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립국악원의 97 동계 유니버시아드 경축공연 창무극 「춘향전」을 보고

변모하는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는 전통공연




장연옥 / 런던대학교 민족음악학 박사과정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축하하고 홍보하기 위한 창무극「춘향전」이 1월23일,24일 양일간 전라북도 도립국악원의 창극단, 무용단 그리고 관현악단의 공동작으로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판소리「춘향가」나 창극「춘향전」이 우리에게 익숙한데 반하여 창무극「춘향전」은 우리 귀에 설익다. 창극은 1인 다역의 판소리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이 배역을 각각 따로 맡아서 연출해 내는 극창이다. 이 점에서는 창무극「춘향전」이 창극「춘향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창무극으로 지칭한 것에 대하여 제작진들은 이 공연의 연출방식이‘기존에 있었던 창극 춘향전의 전통연희 방식 위에 최첨단의 무대 매커니즘과 연출기법, 관현악곡 편성의 국악 오케스트레이션에 의한 음향과 반주, 또한 전통 춤사위에 바탕을 둔 새로운 해석의 화려하고 조직적인 율동’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작진의 주장처럼 무용단과 창극단을 보조해 준 관현악단의 역할과 화려한 춤사위는 이 공연을 돋보이게 해주는데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그러나 창극이든 창무극이든 그 기본이 판소리 춘향전에서 나왔고 또 그런 이유에서 춘향전의 이야기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에 그 의도가 있다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요소는 극의 구성 즉 짜임새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1막 구성은 비교적 탄탄했으나 시간에 쫓겨 서둘러 적당히 끝마쳐버린 듯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더군다나 2막에서 어사가 된 이몽룡의

마이크는 제 구실을 못해 제작진이 역설한‘최첨단의 무대 매커니즘’이란 말을 무색하게 했다.

20세기 초 중국 경극 Peking Opera의 영향으로 창극을 채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원래의 창극 양식에 무용을 가미해 창무극으로 변화시킨 것은 음악은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이라는 속성을 되짚어 보지 않더라도 국내외에서 바쁘게 변화하고 있는 음악양식이나 언제나 새로운 것들을 지향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변화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다. 창극에 기본을 둔 스타일의 연출방식에 단지 시각적으로 화려한 무용을 첨가하고 오락적인 성향을 치달음으로써 전통에 뿌리를 두고 발전된 창극이 가벼운 유흥거리로 저급화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원래 창극 태동의 동기가 1900년대 초기의 새로운 양태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속에서 일본의 신파조와 서양음악의 유입으로 구태의연하게 느껴지던 판소리를 보다 다채로운 음악 양식으로 바꿈으로서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지고 있던 관객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또한 관객들에게 새로운 흥미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인간이 추구하는 예술행위가 늘 한 발 앞선 발전을 쫓는 것임을 생각할 때 창무극의 등장은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변모하는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는‘전통국악제행’이나‘국제언어 확보’는 바람직하다.

두 번째날 공연의 성공적인 관객동원과 신관사또 변학도의 익살 맞은 연기, 그리고 무용단들의 연극적인 무용은 적절히 감칠맛나는 공연이었으며 관객들의 잦은 박수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통해 가장 탁월했던 점은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된 한글 자막과 영문 자막이었다. 영문 자막은 이번 유니버시아드 참가자들인 외국 선수단을 위해 설치된 것이었으며 더불어 설치된 한글 자막은 일반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다. 판소리는 우리말로 불리워지는데도 불구하고 고도로 발달한 성음구사와 전라도 지방의 사투리 등으로 인해서 가사 전달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이로 인하여 현대인들이 판소리를 감상하는 데 거리감을 갖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글자막을 설치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음악을 감상하는데 자막을 보면서는 완전한 감상이 안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으나 우선의 이해를 위해서는 판소리 공연 때 한글 자막 설치는 긍정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만 영문 자막이 서툰 번역과 부정확한 한글 로마자화로 그 시도는 좋았으나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점은 안타까웠다. 제작자의 말대로 서둘러 제작해야 했던, 언제나 그렇듯이 다른 이유없이 그저 서둘러서 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한심하고 안타까운 우리나라의 단말적인 문화행정은 다시 한번 문화 후진국이라는 상흔을 할퀴는 계기를 남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