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자화상, 구조적 모순, 폭력의 악순환-초록물고기
송희복 / 영화평론가
■ 소설가와 영화감독, 두 길을 걸었던 사람들
신인 감독 이창동의 「초록물고기」가 개봉되자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반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지상의 보도에 의하면 개봉 3일만에 8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 정도에 이르게 되자 감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증폭되지 않을 수 없다.
이창동은 문학동네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소설가이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얼핏보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 직종인 듯 싶다. 그러나 우리 영화사에 소설가가 메가폰을 잡고 연출의 현장에 뛰어든 사례는 이창동의 경우가 세 번째이다.
첫 번째의 경우는 1920년대의 심훈이었다. 그는 「동방의 애인」(1930),「불사조」(1931), 「직녀성」(1934),「상록수」(1935) 등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발표하기 이전에 이른바 '영화소설' 「탈춤」(1926)을 발표했고 또한 자신의 시나리오 「먼동이 틀 때」(1926)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27년 10월 26일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그가 급서 하기 직전에 자신의 소설 「상록수」를 각색한 시나리오를 이미 완성시켰는데, 자신이 직접 배역까지 정해 놓은 상태였다(박동혁 역은 강홍식이었고, 채영신 역은 전옥이었고, 김건배 역은 윤봉춘이었다).
두 번째의 경우는 1960년대의 김승옥이었다. 1960년대 최대의 문제작이자 화제작이었던 「무진기행」의 장본인이었던 그가 영화계와 제휴한 시점은 1967년이었다. 그는 이 해에 자신의 소설「무전기행」을 「안개」라는 제명으로 각색하였고, 김동인의 소설 「감자」를 각색·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과시했다. 이듬해엔,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소설 「장군의 수염」을 각색하여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안개」는 김수용 감독의 수려한 화면구성을 통해 실존적 삶의 허무의식을 영상 이미지로 빚어낸 소위 시적 영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김승옥이 연출한 「감자」는 복녀가 비록 성적으로 타락했지만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짓'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매춘의 현실을 여실하게 묘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녀를 도덕적인 여인상으로 재해석한 영화였다.
이창동의 「초록물고기」는 소설가가 영화감독을 겸한 세 번째의 사례이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래 1993년 제25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건실한 소설 쓰기를 업으로 삼았던 그는 근년에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시나리오 및 조감독)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시나리오)에 간여한 바 있었다.
그밖에, 시인이 시나리오를 통해서나 영화감독으로 영화계에 진출한 전례도 없지 않았다. 이윤택이 몇 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썼다던가 이세룡과 유하가 메가폰을 잡았다던가 하는 경우는 특기할만한 사례이다.
■ 순수한 영혼을 잠식하는 어둠의 현실
「초록물고기」에서 주된 배경이 되는 영등포와 일산은 최근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영등포는 '이 바닥에서 깡다구로 컸다'는 배태곤(문성근 분)이 재개발권을 따내어 향후 부와 풍요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만큼 낙후된 곳이며, 일산은 가난한 원주민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 신도시 개발 열풍에 의해 크게 잠식되어 가는 곳이다. 주인공 막둥이(한석규)가 가족들과 함께 살아 온 곳이자 앞으로 살아갈 곳-그러나, 급속도로 변해 가는 고향 일산으로 인해, 이들에겐 과거가 이미 지워졌고, 미래는 이들로 하여금 현실보다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할 따름이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흉물스러운 건물 안, 형체도 식별하지 못할 만큼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 암흑가가 있다. 암흑가의 보스인 배태곤의 야심이 꿈틀댄다. 유흥가를 경영함으로써 떼돈을 벌어들인 배태곤은 어린 시절에 김밥을 훔쳐먹고 전과자가 된 상처 때문에 반사회적인 사고방식에 철저히 길들여진 인물이다. 그는 머지않아 재개발만 인허가 되면 남부럽지 않은 건물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그의 야심에 장애가 될 요인이 생겨난다. 그의 옛 보스 김양길의 출소가 바로 그것이다. 배태곤은 김양길로부터 온갖 수모와 굴욕을 감수한다. 김양길을 제거하지 않고선 자신의 꿈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배태곤은 순수한 영혼의 청년 막동이를 이용한다. 배태곤이 출세지향성과 반사회성을 공유한 인물이라면, 막동이는 현실안주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식당이나 운영하며 함께 사는 것이 꿈이라던 막동이는 결국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영화상의 서사구조에서는 생략된 부분이지만 배태곤은 막동이로 하여금 김양길을 암살하게 한다. 이 음모는 두 사람만 알도록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음모가 계획대로 성공을 거두자 배태곤은 막동이를 살해함으로써 완전범죄를 끝을 맺는다. 막동이의 죽음은 그 가족에게 살만한 음식점을 마련해 주는 대가가 지불된다.
김양길은 배태곤에서 폭행을 가하고, 배태곤은 막동이를 시켜 김양길을 은밀히 제거하고, 막동이는 철두철미한 보안을 유지하겠다는 배태곤에 의해 살해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력의 악순환이다. 흔히 토사구팽이니 깃털론이니 하는 데서도 암시되고 있듯이 우리 사회의 비정한 정치현실을 보는 것과도 같다. 영화의 후반부에 닭의 목을 칼로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키워서 잡아먹는다, 남을 누르지 않고서는 한 단계 올라설 수 없다, 라는 통속적인 생존방식, 세간의 존명책(存命策)에 대한 정확한 상징성을 얻고 있다. 현실의 모순 속에 내장된 구조적인 폭력성, 그늘진 모습, 욕망과 순수의 틈새에 끼여있는 만성적인 허무감의 징후를 보여주는 미애(심혜진 분)의 표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낯설고 거칠게 표현된 양식을 의도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카메라 움직임이 마치 럭비공 튀는 것 같고, 불안정한 구도나 조감 쇼트의 빈번한 사용은 매우 침중한 정조를 유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친근감을 주는 까닭은 자연스런 실재감, 재기 발랄한 유머감각, 탄탄한 서사구조 등에 있을 것이다.
막동이는 '업루츠 uproots' 즉, 뿌리 뽑힌 자이다. 그는 도회지적 새로운 삶의식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가족적·향토적 공동체 삶의 터전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러한 착찹한 자기모순에 빠진 인간상을 두고 시회학자들은 '경계인'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막동이가 배태곤의 칼을 맞고 죽어갈 때 차창에 얼굴을 붙여 이목구비를 일그러뜨리면서 거친 숨을 내쉬는 장면이다. 어쩌면 오염된 폐수에 의해 죽어 가는 초록물고기의 모습이 그런지도 모른다. 배태곤의 애인인 미애와의 아슬아슬한 사랑게임에서도 그의 순수한 영혼은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타락한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 예컨대 사랑·정의·가족애 등의 덕성을 추구하려다 패배하고 좌절한 문제적 캐릭터이다.
■ 한국적인 '느와르'의 지평
영화사에서 한때 유행했던 장르로 부각했던, 이채롭게 어두운 영화가 있었다. 음침한 색채, 묵중한 분위기,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주제, 폐쇄된 공간에서의 음모, 괴팍한 성격의 안티 히어로, 의혹에 가득 찬 사건,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그림자, 비참한 최후 등등의, 다소 틀에 박힌 관례를 추구하는 영화들을 일컬어 '필름 느와르 Flim Noir'라고 부른다. 필름 느와르의 효시는 존 휴스턴 감독과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1941)로 간주된다. 필름 느와르는 이를 계기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영화로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50년대에 이르러 미국 사회 내의 용공분자를 색출하기 위한 소위 매카시즘의 선풍 앞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의 어둠의 경향성은 10여 년만에 소멸된다. 2차 대전 당시에 사회의 불안과 암울한 미래 등의 시대적인 분위기로부터 출발한 필름 느와르는 제도화된 폭력성에 처한 인간의 강박관념, 도덕의 타락과 사회 정의의 부재, 법질서의 유린,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등의 표현상의 금기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좌파적인 성격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요컨대 필름 느와르는 1941년 일본군의 기습적인 진주만 폭격과 더불어 개막되어 1953년 한국전 종결과 함께 막을 내렸다.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식 느와르 풍이 한때 국제 영화계를 휩쓸었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른바 홍콩 느와르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위세를 부린 바 있다. 어둡고 반사회적인 성향의 홍콩영화는 반환을 앞둔 홍콩의 불안한 미래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현대 사회의 고독한 영웅이 상징하는 주윤발의 허무주의적인 냉소로부터 비롯되었다는 홍콩 느와르는 「영웅본색」(1986)의 오우삼 감독에서 최근의 왕가이 감독으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초록물고기」는 한국적인 느와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영등포 한 건물 안의 어둡고 폐쇄적인 사무실과 폭력집단을 배경으로 한 밤무대를 한국 영화의 대안 공간으로 설정한 것부터가 의미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모순과 검은 욕망의 그림자가 짙게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주목할 수 있는 소이도,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왜곡된 삶의 실상을 다시 돌아보게 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