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 바란다 / 미술

거품현상의 제거와 체질개선을…





윤우학 / 미술평론가

모든 영역에서 알게 모르게, 많든 적든 지난해를 전반적으로 지배했던 개념, 이른바 세계화니, 개방이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개념들로 말미암아 사뭇 긴장감이 감돌며 무엇인가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쫓기다시피 뛰어다녔던 해가 바로 1996년이었고 여기에 덧붙여 경제사정의 악화로 인해 그 위기감이 더욱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던 것도 1996년이었다.

사실 우리 미술계도 그와 같은 영향아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저조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무언가에 쫓기듯 일을 처리하는 데서부터 단적으로 드러났던 현상이기도 했다.

예컨대 국제전이나 국제 견본시장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면서도 이렇다 할 준비와 대책이 없이 임의적이고 즉흥적으로 참가했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며 그 결과도 말처럼 그렇게 좋지 못했던 사실이 그것이다. 뿐더러 우여곡절 끝에 열려진 서울국제미술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열려진 것인지 그 의도를 되살펴보아야 할 정도로 무모한 절차와 과정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근자에 들어 미술계의 대외적인 입장이 어떠한 것인가를 너무나 확연하게 가르쳐주는 실마리가 되고도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국제적인 차원의 존재로 탈바꿈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을 실력으로 현실화하는 '실천' 사이에 얼마나 크고 깊은 괴리가 존재하는가 하는 점을 말해주는 징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1996년의 우리 미술계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정 시키는 상징적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997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 괴리감과 과도기적인 성격을 새로운 차원에서 해소하여 그것을 하나의 비전으로 바꾸는데 우선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리라 보이며 그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우리 스스로의 자세를 보다 튼튼한 것으로 만들어 '시장개방'이라는 코앞에 닥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야만 하리라 본다.

실상 우리 스스로의 자세를 튼튼한 것으로 만들려 한다면 미술계 깊숙이 오랫동안 자리잡아왔던 이른바 거품현상을 최소한의 것으로 줄이는데 최우선의 실천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 화단이야말로 거품현상이 지나쳐 개방에 있어서의 경쟁력이 전혀 결핍된 곳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전시회와 그 양적인 팽창에서부터 남발되고 과대 포장되는 팜플렛, 질적인 가치가 외면 당한 채 유명세와 인기를 기준으로 설정되는 고가의 작품가격 ,학력이나 학벌을 중심으로 뭉쳐지는 집단과 그룹의 세력 과시적 성격, 난립하는 수상제도와 공모전, 과대한 상금,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적이기만 한 인기와 몰이해, 대중으로부터 괴리된 채 외딴섬처럼 과천에 떠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큰 덩치와 속 빈 내용 ,특정한 곳에만 집중되는 매스컴의 무기준과 과잉보도, 그리고 상업주의적 시각, 과잉 포장되는 서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칭 비평가들의 비평문들, 물적인 스케일과 양으로 한몫 보려는 듯한 왜곡된 제작태도, 유행에만 관심과 집착을 보이는 모방적인 실험정신, 출세만을 목적으로 하는 듯 느껴지는 경력의 과잉축적과 작가의식, 뚜렷한 안목과 장기적인 전망 없이 즉흥적으로 준비되고 참여하는 국제전 관련의 전시구성과 참가태도, 알맹이 없이 진행되는 미술 관계의 세미나와 예절조차 잃어버린 거친 인신공격성 비판자세, 환경이라는 개념을 앞세운 채 무환경적 전개를 보이는 예술조형물과 그 은폐된 선정과정 등등,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우리 미술계의 거품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며 이들은 외면적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우리 화단의 정신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차원에서 그 개선에 대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을 보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실상 전시회의 홍수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문제만 하더라도 그것의 보이지 않는 내적 폐해가 얼마나 크고 깊게 우리 화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본다면 이것이 결코 단순하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금방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것은 우선 작가 스스로가 작품의 질에 대한 보다 신중하고 각별한 검증 없이 전시회에 임한다는 문제에서부터 수요를 훨씬 초월한 작가 배출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뒷면의 여러 암시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사실상 많은 작가들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집단적인 전시회에 맹목적으로 참가한다는 지 아니면 전시회 날짜부터 잡아놓은 채 쫓기듯 작품 제작을 하며 마치 권투 시합의 의무방어전처럼 작품 제작의 여건을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차원으로 추락시켜 버리는 일반적인 추세 속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의식에서는 작가의 경제적인 사정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다는 직접적인 폐해는 둘째치고 라도 작품창작에 뒤따라야 할 작가의 창조적 자유 정신을 좀먹게 해버리며 나아가서는 화랑의 기능을 순전히 작품전시의 장소 정도로 머물게 한 채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화랑의 출현을 구조적으로 불가능케 한다는 보다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깊고 넓은 문제를 파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997년 대외적으로 미술시장의 개방에 맞서 우선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의 거품현상을 제거하는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체질개선의 실마리를 적극적으로 열어야 할 때라고 생각되며 그러한 자구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시장 개방에 대한 긴박감을 하나의 자극적인 수준으로 이끈 채 스스로의 위상을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