 모집합니다. 아무나 공채 하는 것이 아니고 관련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 한해서 뽑고 일년 반을 훈련을 시키는데 첫해 한 학기는 국내법, 문화재관리에 관한 법, 국제법, 예산관련법 등을 모두 공부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실무를 하는데 매 학년마다 3주∼4주 정도로 인턴을 시키는데 프랑스 학생들을 외국으로 인턴을 보냅니다. 외국학생들은 프랑스 기관에 인턴으로 보내지요. 이렇게 훈련을 시키는데 우리나라 박물관도 그렇고 문화재관리국도 그렇고 이런 제도가 없지 않습니까 ?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매년 박물관협회가 전국대회를 개최하는데 미국에서는 그 해에 문화재관리에 관계된 기관에 입사한 사람이나 박물관에 입사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입사 후 3∼5년을 근무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고, 그 다음은 관장이 될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관장이 되려면 그 세 가지 프로그램을 다 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문화재관리국하고 박물관 종사자들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서비스를 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고병익 계속해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면 좋겠군요. 이러한 일들이 문화유산의 해라는 한해의 행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하나의 기운을 조성해서 자극을 주고 계기를 만들어서 일 자체를 계속 추진해 나가는 것으로 해야지 한해에 성과를 보기 위해 거기에만 매달리면 의미가 적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유산의 해에는 이러한 기운과 기회를 마련하는 계기를 만드는 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백승길 그러니까 저도 이번을 계기로 한번씩 짚고 넘어가자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이루어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지요.
고병익 백 선생께서는 국내의 것과 세계의 것을 비교하고 고찰하는 위치에 계시니까 문화유산의 해에 문화에 관계된 일과 조직위원장인 제 일에 대해서도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