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논단

서울 외곽 연행 공간 확대의 성격에 대한 단상

- 왜‘탈’서울인가?




박귀현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 들어가는 말

최근 문화가에서는‘바탕골’,‘미추’,‘꿈에 꿈’등의 극단이 서울 외곽에 복합 문화 공간과 극장을 설립하는 움직임들과 홍신자, 김아라, 임동창씨 등 중견예술인들의 죽산에 문화촌적 성격의 공간을 형성해 가고 있는데 대한 관심이 꾸준히 고조되고 있다. 쉽게 생각하자면 외곽의 문화 공간들의 형성은 일종의 서울의 근교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움직임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90년대 들어 변화하고 있는 도시인들의‘삶의 양식life style’에 대한 가치관과도 맞물려 문화공간의 탈 도시적 경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서 이러한 움직임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 탈 서울의 이중적 배경

탈 서울, 탈 도시적인 생활과 문화에 대한 선호의 급증은 곳곳에서 확인된다.‘전원주택’과 ‘주말농장’에 대한 선전은 여성지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고, 용기 있는‘귀농자’와 더 나아가 아예 출생국의 모든 커리어를 등지고 맨손으로 출국하여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서는 젊은이들의 얘기가 심심찮게 일간지 문화면, 생활면을 채운다. 예전에도 일부 부유층의 시골‘별장’이 없었던 바 아니고, 세계 무대에서의 자수성가 성공담이 없었던 바 아니지만 현재 이 현상들이 예전과는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이면에 우리 사회 특유의 시대적 가치관 변화와 사회경제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배경들은 국민소득 만불 시대의 새로운 여흥 소비 형태의 확산이라는 통속적 이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위 문화 공간들이 형성되고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맥락 역시 이러한 배경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가치관의 변화 : ‘삶의 양식’이 중심적 주제가 되는 시대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이슈로 부각된 영역은 무엇보다도‘삶의 질’혹은‘삶의 양식’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주지하다시피 80년대까지의 엄혹한 이념 대립은 정치, 경제적 이슈나 이론적 거대 담론들로 사회의 갈등과 발전을 모두 설명하려는 경향이 압도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대립 양측 모두에 해당하는 삶의 여건들의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통해 이념 혹은 정치체제가 인간형과 생활 양식을 바로 결정짓지는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60년대 절대빈곤과 7,80년대의 일련의 경제적, 정치적 근대화 과정을 일정 수준 이상 거침으로써,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는 비로소 삶의 질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문화산업과 문화담론의 폭발적인 증가나 환경문제, 여성문제, 소수 주체들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전반적인 사회적 가치관의 한 측면들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인 사회이거나 극한 대립의 이념적 갈등 국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사회에서의 삶의 질이란 논의되기 어려운 것이고 보면, 90년대 이후 일련의 변화들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지표들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근대화 정도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논의의 여지가 많이 있고, 문화, 여성, 환경 문제 등 이제 막 부각하기 시작한 새로운 사회적 관심 영역들의 배후에는 상당 정도 정치적 논리가 뒷받침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논의와 관심의 지형이 변화된 것은 분명하다.

관심 영역의 변화는 곧 태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2·30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가치관 전환의 지표는 여러 담론과 현상들을 통해 확인된다. 항간의 신세대론이 많이 과장되고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이러한 변화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학문적 영역에서 고전적 사회 변동론인 체제 이론들 대신 후기산업사회론이나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어떤 논(論)보다 태도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역시 현실을 통해서인데, 소비 양식, 주거문화에 대한 선호도, 진로나 직업 선택 기준의 변화 등은 변화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는 저축만이 미덕이던 시대와 내 집 마련이 필생의 꿈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판검사로 대변되는 위계적인 관료형, 권력형 직업이 사회적 위신의 기준인 시대도 아니다. 바야흐로 연봉은 깎여도 휴가는 못 깎는다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계획으로 현재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며,‘지금, 여기’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결코 가계소비자들의 소득향상에 따른 심리적 여유의 단순 귀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현상들은 당사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인식되든 되지 않든, 무한 경쟁의 논리와 종적, 위계적 체계로 대변되는 근대적 사고와 각박한 도시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적 사고와 각박한 도시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적 생활양식 전반에 대한 회의 혹은 대안 추구의 경향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관심 영역과 삶의 태도의 변화는 거대도시의 근교화라는 맥락과는 또다른 맥락에서 탈 획일적, 탈도시적 문화와 감성을 추동한다. 근교화라고 했을 때는 도시 팽창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시의 인구와 기능이 분산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구가 먼저 특정 지역에 정책적으로 분산되고 이어서 도시의 기능과 서비스가 형성되는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지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화 공간들은 위성도시 형성에 따른 근교화 과정의 하나로서 생겨나는 것, 그래서 다만 지역적 행정적으로 서울을 벗어날 뿐 사실상 서울의 일부인 그런 공간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단 이들의 위치 자체가 수도 서울의 기숙사 도시domitory town라고 보기는 힘든 곳들이며 이들의 내재적 동기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문화적 대안 모델의 형성에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김아라씨에 따르면,‘서울이라는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생활과 예술양식’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지는 예술인 당사자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작년 홍신자씨 주최로 행해진 죽산국제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다. 죽산 페스티벌은 자연 공간 자체를 무대 삼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각종 퍼포먼스를 행한 것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또 이 행사의 관객들 역시 무대와는 떨어진 구경꾼이 아니라 연행 과정 자체의 참가자가 될 수 있게끔 유도되었다. 김아라씨는 개인적으로 이 곳에 야외무대를 만들어「오이디푸스 3부작」이라는 대작을 재현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서울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의 예이다. 그러나 어디 이것들뿐이겠는가. 서울이라는 공간의 리듬과 템포, 그 생활의 속도감으로는 도저히 공감될 수 없는 감성과 양식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위 공간들에는 도시가 제공하는 닫힌 공간과 인공 구조물들, 그리고 공간 배치 구조 자체에 의해 제약되어 있는 수동화된 관객들에 대한 대안 모색의 일환이라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 사회경제적 배경 ; 또 하나의 브로드웨이?

얼마전 유수 일간지에 농림부에서 발표한 귀농 인구 통계가 보도된 바가 있다. 그 기사의 제목은‘고학력 귀농인구 늘어난다-청산에 살어리랏다’여서 마치 안빈낙도의 삶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더구나 80년대 및 90년대 초와 퍼센트로 비교 표현된 수치는 일견 귀농이 하나의 추세인 듯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 실내용을 꼼꼼히 보면 결코 사태가 그리 낭만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농림부 발표에 따른 귀농 인구의 수치는 90년대 들어 3천 4백여 가구라고 한다. 1가구를 5인 가족으로 잡아도 1만7천여 명이다. 증가율로 보면 80년대에 비해 백배는 늘어난 수치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절대적 수는 우리나라의 도시 주택 보급률이 극히 저조하고 따라서 연간 거주 이동 인구가 수천만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숫자라고 보기 힘들다. 더구나 이들의 귀농 사유는 절대 다수가‘도시 소득의 미흡’으로 나타났고 귀농 이후의 만족도 역시 6:4의 비율로 불만족이 많았다. 이것은 이들의 귀농이 결코 안빈낙도의 삶을 찾아 나선 후기산업사회의 경제적 여유의 결과가 아니라 과포화된 도시의 주변화중 일부가 농촌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들의 귀농 이후 성공적인 정착도 아직 불투명하다. 만족도만을 놓고 본다면 그리 밝지 못하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대체로 일간지와 잡지의 보도 태도는 탈도시적 현상들에 대해 낭만적이다.

외곽 문화 공간의 형성에도 적극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 귀농 인구의 예에서 보여지는 것 같은 각박한 현실적 배경도 있다. 근대적 도시공간을 의식적, 예술적 문제의식 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서울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있다. 아직도 많은 극단들은 자체의 극장을 갖고 있지 못하며, 적어도 연극계에서는 흥행의 성공이 곧 수익성의 보장으로 직결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이에 대해서는‘문화예술’1997년 1월호의‘대학로를 문화 인프라로’를 참조하라). 가난한 예술가들이 수년의 공을 들여 문화의 거리로 만든 대학로는 정책적 지원 부재속에서 또 하나의 유흥가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연극계에도 예외가 없는 시장경제의 논리는 적어도 흥행에 있어 포르노와 코미디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대학로를 문화의 거리로 인식되게끔 한 예술인들은 거리를 떠돌고 있는 반면, 개발의 실익을 챙긴 이들은 유흥업자와 부동산 소유자들, 그리고 개발된 부심에 파고든 상업적 성인물 제작업자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인들의 거리로 조성된 브로드웨이가 상업화되어가면서 정작 그 거리를 조성했던 예술인들이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로 밀려났던 미국의 씁쓸한 예를 상기시킨다. 어쩌면 이것은 막기 힘든‘초거대도시’생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생리적 압박이 연극인들에게는 고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 작품의 대관료도 감당하기에 벅찬 극단들로서는 더이상 대학로와 기존의 공연 공간들이 둥지를 틀기에 적합한 곳이 아닐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과포화된 도시 서울의 물류 비용이 연극인들로 하여금 서울에서는 지속적인 연습과 연행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 마련도 힘들게 하고 있다. 결국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외곽의 문화 공간 형성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이 쉽게 고쳐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술인들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도 이러한 공간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귀농 인구의 예와 현재 외곽 지역에 형성되고 있는 문화 공간들의 결정적 차이는 후자가 우리 문화계에서도 발군의 성과를 보여줘왔던 집단이라는 점, 이들에게 예술적 개척 정신이 가장 큰 내재적 동기라는 점이며 거기서 우리는 각박한 사회경제적 배경의 강제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예술적 분투를 희망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나가는 말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서울 외곽 지역 문화 공간들의 형성에는 복합적인 원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대안 형성의 노력이라고 보아야 하겠고 그런 점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매우 비판적인 함의를 띠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그‘불가능한 것들’이‘초거대도시’일반에서 그런 것인지, 특별히‘서울’의 성격상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다. 더불어 만약 서울의 생리가‘반문화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것인지 개선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숙고해 보아야 한다. 예술인들에게 서울이 포기할 수 없으면서도 뿌리내리기 힘든 공간이라는 딜레마가 있다면, 이 딜레마의 해결 여부는 곧바로‘문화 서울’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