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탐방 / 공주 민속극 박물관

한국 민중예술의 혼이 살아 숨쉬는 문화공간 - 공주민속극박물관




김상영 / 소설가

충남 공주시 의당면 정룡리.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자락을 따라 걷노라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 마당이 나타난다. 겉보기에도 옛날 우리네 장터 굿판이나 놀이마당을 연상시키는 넓고 고른 땅은 그 자체가 무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물 초입에 그곳이 박물관임을 알리는 간판이 서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기존의 박물관 구조와는 다른 내부 양식이 눈길을 끈다.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유리벽 대신 깔끔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목조 진열장들이 그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제 살을 내보이고 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면 누구나 가장 가까이서 구경하고 만져볼 수 있도록 배려한 열린 구조가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을 편안하게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 열린 공간 안으로 한발짝 더 들어가 보자.

이번에는 우리나라 민속극의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온갖 인형들이며 가면극의 탈들이 기다리고 있다. 남사당놀이, 꼭두각시놀음, 동해안별신굿, 진주오광대놀이 등의 등장인물들인 남강노인, 풀각시, 피조리, 만석중 등의 정다운 얼굴들이 맘씨 좋은 주인처럼 푸근하게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진열장 사방으로는 우리 조상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뿔정쇠, 꽹과리, 거문고, 장고 등 민속악기며 상여 등의 소도구, 예로부터 공주지방에서 쓰여온 전통농기구들이 한자리씩 보기좋게 차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관람객들로 하여금‘아, 예전엔 우리가 저렇게 살았겠거니!’하는 향수어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1천여 점이 넘는 진귀한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에 왔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이곳은 우리네 고향 사랑방이나 대청마루, 안마당처럼 편안하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왕실이나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것, 바로 지난 수천년간 우리네 민중의 고단한 삶을 신명나게 풀어주던 놀이문화의 산물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이 우리나라 민속학의 대가로 꼽히는 심우성(62세) 관장이 사재를 털어 세운 공주민속극박물관이다.

지난 1995년 말, 2년 여의 공사끝에 이 박물관은 말 그대로 완전 공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박물관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대부분의 민속유물들은 심우성 관장이 지난 50년대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구해다 놓은 것들이다. 그는 평생 시골 장터나 남사당 패거리들을 쫓아다니며 한 점 한 점 구해온 민속유물들을 자식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

그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세상사람들에게 내보이면서 그는 결코 어설픈 주인 행세를 하지는 않는다. 민속유물이라는 것이 본래 내 것도 네 것도 아닌‘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손이 귀한 가문의 삼대독자로 태어나 일찍이 손자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조부께서 가묘터로 정해준 자리에 덜컥 박물관을 세워버린 것에서도‘우리 것’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민속이라하면 모두가 옛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잘못된 사고이다. 민속이란 백성의 풍속을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백성의 풍속은 전부 옛스러운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민속이란 것은 시대변천과 아울러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풍속이 바로 민속인 것이다’

이 말은 민속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으로 우리 것을 외면하는 현대인들에게 그가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민속의 정의이다.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민속유물이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진정 알아야 할‘우리 것’을 그는 민속유물이라 부른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생활 속에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우리 것’을 그는 누구나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박물관 건립이라는 대명제를 감행한 것이다.

이 일은 분명 일개 개인의 힘으로 이룩하기엔 여러 모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부의 재정 보조는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고, 박물관 개관 후에도 일반인의 관람이 보다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현재는 최소한의 관람료도 받지 않고 있다.

아무리 소중한‘우리 것’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면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는 노학자의 민속철학이 그런 열정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살기는 갈수록 편리해지는 세상이다. 날로 쏟아져나오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뭣 하나 부족한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져간다고 느낀다. 손발 쉬는 날이 많아진 만큼 몸뚱이는 편안한데 도무지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게 현대인들의 삶인 것이다.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엔 놀이문화까지도 서양에서 밀고 들어온 기계들이 판을 치고 있다. 예전엔 아이들이 딱지치기나 공기놀이를 하면서 건강과 신명을 같이 즐겼으나 지금은 전자오락실에 앉아 단추 하나만 누르면 되는 세상이다. 이런 류의 게임은 철저히 혼자만을 위한 오락이다. 친구도 필요없다. 더더욱 협동이라거나 공동체의식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다. 힘을 합쳐 놀이를 이끌어가야 할 친구 대신 삭막한 기계를 앞에 두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것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위한 어른들의 놀이문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해학과 풍자, 신명과 한의 정서가 어우러져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주던 민속극이나 가면극 놀이 등은 이제 박물관에서, 혹은 인위적인 공연을 통해서나 볼 수 있다.

공주민속박물관은 그러나 사라져 버린 옛 풍물의 흔적 따위를 보여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진 않는다. 거기엔 현대인들의 각박해진 정서를 잡아당겨 잊었던 그리움을 일깨워주려는‘사람냄새’가 있다.

청소년 대상 민속자료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는 1층 자료실만 보아도 그 의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아직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이 없고, 영상자료나 사진자료 등 우리 민속을 소개하는 역할에서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공주 지역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전통예술에 대한 이론교육과 민속음악, 민속극, 탈춤놀이 등 다양한 실기교육을 병행할 예정이다.

또한 박물관 앞뜰을 놀이마당으로 활용, 탈춤이나 민속놀이 등 모든 사람들이 옛부터 즐겼던 우리만의 놀이공연을 틈나는 대로 펼치고 있다. 방학 때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공연 이외에도 독특한 미술 실습을 병행할 예정이다.

또한 박물관 앞뜰을 놀이마당으로 활용, 탈춤이나 민속놀이 등 모든 사람들이 옛부터 즐겼던 우리만의 놀이공연을 틈나는 대로 펼치고 있다. 방학 때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공연 이외에도 독특한 미술 실습을 병행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흔히 뎃생 그리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석고상이다. 그 석고상, 즉 뎃생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백이면 백 다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인데, 공주민속박물관의 뎃생 소재는 이런 기존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허수아비에 전통탈이나 인형을 씌워 외국의 석고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적이고 민속적인 미술실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뎃생은 미술의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므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뎃생의 소재가 다 서양 인물들입니다. 이목구비며 얼굴 생김새가 우리 동양인, 한국인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입니다. 미술의 기초단계를 배우는 과정에서 서양인 일색인 석고상을 그리다보니, 아무래도 한국적인 정서를 읽힐 수가 없습니다. 처음 그림 배울 때는 서양사람 얼굴을 그리다가 나중에 한국사람 얼굴을 그리려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렇듯 한국적인 소재를 뎃생에 이용하는 것은 한국화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심우성 관장은 말한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지금껏 박물관을 별탈 없이 잘 운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영상의 애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느낀 가장 아쉬운 점은 다름아닌 일반인들의 민속에 대한 인식부족이다.

“일반 사람들은 박물관 소장품들이 꽤나 값비싼 것으로, 또 값비싼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우리 민속작품을 돈의 가치로 따지려는 경향도 이런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속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아주 소소하고, 일면 보잘 것 없는 것들도 한국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민속자료라고 할 수 있죠.”

운영상의 또 다른 애로점이라고 하면 역시 재정적인 문제이다. 외국의 경우엔 사설 박물관에 대한 재정보조를 해주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나라의 경우엔 이런 혜택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외국의 경우,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정부의 재정보조가 사설 박물관을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박물관 등록증이 발급된 시점부터 정부보조금이 나옵니다.”

심우성 관장은 그러나 정부보조금을 원하거나, 재정지원이 안되는 우리의 현실을 탓하지는 않는다. 사실, 사설박물관에까지 정부의 혜택이 주어지기에는 아직 우리나라 문화기반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정부의 재정보조 같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차제에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박물관 설립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재정적인 지원이 아니라 행정적인 지원에 불과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사설 박물관은 수효도 적을 뿐더러 내용면에서도 매우 열악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다 단체가 사설 박물관을 세우려 할 때 등록 여건을 관대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박물관을 설립하는 자격이나 조건이 다소 부족하다 해도 일단 등록증을 발급해 주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얼마든지 매꿔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야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가 지금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노학자의 소박한 염원이자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