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뷰 / 문학

교육 소재 소설의 향방




임헌영 / 문학평론가

■ 교육 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

90년대 중반 무렵에 성장소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자녀들의 교육에 관한 열기가 세계 정상급이라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담아낸 결과이기도 했다. 교육열은 점점 고조되고 있지만 성장소설은 뜻밖에 쉬 사그라져 버렸는데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성장소설로 청소년들의 지적 허기나 성장기 자녀들의 정신적인 자양의 보충을 기대했던 중산층 부모들에게 기대효과를 저버린 탓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서구의 교양소설에 해당하는 역할을 은연중 기대했을 터인데(반드시 문학이 그런 기능을 해야 할 필요나, 그렇게 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성장소설은 거의 예외 없이 지난 시절의 가난 타령이었다. 90년대적 소비사회의 원색 풍토 속에서 50-60년대에 소년기를 보냈던 작가들의 흑백식 회고담은 교양소설적 역할이나 성장의 조언은 고사하고 당장 읽을만한 흥미 유발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대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성장소설이란 성장의 아픔을 형상화시킬만한 바탕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교양·성장문학이 빈약한 경우도 드문데, 이 말은 바로 교육 소재 소설에도 해당될 것이다. 교육이 지닌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파헤쳐 내려는 작가의식은 아쉬운 지경이다. 일제 식민지 시기의 교육문제를 다룬 작품을 엮은「탁류 속을 가는 선생님들」(이오덕·이상경 엮음, 동광 출판사, 1989)이나, 8·15 이후부터 분단시대의 교육 문제를 다룬 작품을 묶은 교육출판기획실 편「누이를 위하여」(실천문학사, 1987)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교육소설의 집대성이다.

앞의 것이 식민지 시대의 작가들(엄흥섭, 이기영, 송영, 현경준, 이근영)이 다룬 당시의 교육현실이 직면했던 모순과 갈등이라면, 뒤의 것은 분단시대의 작가들(김정한, 현길언, 최일남, 송기숙, 현기영, 이혜숙, 윤홍길, 유사춘, 이동하, 전상국, 황석영 등)이 다룬 당대의 교육 현장적 소재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시대가 지닌 여러 상황이나 조건들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비슷한 쟁점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대환이 중편「라면만큼 남은 슬픔」(「현대문학」2)은 그간 교육소재 소설들이 함몰되어 있던 도식성에서 벗어나 교육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70년대 이후 교육 소재 소설은 대개가 바람직한 교육을 저해하는 교육 외적인 여러 요인들(권력이나 입시제도 등)과 대결하는 구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교사나 학생은 대개 선의 상징으로 긍정적 인간상이 되고 그 대조적인 부정적 인물로는 교육제도나 권력층 등이 상징되어 있었다. 요즘 TV에서 흔히 마주치는 교육 드라마도 여전히 이런 도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결말에서는 언제나 각성하는 학생상을 부각시켜 반성의 계기를 만드는 식이다.

45명의 교사 가운데 남자교사가 14명인 효민여중의 교장은 36년 교직 재직자로 정년 1년을 남겨놓은 설립자의 사위로 교장직에만 18년의 경력 소지자다. 이만한 이력이라면 어떤 사고가 터져도 충분히 정년까지는 안착할 수 있는 처세술을 익혔을 법한데, 바로 이 학교 3학년 3반 담임인 국사 담당의 '애살 많은 처녀교사' 송선미 교사가 보는 앞에서 문제아 박은희가 '창턱을 철봉처럼 획 넘어서 땅으로 떨어졌다. 지금, 그 아이의 뇌는 마른 메주처럼 갈라져 있고, 심장이 멎은 상태다.'

'부모는 별거 중, 오빠는 가출상태로 행방불명. 그 아이는 밥집 겸 술집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셋방에 사는데, 그 나마 옆방엔 술집 나가는 여자들이 산다. 가끔씩 아버지가 어머니를 찾아오면 항상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 다음날이면 그 아이는 곧잘 무단결석을 하면서 분식점이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연 나흘간 무단 결석 뒤 학교에 나온 박은희는 2교시에 학년주임으로부터 상담을 빙자한 추궁을 당한 뒤 3교시 국사시간에는 담임으로부터 수업태도 불량으로 지적을 받고 창과 교탁 사이의 중간 지점에 꿇어앉아 있었다. 반장이 '차려 경례'를 시켰고 아이들이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머리를 숙였는데 바로 그 틈에 박은희가 갑자기 사고를 치고 만다.

소설의 화자인 '나' 강 선생은 6년째 중학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인, 석사학위를 가진 전문대 여강사와 육체관계를 지속했었으나, 그녀는 전임강사가 되자 '한 주일의 스트레스를 주말 섹스로 해소해 왔어요. 기약 없는 시간강사 시절엔 정말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거들랑요. 그 동안의 노고가 무척 고마웠다라는 뜻을 담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미국 무슨 대학의 박사증을 가진 연구원'과 결혼해 버린다. 그녀가 결혼한 뒤 박은희 투신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좌변기에 올라타고 담배를 빨아대고 있었다는 소설의 서두는 한 인간의 추락사와 좌변기의 대비로 이 작품이 풍자적 기법으로 나갈 것임을 눈치채게 만든다.

세태를 반영하는 문민시대의 교육소설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 수습 혹은 대비책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작가의 세계관의 반영이기도 한데, 이 효민여중은 한 여학생의 투신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이 작품의 초점이 놓인다. 직원 소집 비상 방송, 회의는 정해진 공식이고, 문제는 회의에서 제기되는 문제일 터이다. 만약 80년대식 소설 같으면 투신 여학생을 '문제아'로 만들지 않고 모범생으로 착색하여 학교 재단이나 교사의 비리를 추궁하다가 벌을 받던 중 사건이 터지는 것으로 인물을 설정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박은희 자신을 아예 문제아로 설정(딱히 그런 게 문제아인지는 또 복잡한 견해가 있겠지만)해버린 터라 한국 교육의 당면한 근본문제로 접근할 요인을 차단시켜 버린다.

이사장과 교장 대 교사, 혹은 어용 교사 대 정의파 교사의 대결도구로 학생의 처벌문제를 제기한 것이 80년대식 도식주의적인 교육소설이었다면 이「라면만큼 남은 슬픔」은 기본 골조를 바꿔 '문민시대의 교육소설'을 실감케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근원적인 교육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새 은연중 교사들 자신까지도 학교라는 체제의 가치관에 동조하도록 변해버린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교사들도 합심하여 '전직원이 일치 단결하여 개교 이래의 이 최대의 위기를 잘 넘겨야 할텐데'라는 교장의 의지로 적극 동조하는 것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이런 사건에 따라붙기 마련인 가족과 일가친척을 빙자한 해결사들의 공세와 지역 언론의 폭로 위협 등등에 대하여 80년대 같으면 전교조 교사 하나쯤 등장하여 설교를 할 법 하지만 훈련받은 병사처럼 일사불란하게 매끄럽게 처리된다. '교무실에서 유일하게 한겨레신문을 들고 출근하는 교사 민 선생'의 '문인, 문민 좋아하시네, 학생주임과 교장의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군사문화의 핵이라고요'라는 항의의 복선장치가 없는 바 아니나, 장례식 때 시신을 운구하여 교실엘 들러가게 하겠다는 요구까지 묵살시켜 버리는데 성공한 효민여중 교직원 일동은 90년대적 정의 불감증을 상징하는 교사상으로 부각된다. 80년대라면 의와 불의의 대결구도가 가능했으나 이제는 그 경제선이 허물어져 버린 상황임을 이 작품은 시사하고 있다.

회자인 '나' 강 선생이 이 과정에서 맡은 일은 언론인에게 허위정보를 줘서 사건을 은폐 조작시키는 역할인데, 예상대로 풀려 나가며, 이게 이 사건 무마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소설이 무엇이냐는 반발에 부딪칠 것이다. 노총각 강 선생은 수업 시간 중 제일 맛없는 게 뭐냐는 박은희의 질문을 받고 '익은 김치를 안 넣고 끓인 라면'이라고 답했는데, '선생님,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제 입도 선생님하고 똑 같아요. 저는 졸업하면 학교 근처 분식점에서 일할 생각인데, 라면은 꼭 저희 집에 와서 잡수세요, 꼬옥, 익은 김치를 넣고 끓여드릴게요'라고 응대하여 '어머, 선생님은 은희하고 찰떡궁합이네'란 야유를 받은 게 지난 주였다. 게다가 은희는 꼭 드릴 말씀이 있으니 토요일 낮에 아무개 분식점으로 나와 달라는 쪽지를 강 선생에게 보냈고, 강 선생은 으레 나가지 않은 채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건이 일단락 된 뒤 주말 강 선생은 꽃 봉투 편지를 받았는데, 바로 은희가 보낸 편지였고, 거기에 임신을 상담하려 했었다는 것과 옆의 술집 나가는 언니 덕분에 낙태수술을 했었다는 등등의 내용 끝에 '아주 나중에 제가 선생님께 김치를 넣고 끓인 라면 한 그릇을 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는 구절도 있었다.

1980년에 등단한 이대환은 현대 사회의 조직 속의 개인의 무력화를 그린 전작장편「말뚜기의 그림자」(동문 1983), 70년대부터 1986년 6월 항쟁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광주 진압군에 투입되었던 청년이 교직에서 물러나는 전말을 그린 교육운동 소재 장편「새벽, 동틀 녘」(푸른나무 1991), 90년대적 사회상을 그린 단편집「조그만 깃발 하나」(창작과 비평 1995), 그리고 최근「우리들의 문민시대」연작을 발표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